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흉의 대마왕 30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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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가 주변 인물 중에서 이런 일에 자문을 구할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찾아갈까 했지만 그만두었다. 일의 무게가 일개 소방관으로서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을 생각하다가 백리가 먼저 찾아간 사람은 용하연이였다.
"잘못 찾아왔군. 그런건 내가 알바 아니다"
"그래도 명색의 제자인데 충고 정도는 조금 이야기 듣는건 해주실 수 있지 않나요.......?"
"애초에 그런 문제는 내가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서 그런거다. 타인을 생각하는 문제 따위 눈에도 들어오지 않으니까"
"음......."
"자문을 구할 생각이라면 사람을 잘못 찾아왔다. 무림인이란건 애초에 그런것과 연이 없는 족속이다"
그녀는 용화정이였지만 지금은 용하연이다. 중국의 마스터 유저가 아니라 한떄 무림의 손꼽히는 절대고수로 칭송 받았던 존재다.
다수를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홀로 독보하는게 그녀와 더욱 잘 맞는다. 애초에 무림인이란 이기주의에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강해서 오히려 타인을 쉽게 돕는 협객이라 불릴만한 사람이 드물 지경이다.
세간에서 협객이라 불리는 놈이 있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진짜 협객이거나, 아니면 명성이 올라가는걸 목적으로 한 위선자거나.
거대한 책임을 지고 그 행로에 대해 묻는거라면 차라리 그녀가 아니라 정치인을 찾아가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나는 너같이 얼굴도 모르는 다수를 위해서 싸우는 짓 같은건 귀찮아서 안한다. 용화정일 때는 몰라도 지금은 안해. 내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있는것도 그런 이유지"
"여기 있으면 그래도 덜 귀찮아서요?"
"지금 중국은 수십개의 국가로 갈라졌으니까. 날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딴 나라로 이민가고 말겠다"
"그런건 저도 좀......."
백리는 중국의 상황을 떠올리고 기겁했다.
중국은 최악이 개판친지 얼마 안되서 심판이 보류되었지만 그건 보류일 뿐 언젠가 다시 한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갈라진 나라들끼리 이권 다툼 때문에 내전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다.
물론 지금은 대마왕들의 분쟁 금지 선언으로 겉으로 보이는 분쟁은 없어졌지만 뒤쪽에서 행하는 조용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용하연은 중국의 최중요 인물인 마스터 유저다. 지금은 그랜드 마스터지만 자국 방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영입해야 하는 인물이였다.
온갖 로비와 트러블이 생길게 당연한 일이다. 딱히 중국에 애착이 없는 용하연은 곧바로 탈중국했다.
"게다가 한국이란 나라에는 너랑 천검도 있으니 내가 출동할 일은 별로 없겠지. 혼자서 중국 커버치는 것보다 이게 낫다"
"어, 음.......뭔가 이기적이시네요"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지. 나는 솔직히 지금은 스승님을 만나는 것 이외의 목적은 없다. 그걸 위해서라면 딱히 지구가 어떻게 되던 상관 없어"
보잘것 없던 거지였던 소녀를 주워다가 한 시대를 풍미한 절대고수로 만들어준게 그녀의 스승인 그레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레이는 절대적이면서 연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 감정은 환생을 한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정작 본인은 그녀의 집착에 '얀데레 무셔!'하고 튀었지만.
"더군다나 내 스승님의 동생이 팬텀이라고 하더군"
".......어? 진짜요?"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하나 밖에 없겠지"
그녀도 스승의 핏줄에 편을 들어줄 것이며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는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에는 백리의 생각과 반대되는 선택을 고를 것이고.
용하연은 백리에게 아픈 부분을 찔렀다.
"그리고 이미 정해둔 답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거 아닌가?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것 같은데?"
"........."
"거기서 내가 더 뭐라고 말해봤자 의미가 없겠지. 네 좋을대로 해라. 대신 그건 네 책임이 될테니까"
이미 백리는 생각해둔 답이 있었다.
설령 지구가 어떻게 나가가 멸망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책임이지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빼앗는건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두려워서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는 그만 둬라. 그런식으로 생각할거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
"말대꾸는 하지마라. 피하려고도 하지 마라. 직시하고 똑바로 봐라. 그게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잘못 찾아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말해주려는 그녀는 똑바로 백리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면서 회춘이라도 한건지 올해 쉰이 넘어가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20대 중반의 미녀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눈매는 더욱 깊은 세월을 담고 있었다.
최악보다는 못하지만 그녀도 환생자다. 경지 자체가 백리가 높다고 하지만 그렇다 한들 경지가 전부는 아니다.
만약 경지가 전부라고 했다면 최악이 로드라는 격차가 있는 워 로드를 쓰러트릴 수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녀의 기백에 눌린 백리는 뭐라 반박할 말을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조만간 이 행성을 떠날거다. 내 고향은 이 지구가 아니라 무림이니까"
"정말로요?! 아니, 어떻게 다른 차원으로......아, 형이 있구나"
"그게 아니더라도 10년 정도 투자하면 차원 정도는 베어볼 수 있을것 같더군. 어차피 얼마가 걸리냐의 차이일 뿐 기정된 사실이다. 내가 너를 제자로 들일 시점부터 정해진 일이니까"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가 용화정에서 용하연이 되었을 때 정해진 일이다.
망각 저편에 던져버린 전생의 기억을 집념만으로 부활시킬 정도의 강한 감정은 지금의 그녀를 움직이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어주고 있다. 폐관수련 정도야 별거 아니다.
"내가 떠나면 이 지구에서 제일가는 사람은 너다. 가장 먼저 그 책임부터 깨달아라"
"네"
일격필살까지 논한다면 천검 이경진도 만만치 않지만 그의 회색공명검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일격만 직격을 피한다면 백리의 초재생 특성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경지나 출력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결국 용하연이 없는 지구의 최강자는 백리다. 가장 먼저 그것부터 깨달아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사실 진득하게 무림에 던져놓고 10년만 굴려도 쓸만해질텐데 말이지......온갖 암투가 생기는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강해지거나 악랄해지거나 둘 중 하나 밖에 될 수 없으니까"
"........막 마교나 그런거 나오는거 생각하면 좀 그런데요"
"살아보면 무림도 나쁘지 않다. 힘이 있으면 황제보다도 더 대접 받으면서 살 수 있지"
"지금도 그렇잖아요"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의 문제다. 무림은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시대니까. 마스터 유저라도 법률에서 비교적 자유로운거지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지 않나? 특히 네가 하려고 했던 것처럼 유엔 소속으로 범국가적으로 행동하려고 한다면 더더욱 국제법을 준수해야할테고"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여서 딱히 신경쓴적은 없는데요"
"바보 같은 정도로 착한 녀석이군. 그래서 제자로 들이긴 했지만.......뭐, 그래도 가기 전에 몇가지 가르침 좀 주고 갈 수는 있을거다"
".......가르침?"
백리는 문득 중국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최악이 베이징을 박살내던 며칠간 용하연의 제자로 들어가서 쉬지도 못하고 처맞으며 강행군을 하던 때를. 고통도 고통이지만 정신력이 깎여나갈것 같은 고행이였다.
그때 백리가 초재생 특성을 각성한 것도 당시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죽을것 같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살 방법을 궁리한 결과였다.
만약 그걸 또 반복한다면.......
"어차피 경지도 야매지만 내 이상으로 올랐고, 힘도 충분하니까 남은건 지식과 경험이다. 단순히 조언 몇가지나 해주려고 했을 뿐이다만, 또 지난번처럼 해주길 원하나?"
"그런 무식한 수련 방법은 도대체 누가 시작한거예요?! 저라서 멀쩡했지 보통 사람은 죽어요!"
"우리 스승님이 시작했다. 네 사조를 부정하지 마라"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끼웠어?!"
하지만 무식한만큼 효과는 확실하다. 경험도 시간도 부족한 백리가 흉내나마 초월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전부 그런 훈련 덕분이였으니까.
"너에게 대부분의 무공은 육체에 각인시키듯 전수해줬다. 중요한건 본인의 깨달음이지. 네가 익힌건 태극나선경이 주되지만 내 무공은 어디까지나 마룡일기공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그러면 훈련하면서 제가 익힌건......."
"전체적인 스펙을 상승시키기 위해서 둘 다 훈련시키긴 했지만 내 무공을 좀 더 신경써서 훈련시킨건 당연하지. 태극나선경은 내가 아니라 스승님의 독문 무공이다"
심판의 절대자 그레이가 초월자 중에서 루키라 불리던 시절에 용하연을 비롯한 세명의 제자를 들여서 그들에게 각자 어울리는 무공을 하나씩 전수해 주었다.
용하연, 그러니까 마룡후에게는 마룡일기공(魔龍一氣功)을, 천살제에게는 천살진기(天殺眞技)를, 그리고 만병왕에게는 천지해경록(天地解憬錄)을 전수해 주었다.
그 무공은 일반적인 무공과 궤를 달리하는 무공들이다. 각각 '공명', '간섭', '이해' 등의 능력의 알고리즘을 일부 해석하여 깨달음을 섞은 무공으로서 세월이 지나 무공을 발전해도 충분히 절세신공이라 불릴만한 가치가 있었다.
백리가 익힌건 태극권을 기반으로 하고 '분해'의 이치를 섞은 태극나선경. 그리고 용하연의 마룡일기공이다.
"심법은 가이아 포스란 이능력 때문에 넘어갔어도 깨달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운용하는데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겠지만 너라면 충분히 쓸 수 있겠지"
"주의사항이나 용법 같은거 적혀진 설명서 없나요.......? 그 왜 막 비급 같은거요"
"있긴 있을텐데 전생에 태워버렸다. 다시 쓰긴 귀찮다"
"제자가 보겠다는데 어떻게 안될까요......?"
"현대 중국어도 아니고 그 시절 고어로 써진건데 읽을수나 있겠나?"
"죄송합니다"
일반적인 중국어도 수천개의 한자와 성조를 따져가면서 외워야 하는데 옛날 고어라면 문제가 많다. 쓴걸 읽느니 차라리 직접 체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마룡일기공의 시작은 공명이다. 천검이 싸우던건 보았지?"
"아, 네"
"그놈은 재능도 재능이지만 내 무공에 꽤나 재능이 보이더군. 겉핥기 식으로 알려줬는데 유색공명기까지 깨우칠 줄이야"
"아, 그것도 봤어요. 회색공명검이라고 하던가......형도 그건 좀 진심으로 받아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다른쪽 루트로 타서 끝에 이른게 유색공명기고 마룡일기공을 일직선으로 파고들어서 쓸 수 있는게 바로 공간 공명을 통한 공간참이다. 깨달음이 서로 다르듯이 나누어지지만 크게 보면 결국 같다"
"음.......스승님쪽이 좀 후달리는거 아닌가요? 유색공명기는 진짜 장난 아니던데"
조금 딜레이와 연발이 불가능하다 뿐이지 일격필살 만큼은 천검이 손꼽힌다. 용하연도 그걸 본다면 피하기보다 받아치는 쪽을 선택할 정도의 위력이 있다.
하지만 결국 두가지 모두 의지를 사용하는 기술. 그 끝은 같다.
"아까 말했지 않나. 10년 정도 투자하면 차원 정도는 벨 수 있다고. 공간참을 넘은 차원참인데 그 정도 위력은 있겠지"
"아......."
"그리고 나중에 무림인을 혹시 만나거든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누구누구가 더 쌔다 약하다는 무림인에게는 단순한 농담으로 끝나지 않을테니까"
백리는 현재 유색공명기는 커녕 공간 공명 하나 쓰지 못한다. 그나마 다룰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술은 태극나선경을 통한 분해의 이치 뿐.
그나마도 움직이면서 전투 중에 쓰기에는 어렵다. 이전에는 가만히 서서 쓸 수 밖에 없었으니 장족의 발전이긴 했다.
"네 기가 닿는 곳을 자각해라. 그리고 그걸 검이라고 생각하는거다. 공간의 일부를 네 것으로 만들고 기가 아니라 의념을 담는거다"
"얼마 전에 들은적 있어요. 기와 의지는 다른거라고. 의지에 의해 기가 반응하기 때문에 의지를 직접 쓸 수 있으면 효율이 다르다고요"
"그래, 그 정도로 좋은 효율을 집중하지 못하면 입문하기 어려운 세계지. 그렇지만 너는 태극나선경을 통해서 분해의 이치를 조금이나마 깨달았으니 다시 깨우치는건 시간문제일거다"
그녀는 잠깐 말을 멈추어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다시금 이었다.
깨달음은 말로 풀어서 설명해주기 어렵다. 만약 그게 쉽다면 말하는 고수가 문과 출신이거나 듣는 사람이 존나 천재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쪽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상대가 최악이였다면 경지도 더 높고 언변도 좋아서 충분히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심생종기(心生從氣)란 말이 있다. 마음이 일면 기가 따른다는 뜻으로 기의 운용이 어느 정도 완숙해진 고수의 수준을 표현할 때 주로 쓰고는 하지.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결국 마음이 먼저 반응하면 그제서야 기가 일어난다는 뜻이 된다"
고수의 싸움에서는 0.1초가 승패를 가른다. 그런데 마음과 의지 그 자체를 쓴다면 상대에게서 선점할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기를 사용하되 거기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라. 지금의 너에게서 가이아 포스란 것을 빼면 태극나선경 조금 정도 밖에 남지 않겠지만 보다 높은 경지에 오르고 싶다면 중요한건 마음과 의념이다. 그걸 명심해라"
"그러면 공간 공명은......."
"의념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으면 저절로 쓸 수 있게 될거다. 몸에 각인될 정도로 굴ㄹ......아니, 훈련시키지 않았나?"
"굴린다고 했어! 방금 굴린다고 했다고!!!!"
백리가 격분해서 따졌지만 용하연은 모르는척 딴청을 피웠다.
두사람의 대화가 거의 마무리 되었을 무렵 그들의 옆의 차원이 갈라지면서 파편이 흩날렸다. 차원진의 모습이지만 백리는 몇번 겪어본 적이 있어서 익숙했다.
차원진 경보도 울리지 않고 저런걸 일으키면서 움직일 사람이라면 이 지구에서 얼마 없다. 대마왕을 제외한다면 그나마 시온 정도나 가능한 기술이다.
"야, 너 여기 있었냐? 이야기 다 끝났어?"
"무슨 일이지? 이번에 볼일 있는건 저 녀석이 아니라 나인가?"
"이 년이 좋은 소식 가지고 왔는데 그걸로도 불평이냐?"
여기서 한면을 튼건 똑같지만 1년 가까히 알고지낸 백리나 얼굴 몇번 안본 용하연 사이에서 누가 더 친하냐를 물으면 당연히 백리 쪽이다. 만약 최악이 찾아온다면 볼일이 있는건 백리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백리가 아니라 용하연을 찾아왔다.
"느그 스승한테서 연락 왔다. 얼굴 좀 보고 싶으면 따라와"
용하연의 스승이자 심판의 절대자인 그레이가 연락을 취해왔다.
========== 작품 후기 ==========
일단 지구 씹창내기 전에 방해될 용하연부터 치우고.
경지는 백리가 더 높지만 무력은 용하연이 더 강하니까요. 지구에 남아 있으면 방해됨.
요즘 스토리가 루즈해져서 그런지 반응이 뜸하네요. 어차피 곧 있으면 죄다 망할테니까 걱정마세요!
그리고 연참도 이제 시작할거예요. 조회수 추천 상관 없이 댓글만 많이 달아주시면 됨ㅇㅇ.
조회수나 추천보다는 댓글 달아주는게 봐주신다는 실감이 나서요......댓글 치는데는 10초지만 작가는 하루 종일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