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흉의 대마왕 28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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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결국에 먹으라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들이닥칠 일이 무서워서 안먹고 싶어서 결국에는 먹을 수 밖에 없고 더군다나 백리는 만들어준 사람이 사람인지라 다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맛은 물론 있었다. 두가지 요리를 번갈아가면서 먹으니 질리지도 않는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영원히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끝은 언제나 찾아오는 법.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설령 지금의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뭐하러 왔냐?"
커피를 마시던 팬텀이 백리에게 물었다.
두사람의 사이는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안면만 익힌 사이라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심판 당시 덤벼들어서 방해한 백리와 그런 그를 죽이려고 했던 팬텀 사이에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껄끄러울 수 밖에 없으며 입장이 나쁜 백리는 움츠러 들 수 밖에 없다.
"대마왕으로서 하시는 일에 약간의 요청을 하러 왔습니다"
".........."
팬텀의 눈썹이 꿈틀거리면서 반응했다.
외모만 따지자면 어지간한 미인은 저리가라 할 정도의 여성스러운 모습이지만 보는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한순간 백리도 움츠러들 정도의 모습이라서 커피잔을 든 손이 덜덜 떨렸다.
하지만 백리는 다시금 굳게 마음을 먹고 말을 이었다.
"심판에 대해서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것인데요"
"......계속 이야기 해봐"
갑을 앞아 둔 을의 입장도 아니고 병이나 정쯤의 입장에서 이야기 하는 백리로서는 죽을 맛이였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었다. 대마왕을 정면에서 거스르는 일을 못해도 적어도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는 그런 일이라면......
"대마왕 중에서 한명인 유토피아씨가 하는 방송을 봤어요. 그리고 그 방송에서 이미 심판을 받은 일본인 중에 해외로 망명하려는 사람들도 죽이려고 한다는걸 들었죠"
"아, 그건 봤어"
"어차피 그건 개인 문제라서 딱히 간섭할 생각 없었는데. 그거 때문에 온거냐?"
"네"
개인문제, 그 단어가 백리의 머릿속에 깊고 확실하게 되새겨졌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대마왕 개인의 취향 문제였다. 그렇기에 백리가 요청할 수 있는 범위가 확실했다.
"단순히 조금 인연이 있는 일개 인간의 입장에서 왔냐?"
"아니요, 관리자의 대리인으로서 왔어요"
"흠"
대마왕 중에서 아무나 나서도 관리자 엘리를 쓰러트리는게 가능하다. 가장 약한 누리라 하더라도 그녀의 능력은 '자유', 이 우주에서 전능한 권한을 쓸 수 있는 괸라자의 간섭이라 하더라도 같은 능력을 각성한 존재가 아니라면 결코 손댈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능력 하나 없는 전능한 관리자보다 능력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필멸자가 오히려 더 승산이 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지지 않았다면 애초에 대마왕으로 누리가 선택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관리자를 이길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관리자를 존중하지 않는건 아니다. 그들은 문명을 심판하러 온거지 마구잡이로 파괴하러 온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리인으로 왔다면 우리도 나름의 존중은 해줘야 하는 법이지. 자기 위치를 쓸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굴러가는걸 보니까 충격 요법이 좀 잘 들은 모양이구나"
"........루리가 충고해준게 좀 많지만요"
"커피 마시쩡"
"아, 그거 따로 내가 블랜딩 해서 만든 브랜드야. 원두 하나하나 골라서 만든거라 그 오묘한 맛이 딱 좋지"
만약 백리가 단순히 그들이랑 인연이 있는 사람으로 온거라면 걷어차서 쫒아냈을 것이다.
대마왕이란 직위는 개인적인 사감으로 행동해서는 안되는 법이다. 유토피아라도 뭔가 건수를 잡아서 트집을 잡는 법이지 트집 잡을것 자체가 없다면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넘어간다.
최악이 대마왕들을 소집한건 분명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문제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당시 일본이 저지른 행태가 국가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란걸 보고 했던 면도 있었다.
지금이 중세시대도 아니고 국가에서 나서서 납치에 협박까지 하려는건 국가 망신을 넘어서 국제적인 신뢰도의 문제다. 더군다나 그때는 일본의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기밀로 하고 지들만 해외로 도주한 일도 있었고 말이다.
"관리자의 대리인으로서 정식으로 요청할께요. 심판에 대해서는 전권이 여러분들에게 있지만, 그래도 심판 이후에 대해서는 건들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적어도 해외로 망명하는 일본인들에 대해서는요"
"거기서는 문제가 많아. 우리가 괜히 문명을 멸망시킬 때 전부 싹 쓸어버리는줄 아냐? 사람이 남으면 그 의지는 이어지기 때문이야"
"국가를 잃어버리고 부정당한 사람들이 과연 그럴까요?"
"그런다. 우리가 멸망시킨 문명 중에서도 두어번 그런 놈들이 있었지"
"아, 그래. 물질 만능주의에 윤리관도 박살난 문명에서 그런 놈들이 바퀴벌레마냥 또 번식했더라고"
".........."
대놓고 아니라고 하니까 백리도 할말을 잃었다.
그들이 수 천년 동안 대마왕으로서 일을 하면서 여러 문명을 보았다. 개중에는 같은 행성의 문명을 두번이나 심판한 적이 있었다.
"그놈들은 한 성계를 개발하고 우주 여행 같은건 해외 여행 수준으로 생각하는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문명이였지. 하지만 클론 인간 같은걸 마구 찍어내면서도 그들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데다가 돈이라면 사람을 죽여도 무마가 가능한 그런 문명이라서 만장일치로 멸망을 결정했어"
"그때 내가 완전히 인류 멸종하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린애들만 좀 남기자고 했거든?"
"혹시 몰라서 시간이 좀 지난 뒤에 가봤더니, 이번에는 조금 오컬트 적인 요소가 섞이긴 했어도 예전이랑 별반 다를바가 없는 문명이 됐더라. 기술력도 좋은데 인신공양도 하고 앉았고, 그래서 이놈들은 가망 없다고 생각하고 내가 직접 나섰지"
"......어떻게 했는데요?"
"행성 째로 뭉게버렸어. 펀치 한방으로"
"별이 박살나는건 언제 봐도 절경이더라"
"늅뉴비 시절에는 행성 내핵 들고 선빵쳤는데 요즘은 주먹 한방에 별 하나쯤 박살낼 수 있으니까 편하더라"
".........."
보통 사람이 펀치 한방에 행성을 뭉게버렸다는 소리를 한다면 미친놈이 아닌가 생각했겠지만 말하는 상대는 팬텀이였다.
거대한 심연의 거인 같은 모습에 손가락을 찍은걸로 일본의 후지산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린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펀치 한방에 행성을 뭉게버린다는건 과언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할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지구 같은 별이 물풍선마냥 터지는 모습을 생각하니 묘하게 소름이 등을 타고오른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지구가 그러지는 않겠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뭔가를 본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사람이 남으면 필연적으로 그 지식과 사상이 이어지는 법이다. 해외로 망명한 일본인들을 전부 죽이겠다고 한 유토피아의 행동에는 개인적인 취향 문제도 있겠지만 그런 이유도 있기 때문에 우리도 마냥 손대지는 않는거지"
"정말로 그게 부당한 행위였으면 우리도 태클 걸었어. 백리 너도 내 성격은 알거 아니야"
"그렇죠......"
근 1년이지만 백리와 최악은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아무리 인성파탄 살인귀인 최악이라도 나름의 선과 양심이 남아 있어서 정말로 아닌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마왕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실망하지 않는게 바로 최악이였다.
"그래도 그들의 목숨을 가엽게 여겨주세요. 살려고 발버둥 치려는 사람들이 잘못된건 아니잖아요"
"지금의 일본을 그런식으로 만든건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잘못이지. 고치지도 않고 고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니까. 이제와서 살겠다고 도망치는 놈들을 우리가 봐줘야 할 이유가 있을까?"
"대마왕은 보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 옳지 않은 문명을 심판하는게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마지막 자비 정도는 줄 수 있지 않나요?"
"자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거지 누가 자비 타령한다고 주어지는게 아니야"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예요.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사람 목숨이란건 윤회와 환생을 반복하는 것 뿐인데 초월자에 오른 네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만한 것일까?"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구하고 싶은건 당연한 행동이잖아요"
"인간적이네"
"인간이니까요"
팬텀과 백리의 언쟁을 듣는 최악은 어께를 으쓱거렸다.
감정적인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좋았다. 만약 지금 자리에 국가와 국가간의 대표끼리의 회담이라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건 독이나 다름없지만 상대는 국가 대사가 아니라 대마왕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대마왕이 보는건 국가가 아니라 그 틀 안에 있는 내용물, 즉 인간이다.
백리 같은 애송이 초월자라 하더라도 인간의 시야에서 보면서 접근하고 설득한다면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욱 효과적이다.
"하루 종일 해도 안끝나겠네"
"저러다가 처맞는거 아니야?"
루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백리를 보았다.
집중해서 열심히 팬텀을 설득하는건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력 차이가 수없이 많이 있었다. 설령 백리가 현 지구 인구 수만큼 있더라도 지금의 팬텀은 커녕 최악조차 이기지 못한다.
대화와 협상이라는건 서로가 인정할만큼의 대등한 수준이여야지 가능한 것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한쪽의 일방적인 요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괜찮아, 팬텀 저 새끼가 아무리 막나가는 성격이라도 지금 상황에 힘을 쓰면 자기만 븅신이 된다는걸 아니까"
하지만 반대로 그만한 격차가 있다는 것은 팬텀이 먼저 손을 쓰면 입장이 나빠진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어른이 어린애를 설득하지 못해서 주먹을 쓰는것 만큼 꼴불견인 것도 드물다. 더군다나 어린애 쪽이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을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최악은 백리를 기특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모하고 가능성 없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
"내가 만약 망명하는 일본인을 살려주겠다고 치자. 그러면 이후의 심판은? 다들 자기 국가에서 탈출하고 도망치고, 이미 심판이 끝난 나라로 밀입국하면 살아남는 그놈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그건........"
백리의 요청은 단기적인 것만이 아니였다. 일본의 망명자만 살려줄 수는 없으니 앞으로의 심판도 그래야 할터. 이미 심판이 끝난 한국과 미국에 지금 사람이 몰리는 것처럼 해외로 도망치면 결국에 심판을 받는 자들은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심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만 못하다.
"........만약 그들이 과거를 버리겠다고 하면요?"
"호오, 무슨 뜻이지? 자세히 말해봐"
팬텀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긍정적에 반응에 백리도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준을 만드는거죠. 해외로 망명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원래 국가였던 곳의 언어, 사상, 종교, 신념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해외로 망명하면 살 수 있다고요. 아무것도 허락되지 않는데 앞으로 이어질 수 있을리 없겠죠. 더군다나 그 심판 받은 국가는 멸망했으니까요"
"그래도 이어진다면?"
"그건 법적으로 금지하면 되겠죠"
"타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행위에 누리가 우호적으로 볼거라고 생각하냐?"
"그게 아니라 자신의 생사를 선택한 자유를 주는거죠. 자신의 문화와 이념, 종교가 중요하다면 심판과 함께 죽으면 그만이고, 목숨이 더 소중하다면 해외로 망명을 받아주는 대신에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요"
"흠......."
그런 가치가 없는 것에 자신의 목숨이라는 가치를 매기고 같이 죽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명예나 긍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버리고 목숨을 구하겠다면 그들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법으로 정한다고 한들 인간이 그걸 지킬리가 없지"
"........."
하지 말라면 더 하는게 바로 인간이다. 그런데 하물며 그들의 과거를 전부 부정하고 버리라고 했는데 그 말을 그대로 들을 인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인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네가 하는 말은 결국에는 말 뿐이지. 초월자 적으로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네가 위치한 것은 별로 되지 않으면서 관련된 법안 문제부터 수정을 할 수 있을것 같냐?"
".......지금은 못하겠죠,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지금 못하면 입을 다물어"
백리는 현 지구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직위가 없다. 그랜드 마스터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직 진행중이였던 UN소속 문제로 대마왕의 강림으로 밀렸으며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평범한 국민에 불과하다.
정치인도 아닌데 백리가 거기에 관련된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리 만무하고 망명자 및 난민들로 인해 필요한 자금을 해결할 수 있을리 없었다.
"마음이 급했구나, 여기 오기 전에 차라리 한국 정부와 협상해서 나름의 권한을 받아오는 편이 더 좋았을텐데"
"큭......!"
"그리고 양심에 찔려서 할 수 있다고 뻔뻔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마치 예순 먹은 늙은이가 풋풋한 청춘 보는것 같아서 좀 그렇네"
"뭐야, 나이 먹었다고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하는거야?"
"애늙은이가 아니라 늙은이 맞잖아"
"인간 기준으로 하면 그렇지"
협상을 한다면 나름 뻔뻔해질 필요성도 있었다. 하지만 백리는 그러지 못했다. 태생이 착해서 거짓말이나 그런걸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도도 좋고 위치도 나름 있었지만 시간이 부족한걸 생각해도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
상황은 그렇게 끝이 나는듯 했으나 끼어든 목소리가 상황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일이라면 당사자에게 직접 말해야지 왜 저를 안부르고 그래요?"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언제 왔는지 모를 유토피아가 싱긋 웃고 있었다.
마치 괴물이 인간을 따라하면서 억지로 웃는 듯한 그런 이질적인 웃음을 띄면서 말이다.
"게다가 저도 개인적인 볼일도 있었고요"
백리는 덜덜 떨리는 손을 붙잡으며 요동치는 감정을 진정시켰다.
========== 작품 후기 ==========
바퀴벌레를 다 잡아도 한마리만 탈출하면 번식하는건 시간문제죠. 팬텀이 걱정하는건 그겁니다.
인간이 남으면 결국 문화와 역사도 남습니다. 다 죽여버려야 속이 편하긴 하죠.
근데 이제 수능이네요. 수능 잘 보세요, 라고 말하기에는 이 소설 보는 사람 중에 고딩은 없겠죠......있으면 있는대로 문제겠지만요.
요즘 떡씬이 안나와서 그런데 이거 노블이야! 애들은 가라!
자궁간 같은거 벌써 배우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