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화 〉[대마왕 강림]
제이슨 요원은 덜덜 떨리는 손끝을 바로 잡으면서 거대한 황금의 성을 내려다 보았다.
밝은 태양빛조차 한순간 흐려지게 만들법한 황금의 광채는 아무런 장식조차 되어있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을법하다. 애초에 당연하듯이 그것은 물리법칙의 한계를 넘은 순도 100퍼센트의 황금이였기 때문이다.
보통 인간에게 가능한 순물질의 순도는 99퍼센트가 한계다. 거기서 소수점 몇자리까지 순도를 높일 수는 있어도 결코 100퍼센트에는 이를 수 없다.
왜 그런것인가 하냐면, 이물질의 여부는 둘째 치더라도 공기에 닿은 순간부터 산화 반응이 일어나며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성하는 물질도 있기 때문이다.
금은 안정적인 금속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건 아니다. 금속으로서 강도를 생각하면 인간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있을만큼 무르다. 그런 금속인데도 불구하고 순도 100퍼센트를 유지한다는건 물리법칙을 정면에서 거른다는 소리다.
두두두두!!!
헬기는 성 앞의 빈 공터에 착륙했다. 빈 공터라고 한들 센트럴 파크 광장보다 넓지만 땅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황금으로 되어 있었다.
"정말이지 여기는.......신들의 땅인가?"
"황금이 신의 금속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걸 생각하면 그럴지도 모르죠"
사는 사람은 신이 아니라 대마왕인 점은 다르지만 말이다.
제이슨 요원도 팬텀의 진신을 보았다. 지구보다 거대한 심연의 거인은 보는것 만으로도 정보부에서 일하는 그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고도 남았다. 보통 사람보다도 빨리 정신을 회복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시간이나 걸렸다.
육체적으로 후유증은 남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상당한 충격이 남았다. 지금만 하더라도 그의 손이 수전증 걸린것 마냥 덜덜 떨리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어서오십시오"
키이잉!!
이명이 울리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시온이 그들에게 날아왔다.
아무것도 없이 자유롭게 비행하는 모습은 이제 시온도 인간이 아니라 하논으로서 행동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최악이 청문회에서 그녀의 종족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으니 숨겨봤자 의미 없다.
"........간만에 뵙습니다, 시온씨.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뭐 별일 없습니다. 반대로 저도 안부 정도는 물어봐드리고 싶지만.......어떤 심정일지는 짐작이 가니까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그것은......."
"예, 잘 압니다. 그래서 일부러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마중 나온거 아니겠습니까?"
만약 처음부터 대마왕 중에서 한명이 직접 마중 나왔다면 그들은 혼란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시온은 그들에 비하면 두려움은 덜했다.
물론 시온도 지구 파괴는 가능하더라도 이성적이며 대화가 가능하다는건 그들로서도 충분히 안심이 되는 사실이였다.
하지만 대마왕은 전혀 아니다. 판결 후에는 협상이나 거래의 여지도 없이 멸망 뿐.
"조금 쉬신 다음에 만나시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만나시겠습니까?"
"휴식 후에 만나는건 그분들은 기다리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그런거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딱히 약속을 잡은 것도 아니고 할일도 별로 없는 사람들인지라"
".........그분들에 대해 잘 아십니까?"
"알고 있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한명은 저희 남편이고 한명은 저의 사촌 오빠입니다"
"오........"
그건 경탄에서 내뱉는 감탄사가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를 보고 느끼는 공포심에서 나오는 감정의 표현이였다.
그가 알기로 대마왕이 정확히 몇명인지는 몰라도 그리 많은 수는 아니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중에서 두명이나 이어져 있다면......
"저한테 뭐라 할 생각 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배갯머리 송사라고 한들 그이가 하는 일 앞에서는 결과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분은 애처가이시지 않습니까? 조금의 여지도 없겠습니까?"
"기업의 존망이 달린 결정 같은 수준의 문제를 아내의 설득 따위로 막을 수 있으리라 보십니까?"
".........죄송합니다. 실언이였습니다"
"못들은걸로 하겠습니다"
시온은 적어도 상대를 배려할줄 아는 사람이였다. 곤란한 질문은 애초에 듣지 않는걸로 치기로 했다.
그들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안전은 의미가 없으니 지원자를 받아 몇명만 온 것이기에 이동은 편했다.
사안을 따지면 미국의 드레이프 대통령이 직접 와도 이상하진 않지만 미국 또한 혼란에 빠진 상태다. 대마왕의 성으로 그가 직접 가겠다고 한다면 더욱 큰 혼란이 퍼질게 분명하다.
현 지구는 초월자, 그것도 대마왕이란 문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존재들과 조우했다. 이것은 미지와의 조우 따위처럼 평화적인 것이 아니다.
각국의 수뇌부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느라 바쁘다. 하다못해 패망 직전의 일본도 방사능이 무서움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다시 자국으로 돌아간 정치인이 대부분이다.
"몇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어지간한거라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분들.......그러니까 대마왕 께서는 몇분이나 계십니까?"
"총 다섯명입니다"
"흐음......"
그들이 추정하기로도 최소 네명에서 다섯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 심판 당시의 모습을 드러낸 4명과 아프라카에서 일어난 분쟁을 무력으로 막은 다른 한명까지. 그렇기 때문에 크게 놀랍지 않은 정보였으나 확신을 더한 것에 중점을 두었다.
"따로 주의해야 할 것이 있겠습니까?"
"객관적으로 본다면 대마왕들은 대부분 성격이 괜찮습니다.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 사적인 자리라면 격식 없이 대하는게 평범할 정도입니다"
"심판.......그때의 심판의 모습은 공적인 모습입니까?"
"예, 대마왕 중에서는 직위가 아니라 정말로 한 문명의 왕의 직위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지만 최소한의 예절만 지키면 뭐라고 하진 않습니다. 문화가 달라서 생기는 차이도 양해해 줄테니까 평범하게 대해도 목이 날아갈 걱정은 안해도 될겁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다만 한명. 개중에 유토피아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까 말한 제 사촌 오빠인데 성격이 더러우니까 주의하십시오. 친척만 아니면 얼굴도 보기 싫을 정도의 성격의 소유자니까 뭔가 할거면 그 사람은 빼놓고 하는게 좋을겁니다"
"........."
자기 사촌 오빠인데도 불구하고 신랄한 평가였다. 혈연이라면 최소한의 허들은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만큼 성격이 나쁘단 반증이다.
애초에 시온과 유토피아는 첫만남부터 틀려먹었다. 아무리 길이 잘못 들였어도 시온이 수백년을 봐온 문명을 단숨에 멸망시켰으니까.
"오! 이곳은......."
본격적으로 내성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홀이 그들을 반긴다. 수정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찬란함과 화려함의 극치인 거대 샹들리에가 그들을 반긴다.
황금의 광채에도 굴하지 않는 빛은 예술적인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넋 놓고 볼법한 모습이였다.
성 내부의 장식은 어느것 하나 그냥 존재하는게 없었다. 하다못해 난간의 작은 장식 하나에도 꽃 장식 같은 조각이 새겨져 있다.
그런 것들이 합쳐져서 전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도 없고, 앞으로도 만들 수 없는 그런 초월적인 작품이였다.
"생각외로 방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개인실은 드릴 수 있을것 같습니다"
"감사합니......."
"안뇽안녕! 손님은 어서오십시오! 대접할건 없지만!!!!"
금방이라도 기절할것 같은 그들에게 난데없이 누리가 난입해 모습을 드러냈다.
외모는 루리를 베이스로 하였지만 조금 더 어린 모습이 등 뒤에는 하나에 네개씩, 한쌍에 여덟개의 흑수정이 날개처럼 그녀의 등 뒤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시온처럼 중력을 거스르면서 자유자재로 날아온 그녀는 그들 앞에 착지했다.
미국에서 온 대표들은 그녀의 등장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 중에서 포스 유저가 없는건 아니였으나 보통 사람이 보더라도 누리의 흑수정은 평범한 것이 아니였다.
".......왜 왔습니까? 손님 안내는 제가 해도 됩니다만"
"그치만 어차피 이 아저씨들은 우리 만나러 온거잖아? 그러면 내가 총대 매야지. 한번에 다섯을 만나는 것보단 그냥 한명 먼저 만나서 적응하는게 낫지 않을까? 나도 나름 호의는 있어서 배려해주는건데"
"어차피 생각하면 네명이나 다섯명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그래도 자기편 한명 쯤은 있다고 생각하는게 더 좋지. 그치?"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받은 자원자 중에서 엘리트를 뽑았기 때문에 그들도 눈치는 빠르다. 그 대화에서 그들은 누리가 다섯명의 대마왕 중에서 한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금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면서 제이슨 요원은 자세를 잡아 정중하게 인사를 건냈다.
"미국의 대사로서 찾아온 제이슨 브라이트라고 합니다. 제가 이 일행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나는 누리야! 다섯명의 대마왕 중에서 제일 막내지! 잘 부탁해!!!!"
가벼운 모습이지만 적어도 그들이 기억하기로 심판 당시에 난입해서 백리를 구해준 사람이란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워낙 개성적인 성격이라 종잡을 수 없는 모습 자체가 특징이기 때문이다. 방정맞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정보를 얻을 대상으로는 좋았다.
"손님 대접은 내가 해도 되지? 아, 커피 같은거 있어?"
"호라이즌에서 따로 공수해오겠습니다"
"아, 컵도 부탁해! 솔직히 커피 마시는데 황금 커피잔은 조금"
"요구사항이 많습니다"
"에이, 솔직히 이건 별거 아니잖아? 그리고 손님 대접하겠다는데 뭐"
시온은 한숨을 쉬면서 자리를 빠져주었다. 누리에 대해서 모르는만큼 미국 대사 일행들에게 드는건 오히려 동정과 연민 뿐이다.
"이쪽으로 와! 어차피 아저씨 오빠들 만날 때 까지는 시간 있으니까 잠깐 쉬면서 커피나 마시자고"
"폐를 끼치는건 아닐지........"
"완전히 모르고 만나는 것보단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는게 좋겠지? 장단만 맞춰주면 내 입도 수다쟁이가 되서 잘 떠벌릴거라고?"
".........."
본인 입으로 막내라고 했지만 상대는 손가락 하나로 나라를 지우려고 했던 자와 동급의 존재였다. 최악도 혼자서 중국을 무너트렸는데 상대는 못해도 그에 준하는 힘이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힘으로 대처할 수 없는 존재. 더군다나 일개 개인의 몸으로. 그런 현실은 두려움을 끌어내기 충분했다.
"아, 근데 밥 먹을래? 마침 아저씨들이 밥 한거 있는데"
"........아뇨, 이미 먹고 왔기에 죄송하지만 거절해야겠군요"
"그래? 아쉽네. 심판 하나 늘어나서 승패가 나나 했더니"
죽을지도 모르는 자리다. 그렇기에 마지막 만찬이나 다름없던 식사는 끝내고 왔기에 이미 그들은 충분히 배가 부른 상태였다.
그들은 누리의 안내에 따라서 성 안의 응접실로 초대받았다. 응접실 안에 있는 거대한 테이블과 의자부터 모든 가구들은 순금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불편할것 같았지만 가구에서 미미한 온기가 띄고 있어서 그렇게 불편하진 않았다.
"커피커피커피, 내거 까지 아홉개 쯤 타면 되겠지? 설탕은 각자 취향대로 넣어"
시온이 호라이즌에서 공수한 커피잔과 커피를 허공에서 염동력으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탄다. 물론 포스 유저도 염동력 계통의 포스 유저가 있는만큼 그렇게 특이한 광경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어려움 없이 동시에 행한다는게 눈에 띄었다.
아홉개의 커피잔을 각자 움직이고 주전자와 불 없이도 어디선가 끌어온 물을 허공에서 가열해서 뜨거운 물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조금의 열기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대로 자연스럽게 잔에 흘러들어간 물은 커피와 녹아내려 저절로 저어 섞어진다.
익숙한 포스 유저는 충분히 가능한 능력이지만 누리는 겉보기에는 중학생 정도였다. 그래서 더욱 위화감이 심해진다.
"슬슬 이야기 시작해도 될까?"
"아, 예"
"다시 소개하지만 내 이름은 누리야. 대마왕 중에서 자유의 대마왕을 맡고 있지"
"자유......입니까?"
"응, 대마왕은 각자 자기가 보는 가치관과 분야가 달라. 그래서 내가 보는건 자유지. 그리고 아저씨들의 나라는 어디?"
미국, 그리고 누군가는 미국을 자유의 나라라고 부른다.
물론 완전히 그러지는 않는다. 애초에 정보부 출신인 제이슨 요원만 하더라도 애국자법이란 명목 하에 타인의 자유를 억압한 적이 없다고는 못하니까.
하지만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상당한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다. 땅 크기만 비슷한 중국(과거)과 러시아만 보더라도 충분히 그래 보인다. 인도 같은 경우는 카스트 제도부터 완전히 없엔 다음에 보자.
"그러니까 아저씨들을 싫어할 이유는 없지. 내가 보는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는가, 아닌가를 보는거니까 내 기준으로 봐도 합격이야"
"그렇다면 저희 미국은........"
"하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 어디까지나 내가 하는건 한표니까. 대마왕의 판결은 한번 봤듯이 다수결이거든? 게다가 기권이나 무효표도 없이 죄의 유무로만 나뉘어서 판결은 반드시 나게 되어 있어"
심판자도 홀수에 기권이나 무효도 없다면 반드시 어느 쪽으로든 기울여지기 마련이다.
간신히 무죄던가, 간신히 유죄던가, 그런것은 있어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다. 소수 정예로 돌아가는 조직인 만큼 그런 면에서는 엄격하다.
"그 심판을......."
"막거나 멈출 방법은 없냐고? 글쎄, 한번 작정하고 왔는데 무라도 뽑아야지. 우리라고 뭐 이 일 좋아서 하는건줄 알아? 진성 나쁜놈은 유토피아 오빠 한명 뿐이고 나머지는 죄다 나쁜놈 코스프레인걸?"
"그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겨우 인간의 문명 같은거에 신경쓰는건 애정이 없어서는 불가능한 일이야. 아저씨도 지나가던 개미 같은거에 신경쓰진 않지?"
"흐음......."
확실히 그 거대한 심연의 거인 앞에서는 인간은 개미에 불과했다. 아니, 지구랑 비교해도 개미 수준인데 하물며 더욱 큰 팬텀 앞에서는.......
그들같은 초월자들은 보통 인간사에 관심이 없다. 인간들의 오욕칠정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사느니 차라리 자기 입맛에 맞는 사회를 만들거나 따로 은거하는 등의 선택을 한다.
직접적으로 나서고 개입하는 초월자 단체는 전 차원을 뒤져도 많지 않다.
"우리는 사랑의 매를 드는게 역할이야. 더 이상 엇나가면 어차피 파멸 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까 훨씬 일찍 멈추게 하는거지. 그게 좀 과하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이러지 않으면 안들을께 뻔한게 인간이잖아?"
"..........."
곱게 말해서 듣는게 인간이라면 애초에 세상에 분쟁 따위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그들이 심판 같은 거대한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세상이 그들을 지금처럼 두려워 했을까? 전혀 아니다, 누군가는 조작이라고 했을테고 누군가는 부정했을 것이다.
지금의 일본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이 온화하게 말한다고 한들 지금처럼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그건 마치 몸 안의 바이러스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열이 나는 증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열 때문에 뒤지던 말던 결국 본인이 몸 관리를 잘 했을 때의 경우지만 말이야"
이러나 저러나 일본은 패망의 길 밖에 남지 않았다.
누리는 재미있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제이슨 요원은 그녀 또한 그들과 같은 족속이란 것을 새삼 깨닫고 저절로 돋는 소름을 진정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