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흉의 대마왕-295화 (295/507)

최흉의 대마왕 29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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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꽤나 복잡하다. 예전에는 환생 때문에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었고 여자로 환생했을 때는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고민하는건 종족 정체성이다. 여태까지 나는 조금 애매할 때가 있긴 있어도 어디까지나 '인간'으로 밖에 환생한 적이 없거든.

아무래도 종족이 바뀌면 정신도 바뀌는 모양인지 환생하는 종족은 일관적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인간 외의 종족으로 환생한 적은 없다. 오히려 인간 이외로 환생했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자아에 대한 것도, 성에 대한 것도 웃어 넘겼지만 아직까지 나는 인간이란 틀이 얽매여 있다. 보통 로드에 이르면 종족 따위는 초월한다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게 아니다.

로드에 이르는데는 아주 희박하게 인간으로서 로드에 오르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운 예를 찾는다면 러시아에 가 있는 팬텀이 있겠지.

어느 쪽이 좋냐라고 물으면 둘 다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건 역시나 인간으로서 로드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너무 멀리 왔지"

"돌아가기에는?"

"돌아갈 수 조차 없는 길이야"

"그러면 계속 나아가면서 답을 찾을 수 밖에 없네"

"그런거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야"

심판의 절대자 그레이는 섣부르게 판단했다가 반쪽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인간 시점에서는 상상을 넘어서는 존재여도 절대자들 사이에서는 평균 이하나 다름없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거다. 적어도 여태까지 내 인생만큼은 길게 보고 판단하고 결정할거다.

내가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 말이다.

........솔직히 나를 인간으로 말하기에는 꽤나 버린 것도 많고 다른 것도 많지만.

"슬슬 손님이 올것 같네. 대접할 준비나 해볼까"

"손님? 누구?"

"일본이야.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오기를 바라는게 좋겠는데 말이야"

"머리가 있으면 이번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오지 않겠어?"

"........."

시온이 침묵을 유지하자 시엔느가 아! 하고 뒤늦게 탄성을 내뱉었다.

만약 정말로 일본 수뇌부가 제정신이라면 애초에 처음 특사를 보냈을 때 고노 의원을 보냈을리 없다.

한창 패망하기 일보직전에 일본은 정작 방사능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국민은 분노하고 국가 운영은 안되는데 죽을 자리로 보낼만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냐마는.......청문회에서 나한테 반감 샀던 녀석을 보내는건 신선한 충격이였다.

"일본이란 나라는 사람이 없나봐? 그런 사람을 보내고"

"원래 외무대신이기도 했고, 범죄 저지른 것까지 볼지는 지들도 몰랐나보지"

"하긴"

솔직히 자신의 과오를 전부 꿰뚫어 볼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기껏해야 독심술 정도겠지.

그런쪽의 전문가가 아닌 나도 관상이나 거짓말 파악 정도는 쉽사리 해내는데 과오를 파해치는건 팬텀이 심연이랑 연동되서 그런거다. 심연은 좀 오염됐다 뿐이지 개쩌는 빅-데이터 비슷한거라.

"만약 팬텀씨한테 저 정도의 연산능력이 있었다면 지금보다도 3배는 강해질겁니다"

"거기서 3배면 얼마나 괴물 새끼란거야. 지금만 하더라도 차원 최강인데"

"근데 울 아빠 빡대가리잖아"

"아니?! 거기서 신랄한 평가가?!"

"솔직한건 솔직하게 이야기 해야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 일본에서 오면 뭐라고 할거야?"

그들이 할 말은 이미 뻔하다. 일본의 심판을 거둬달라거나 취소해달라는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들의 대답도 뻔하다. 일본의 심판은 거둬줄 수 없다.

우리들이 심판을 취소하거나 하는 일은 결국 우리들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여태까지 우리들이 몇번이나 심판을 했다고 생각하냐. 백번 중에 한번이라도 잘못했어도 자그마치 수십개의 문명이 잘못 멸망된거나 다름없다.

대마왕의 심판은 언제나 절대적이고 완벽해야 했다. 더군다나 봐주려고 생각해도 일본은 만장일치로 유죄 처분이 된거라 그럴 여지도 없었다. 물론 3명이서 한거지만 시엔느와 누리가 추가되어도 달라지는건 없다.

"어차피 팬텀이 와야 하니까 지금 말하는건 의미 없지만 아마 대충 생색내면서 유토피아가 백리한테 내건 조건이나 들이밀지 않을까?"

"아, 그거 좋겠다"

"일본이 살아남는다는 선택지는 없는겁니까?"

"지금 상황에 일본이란 나라가 존속할 수 있는 미래가 있을거라고 생각해? 내가 너보다 똑똑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건 각 나온다"

어디든 선과 경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그 선을 넘어버렸다. 대마왕으로서의 심판이던, 개인으로서 평가든.

그들은 국민을 기만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반드시.

뉴스에서 나오는 일본의 상황은 우리가 분쟁만 허락하면 노베 총리를 비롯한 현 자민당 내각에 소속된 정치인들을 죄다 매달아놓을 기세였다. 그나마 일본이라는 국가가 유지되고 있는건 분쟁 금지로 인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았던 덕분이지.

어차피 그러지 않아도 멸망한다. 우리들의 심판에 의해서. 그러지 않아도 멸망한다. 국민들 자신의 손에 의해서.

"분노로 일어난 혁명에 미래는 없는 법이지. 프랑스 혁명은 분명 인권이란 개념을 생기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지만 그 뒤에 개판난거 보면 똑같아"

이미 분노의 불길은 번지고도 남았다. 그 불길이 식기에는 아직 충분한 장작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이 걱정해야 할건 불탄 후에 뭐가 얼마나 남느냐였다. 그게 일본이란 국가란 이름 뿐이던, 아니면 일본의 국토던 말이다.

"이번에는 좋은 사람이 올것 같다. 꽤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정말로?"

"응, 감이 좋아"

"'감각'능력 보유자가 그런소리 하면 신빙성이 높아지지"

"제가 연산하는 것 보다 그이가 찍는게 더 나은데 오죽하겠습니까"

"울 아빠 용돈 필요하면 복권 번호 맞추는거 보고 식겁했다니까"

"아, 나는 불로소득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여서"

나는 노동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버는걸 좋아하지 복권이나 운에 의존하는 돈벌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야, 내가 만약에 돈 밝히는 사람이였으면 진작에 비트코인 사뒀지. 그게 아니더라도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이번에는 좋은 커피나 준비 해둬야겠군. 저번에는 워낙 별로인 사람이 와서 커피 대접도 안해줬으니까"

"어디 브랜드? 우리쪽?"

"아니, 내 개인 브랜드. 너네는 시간 들여서 즐기기 좋은 묵직한 맛이 특징이잖아. 가볍게 마시기에는 좀 그래"

이번 손님은 나름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일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변하는건 없다. 그가 받아갈 것은 기껏해야 백리가 이미 허락받은 것일테니까.

*

*

*

*

다시금 황금성에 도착한 헬기는 익숙하게 성 앞에 마련된 공간에 착륙했다.

한번은 긴장하더라도 두번째는 나름 적응을 하는 법이다. 적어도 탄 사람은 모르겠지만 조종사만큼은 그랬다.

일본 특사 일행은 저번에 완전히 퇴짜를 맞은 이후로 갈아치워졌다. 상대의 정직함도 판단하는 이상 조금의 여지도 남겨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가......."

"일단 들어가지. 딱히 기별은 없어도 온건 알고 있을테니까"

유일하게 이전 특사 중에서 다시금 온 사람이 있다면 히비키 뿐이였다. 최악과 친분이 있어서기도 하지만 애초에 그는 자국 내에서도 비리 같은 것에는 얽힌적 없는 깨끗한 사람이였다.

정치에는 손도 대지 않고 사업도 하지 않고, 기껏해야 술이나 먹을것을 즐기고.......여자는 이미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가진 힘에 비하면 깨끗한게 이상할 정도다.

그렇기에 신뢰가 있다. 현 일본 정부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히비키가 현 정부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히에이씨는 두렵지 않으십니까?"

"무섭지. 최악 그녀석은 몰라도 다른 녀석들은 진짜 장난 아니거든. 그렇지만 무서워 해봤자 달라질건 없잖나"

특히나 팬텀은 더욱 그렇다.

히비키에게 있어서 심연을 두른 팬텀은 상식을 뛰어넘은 무언가에 가깝다.

하다못해 누리나 시엔느라면 조금은 닿을것 같단 확신이 있지만 나머지 세명에게는 그런 느낌도 없고 개중에 팬텀은 진짜 상식 이전의 무언가와 같았다.

존재를 따지기 이전에 너무나도 거대한 존재. 그런 존재 인간이란 작은 것을 신경쓰는 일 자체가 애정과 감정을 드러내는 반증이였다.

"그러니 나아가야 하는거지. 앞에 파멸이 기다리고 있어도 나아갈 수 밖에 없지 않나?"

"그렇긴 하죠. 알겠습니다. 충고 감사합니다"

이번에 일본의 특사로 파견된 야마모토 타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헬기에서 발을 디뎠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황금으로 이루어진 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따뜻했다. 하지만 평범한 금에 그런 기운이 흐른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어디로 갔지? 동력원 따위는 아무것도 없는데 자체적으로 열을 발생하는건 도대체 어떤 원리지? 100퍼센트란 순금의 근원은? 이유는?

하지만 따지면 끝도 없다. 그는 마음을 굳게 먹고 움직이기로 했다.

이윽고 그들은 열려있는 성문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그들을 맞이하는건 생명이란 없는 정원이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정원이였다.

사방에는 돌조각 하나 황금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고 피어있는 나무나 꽃은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광경에 그들은 넋을 잃었다.

유일하게 한번 본적 있는 히비키만 그들을 재촉해 앞으로 나아갔다.

"정신차려, 여기서 기선제압당하면 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나?"

".......아! 죄송합니다!"

"만든 사람부터가 악취미군. 이런 곳을 만들어서 초대하면 자연스럽게 기죽을 수 밖에 없지 않으니까"

지구에서 발견된 금보다 지금 이 성을 이루고 있는 금이 훨씬 많다. 그리고 금이란 인간의 화폐의 근원. 설령 과거 어떤 시대에 돌아간다 하더라도 금 한줌만 쥐고 있다면 밑천을 만드는게 가능할 정도로 절대적인 가치다.

그런데 그런 가치를 눈앞에서 박살내면서도 당당하게 자랑하는 모습은 지극히 압도적이다. 인간의 상식은 여기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것과 같았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성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러운 홀이 그들을 맞이한다.

"또 왔냐"

그리고 거기에서는 최악이 그들을 맞이했다.

겉으로 본다면 평범한 인간에 조금 눈매가 나쁠 뿐인 동양인의 외형을 취하고 있으나 내면은 5명의 대마왕 중에서 한명인 그는 느긋하게 인사를 건냈다.

히비키는 전처럼 자연스럽게 그에게 대답했다.

"이번에는 준비해가지고 왔지"

"솔직히 그거 별 의미 없을것 같기는 한데......."

최악은 그들을 둘러보았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갈아 엎어서 데려온 사람인만큼 그에게도 걸리는 인물은 없었다. 설령 팬텀이 보더라도 나쁜 인상의 인물은 없을정도였다.

일본에서 다음에 보낼 특사를 정할 때 애초에 지은 죄가 있는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다. 괜히 나섰다가 가서 죽을 일 밖에 없으니까.

처음부터 죽을 가능성이 높은 일보다 나름의 기준이 전해진 일이 훨씬 낫다. 그래서 지금 모인 사람들은 자원자들도 일부 존재했다.

........물론 팬텀의 기준에 허락될 수준의 사람이라면 자국의 위기를 못본척 넘어갈 수는 없을거란 당연한 이유가 있을테지만.

"일본의 심판은 정해진 일이야. 그건 바꿀 수 없어. 설령 지금 다시 판결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만장일치겠지"

지금 당장 바꾸려고 노력해도 이미 늦었다.

끝났는데 노력해봤자 변하는건 없듯이 진작에 반성했어야 하는 일을 이제와서 반성해도 변하는건 없다.

일본은 너무나도 죄를 많이 지었다. 단순히 전범국으로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죄를 뉘우치지 않은 죄를 지었다.

과거에 죄를 저질러도 반성하는 기미가 있다면 대마왕은 좋게 봐준다. 결국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독일도 나치를 찬양하기는 커녕 혐오하다 못해 증오하는데 일본은 오히려 전범들을 모신 신사에 참배하며 긍정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그들을 용서할 이유도 없는게 당연했다.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돌아가서 국민들이나 다독이는게 어때?"

"뭐든 해봐야 아는 법이지"

"그런 말 나올 줄 알았지. 일단은 들어와라. 커피는 대접해줄테니까"

"전에 왔을 때는 바로 만나던데 이번에는 아니군?"

"팬텀 그 새끼가 러시아에 가서 말이지. 물론 그 전에는 만날 시간이 어쩌구 하기 전에 자격부터 안됐으니까"

고노 의원은 앞으로 심연에서 영혼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고통받을 것이다. 그건 사후에 받을 고통 중에서도 제일 강도가 높은 고통이다.

말하자면 지옥불에 불타는.......아니, 지옥불에 불타는 것이라고 한들 기껏해야 생전의 업을 불태우고 환생을 준비하는 과정에 불과하지만 심연행이 최악인건 다음 환생조차 존재하지 않아서다.

"이번에는 합격일것 같군. 잠깐 기다리면서 마음의 준비나 하다가 들어와"

"대우가 좋구만"

"이게 정석적인 루트야"

이윽고 일본 특사 일행은 저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확실하게 '손님'으로서 반겨주었다.

그들은 웃는 얼굴로 성 안으로 안내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한가지 있었다.

무엇을 제시하고 발버둥 친다 하더라도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주인공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마개조가 너무 많이 되서 인간으로 생각하기 힘들어서 정체성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납득의 문제죠.

그것만 해결되면 로드에 이를 정도로 전직 앞두고 있음. 사실상 로드 미만 초월자 중에서 제일 강함.

아, 그리고 어머니가 오늘 수술 하셨습니다. 잘 되서 큰 걱정을 덜었네요. 순조롭게 회복 중이십니다.

아마 이번달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지내실테니까 퇴원은 다음달 초에 하시겠죠. 걱정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300화 연참은 그때쯤 할께요. 알콜의 파워를 빌려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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