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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흉의 대마왕-286화 (286/507)

최흉의 대마왕 28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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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리는 그녀가 시온의 어머니란걸 알자 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닮은 점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이라던가, 그러면서도 감정표현은 풍부한다던가. 하논의 특징일지는 몰라도 대조군이 셋 밖에 없으니 섣부르게 판단할 수 있는건 아니다.

"멕시코에 다녀오셨죠?"

"혹시 그것도 예지 특성으로 보신건가요?"

"아뇨, 백리씨의 얼굴을 보고 짐작한건데......아무래도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네요"

단숨에 나라 하나가 죽어버린 모습은 정신력이 깍여나갈법한 소름끼치는 광경이다.

그걸 직접 목격하고 온 백리는 이것 만큼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말로는 대마왕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직접 본 것은 잔혹한 현실이였다.

".......대마왕의 기준이 낮은건 알겠어요. 그들이 하는 행동이 완전히 옳지 않은건 아니란 것도 알고 있고요. 그렇지만 적어도 인간의 도리에서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가요"

앨리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백리의 말도 일리는 있다. 대마왕은 스스로 나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무엇을 하던 살인은 용납될 수 없는 죄이기 때문이다. 그들도 인간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만큼 최악처럼 썩 내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걸 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생각해본적 있나요?"

"어.......?"

"대마왕들도 감정이 있지요. 최강이나 최흉의 대마왕 같은 경우는 차원만 다를 뿐 백리씨가 자란 한국이란 나라에서 자랐던 초월자입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가 하는 행동이 잘못됬다는걸 모를까요?"

"그렇게 생각해본적은 없었네요......."

"잘못하는걸 알면서도 행하는 느낌은 다른 법이죠. 죄책감이 느껴지니까요"

최악도 과거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는 천살성을 타고 났기에 살인 자체에는 죄책감이 없지만 자기가 잘못을 했다는 감각과 혐오감은 존재했다. 죽어서 끝날줄 알았던 현실은 환생을 통해 다가왔고 그 결과는 자기혐오로 인한 자해로 이어졌다.

한창 인간다웠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조금 많이 동떨어져 있어도 생각은 다르지 않다. 단지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차이일 뿐.

"여기가 당신의 마지막 분기점입니다. 이 이상 나아가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요"

"그건 전에 이야기 했던 두가지 결말 중에서 하나인가요?"

"네, 기억하고 계셨군요?"

"형도 제 선택이 중요하다고 했고.......어떤 선택을 골라야할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최상위 신격인 갓-루리루리도. 운명의 절대자도 경고하고 간 사실이다. 더군다나 저번에 관리자로서 그녀와 대화를 할 때에는 대놓고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들었다.

백리도 본능적으로 그 선택이 가까히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 많은 인명이 달려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말 하기 전에 한가지. 알리언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알리언 박사요?"

백리는 알리언 박사가 바로 아틀라스의 보스인 프로메테우스란 것을 최악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십년 넘게 미국의 보물로서 일해오며 TV에도 자주 나왔던 알리언 박사가 그런 인면수심의 인간이였다는게 상당히 충격적이지만 그래도 죽었다니까 그러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는건 무슨 연관이 있다는 뜻일까?

"알리언 박사는 인간을 가지고 인체실험을 자행했습니다. 거기서 온갖 불법적인 일이 생겨났지요"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예진이. 그녀는 최악이 한국의 아틀라스 지부에서 데려왔다.

거기서 실험 대상으로 쓰이고 있어서 만약 시간이 한두달만 지났다면 그녀도 무슨 꼴이 되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으로 떠올리는건 백리가 포스 유저로 각성하게 되었던 영등포 화재 사건 당시의 방화범, 그는 지성을 거의 잃어버렸지만 가족에 대한 애착만큼은 남아 끝내 괴물이 되어버렸다.

"알리언 박사는 이 지구의, 이 차원의 사람이 아닙니다. 적성종이 오는 타차원의 사람이지요"

"네, 그것도 들었어요"

"그러면 같은 차원에서 온 그가 왜 이쪽 차원에서 그런 실험을 했는지 아시나요? 같은 차원의 같은 문명 출신이라면 지구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오히려 암중에서 테러를 일으키며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정상일텐데요?"

"그건......."

최악에게서 거기까지는 듣지 못했다. 그냥 약간의 내막이 있구나 싶을 뿐이였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자세하게 파고 들어가니 내심 궁금해지는건 당연했다.

"알리언 박사는 그쪽 차원 출신이지만, 그쪽 문명을 두려워하고 혐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배신하고 이쪽 문명을 돕기로 결심한거죠"

"하지만 그런거라면 인체실험 같은걸 할 필요가 있었던 건가요?"

"실험의 정확도와 진행 속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애초에 그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운 사람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환경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환경을 만든다. 그런 악순환은 한번 이어지게 되면 쉽사리 끊을 수 없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아이가 자라서 가족을 만들면, 과연 그 아이도 가정폭력을 휘두를까? 물론 그러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도 높은게 환경이 만드는 악순환이다.

"라프 에너지는 '부정'이란 개념에 기반한 힘입니다. 그리고 그걸 가까이서 경험하며 자란 사람이 정상적인 인격을 갖출리가 없겠죠. 무엇보다 적성종으로 타차원을 침공하는 문명인데 과연 그들에게 당신의 반만큼의 윤리의식이 있을까요?"

"없....겠죠"

"그는 이 행성도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살아남는걸 선택했습니다. 거기에서 생기는 피해가 바로 인체실험이였고요"

"........."

알리언 박사가 20년동안 인체실험을 통해서 죽인 사람의 숫자는 지구의 인류와 비교하면 한참 적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최악이 중국에서 죽인 수천만명의 중국인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인류를 구하기 위한 희생이였다면 그건 소수의 희생으로 봐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 희생은 용납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알리언 박사와 싸운 최악씨의 의견은 그거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구차하게 살아남는다고 한들 인간답지 않으면 그건 죽는것만 못하다고. 인간성을 버리고서 살아남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

멕시코에 심판을 내린건 최악이다.

알리언 박사에게 그런말을 한 주제에 멕시코에 그런 짓을 한건 모순되지만 반대로 말하면 대마왕이랑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어느 쪽도 일리는 있습니다. 생명이라면 생존을 추구하는건 당연하고 인간이라면 인간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두개의 의견이 충돌해서 이긴건 후자 쪽이죠"

"그래서 싸웠구나......."

최악은 아틀라스나 프로메테우스에 대해서도 이름만 알려주었지 깊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최악이 알리언 박사와 싸운 이유에 대해서도 잘 알려주지 않아서 백리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그걸 이야기 해주신다는건......."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관련되어 있어서겠죠"

백리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인간으로 죽을거냐. 구차하게 살아남을거냐.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어느쪽을 선택해야 좋을까요? 미래를 보고 계시다면 거기까지 보고 있는거 아닌가요?"

"저는 중립을 유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관리자다. 비록 지금 백리와 대화하는 것은 그저 인간 단말에 불과하다고 한들 루리 같은 특이한게 아닌 이상 그녀는 원본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관리자로서 인류와 문명을 봐야 한다.

관리자는 자신의 관할 아래에서는 거의 전능하다. 그렇기에 대마왕이라도 관리자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전능한만큼 책임도 크다. 비록 그녀가 하논 출신의 관리자라 다른 관리자들에 비해서는 책임이 적어도 중립을 유지해야만 한다. 가진 힘만큼 편애는 문제를 불러 일으키니까.

"제 위치가 있는만큼 저는 개인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수억명이 죽어 인류문명이 존속하는 미래가 있다면 그걸 선택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

시야가 다르다. 백리는 고작 눈 앞에 있는 사람을 보고 구하고 싶을 뿐이지만 그녀는 인류가 존속하기를 바란다.

"제가 전부 말해준다면, 결정해야 할 것은 정해지게됩니다.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의 자유를 방해하는게 되겠죠"

"그래도 말해주지 않은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제가 말해주면 결정되는게 당신의 대답이라는 소리입니다. 저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존재하는거지 미래를 확정짓게 하려고 있는게 아니니까요"

어떤 방향을 선택하고 어떻게 나아갈지는 현 인류의 몫이다. 백리는 그녀의 대리인으로서 그 권한과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당신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기에 저는 아무말도 할 수 없는거고요"

백리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녀가 경고하는 만큼 이 자리는 더없이 중요하다. 인류의 미래가 걸려있다 하더라도 이상하지는 않다.

자신은 여기서 무슨 선택을 해야할까? 어떻게 선택해야 후회가 없을까?

하지만 결국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이나마 후회가 없게 행동하는게 옳을지도 모른다.

"멕시코에서 국가가 통째로 죽은 것을 봤어요"

그건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했다.

설령 죽더라도 그런 죽음은 아니다. 한순간에 한 나라가 통째로 지워지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있어서도 심히 충격적이였다.

"그걸 보고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된다는걸 깨달았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북한을 보면 딱히 현실감이 없다. 애초에 건물이나 문명의 흔적 같은 것도 전부 지워져서 남은건 폐허 뿐이니까.

하지만 멕시코는 다르다. 사람만 죽고 짐승조차 남아 있는 현실은 오로지 인류라는 항목만 떼어 버린것 같았다.

"설령 죽더라도 인간답게 죽겠습니다"

"........그런가요"

최악의 생각과 똑같은 선택을 하였다.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최악과 같이 지낸 그는 여러가지로 그의 영향을 받았을테니까. 더군다나 인간이 인간성을 추구하는게 이상한건 아니니까.

다만 거기에 대한 책임은 충분히 져야 한다. 그리고 그건 백리의 몫이다.

"그렇게 결정했다면 제가 할 수 있는건 도와주는 것 밖에 없겠죠. 그렇지만 거기에 앞서서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앞으로 생길 일에 대한 사과를 먼저 그에게 했다.

거기에 담긴건 미안함과 연민이다. 자신은 중립을 유지해야 하기에 아무것도 못하고 가시밭길을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 밖에 품을 수 없다.

설령 백리가 그 책임에 짓눌려 죽더라도.

"이미 이 우주에 최흉의 대마왕이 태어나고 적성종이 침공했을 때부터 미래는 점차 확정되기 시작했고 이미 그 결과는 끝에 이르렀습니다. 결과를 보고 확인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겠지요"

".........."

"대마왕들에게 관리자의 권한으로 심판 보류 요청을 한다고 하십시오"

"심판 보류 요청이요?"

백리는 의문을 표했다. 백리 본인도 심판 도중에 끼어들었다가 죽을뻔 했는데 보류 요청은 뭔가 다른건가 싶었다.

"네, 하지만 말이 보류지 사실은 완전히 손을 떼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즉, 이 문명이 어떤 결과를 맞이하던 간에 신경쓰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대마왕은 자신의 일에 나름의 자부심이 있다. 그렇기에 진중하게 심판하고 그걸 결정한다.

하지만 관리자가 직접 보류 요청을 한다면 그건 그들을 의심하고 무시하는 처사다. 그런짓을 했는데 대마왕들이 곱게 봐줄리 없다.

여태까지 오랜기간 대마왕이 존재했지만 그 요청을 받은건 유토피아마저도 몇번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적다.

"이걸 하면 당신이 원하는대로 더 이상의 심판은 이루어지지 않고 그들은 물러나겠죠. 하지만 기억해두십시오"

그건 어디까지나 백리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관리자는 칼을 빌려주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약간의 월권 행위를 저지른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있는건 앨리사 니어란 단말이지 관리자 엘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마왕은 꼭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사악하고 나쁜게 아닙니다. 비록 당신이 여기까지 온 것이 최악의 대마왕 유토피아가 의도한 바였다 할지라도 그도 나름의 인류를 신경썼기에 한 생각입니다"

단지 유토피아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거기에 개인적인 감정을 섞어서 유도했다는 점이다. 순수하게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간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 결과에는 분명 인류에는 이득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많은 희생을 동반한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서 판단하십시오. 이미 한번의 심판을 했으니 다음 심판까지에는 시간이 있을겁니다. 그러니 그 전까지는 충분한 생각을 통해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대마왕들에게 통하는 유일한 패가 생겼다. 다만 그것은 단순히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이쪽에서 불확실한 피해가 생기는 일이다.

만약 심판 보류 요청을 사용한다면 대마왕들은 지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최악조차도 더 이상 지구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전의 개인적으로 저지른 중국에서의 사건 같은 일도 저지르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게 마냥 좋은 것일까? 좋아보이는 것일수록 그 디메리트가 있는 법이다.

백리는 당장에 황금성으로 돌아가 심판 보류 요청을 사용할 것을 진정하고 생각에 빠졌다.

자신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 작품 후기 ==========

심판 보류 요청의 의미 : 니들 하는거 존나 신빙성 없으니까 꺼져ㅗㅗ.

이미 이 미래는 최악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난거라 바꿀 수가 없습니다. 페그오 식으로 말하면 인리 같은거임.

근데 과거나 미래같은 시간 계통의 문제는 작가가 빡대가리라 설정하기가 힘들어요......정작 시간 여행 소재는 몇번 써먹은 주제에!

아무튼 오늘도 하나 더 올림. 추천이나 쿠폰은 신경 안쓰는데 댓글만 많이 달아주면 좋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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