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회
[천하삼절이 은원을 너무 쌓아서 무림이 리틀 묵시록?!]가는 길은 심심하지 않았다. 접근해 오는 관군은 모조리 죽여버렸으니까.
어차피 필요한건 무력 시위다. 중국에서는 잔혹함과 더불어서 물리적인 힘 자체를 보여줄 필요성이 더 크지만 여기서는 다수의 군대로는 나한테 쓸모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권능으로 죽여버렸다.
덕분에 길바닥에 수천명이 기절한듯 쓰러져 죽은 꼴은 꽤나 장관이였다. 선이도 덜덜 떨만큼.
"10만 중에서 1만 죽이는데 이틀이나 걸리네. 이야......나도 성격 많이 죽었다"
"이 자식 중국에서 그 지랄 한지 얼마나 됐다고......부탁이니까 적당히 해다오. 여기는 내 고향이다"
"그 계기를 만들어준 새끼가 누군지 알면서 그러냐. 내가 하는게 존나 개새끼 같은 짓인건 알지만 애초에 계기도 없었다면 결과도 없는 법이지"
"읍읍.....!!"
조 장군. 진짜 이름은 조유현. 요 이틀간 나는 그놈에게서 여러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현 황제가 내린 어명은 사실 초청장이였다.
전 왕조와는 다르게 현 왕조는 무림 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고 천년만에 나타난 천하삼절의 제자인 나와 친분을 다지고 황사(皇師)직을 제안하기 위해 어명까지 내려가며 불러들인 것이였다.
단순히 그렇게 됐다면 나야 가는 길에 든든한 빽 하나 얻어서 좋은 일이였겠지만 사건을 만든건 조유현 장군이였다.
평소에 무림인을 황실의 법도도 무시하는 무뢰배로 알고 있던 그는 천하삼절이라고 해봐야 허풍 섞인 위명일 뿐이라고 생각해 나를 추궁하기 일부러 트집 잡아서 태클을 건 것이다.
......물론 내가 보기에는 놈이 말하지 않고 숨기는게 한두개쯤 더 있어 보인다. 쫌만 더 고문하면 술술 불것 같지만 일단 살려는 둬야 하기 때문에 뒀다.
그리고 반역죄 언급까지는 어떻게 커버 쳐줘도 구족을 멸한다는 소리는 내가 고이 넘길 수 없다. 시온에 대한 위협은 전부 배제해야 한다.
"아저씨......사람 안죽이면 안돼요?"
"선이야. 내가 너한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다만, 무림인이 되겠다면 반드시 살인을 저지를 때가 온단다. 그리고 나는 그 중에서 도가 튼 놈이라서 손도 안대고 이렇게 죽일 수 있는거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새끼는 내 가장 소중한걸 걸고 넘어졌지. 설령 그게 관심조차 주지 않는 아주 조금의 위협이라도 나는 그걸 배제할거야"
".........."
"너도 힘이 있었다면 나를 막을거니?"
문득 백리가 생각난다. 중국에서는 백리가 나를 막아서 나도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기껏해야 그레이 정도 밖에 나를 막지 못할텐데.....걔 지금 무림에 없잖아? 온다 하더라도 이미 일 끝난 뒤일거다.
"결국 잘못한건 이 아저씨지만 다른 사람들은 죄가 없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냅둘 수는 없지. 나를 핍박하는 시점에서 놈들은 한패인 법이니까"
"제압만 하면 안되나요?"
"할 수는 있지만 내가 왜? 뭣하러?"
시온에게 위협이 되는 새끼들을 내가 뭐가 귀엽다고 봐주지?
사지를 뽑아서 던져놔도 모자랄판에 곱게 죽여주고 있는 것도 충분히 자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됐어요. 아저씨가 하는건 분명 나쁜 짓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저씨 편을 들어줄래요"
"괜찮겠니?"
"네,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괜찮아요. 참아볼래요"
어린애가 시체를 보는건 그리 정신에 좋지 않지만 그것보다 나는 시온이 우선이다.
이기적이고 매정하다고 욕해도 좋다. 어차피 그건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니까. 잘못하고 나쁜 짓이란걸 알아도 해야만 하는게 내 기준이다.
"자 봐라"
나는 아혈이 제압되어 말도 제대로 못하는 조유현 장군을 그대로 마차 밖으로 들어올려 죽어 자빠진 수천의 병사들을 보여주었다.
"니 새끼가 쓸데없이 구족을 멸한다 소리를 해서 내가 이 짓을 했다. 네놈 때문에 애꿎은 사람들만 죽어나가게 되었지"
"읍! 읍읍읍!!!!!"
"뭐? 내가 죽였지 않냐고? 그 계기를 만들어준게 누군데 그래?"
살인 교사,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살인을 의뢰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은 한놈이랑 똑같은 형벌을 받게 된다.
나에게 죄가 있는만큼 놈에게도 죄가 있다. 궤변 아니냐고? 그러길래 누가 시온 걸고 넘어지랬냐?
"새꺄 내가 본적도 없는 황제에 이 나라 사람도 아닌데다 나이도 너의 수백배 먹은 무림인인데도 충분히 예의를 갖추고 어명을 받들었는데 뭐? 적당한 부분에서 만족할줄 알아야지 새꺄"
"읍읍읍!!!"
"너는 이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나랑 같이 간다. 그러다가 최후의 최후에 순간에 죽여주마"
나는 낄낄 웃으면서 놈을 다시금 마차 안으로 처넣었다.
이미 나는 황군을 1만이나 죽였다. 말이 1만이지 수도 방위에 투입된 병력의 10분지 1이며 현 시대에서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지 오래다. 놈들은 이제 내가 죽던가 지들이 죽던가 덤벼올 생각이다.
아주 조금, 놈들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현 황제의 머리가 깨어 있는 녀석일 경우다. 그렇지만 보통 윗대가리들은 그러지 않지.
"대협, 또 군대가 몰려옵니다"
"알고 있어. 바로 또 조져......"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숫자도 저고 무엇보다 백기를 들고 있습니다"
"백기?"
백기는 항복의 의미도 되지만 사실 정확한 의미는 싸울 생각이 없다는 소리다. 이미 1만이나 죽어나간 상황에 싸울 의사가 없다고?
"흠......"
사실 죽여버려도 된다. 상대가 백기 들고 온다고 무조건 거기에 응해줘야 하는 제네바 협약 같은 것은 이 시대에 없다. 애초에 내가 그런 법 여겨서 손가락질 받는다고 딱히 내가 저질렀던 죄가 줄어들것 같진 않는데 말이야.
하지만 꽤 의외의 상황이기는 했다. 이런 와중에 백기를 들고 와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는건......아, 잠깐만. 처음부터 현 황제는 나를 불려서 일부러 황사 자리까지 제안하려고 했던 인물이지?
황제가 무림인을 스승으로 둔다는 것은 그만한 반발도 있고 상식적이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건 황제의 마인드가 나름 개방적이라는 것인데?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지"
"알겠습니다, 대협"
이윽고 백기를 든 사신이 우리 마차 앞에 당도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공통적으로 검은색 장포를 입은 그들은 한명 한명이 절정 고수이며 그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는 거북이 등딱지 같은 무늬의 방패와 검을 찬 초절정 고수였다.
"설마 묵빛 장포에 흑귀갑순(黑龜甲盾)......사신위 현무 대장군!"
"알고 있는 놈이냐?"
"예, 현 황제 폐하의 휘하에 두고 있는 네명의 대장군 중 한명입니다"
다른 녀석들도 같은 수준이라면 적어도 초절정 고수 넷은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황궁이구만.
그는 말에서 내려 손수 백기를 들고 다가왔다. 나도 마차에서 내려서 놈들을 맞이했다.
"현무 대장군 위연이라 합니다"
"최악. 댁이 생각하는 천살제의 제자"
"예, 용모파기는 특징적이여서 쉽사리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말투는 공손하다. 나는 사회적인 지휘는 없이 그저 무림인이라는, 조유현 장군의 말을 따르면 그냥 일개 야인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무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내가 1만이란 병력을 아무런 외상 없이 죽여버려서 그런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현재 귀하께서 저지른 일은 말하기조차 힘든 참극이지만 그것에는 이유와 오해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부러 백기를 들고 직접 찾아온 것은 폐하께서 오해를 풀고자 저에게 명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오해라"
나는 슬쩍 마차 안에서 제압된 조유현 장군을 꺼내왔다. 이미 제압되어서 숨쉬고 눈을 껌뻑이는거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그는 현무 대장군을 보고 반가움에 꿈틀거렸다.
"처음 어명을 받았을 때 조금 당황하긴 했어도 응해줄 마음이 있었지. 그래서 나름 존중을 가지고 무릎 꿇어 어명을 받으려고 했고"
"그렇다면......."
"저 자는 그것 마저도 아니꼬와 하데? 내가 이 나라 사람이라면 절해도 모자를걸 무례하게 군 셈이지만 나는 이 나라 사람도 아니거든"
"읍읍!!!!"
예의라는 것도 상황과 입장에 따라서 달라진다.
내가 이 나라 국민이고 백성이라면 어명에 절을 하며 받아야 하는게 맞다. 적어도 여기 상식에서는 그러니까 나도 맞춰준다.
근데 난 여기 사람도 아니고 무림인인데다가 혹시 몰라서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어명 받았는데 그거 가지고 트집을 잡아?
"절을 안했다고 반역죄 운운 어쩌고 그러던데. 솔직히 내가 뒤지는건 상관 없는데 구족을 멸한다니 뭐하니 하면서 지랄을 하더라고"
"그건......."
"나는 내 목숨보다 내 아내 목숨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너희들이 나를 반역자로 몰아 내 아내에게 손을 대겠다면 나는 너희 황실을 전부 몰살시키겠다"
농담하는 것이였으면 애초에 1만명을 죽이지도 않았다.
나한테는 그 어떤 사람의 목숨, 재화, 쾌락, 고통을 준다 하더라도 시온이 우선시된다. 내가 팔다리 잘려서 오감을 상실하고 버려진다 하더라도 시온만큼은 무사하면 됐다.
근데 니들이 시온을 걸고 넘어져?
처억!!!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풀어주십시오"
현무 대장군은 고개숙여 나에게 사과를 건냈다.
그들이 백기를 들고 대화를 하러 왔던 것만큼 의외의 일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만 사람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머리가 헬륨보다 가벼워져서 그런지 아래로 내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역죄를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황제 폐하께서 가능한 것입니다. 조유현 장군의 행동은 월권이기 이전에 폐하의 권한을 침범하는 것으로 오히려 역죄가 있다면 조 장군에게 있습니다"
"읍!!!!"
"아니라고 발버둥치는데? 그렇지만 일리는 있네, 니 새끼가 뭔가 역모를 판단하고 지랄이냐?"
막 군사를 들고 일으키는 본격적인 쿠데타가 아닌 이상 확실하게 반역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조금 막말로 자기 정적이 역모를 꾸민다고 여론조작해서 잡아들인 다음에 증거만 조작하면 그대로 확실하게 보낼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런걸 막기 위해서 반역이 일어날 여지가 있다면 최종 권한을 가진건 황제다. 그가 명을 내려야만 본격적인 수색과 처벌을 할 수 있다.
대충 영장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경찰이 마구잡이로 사람 잡아들이면 그게 독재정권이지 민주주의 사회냐? 그럴만한 권한을 가진 놈이 따로 있는데 혼자 김칫국을 원샷한 것이다.
"폐하께서는 당신에게 악의는 커녕 호의를 가지고 계십니다. 죄를 지은 사람은 따로 있으며 서로간의 오해가 생겨 일어난 일이니 차차 그 감정을 푸는 것이 어떻습니까?"
"흐음......."
내가 중국에서 그 짓을 한건 시온을 위협한데다 빡친 것도 있지만 당시 내 위치에서 중국 공산당에 처벌을 요청해봤자 묵살하고 오히려 나를 매도할게 뻔히 보여서다.
라쿤맨이라는 가면쓴 히어로같은 불확실한 위치에서 국가 권력에게 시비를 거는건 보통 승산이 뻔히 보이는 일이니까.
어차피 개소리할거 처음부터 조질 생각으로 막나간거다. 그래서 백리랑 타협을 했어도 공산당의 붕괴만큼은 내가 조건으로 걸고 넘어진 것이고.
하지만 황제에게 그럴 생각도 없고 책임을 묻지도 않고 오히려 사과를 할거라면......한번쯤 만나볼 생각은 있다.
"그리고......아니, 아니다"
물론 만난다고 다 해결되는게 아니다. 황제라도 막 패왕 같은게 아닌 이상 신하의 의견은 묵살할 수 없고 개중에는 내 행동을 탐탁치 않은걸 넘어 반역자로 규정하고 처형해야 한다고 지껄이는 놈들도 있을거다.
그리고 나는 그놈들을 찾아야 한다.
조유현 장군이 나한테 말하지 않고 숨긴 사실......그건 분명 누군가 놈을 부추긴 녀석이 있다는 것이다.
놈의 태도에서 그걸 느꼈다. 일단 황제를 만나보고 판단한 후에 판단을 내리고 확실한 적대 대상을 뿌리채 뽑아 죽일 것이다.
원래라면 증거나 증언 같은걸 모아서 탐색하고 확실한 물증을 발견해 조지는게 정석이지만 그거야 인간이 호랑이를 상대하는 방식이고. 막 코끼리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면 호랑이굴로 직접 쳐들어가서 줘패고 끌고오는게 제일 편하다.
힘으로 안되는 일을 마주했다면 힘이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해봅시다!
"갔다가 지랄나는거 아닌가 몰라. 나는 밥에다 독 넣는 그런거 제일 싫어하는데"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제 직위를 걸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직위가 아니라 목숨을 걸어라. 그래도 괜찮겠냐?"
".......네!"
고민 끝에 목숨을 건다는 결론은 믿을만 하다. 적어도 그만한 대비는 한다는 뜻이니까. 적어도 내 앞에서 그런소리를 한건 거짓이 아니였다.
그런 강직한 사람의 충성을 받는 사람이라니. 개인적으로 흥미가 생겼다.
중국 때랑은 태도가 다르다고? 야, 막 무슨 핑핑이가 -짱-이라고 놀릴만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 막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 운동가를 지원해준 장제스나 임진왜란 시절의 만력제마냥 그러한 태도를 보였으면 내가 그 지랄까지 났을것 같냐?
하다못해 마지막에 한번쯤은 더 생각했겠지. 애초에 그런 사람이 주석이였으면 시온을 강간하려던 놈이 생기지도 않았을테지만.
"좋아. 네 말대로 하지. 우선 황궁으로 가자. 적어도 먼저 시비틀지 않는다면 나도 무력적으로 손쓰진 않겠다. 신경은 안쓰긴 하지만 일단 내 이름 걸고 말하마"
"감사합니다!"
그는 다시금 고개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그 계약의 대가로서 나는 조유현 장군의 신병을 넘겨주었다.
증인이며 증거나 다름없지만 어차피 놈들은 황궁에서 모습을 드러낼게 뻔한 일이다.
"감히 폐하의 위광을 자신의 것으로 여겨 그러한 행패를 부리다니! 네놈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며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처럼 만들어주겠다!!!! 자신이 행한 만행에 충분한 대가를 치를 때까지 지옥의 고통이 있을 것이다!!!"
"으으으으으으으읍!!!!!"
그는 그대로 현무 대장군의 손에 끌려갔다. 나도 만만치 않지만 황실의 사람 고문하는 노하우는 꽤나 남다를 것이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비는게 빠를만큼 말이다.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본 용하연을 비롯한 선이와 동동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별로 신경 안쓰는데 정작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는 모양이다.
[작품후기]대마왕으로서 좋은 위정자는 가뭄에 콩나듯 드물기 때문에 잠깐 유예는 줍니다.
물론 대상만 바뀔 뿐이지 조지는건 맞음.
한편으로 지켜보고 있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죽을맛.
대마왕(휴가중)에서 대마왕(소집 때리기 5분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