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흉의 대마왕 316편
<-- -->
일단 제자건 뭐건 간에 바지에 오줌 지린 상태에서 할만한 이야기는 아닌걸로 보인다.
나는 딱히 제자 안받는 주의거나 그런건 아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시온 외의 결혼도 해봤는데 제자라고 다를거 같냐? 오히려 더 많지.
다만 나는 재능이 없는데 그냥 경험빨로 밀어붙인게 대다수라서 가르치는 재능은 별로 없다.
아, 이론이라면 문과라 잘 가르칠 수 있지만. 무공은 이과적인 것도 좀 포함되어 있지만 대다수는 문과적인 부분이라고. 무공 구결이 괜히 추상적인게 아니야.
"일단 좀 씻고 이야기 하자"
"아......!"
아이는 부끄러운지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잘 보니까 좀 꼬질꼬질해 보이지만 예쁘장한 아이다. 성별은......여자아이네?
원래 나이가 어리면 여자아이나 남자아이나 둘 다 구분하기 어려운 법이다. 어릴 때는 여자아이의 성장이 더 빨라서 체구로 구분할 수 없기도 하고.
근처에 강 흐르는 소리가 들리니까 거기서 씻으면 되겠다.
"애 데리고 갈테니까 따라와"
"꽤나 상냥하군. 대마왕 할 때의 성격은 어디 갔나?"
"뭐래, 이게 내 보통 성격이야. 그리고 우리가 잘못한건데 쌩까는 것도 그렇잖아"
나는 아이를 데리고 근처의 강가로 향했다.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런건 큰 장애가 되지 않는다.
강가에 이른 우리들은 애는 잠깐 씻으라고 두고 나는 시온이 챙겨준 물건을 뒤져서 수건 같은거 없나 찾아보았다.
"그건 뭐지?"
"이거? 4차원 주머니 비슷한거야. 좀 더 물질적인 아공간? 너도 그레이 제자면 이것도 한번쯤 봤을텐데?"
"아, 본적 있다. 그거랑 비슷한거로군"
다만 무한정한 부피의 4차원 주머니가 아니라 좀 작은거다. 안에는 주로 유토피아의 순도 100퍼센트 황금이라던게 그런게 있고 나머지는 잡동사니들이다.
만약 부피가 큰걸로 가져왔으면 시온이 이것저것 다 넣을껄? 그러면 오히려 귀찮다. 찾는게 문제가 아니라 정리가.
"아, 있네. 다행이다. 옷이야 빨면 되는데 애 물기 닦는데는 수건이 낫지"
"너 정도 된다면 수분 정도야 날려버리는건 쉽지 않나?"
"야, 내가 아무리 개새끼여도 멀쩡한 여자애 몸 더듬는 짓 같은건 좀 그렇거든? 수분을 날려버리려면 역장으로 쓸어줘야 하는데 만지는거랑 별 차이 없거든?"
역장을 둘러서 보호 해주는거랑 몸에 뭔가 직접적으로 해주는건 다르다. 갑옷을 씌워주는거랑 몸 닦아주는게 같을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여자아이라도, 아니 오히려 여자아이니까 더 그러는 법이다. 내가 제일 혐오하는 새끼 중에 하나가 바로 어린아이한테 성욕을 품는 페도 새끼야.
........시온을 보면 일단 자살부터 해야할것 같지만 그래도 시온 외의 어린 여자아이한테는 전혀 관심 없다.
"저, 저기....."
"일단 물기 좀 닦고 옷 좀 줘봐라. 후딱 빨아버리게"
나는 아이의 옷을 받아다가 물에다 빨았다. 옷의 재질이 그리 좋은게 아니라서 빨래판에 빨듯이 벅벅 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찌든 때 좀 털어낼 수 있었다.
한번 빨았으면 말리는건 금방이지. 딱히 능력을 사용할 필요 없이 후끈한 화기를 머금은 내공을 옷에 주입해서 단숨에 수분을 증발시켰다.
"자, 됐다. 옷이나 입어라"
"가, 감사합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저쪽 수풀 너머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기로 했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용하연이 나에게 슬쩍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애 보기라도 할 셈인가?"
"보아하니 거지 같은데 적당히 좀 쥐어주고 보내려고"
"흠......."
"왜? 네가 제자로 받게?"
"아니, 이미 받은지 얼마 안됐는데 또 받기는 좀 그렇지.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랬다"
아, 하긴. 용하연은 예전에 거지였던걸 그레이가 주워다가 키워준거니까 어쩐지 기시감이 드는 것도 이상한건 아니다.
응?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상하네. 그레이라면 재능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이름 좀 날릴 고수로 키울 수 있을텐데 지나가던 거지를 데려다가 키웠다고? 그만큼 재능이 있는 편인가?
"뭐, 스승님이 말하시길 '여행에서 처음 만나는 인연은 소중히 하라'라고 하더군"
"뭔소리래. 그런거 치고는 얀데레 만났으니까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그레이 성격상 그런 말 하고 다닐것 같지도 않고"
"자기 아버지한테 들었다고 하던데"
"........앞에 혹시 '빌어먹을'이라는 수식어가 달려있지 않았어?"
"그랬지"
그레이와 팬텀은 형제지간이고 그 아래에 세명의 동생이 더 있다.
어머니는 제각각이여도 아버지는 같은데 그는 바로 제 1차 차원 전쟁의 영웅이자 이 세상을 창조하는데 가장 큰 일조를 한 창조의 절대자다.
딴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그냥 개소리로 넘겼겠지만 이 세상을 만든 창조의 절대자가 그런 말을 했다면.......제작자만이 남겨둔 이스터에그 같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에 만난적이 있는데 그런거 좋아하는것 같은 사람이기도 했고. 근데 사람은 아닌가, 사람은.
"흠, 그건 좀 고민되는데"
"근골은 여아치고는 의외로 나쁘지 않더군. 게다가 아직 어리니까 세맥이 완전히 막히지도 않았을거다. 너 정도라면 어느 정도 가르쳐 줘도 충분히 이름 있는 고수로 성장하겠지"
"무림을 너무 얕보는거 아니냐. 뒤통수 맞고 뒤질지 모르는게 바로 무림인데"
"아니까 그러는거다. 게다가 네가 가르쳐줄 무공이 평범한 것도 아닐테니까"
"흐응"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에 빠졌다. 원래 용하연 데려다 주고 그리 오래 있진 않을 생각이였다. 기껏해야 내가 여기서 차린 가게가 그대로 있는거 보고 밥이나 먹고 가려고 했지. 그래서 일부러 사천에 나온거고.
애 하나 키우려면 여기 꽤 오래 있어야 할텐데......짧아도 몇달이다. 길면 1년이고. 저쪽 지구 시간으로 4달쯤 될거다.
"저기, 다 입었어요"
"아, 그러냐?"
때 빼고 광내고 하니까 애도 좀 봐줄만 해졌다. 곱상하게 생긴게 크면 꽤나 미인이 될것 같아 보인다.
제자로 받아들이는건 둘째 치더라도 일단 해야 할 일은 먼저 해결해야 할것 같았다. 주로 우리가 잘못한 것부터.
"일단 우리 싸우던거에 휘말리게 해서 미안하다. 혹시 이 근처 사니?"
"네, 요 앞에 움막에서......"
"부모님은?"
"두분 다 돌아가셨어요"
거지라도 그나마 나은건지, 아니면 반대로 상거지인건지. 나은 쪽이면 개방에라도 속해 있거나 그렇겠지만 반대로 이런 산속에서 움막이나 짓고 살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많다.
게다가 열댓살 짜리 여자아이가 산에서 살고 있다고. 도대체 어떻게 사는거야?
"그래? 흠......."
"저, 저, 저기!"
소녀는 다짜고짜 무릎을 꿇으면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잡일이라던가 전부 다 할테니까 제자로 받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왜?"
"네?"
"왜 무공을 배우고 싶은데?"
면접할 때 꼭 물어보는게 있다. 바로 입사동기다.
그만큼 상대를 파악하는데 쉬운 질문이다. 그냥 입에 바른 말 하면 그냥 그런 녀석이고 돈 때문에 왔다고 그러면 물욕적인 녀석이고 이상하게 말하면 이상한 녀석이고. 대충은 파악할 수 있지.
"그, 그야......멋있잖아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용하연마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추하게 입벌린적 없다!"
"아, 드립도 못받아주네. 울 마누라라면 잘 받아줬을텐데"
단순히 멋있다는 이유로 무공을 배우려고 하다니.......뭔가를 아는구만!!!!!
예로부터 그냥 강해져서 명예를 얻고 싶다거나 아니면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어서 세상을 발 아래에 두고 싶다는 둥 하는 녀석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무의 끝을 보겠다는 놈도 있었고 제 가족 지키고 싶다고 강해지려는 놈도 있었다.
그렇지만 개중에서 그냥 폼나서 무공 배워보겠다는 놈도 처음이다. 흐으으으음, 아무렴 인생은 폼생폼사지. 나도 내가 쓸 수 있는 기술 중에서 효율 조까고 폼나서 쓰는 것도 몇개 있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로망은 효율을 따지는게 아니다. 이족보행 로봇을 봐! 차라리 그거 만드느니 전차 같은걸 한대 더 만드는게 나을껄!
"대답은 마음에 드네.....아, 근데 너 이름이 뭐니?"
"최선(最善)이라고 해요"
"..........응?"
어딘가 내 이름하고 정반대인.....아니, 애초에 내 이름에서 악자는 악할 악(惡)자가 아니라 악착할 악(齷)자다. 전혀 다르다.
하지만 내가 놀란건 이름 짓는 작명 방식이다. 최씨 성에 이렇게 네이밍 센스 개판이고, 부모가 두사람 다 요절했고, 특이한 성격까지.......이 정도로 겹치면 좀 그런데.
"그러고 보니 이 아이랑 너랑 좀 닮은 면이 있군. 중원에 있었을 때 낳았던 자식의 핏줄인가?"
"야, 그럴리가 있냐. 내가 한창 여기서 있었을 때는 성이 최씨도 아니였어. 게다가 딸만 셋이였다고"
가게 하나 차려서 장사가 잘 되서 잘 먹고 살았다. 원래 트러블이 생길 여지가 많았지만 근처 무림 방파에다가 상납금 좀 주는걸로 무난하게 비호를 받아서 여기서 살던 회차 환생은 평범하게 살았다.
종종 별다른 싸움 없이 조용히 살 수 있는 환생이 있다. 아무래도 그건 운명의 절대자가 주는 휴가 비슷한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나라도 그런 환생 중간에 없었으면 멘탈 훼까닥 했을지도 몰라. PTSD 걸린 군인이 재활치료 받는거 생각하면 된다.
"아무리 여기가 사천이라도 얘가 내 핏줄일리 있겠냐......혹시 네 엄마가 진씨는 아니지?"
"네? 맞는데요?"
".........응?"
아니, 아니지. 이 세상에 진씨가 얼마나 많은데. 진시황도 진씨라고. 아, 그건 좀 아닌가?
아무튼 중국에서 진씨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엄마가 진씨였어도 이상하진 않다. 한국에서 김씨 찾는거 까지는 아니더라도 이씨나 박씨 찾는 거랑 비슷하다.
하지만 한가지만 더 확인해보고 싶은게 있다.
"혹시 거지 되기 전에 집에서 마파두부 맛집 하지 않았니? 사천 제일로 이름 높은 그런 맛집 있잖아"
"국하루(菊下樓)요? 저희 가게.....였었죠"
"아니, 씨발 여기서 이런 우연이?!"
진짜 창조의 절대자의 이스터에그인가? 여행 가면 딱 거기서 묘한 인연을 만나는게?
여태까지는 그런적 없었는데!
애가 거짓말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내 앞에서 어린애가 거짓말을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어지간한 사기꾼의 거짓말도 다 파악하는 판에?
최근의 예외는 알리언 박사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그놈은 진실을 섞어서 거짓을 희석시킨거지 완전히 거짓말을 한게 아니였으니까.
나는 그제서야 선이의 외모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희미하지만 나와 닮은 부분이 있다. 특히나 눈매가.
내 눈매 더러운건 닮지 말아야 하는데. 아, 내 핏줄에 여자면 그나마 예쁜 쪽으로 발전할테니까 괜찮으려나.
내가 얼굴이 잘생긴 편이 아니라서 말이지......
[어떻게 할거냐. 데려갈거냐?]
[내가 아무리 전생의 인연에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지만......그래도 손녀뻘은 좀 신경 써줘야 하지 않겠냐?]
[핏줄에 신경쓴다고 뭐라 할 생각 없다. 그건 당연한 것이니까]
[막 얼굴도 모르는 증손주나 그런거였으면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그러네]
이번에는 용하연이 전음으로 슬쩍 물어왔다. 애 앞에서 하기는 좀 그런 질문이였으니까.
기껏해야 2,3회차 전이였던 환생이니까 내가 그 시절 살았던 인연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게다가 이쪽 차원에서는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도 아닌걸로 보인다. 길어도 100년인가?
"혹시 윤 왕조가 어떻게 됐는지 아니?"
"아, 서당에서 배웠었어요. 60년 전쯤에 윤 왕조가 망하고 태 왕조가 들어섰다고요"
"60년 전이라......"
내가 살았던 시절이 아마 윤나라 말기였을거다. 그나마도 심상치 않아서 조만간 망할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60년이면 진작에 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죽은 뒤로 대충 60년 정도 흐른 것도 맞다. 딸만 셋 낳았는데 데릴 사위 들일 생각 없었으니 손녀 성이 진씨가 아닌 것도 당연하다.
우연 중에 이런 우연이 있나......그것도 여기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
이러면 누군가는 인연이라고 할 것이다. 그 말도 맞긴 맞다. 운명의 절대자가 점지어준데다 창조의 절대자의 이스터에그까지 들어간 인연일테니까.
"네 어머니 이름은?"
".......진채린이요"
"막내구나"
여기까지 오니 놀라지도 않는다. 진채린은 여기서 살았을 때 결혼해서 낳은 세명의 딸 중에서 삼녀의 이름이다.
슬슬 기억이 잘 난다. 결혼했던 표사 이름이 최씨였는데 그냥 성만 같아서 넘어갔었다. 게다가 아이가 잘 들어서지 않아서 내가 죽을 때까지 고심하던게 생각났다.
아마 내가 죽은 뒤에 들어선 늦둥이겠지. 그러지 않으면 아이의 나이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면 대충 결정 났군"
"그러네"
나는 선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앞으로 아저씨라고 불러라"
========== 작품 후기 ==========
[차원 여행 할 때 처음 만나는 인연이 좋을 확률 업! 초회 가챠 확정 4성!]
다른 사람이 말하면 개소리겠지만 말한 사람이 개발자 겸 운영자(창조의 절대자).
설득력이.....있어!!!
그래서 저는 보통 주인공이 차원 여행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죠.
다크니스 로드 시절 팬텀은 덕분에 재생 능력 얻어서 존나 구르고......어? 좋은건가?
그나저나 주인공이 세웠던 가게 이름이 국하루.
사천...국하루....마파두부....앗 이거 어디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