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369화 (369/507)

369회

[화성 심시티 빌드잇]건설 현장을 그들끼리 돌아보며 루리가 슬쩍 내뱉었다.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한 약간의 투정이다.

"차라리 알려주지 그랬어?"

"소문은 막지 못합니다. 호라이즌으로 막으려고 해도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 퍼지는 소문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습니다"

"차라리 알면 확실하게 납득시키고 더 빠르게 공사를 진행할텐데"

"그러면 조급함이 생기게 됩니다. 강무혁씨의 말도 일리가 있듯이 충분한 시간과 예산이 퀼리티를 만들어내기 마련입니다"

누군가 뒤에서 쫒아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있다.

사람도 작은 상처가 난 것을 모르고 있던 것보다 보았을 때 통증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차라리 모르는게 나을 때도 있는 법이였다.

"그래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네요. 사람을 잘 골랐나봐요"

"제가 뽑은 사람입니다"

"거기서 가슴 내밀고 자랑해봤자 볼것도 없는데"

".........."

"으아아아! 빔 날리지 마! 펙트를 말했다고 빔 쏘는건 치사하잖아!"

루리의 볼 옆으로 순식간에 열선이 지나갔다. 후끈한 느낌이 화닿는게 철판이라도 관통해 녹여버릴 것 같았다.

"저한테 육체는 의미 없습니다. 이 모습이 제일 편하고 에너지 효율이 좋기 때문에 취하는 것 뿐입니다"

"화나서 빔 쏘고 하는 말은 아니라고 보는데"

"........."

"악?! 무거워?! 중력 20배에서 훈련하는 손오공마냥 무거워!!! 크엑?!"

물리법칙을 조종하는 하논인 시온에게 중력을 조절하는건 손쉬운 일이다. 단숨에 루리의 주변만 중력이 몇배는 늘어나서 루리가 바닥을 기게 되었다.

아무튼 도시 건설은 잘 되고 있었다. 다음은 채굴장을 둘러보는 것만 남아 있었다.

쩌저적!!!

다시금 디멘션 게이트를 열어 단숨에 채굴장까지 넘어간다. 하지만 그곳은 따로 테라포밍이 되지 않아서 우주복 없이는 인간은 살 수 없는 화성 그대로의 환경이였다.

루리와 레이즈가 입고 있던 수트의 기능이 자동으로 활성화 되었다. 시온은 애초에 필요 없기에 입지 않았지만 두사람은 호흡하는데 산소가 필요했다.

두두두두두두!!!!

마치 굴삭기가 내는 소리가 채굴장에서 울려퍼진다. 사방에는 광산 안에서 올라오는 석재, 혹은 여러 종류의 금속을 함유한 광석들을 녹이고 분해하여 필요한 것만 뽑아내는 작업이 한창이다.

수트를 벗는다면 후끈한 공기가 느껴질 것이다. 화성의 최고 기온은 섭씨 30도 정도에 불과하니까 지금 채굴장 주변의 기온이 더 높다.

다만 밤이 된다면 이곳에 붙어 있는게 좋다. 화성의 밤은 최대 영하 170도 까지 떨어지니까.

"아, 오신다는건 들었습니다"

"일은 괜찮습니까, 김갑원씨?"

"네, 물론이죠"

꽤나 나이를 먹은, 60대 정도로 보이는 채굴용 수트를 입은 남성이 광산 안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본디 사람이란 나이를 먹으면 편한 현재에 안주하려고 하기 때문에 화성 이주 같은 행성 자체가 바뀌는 큰 일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면접도 합격하여 지금 이 자리에 있었다.

아직 공기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수트에 달린 통신기로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과 다르게 무척 편합니다. 작업 속도가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고 안전하죠. 더군다나 이 옷 덕분에 쾌적하기까지 하니까 여기서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작업하는 동안은 계속 수트를 입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정이 촉박해서 이런 곳까지 테라포밍할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거주 구역이야 사람이 살아야 하니까 최대한 넓힐 수 밖에 없지만 이곳은 자원을 채굴하기 위한 곳이며 인간은 한명 밖에 없다.

단 한사람이 작업할 환경을 위해서 가뜩이나 부족한 테라포밍 장비를 쓰는건 낭비였다. 차라리 작업용 수트를 입고 작업을 시키는 편이 더욱 나았으니까.

"아닙니다. 광산일이 이 정도면 천국이나 다름없죠. 너무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럼 따로 불편하신건 없으십니까?"

"장비가 더 필요하긴 한데......그거야 더 지원해주신다고 했으니 지금은 없습니다. 필요한게 있으면 나중에 말씀드리죠"

"알겠습니다"

육체로서는 노년에 이르러 노화가 진행된다 하더라도 수트 하나만 입으면 혼자서 열 명분의 일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호라이즌의 의료 기술력으로 노화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했다.

쉬는 시간에 종종 약품을 주사하여 안티 에이징 시술까지 하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한창 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런거에 지원하다니 좀 의외네요"

"허허, 그렇게도 보이겠죠. 원래 사람은 늙으면 편한 것에 안주하고 싶어지는게 당연한 것이니까요"

정확하게 말해서, 김갑원이 화성 이주를 택한 것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였다.

그가 이곳에서 일하는 이유처럼, 한때 광산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허나 그는 열악한 환경과 고된 노동, 그리고 적은 봉급에 분노하였다.

"하다못해 월급이라도 좀 올려달라고......돈을 더 벌어서 자식이랑 마누라 좀 더 맛난걸 먹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회사는 외면하고 노조는 우릴 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일어난 집회는 불 붙은 폭탄과 같았고 결국에는 터져버렸다.

현대에서 종종 보이는 노조와 전경의 충돌처럼 집회에 무력이 가미된 것이다.

"물론 저희들도 잘못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분노에 몸을 맡겨 대의까지 있으니 두려울게 없었지요. 피해자인 우리들이 가해자가 되어 애꿎은 피해자도 만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정당하게 책임을 져야겠죠. 하지만 회사와 협상이 끝난 뒤, 정부는 우리들을 잡아가더군요"

노동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다.

일의 선후를 따지면 그들의 조건을 무시하고 진작에 협상하지 않은 회사와 광부들을 기만한 노조의 잘못이다.

그리고 이 일은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난지 10년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계엄령을 선포하고, 수사단인지 뭔지를 꾸려서 주동자랑 조금만 연관됐다 싶은 사람들은 전부 끌고가서 고문에 구타에.......그때 기억만 하더라도 종종 악몽을 꿀 정도로 무섭습니다"

".......어두운 역사였네요"

"웃긴건 뭔줄 아십니까? 그때 수사단장이 전 대통령이였지 뭡니까?"

"이전 대통령 말하는건 아닌것 같고, 딱 봐도 29만원짜리 문어대가리네!"

시위에서 발생한 폭력 행위로 취조 받고 형사처벌 하는 것이라면 법치주의 국가인 만큼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였다. 비록 협상 자리에서 처벌을 하지 말아달라고 약속했다고 한들 해야만 하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고문이 동반되어서는 안된다. 지금이야 극악무도한 살인마의 인권도 지켜주는 시대지만 당시에는 노동 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일어난 노동자의 인권을 짖밟았다.

"그리고 한달 뒤에,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으아아아아......."

루리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침음성을 내뱉었다. 비록 신의 단말이나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가 이야기하는 역사가 얼마나 피로 얼룩진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많은 역경을 겪고 일어난 나라다. 전쟁도 겪고 결국에는 두개로 갈라지기까지 하였지만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드는 국가였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했다. 지금은 멸망한 일본처럼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네, 그런 꼴을 보니까 정부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 않더군요. 해외로 이주하려고 했지만 당시에는 뭘 하던 감시까지 붙어 있어서........포기한 뒤에 화성 이주민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꿈을 이뤄보고 싶었습니다"

"가족분들은......."

"이미 먼저 보냈습니다. 안사람도, 자식들도. 대공황 시절에 말이죠"

최악이 대공황 시절에 부모를 잃어 시설에서 자란 것처럼, 자신 외의 모든 가족들을 잃은 사람도 얼마든지 있었다.

시온은 좋든 나쁘든 인간이 쌓아올린 문화와 역사를 좋아한다. 그가 말한 역사조차도 연민을 느끼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현재가 존재하는 법이였다.

"저는 마냥 정부를 싫어하는게 아닙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시야가 달라졌습니다. 저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태극기를 들면서 시위하는 꼴도 보았죠"

"어떤 느낌이 드셨습니까?"

"추하더군요. 자신이 믿는 것을 의심해 보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이 말입니다"

"인간이란, 본디 그런 생물이기도 합니다. 근거와 증거를 들이밀어도 보기 싫다고 거부하는게 한편으로는 한심합니다"

때로는 받아들이고 고칠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인간은 그렇게 발전해 왔지만 멈추어서 도태되는 자도 있기 마련이다.

시온은 그런 사람들까지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생기면 버릴 것이다.

진화의 반댓말은 퇴화가 아니라 무변화이기 때문이다.

"외계인이시니 실제로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겠지만 주제 넘게 조언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저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적어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는 일은 없을겁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결 놓입니다"

그는 허허, 하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서 회한의 감정이 엿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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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의 운용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오늘 할 일은 전부 해결했다. 다시금 호라이즌으로 돌아온 세사람은 슬슬 하루를 마무리 할 때였다.

"꽤나 착잡한 이야기네요. 저희 델타 캐슬은 내부의 문제는 거의 없었는데 인간의 사회는......."

"원래 그런겁니다. 인간의 역사는 잘못과 실수를 반복해가면서 점차 쌓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개중에서 나쁜 선택을 하고도 계속 올라가면 결국 휘청거리다가 무너지거나 아니면 저희 남편한테 걸려서 작살나는겁니다"

"아니, 거기서 아저씨가?!"

"아무튼 현대사의 산증인을 만난거라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길에서 루리는 투덜거리며 혀를 찼다.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빡치네. 호라이즌 설비 써서 몇놈만 조지면 안됨? 김재규 아저씨! 몇놈 더 올라갑니다!"

"그만 두십시오. 어차피 그런 놈들의 최후는 뻔합니다"

"살아 있잖아. 그게 빡친다는거지"

"인간은 살아 있으면 누구나 죄를 짓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사후에 심판받게 되는게 당연합니다"

설령 이 지구에 지옥이 없어도 환생을 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바다를 헤엄치는 4대 차원종 중 하나, 아레기쉬가 머무는 윤회의 좌로 돌아간다.

그리고 생전에 저지른 업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아레기쉬가 업을 처리할 때 선업은 쉽게 처리되지만 악업은 지독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물론 어느 정도의 선업으로 악업이 상쇄되기는 하지만.......거기에서 다수의 인간에게 원망을 받는 사람은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런 사람들은 사후에 심연에 떨어지게 될겁니다. 그러면 그 뒤는 안봐도 뻔한 일일테니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 그런 놈들이 살아 있다는게 빡친다는거야"

"그거야 사후세계가 없다 할 때의 이야기입니다. 여기 지옥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후에 처벌 받지 않을 걱정은 없습니다"

"초월자는 생각이 달라......!!!"

"아는 염라대왕 소개시켜 드립니까? 존나 쌔서 울 남편도 베어 재낄 수 있는 염라대왕입니다. 울 남편이 그쪽 태생이 아니라서 존나 다행입니다"

"어디에 사는 누군지 대충 알겠네. 됐어, 그냥 넘겨"

인간의 사후 문제는 꽤나 복잡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전에 죄를 지었다고요? 사후에 갚을려고 등골 빠질 걱정을 하십시오, 휴먼!

"........아, 김영호씨에게서 법률 초안 완성 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벌써?"

"보니까 일단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서 그런것 같은데. 그래도 조금 조절할 부분은 있지만 충분히 괜찮은 법률입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처리합시다"

"그게 낫겠네"

화성도 밤이 있다. 어느새 바깥의 기온은 영하에 들어서다 못해 영하 100도가 넘는 저온으로 얼음이 얼고도 남을법한 기온이 되어 생존에 열악한 환경이 되어 있었다.

산소가 없어서 그런 것이다. 그걸 극복하려면 테라포밍이 좀 더 진행되어야 했다.

"오늘은 이만 쉬십시오. 정시 퇴근은 당연한 겁니다"

"그런것 치고는 꽤나 굴리고 있는데 말이죠"

"당신은 좀 덜잔다고 죽지는 않으면서 불평이 많습니다"

"내가 일할 곳을 잘못 정했어!"

델타 캐슬 출신 인간들은 평범한 인간과 스펙이 다르다. 아무리 못나도 평범한 인간 이상의 재능과 오성을 지니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 4시간 잔다 하더라도 죽지는 않음! 인간도 그렇게 살아도 죽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일단 내일 아침 일찍 이야기 하기로 합시다. 두분 다 돌아가서 쉬십시오"

"아줌마는?"

"저야 좀만 더 일 하다가 자면 됩니다. 어차피 수면도 딱히 필요 없고"

"흐으으으으음......."

참고로 시온은 어린애도 보이는 호칭을 싫어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호칭을 오히려 더 좋아한다. 아줌마로 불러도 상관없음!!!

루리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은 점차 변해서 아줌마로 단정되었다. 솔직히 당사자가 좋아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일 9시에 봅시다. 적당히 자고 일어나서 일하기 딱 좋은 시간이니 말입니다"

"막 9시라고 8시에 와서 미리 준비하고 체조하는건 아니지?"

"그런걸 제가 용납하겠습니까?"

"흠터레스팅!!!"

조기 출근, 야근 등은 시온이 혐오하는 부분이다. 인간은 누구나 정해진 시간대로 일하고 퇴근할 권리가 있었다.

"제가 적게 자는건 무슨 이유인데요......"

"딴일하는건 별개의 일입니다. 그래도 레이즈씨는 추가수당 따로 챙겨주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요"

레이즈는 이곳 외에도 델타 캐슬로 돌아갈 때를 대비하여 저축을 하기 위해 시온 아래에서 일하는 것이다. 착하다고 돈이 안필요한건 아니다.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한 만큼 그도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의 무서움......!!!

그게 레이즈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였다.

[작품후기]전편 댓글에 달아주신 분이 있어서 제가 다시금 확인 해봤는데 화성은 인간이 호흡할만한 양의 산소가 없는거지 대기가 없는건 아닙니다.

깜짝 놀라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그랬네요.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이 모래 폭풍 때문에 낙오되고 삼시세끼 찍는걸 봤는데 제가 잘못봤나 싶었죠.

다만 모래폭풍의 규모는 커도 위력은 약하다고 하네요. 전 또 사람 날아갈 정도의 수준을 생각했는데 의외네......이제 알았음.

아무튼 그래서 화성은 테라포밍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행성이라고 합니다.

시온 : 하지만 이 행성은 이제 제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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