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흉의 대마왕 329편
<-- -->
내가 선이에게 요리를 가르치는 것은 만류귀종이란 이치를 따르는 수 밖에 없다.
사실 솔직하게 말하면 끼워 맞추기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국하루의 명예를 되찾으려면 어쩔 수 없는 방법이다.
"내가 나서면 막 이기는건 당연하고 심사관의 등 뒤에 미미(美味)! 하고 글자가 지나갈 정도지만 너무 사기인데다가 지금 내가 나서기에는 면목이 없으니까 네가 해야 해"
"일단 해보기는 할텐데요......"
"재미있게 가르쳐줄테니까 한번 해봐"
내가 선이에게 알려준 낭아유수는 흐름을 중요시 여기는 무공이다. 그렇다면 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차차 난이도를 낮은 부분에서 올라기는 수 밖에 없다.
나는 일단 객잔으로 돌아와 따로 객잔 뒤에 마련된 별실 앞에서 선이를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자고로 요리의 시작은 불 조절이다.
"자, 이게 뭐지?"
"모닥불이요"
"그래, 산에서 피워봤다면 대충 짐작은 가지? 그런데 불이라는 개념은 수련하는데 꽤나 도움이 되거든"
만약 시온이였다면 불은 산화 반응을 통해 빛과 열을 내는.......대충 그런 느낌의 이과적인 말을 했을 것이다. 하긴, 그게 물리법칙 아래에서는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하지만 불 이란 것을 피우다 보면 종종 먼지나 잿가루 같은 것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건 그저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열기구의 원리와 같은 것이지만 개념적인 부분에서는 좀 다르다.
이 세상은 결국에는 순환한다.
물만 보더라도 지하수가 솟아나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 나가다 흙으로 여과되어 다시금 지하수가 된다.
질량 보존의 법칙과 같이 결국에는 형태만 변할 뿐 총량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걸 기반으로 해서 완성된 이론이 영제(靈帝)의 순환이론(循環理論)이다.
이건 솔직히 나랑 그리 맞지 않는 분야다. 애초에 영제는 자연이란 개념을 승화한 네이처 로드(Nature Lord)인 관계로 거기서 이치의 순환을 깨달아서 극한의 효율과 에너지 회수를 보이는 이상 인피니티 포스 코어랑은 반대된다.
게다가 탐심무량기공의 기반이 되는건 순환이론이 아니라 의지근원론(意志根原論)이니까.....
내가 가진 필살기 중에서 흉제붕권(凶帝崩拳), 혹은 암제붕권(暗帝崩拳), 뇌제붕권(雷帝崩拳) 등등의 붕권 시리즈도 마찬가지로 의지근원론을 기반으로 하는데,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세상 만물은 의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그 어떤 것이던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온갖 종류의 이능력이나 에너지 또한 결국에 타고 올라가면 의지를 두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잘만 다루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시이이이이벌, 문과인 내가 좀 더 강해지겠다고 머리 깨지게 이런 이론을 얼마나 뒤적거렸는지!!!!!!
아무튼 인피니티 포스 코어 또한 같은 원리다. 살아있는 이상 의지는 존재하고, 그 의지를 기반으로 해서 다른 이능력으로 변환시켜 생성한다. 그래서 일단 무한에 가까운 출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불이란건 흐름을 보기 좋지. 모닥불을 지켜봤다면 불이 피어오름에 따라서 올라오는 열기와 바람을 느끼고 그 흐름을 파악해봐. 시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파악하는게 중요해"
"아! 재미있겠다!"
"다행이네"
선이가 수련에 흥미를 보였다. 좋은 징조였다.
애초에 요리에서 중요한건 불이다. 특히나 중화 요리라면 괜히 불맛이 있는게 아니듯 불을 다루는게 중요했다.
더군다나 이 시대에는 가스레인지나 그런게 없다. 불 조절은 온전히 요리사의 몫일 수 밖에 없기에 불을 다루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막 요리 못하는 사람 보면 공통점이 있잖아. 약불을 모르는거. 시간 들여서 끓여야 하는 것도 강불에다가 막 끓이니까 타고 망하는거지! 으아아아아! 당장 주방에서 나와 이 심연의 떨거지 새끼들아!!!!!
"아저씨 왜 화난 얼굴이예요?"
"응? 아......옛날부터 요리 못하는 사람은 어쩐지 좀 그래서. 못할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허들은 있거든. 독 요리 수준은 진짜 좀......"
사람의 가치가 요리로 평가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업이 요리사인 이상 픽션에서나 나올법한 포이즌 쿠킹 능력자들은 극혐한다.
내가 어지간해서는 요리 가르쳐줄 때 별말 안하는데 그런 사람한테는 램지썬더 아저씨가 빙의 되어서 '네놈의 요리는 너무 독성이 강해서 청산가리마냥 아몬드 향이 나겠다!!!!'같은 소리를 할것 같다.
"앗, 열심히 할게요!!!!!!"
"엉? 아, 그래"
선이는 피어 오르는 불규칙적인 불꽃의 춤을 보면서 뭔가 곰곰히 생각했다. 손을 뻗어서 모닥불의 열기를 느끼고 그걸 체감한다.
그러다가 문득 불이 아니라 그 위의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 열기는 단순하게 생기는게 아니라 위로 올라가는거구나!"
"........"
뜨거운 것은 상승한다. 아까 말했듯이 열기구 같은 것을 알고 있는 현대 지구인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당연한 정보지만 이런 고대 중국 시절에서는 과학이란 학문이 발달하지 않아 지식인이 아니면 모르는 정보다.
나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선이는 자기 혼자서 깨우친거다. 생각할수록 무서운 재능이다.
"불의 흐름을 기억해. 불규칙적이지만 흐름 자체를 기억하면 불을 두려워 할 일은 없어"
동물이 불을 무서워 하는 이유는 그 뜨거움과 빛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이용하게 되어 비로서 동물과 별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열기라는 흐름을 기억하고 낭아유수를 통해 그 흐름을 비껴가는 법을 파악한다면.......설령 불 바로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뜨거울 일은 없다. 불 한가운데 손을 넣지 않는 이상 화상을 입을 일은 없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건 요리사로서 더 없는 메리트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다. 무림인으로서는 화공이나 열양지기(熱陽之氣)를 쓰는 녀석한테는 우위를 점한다는 소리고.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알것 같아요"
"그래? 그러면 이건 어때?"
내가 슬쩍 희미한 화기(火氣)를 뿜어내어서 선이에게 날렸다. 기껐해야 약간 뜨거운 공기 정도의 열기를 지녔지만 인위적인걸 구분할 수 있을법한 일종의 기탄(氣彈)이였다.
일부러 색까지 넣어서 눈에 보이게 해두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고열 특유의 아지랑이 조차도 보이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핫!"
선이는 낭아유수의 자세를 취한 후에 내가 날린 기탄을 손바닥으로 받아내어 감싸고 그것의 방향을 비틀어 저 하늘로 올려보냈다.
내가 진심으로 날렸다면 그러지 못하고 선이한테 직격했겠지만 애초에 그게 목적이 아니라 선이의 깨달음을 확인하기 위해 날린거다. 요점만 깨우쳤다면 그걸로 됐다.
"이해는 한 모양이구나. 낭아유수도 얼추 깨우친 모양이고"
"네!"
낭아유수를 얼추 깨우친 시점에서도 선이는 못해도 일류 무사 수준의 깨달음을 얻은 격이다. 만약 내공과 신체능력만 받쳐준다면 절정 고수도 눈 앞에 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두가지는 노력과 시간 없이는 얻을 수 없는거다. 내공은 내가 불어넣어줘도 되지만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다음으로는 웍 다루는 법을 배우자"
"그건 본격적인 요리 아니예요?"
"손목 단련 한다고 생각해. 어차피 낭아유수는 흐름을 중요시 하기 때문에 관절과 관절간의 움직임이 단련되어야 쓰기 편하니까"
"네에!"
간만에 딸 키우는 느낌이 난다.
예진이는 고등학생인데다 현대 지구에서 태어나서 교육이나 지식이 충분하기에 내가 케어해줄 부분은 많지 않았지만 선이는 완전 어린애에 무공까지 가르쳐주고 있었다.
게다가 진짜 핏줄이기도 했었으니 더욱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고.
아무튼 객잔에 말해서 가져온 묵직한 웍은 어린애가 들기에는 꽤나 힘들어 보였지만 선이도 이제 내가기공을 익힌 무림인이다. 게다가 상대는 나름 재능있는 요리사라면 그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지.
"으으으, 무거워!"
"그 정도는 휘두를 수 있어야 요리사인 법이야"
"저 요리사 안할건데요.....무림인 할거예요......"
"무림인은 밥 안먹을거니? 나중에 산에서 야숙하고 그럴 일 많을텐데 밥 안해먹고 살거야? 다른건 몰라도 기본적인 가사 능력은 있어야 나중에 무림이 되도 편해"
"그래요?"
"내가 겪어봐서 알아"
이 세계에서는 평범하게 가게 차려서 살았지만 나도 무림인으로 산 적이 없는건 아니다. 거의 비교적 오래전 회차의 환생이라 그렇지.
물론 그때 당시에도 무림인이라도 마냥 칼밥 먹고 산건 아니다. 본업은 요리사고 부업이 무림인이였던 경우니까.
초월자도 어디 가서 굶어 죽지 않게 배우는 기술 한두개쯤은 있으니까 요리는 나랑 떼어놓을 수 없지.
나는 웍에다가 모래를 한가득 올려놓고 선이에게 내밀었다.
"일단 천번 정도 휘둘러보자"
"엑"
손목 인대 나가기 전에는 돌봐줄테니까 걱정 마렴.
*
*
*
*
요리란건 의외로 체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 섬세함은 필요하긴 하지만 막 어디 고급진 요리 만들려고 하는게 아닌 이상 그렇게 많이 필요는 없다.
어차피 간 맞추는건 모자라면 넣으면 되는거고 많으면 물을 넣으면 되는거라서 말이다. 진짜 막 손바닥보다 손 많이 가는 요리 만드는거면 소금 반의 반스푼도 계산하고 넣어야 하지만 어지간해서는 그냥 하면 된다.
미각치가 아니고서야 막 소금 한주먹! 설탕 한주먹! 그런 식의 주먹구구로 간을 하겠냐?
"네가 만들 요리는 어차피 딱 하나야. 그것만 존나 열심히 해서 만들면 되니까 너무 부담갖지 마"
"그게 아저씨가 말한 국하루의 마파두부예요?"
"먹어본적 있어?"
"흐음......그때는 어려서 매운거 먹으면 큰일난다고 한두번 밖에 먹어본적 없어요"
"하긴"
사천 요리는 맵고 얼얼하다. 성인 남자도 매운거 잘못 먹으면 화장실 가서 개고생을 하는데 어린애는 오죽할까. 그래서 저번에 객잔 와서 선이는 매운거 말고 딴거 시켜준거고.
지금이야 그나마 낫겠지만 그 시절이라면 선이는 대여섯살 수준이다. 그런 애한테 본고장 마파두부 먹이면 못써, 학대 수준이라고.
"핑계에 가깝겠지만 내가 너한테 요리를 가르쳐주는 이유는 겉보다는 안에 들어간 의미를 보라는 것이야"
"두부요?"
"아니, 마파두부라고 해서 두부 말고"
나에게 있어 금전은 그리 가치가 있는게 아니다. 환생을 하면 쌓아왔던 재화는 결국에 사라지기 마련이며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딱히 사는데 지장 없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요리를 만들어서 파는 요리사를 직업으로 삼았는가?
그에 대한 해답은 먹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무공도 마찬가지야. 마공이라고 마냥 나쁜 것도 아니고 정종무공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지. 음, 어디서 본 비유인데 뭐였더라......"
예전에 한 영화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헌신적으로 가르친 어머니가 한 말이 기억났다.
선이한테 이해하기 쉽게 현지화 시켜서 말하자면......
"누가 널 때렸다면 과연 그 사람은 정파일까, 사파일까, 흑도일까, 마교도일까?"
"그건 확인하지 않고서는 모르지 않아요?"
"그렇지? 좋고 나쁜 것을 행하는 것은 결국에는 그런 사회적인 껍데기가 아니라 행하는 사람인거야. 즉, 내용물이며 그것은 의미지"
내가 같은 영혼을 가졌다고 히비키를 슈텐 취급 하지 않는 것처럼 중요한건 내용물이다. 즉, 거기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국하루의 마파두부는 거기서 생각해야 해. 왜 그렇게 만들었을까, 더 맛있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왜 하필이면 그렇게 만들었을까. 요리를 만든 의미를 생각하듯이 무공의 의미 또한 생각해서 수련을 해야 하는거야. 무공을 익히는 것을 괜히 공부(功夫)라고 하는게 아닌걸"
빠른 성장은 부작용을 겸비한다.
현 국하루의 주인을 맡고 있는 양윤채도 그런 부류다. 재능 있고 경험도 쌓았다면 자기 실력에 자부심이 아니라 자만심을 가지게 되며 독선적이게 된다.
선이가 그렇게 된다면 그리 좋지 않을거다. 우리 집안 특유의 성격이 있으니까 최악의 경우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나 같이 지인 외의 사람에게는 관심 없는 사이코패스가 될지도 모른다.
원래 부모는 자식이 자신의 나쁜 면을 닮지 않기를 바라는 법이다......그건 나라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깊게 생각하고 거기에 숨겨진 것이 있진 않을까 고민하는 자세를 가지렴. 그건 너를 성장시켜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할테니까"
"네!"
나는 일단 한번 만드는걸 보여주기 위해서 재료를 사왔다. 한번 봐도야 따라서 만들기라도 하지.
두부 같은건 처음부터 손수 만들면 좋지만 이번에는 기성품을 사용하기로 했다. 대회 전날 만들면 되니까 연습용은 이걸로 해두자.
"어라? 그런데 고기는 어디있어요? 마파두부에는 고기도 들어갈텐데"
"국하루의 마파두부에는 고기가 안들어가"
참고로 딱히 비건메뉴라던가 그런거 아니다. 고기 자체가 안들어가는거지 고기 기름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그치만 마파두부에 들어간 다진 고기 같은거 고기 아니예요?"
"그건 무늬만 고기지"
참고로 소싯적에 요리왕 비룡 좀 본 사람은 대충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 만들어본 이유가 그거 따라해보려고 그런 것이기도 하고.
만든 이유는 다르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고기 없는 마파두부.....국하루.....요리대결.....앗, 이거 어디선가!
물론 모티브는 그거 맞습니다. 요리 잘하는 주인공이면 무림에서 일어난 트러블보다 이런게 더 어울리기도 하니까요. 전생 인연을 정리해야 하기도 하고.
가끔 너무 나가서 도핑 불도장 스프다! 같은 암흑요리계를 생각해보기도 했는데 그건 아니지 싶습니다.
그런데 왜 선이를 이렇게 잘 가르치냐고요?
글쎄요.....그나저나 요즘 오등분의 신부인지 신랑인지 뭔지가 엔딩각 뜬다고 하더라고요,
오등분까지는 안갈듯.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