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흉의 대마왕 34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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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렉을 먹었는지 버퍼링이 걸리던 남궁지화는 이윽고 현실을 깨닫고 내가 한 말을 이해한 모양이다.
그녀의 안색이 새하햫게 질린다. 자기네 태상가주를 일격에 제압한 것도 모자라 길가에 던져두고 왔으면 입 돌아가는건 둘째쳐도 주화입마가 올지도 모르는 중대사다.
물론 그 정도 경지에 오르면 기절했다고 주화입마에 들진 않을거다. 처음부터 나도 그렇게 죽게 두진 않았고.
"저, 정말로 태상가주님은......."
"사천에서 오는 길 어딘가에 쓰러져 있긴 할텐데 죽이지도 않았고 몸 어디 부러지지도 않았으니까 정신 차렸으면 알아서 올껄. 대신 막 입 돌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의원이나 찾아봐. 그 나이쯤 되면 원래 몸이 골골대서 치매 걱정도 해야되고 막 그래"
아마 지금쯤이면 불나게 뛰어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림인의 경공, 그것도 초절정 고수의 경공이면 내공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달릴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아,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멀리서 강렬한 기파가 느껴진다. 못해도 초절정 고수인데 분노한 기색이 역력하면 딱 그놈이지. 게다가 이미 한번 만난적 있으니까 싫어도 감으로 놈의 기를 기억해 두었다.
오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거다. 1다경 정도? 쉽게 말하면 대충 5분이다. 아무래도 빡쳐서 존나 뛰어오고 있는듯 하다.
"감히 태상가주님을!!!!"
"남궁세가를 모욕하다니!!!"
"아니, 니들 충성심은 좋은데 나설데와 빠질데는 구분 좀 해야지. 정작 니들 대장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데 니들이 그러면 어쩌냐? 명령 불복종은 즉각 처형이라고 군대에서 봤음"
"닥쳐라!!!"
챙!!!
여기저기서 검을 뽑는 소리가 들린다. 남궁지화가 데려왔던 창천검대의 무인들이 나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들 전부가 일류에 속하는 무인. 수준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그들이 갖춘 검진은 능히 그들 수준보다 강한 고수도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명문세가라면 하나쯤 있겠지.
아무리 스승님이 멸문시키긴 했어도 천년이면 그 세를 복구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아니, 그냥 가문이면 100년이라도 복구하겠고 천년이면 나라도 다시 세울 수 있을만큼 긴 시간이다.
게다가 스승님도 막 어디 나가 있거나 시골 방계의 핏줄까지 싹 다 죽여버리진 않았을테니까 사실상 스승님이 죽은 뒤로는 복구해서 2,300년 경에는 진작에 전성기 수준이 되었을껄?
"뭐하는 겁니까! 당장 검을 집어넣고 대협께 사과드리세요!!!"
"하지만 대주님!!!"
"명령입니다!!! 지금 당장!!!"
"크윽......"
명령과 자존심 사이에서 고민하는 그들은 결국에는 자존심을 택했다.
나는 연민어린 표정을 지으며 남궁지화를 보았다. 그래, 아무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대주 자리에 올랐어도 다른 사람의 평가는 별개인 법이다. 만약 정말로 부대를 휘어잡는 지휘관이라면 이런 명령 불복종 같은 일은 없었겠지.
그리고 그 사실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아무리 천살제의 제자라고 한들 천년 전의 인물입니다! 그 천년 동안 남궁세가의 무공도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 천하삼절의 위명이 전설일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겠습니다!!!!"
"말 한번 잘했구나!!!!"
"태, 태상가주님?!?!"
그 타이밍에 그놈이 들어왔다. 별호가 창천신검이랬나? 아무튼 걔.
딱 좋은 타이밍에 난입하는건 운이 좋은건지 아니면 나쁜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늦게 왔으면 얘들 선으로 끝낼 수 있었는데.
"허업!!! 창천신검!!!"
"남궁세가의 태상가주다! 초절정 고수!!!"
"남궁세가와 천살제......그 악연 때문에 온 것인가!!!"
성질 더러운 노친내는 으르렁거리는 모습으로 객잔 안에 들어섰다.
외견상으로는 아무런 상처가 없다. 하지만 그의 내공은 여기까지 달려오는데 썼는지 단전의 3분지 1 정도 밖에 없었다. 사실상 전투력의 3할 정도 밖에 못낸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그걸 모르는 창천검대 녀석들은 의기양양한 표정이 되었다. 초절정 고수가 아군으로 합류한 것이니 사기가 올라간거다.
사기는 중요하다. 이길 전쟁도 사기가 떨어지면 수적 우세가 있어도 질 수 있는 법이고 그 반대도 있다.
근데 사기가 전부는 아니지. 그랬으면 막 야마토 정신 어쩌구 하는 정신론을 지껄이는 일본이 태평양 전쟁 때 원폭을 두방이나 처맞았겠어?
"거 봄 날씨라도 밤에는 찰텐데 어때 길바닥은 지낼만 했소?"
"이노오오옴!!! 비겁하게 암수를 써서 이긴 주제에 혓바닥이 길구나!! 네놈의 혓바닥을 뽑아다 잘라내주마!!!"
"암수? 그럴만한 위치는 되고? 내가 자존심이 있지 너 같은 녀석한테 막 암수 쓰고 그러겠냐?"
"이노오오옴!!!!"
나도 뭐 사람이고 불리하면 기습도 하니까 암수를 안쓴다고는 안한다.
근데 그건 저번에 러시아에서 루루랑 붙었을 때처럼 상대가 초월자일 때 그런거고. 초월자에도 들지 못한 그냥저냥 초절정 고수한테 암수까지 쓰기에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냐?
비유하자면 어린애한테 속여서 사탕 뺏는 짓이나 마찬가지인데? 있는놈이 더한다고 해도 그거야 같은 선상에서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할 때나 이야기지 놈은 그 수준에서 못미친다.
아, 생각해보니까 쫌 빡치네.
"태상가주님!!! 싸우시면 안됩니다!! 부디 진정해 주십시오!!"
"지화 넌 빠져 있거라. 내 이 자리에서 남궁세가가 결코 천살제의 아래가 아님을 증명하고 말 것이다!!!! 천년의 오명을 여기서 씻겠다!!!"
콰콰콰콰!!!!
강렬한 기파가 몰아친다. 나는 슬쩍 손짓해서 그 기파를 흐트러트린다.
다른건 모르겠는데 뒤에서 개꿀잼이라는 눈으로 밥 먹으며 보고 있는 선이가 있었다.
비록 주화입마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내상은 입는 법이다. 더군다나 초절정 고수가 분노하며 내뿜는 기파는 건장한 남자도 휘청거리게 만들 정도니까 기왕이면 처리해두는게 낫다.
근데 선이한테 좋은것만 보여주려고 했는데 이런 무림인의 추한 모습을 보니까 좀 그렇네.
"오명이고 나발이고 애초에 내가 아니라 스승님이 한건데 스승님한테 가서 따지지?"
"흥!!! 스승이 진 원한은 제자가 갚는게 당연한 법도 아닌가!!!"
"그래? 그러면 내가 남궁세가에 진 빚을 대신 받아도 되는거지? 그럼......아, 맞다"
과연 스승님이 이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이미 그 시절에 스승님의 친구가 있던 서문세가를 멸문시킨 남궁세가는 스승님의 손으로 무너트렸다. 본인이 아니고서야 무관심할지, 아니면 다시금 멸문시킬지 나도 모르는 법이다.
여기서 다 죽여버렸다가 나중에 따지고 들면 나만 손해란 말이야.
"근데 꼭 니들이 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쪽수가 많으니까 만만해 보이디?"
"흥! 기껏해야 천년 전의 무공! 그런 오래되고 고리타분한 무공으로 발전해봤자 남궁세가가 천년을 들여 발전해온 무공에는 미치지 못할게 뻔하지!!!"
".........고리타분?"
아, 이런.
생각해보니까 여기에는 그레이 제자라는 카테고리라면 포함되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있던 용하연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아무래도 방금 그 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든듯 하다.
나는 몰라도 그녀는 무림인, 무림인에게 무공 가지고 시비터는 것 만큼 싸움 일어나기 쉬운 것도 드물다.
설령 지구에서 태어났어도 그녀는 천성이 무림인이다.
드르륵!
의자를 밀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무섭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싸움판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고리타분한 무공?"
"네년은 또 뭐냐?"
"요즘 무림에는 보는 눈 없는 것들이 수두룩한 모양이군. 어떻게 그 따위 눈으로 태상가주씩이나 해먹었지?"
"야, 너 지금 반박귀진(返璞歸眞)이야. 너 알아볼만한 사람은 적어도 이 무림엔 없어"
용하연의 등에 매고 있는 대검은 확실히 크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고수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반로환동을 해서 손에는 굳은살 하나 없고 반반귀진을 하여 내공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초월자가 아니면 그녀의 수준을 파악하기 어렵다.
근데 그런거 따지면 나도 마찬가지이기도 한데......왜 나만 시비를 털지? 내가 만만해보이나?
"내 사손뻘의 은원이라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다만 사문까지 싸잡아서 모욕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뭐여, 간접적 패드립 때문에 빡침?"
"넌 가만히 있어라. 어차피 네가 나서기도 그럴테니까"
"으이구, 알았어. 누가 스승 빠돌이 아니랄까봐"
애매한 내 상황을 눈치 챘는지 용하연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뒤로 물렸다. 이럴 때는 노련한 무림인이라니까. 그레이가 제자 잘 키웠어.
.....얀데레끼만 없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야.
"관계 없는 자는 빠져라! 이건 남궁세가와 천살제간의 일이다!!!"
"무림인은 무공으로 말하는 법이지. 명분을 들이댈 생각이라면 먼저 그만한 힘이 있는지부터 생각하고 말해라"
후우우웅!!!
그녀가 그레이 소드를 뽑아들자 묵직한 바람이 일어난다. 밥상에 먼지가 올라올 정도로 휘둘러진 대검은 딱 봐도 무게가 장난 아니고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글고 아까 못 들었나? 누구 무공이 고리타분하다고?"
우우우우우웅!!!
그녀가 내공을 불어넣자 그레이 소드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핸드폰 진동을 수백배로 확대한 듯한.......그 자체만으로도 공간을 점하고 위압감을 주는 공간 공명이다.
"검명(劍鳴)? 아니, 다르군!!"
"저, 저건!!!"
"마룡일기공!!! 마룡후의 마룡일기공이 분명하다!!!"
"공간 자체를 울리는 기이한 울림! 확실하다!!!"
그제서야 창천신검은 흠칫하며 놀랐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천살제의 제자인 내 옆에 같은 천하삼절의 무공을 쓰는 자가 있다는건 가능성이 낮은 일은 아닐테니 한편으로는 납득할 수 있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납득한다면 그녀를 용하연 본인이 아니라 제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천년전 인물이 눈 앞의 당사자라고 누가 생각하겠어?
보통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환생해서 기억 찾고 돌아온거니까 한편으로는 타인이기도 하다.
"마룡일기공? 설마 마룡후의......!!!"
"한가지 여기서 당당하게 말해두마. 나는 마룡후의 제자가 아니다"
"........?"
"나는 마룡후 본인이다!!!!"
"........!!"
내가 천살제의 제자라고 무림에서 선배 대접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 배분을 생각하면 용하연이 훨씬 위다.
그녀의 사제가 내 스승의 스승이니까. 나는 엄밀하게 말해서 그녀의 사손뻘이다.
물론 그 배분은 현 무림에서도 먹힌다. 천년전의 노고수, 거기에 반로환동까지 해서 돌아온 그녀는 이 무림에서 그레이를 제외하고 배분으로 이길 사람이 없다. 심지어 만병왕 조차도 그녀의 사제다.
"마룡후 본인이라고?"
"설마......"
"아니, 천살제의 제자 또한 모습을 드러냈는데 본인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은 어디있나?"
"더군다나 마룡후 선배께선 다른 천하삼절과 달리 생사 또한 불분명 했었으니......!!"
수근거리는 소리가 커지고 그녀를 쳐다보지만 마룡일기공으로 공명하는 그레이 소드가 그 증거가 되어 사람들을 납득시켰다.
무림인은 무공으로 증명한다, 독문무공이나 성명절기가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네놈은 방금 우리 사문의 무공을 천년 전이 어쩌니 하면서 고리타분하다 모욕했다. 그렇다면 그 대가를 치를 각오는 되어 있겠지?"
"크, 크흠!!!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남궁세가는 천년 전의 허명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
"각오가 되어 있다는 소리겠군"
창천신검이 검을 뽑아들었다. 아, 저거도 동동이가 무슨 검이라고 했었는데......지금 보니까 꽤 잘 단련된 명검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었다. 애초에 결판은 쉽사리 날테니까.
우우웅!!!
두사람의 기파가 충돌하고 이내 그들만의 영역을 만든다. 지금의 마룡후는 가이아 포스와 내공, 두가지 이능력을 가지고 둘 다 쓸 수 있지만 지금은 가이아 포스를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창천신검의 검에서 강기가 뿜어진다. 초절정 고수에 걸맞는 순수한 검강이였다.
허나 검강을 뿜어낸다고 한들 뭐하리, 초월자의 대결에서 중요한건 기술이 아니라 의지다. 검강이라도 거기에 의지를 담는다면 충분히 초월자의 전투에서 쓸 수 있지만 반대로 그러지 못하면 압살당할 뿐이다.
용하연의 마룡일기공은 공간 공명을 일으키는 무공. 공간이란 개념을 공명이란 수단을 사용하여 간섭한다. 초월자에 들어서지 못한 무인의 검강 따위보다 공간이란 개념이 더 위에 있는건 당연하다.
어느덧 두사람이 충돌한다. 일반인의 동체시력으로는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빠른 검격, 아마 동동이도 겨우 눈으로 쫒을 것이고 선이는 아예 보지도 못할거다.
서걱!!!!
두사람의 검이 맞대어지고 검강이 뿜어지던 창천신검의 검은 버터마냥 잘려나간다.
"커헉!!!"
검강을 뿜어내던 감이 잘려나가 기맥에 타격을 입어 내상이 생긴건지 창천신검은 토혈을 하며 쓰러졌다. 부러진 검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했지만 정상이 아닌건 확실해 보인다.
"태상가주님!!!"
"이, 이럴수가!!!"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이랑 그렇지 않은 사람, 누가 봐도 명백하게 승패가 갈렸다.
"네 이년! 감히 사술을 쓰다니!!!"
"그, 그래! 그렇지 않으면 태상가주님이 질리 없다!!!!"
아, 그래. 그 말 왜 나오지 않나 했다.
무림인은 꼭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사술 타령하더라. 근데 그 레파토리 지겹다!!!
========== 작품 후기 ==========
무협 소설 보면 꼭 사술 타령하는 놈들이 있죠.
그래봤자 자기가 진걸 사술 핑계 되는게 아니라 사술 따위에 속아 넘어간 등신이 되는건데 말입니다.
무림인은 보통 그럴싸한 계획이 있습니다. 존나 처맞기 전까지는요.
남궁세가 : 천살제 제자는 스승보다 약할테니까 싸우면 승산 있음!!
최악 : 엌ㅋㅋ, 재밌네. 계속 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