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5화 〉[대마왕 강림] (265/507)



〈 265화 〉[대마왕 강림]

심판을 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분쟁도 용납되지 않는다. 설령 그게 합당한 분쟁이라도 말이다.

그러니 싸우려고 했다가는 잘해야 나라 하나의 멸망이고 잘못하면 쌍방의 멸망이다. 결국 그걸 결정하는건 처리하는 대마왕의 성격에 달렸지만.

최악의 대마왕 선포에 더불어서 대마왕의 심판은 많은 여파를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종말을 부르짖었으나 사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였다. 천국을 지껄여도 결국에는 최악의 말마따라 환생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

"........."

"........."

일본 정부의 각의(閣議). 간단하게 말해서 내각의 요인들이 모인 회의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내각의 수장인 노베 총리를 비롯한 다른 의원들은 겨우 며칠 사이에 얼굴에서 살이 쑥 빠져서 얼굴에서 건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색이 역력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것 같소?"

"............"

"뭔가 말이라도 해보시오"

"총리님......."

화를 내야 정상인 상황이지만 지금의 노베 총리는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사회는 개판이 되고 일본의 상징이라 부를  있는 후지산은 뭉게졌다. 후쿠시마의 사태까지 까발려져서 일본은 현재 무법지대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자위대를 배치해서 치안을 유지하고 있지만.......애초에 군대가 치안을 유지하는 시점에서 끝난거다.

"그건 환영이나 그런걸겁니다! 분명!!!"

"현실도피는 그만하시오. 고노 의원"

"그........"

"나도  지경까지 와서 그러고 싶지 않소"

해외로 나가 있던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은 전부 귀국한 상태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직위 같은 것은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일본과 함께 침몰해 죽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그나마 밑바닥까지 떨어진 일본의 현 상황에서 정부의 형태를 유지할  있었다.

지지율도 바닥인 판에 뭐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게 과연 환영이나 환각 따위로 보이시오?"

"..........."

만약 그것이 진짜 환영 따위로 만든 것이였다면 오히려 전능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기만 하더라도 인간의 정신을 망가트리는 심연의 거인은 마치 크툴루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아우터 갓이 아닌가 싶었다. 다른점이 있다면 영구적인가, 단기적인가의 차이였다.

개인의 정신력의 문제가 있겠지만 팬텀의 모습을 본 자는 최소 몇시간에서 최대 하루 정도로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성을 잃어도 어딘가에 처박혀 용서를 빌거나 덜덜 떠는 정도라서 크게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었지만 그 이후가 문제다.

일본은 붕괴되고 있다. 팬텀에게서는 물리적으로 붕괴될뻔 했으나 지금은 사회적, 경제적인 붕괴다.

엔화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가는 치솟는다. 경제대국이라 불리던 일본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그래, 그들은......."

대마왕.

아무리 정신이 나갔었어도 오히려 그때의 기억은 확실하고 깊게 남았다.
인간의 문명을 심판하기 위해 온 존재. 그때의 판결은 들어서 알고 있었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행동이였다. 전범국이였던 과거를 긍정하고 혐한을 통해서 지지율을 올린건 그들의 죄였기 때문에 결국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일본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지금 어디있나?"

"태평양 한가운데서 거대한 성을 짓고 머무르고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성이 통째로 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단순 계산으로도 수조톤은 나올거라고 합니다"

"금값이 바닥을 치겠군"

떡 줄 사람 생각도 않하는데 김칫국 부터 마신다는 말이 있다.

애초에 그들이 그 성을 내어놓을까?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인간에게는 금이 중요하다는걸 아는데?

"사절을 보내게. 아주 정중하게. 그들의 요구가 있다면 뭐든지 들어주고 굽히고 들어가게"

그들이 할 수 있는건 최대한 대마왕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 뿐이다.

손가락으로 일본을 멸망시킬  있는 존재에게 무엇이 가능할까. 그리고 이미 북한은 처리되어서 남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북한이라는 국가는 단숨에 존재하지 않았던것 마냥 부서진 것이다.

어떤 문명이라도 멸망하면 그 흔적이 남는다. 석기 시절의 것도 고인돌 같은 것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고열로 인해 증말하고 녹아버린 땅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북한은 이제 찍어놓은 영상과 사진으로 밖에 알아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 속의 국가가 되었다.

".......과연 그들이 저희들에게 바라는게 있을까요?"

"최대한 해봐야겠지"

노베 총리는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였다. 보다 자존심이 있다못해 오만한 그런 사람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자존심을 챙길 기력도 없다. 멸망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대마왕이 아니더라도 방사능 때문에 서서히 죽어갈 뿐이다.

죽음 앞에서는 사람은 여러가지 반응이 있지만 때로는 자포자기 하는 사람도 있다.

가진게 많아도 죽을 때는 결국 빈손에 맨몸으로 간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일본은........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 의문은 우문(愚問)이였다.

* *  *  *


간만에 대마왕 다섯이 다 모였다.

최강의 대마왕 팬텀.

최악의 대마왕 유토피아 레이하논.

최흉의 대마왕인 나.

지배의 대마왕 시엔느.

자유의 대마왕 누리까지.

"앗, 최악 아저씨. 안녕하세요!"

"솔직히 이 중에서 가장 인성 좋은건 시엔느일듯. 예의 바르게 인사도 잘하네"

"고럼, 누구 딸인데"

"팔불출 참"

인간형 모드의 팬텀은 허리까지 기른 흑발의 미남.......아니, 미인에 가깝다. 시엔느도 보라색 눈동자만 빼면 흑발이라서 나란히 있으면 부녀 사이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두사람은 혈연 관계가 아니다. 나랑 예진이랑 같은 관계. 즉, 수양딸이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친자식처럼 여기는게 시엔느다. 예전에 말한적 있던 '피는 물보다 진하다. 하지만 정은 피보다 진하다'라는 말은 팬텀네 집안 가훈이다.

"어디 다녀왔길래 바로 여기로 안오고 돌아다니다 왔어?"

"아프라카예요. 거기서는 또 싸우려고 하더라고요"

"그냥 싹 다 죽여버릴까요? 어차피 분쟁이란건 사람이 있으니까 생기는 거잖아요"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두뇌! 파괴한다!!!"

"앗, 누리도 있었구나! 오랜만!"

시엔느와 누리는 서로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사이가 좋다. 성격도 잘 맞아서 아마 대마왕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노는 시간은 두사람이 제일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 같다고 해서 무시하면 안된다. 두사람 다 어린 여자아이 같이 보여도 충분히 대마왕으로서의 자질이 있기에 선택받은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엔느는 이런일 안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거 세상사 자기 마음대로 되는건 없는 법이지. 그리고 언젠가 자식은 부모 손을 떠나가는 법이야. 자기가 하고 싶은거 하게 냅둬"

"역시 사람은 경험이 있어야 안다고. 나이는 비슷해도 인생경험은 다르구만"

"그런거지 뭐"

수명이 긴 것과 짧은 수명을 여러번 반복한 것은 다르다. 팬텀은 나와 마찬가지로 나이는 수천살이지만 팬텀으로서 살아온 것이지 환생자인 나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서 육아나 자식에 대한것 같은거 말이다. 나는 시온이 아니더라도 결혼해서  낳고 키워본 적이 많아서 육아는 나름 하지만 팬텀에게 자식은 아직 시엔느 하나 뿐이다.

"형수님들은 애 낳을 생각 없어?"

"아직 신혼이야, 얌마"

"하긴, 시엔느 같이 귀여운 딸내미 있으면 아직 신혼 생활 즐기는게 좋겠지"

"별일 없으면 앞으로 한 천년쯤은 더 신혼으로......."

"아빠! 동생 만들어줘!"

"으아아아아! 아니야!"

난데없이 폭탄을 던진 시엔느를 팬텀이 달랬다.

오랫동안 외동이였으면 동생이 가지고 싶을만 하다. 그런데 그건 팬텀이 아니라 형수님들한테 이야기 해야지.

"애 생각은 네가 먼저 신경써야지. 제수씨 애 바라는건 나도 알고 있는데"

"아직은 안돼. 직장이 안정되야지"

"언제쯤?"

"글쎄,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겠지"

팬텀은 나와 성격이 잘 맞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허물없이 대화할 수도 있지만 나름의 선은 있었다. 다른게 아니라 파벌 때문이다.

정말 그 파벌 문제만 아니였으면 초면부터 욕박는 레알 절친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야.

진정한 친구는 만날 때부터 '이 새끼 아직도 살아있었네'같은 말을 하는 법이다. 존나 친하면 원래 허물이 없어지는 법이니까.

쩌저적!

"일은 대충 마무리 된겁니까?"

차원이 갈라지면서 시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라이즌에서 대충 보고 있었긴 할테지만 팬텀 때문에 자세히는 몰랐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호라이즌이라도 팬텀 클래스의 초월자를 상대로는 제기능을 전부 사용할 수는 없을테니까.

"테에에에엥! 시온 마망!!!!"

"누가 당신 마망입니까. 저는 당신 같은 딸내미 둔적 없습니다"

"에이, 성격도 잘 맞는데 그냥 해주지"

"당신 목적이 그이랑 부녀로서 배덕적인 관계를 맺는거라는걸 모를것 같습니까?"

"아니! 오또케 알아찌!!!!"

"그런거 보면 여전합니다"

"요즘 좋은 남자가 안보인단 말이야. 나는 남자 취향은 존나 착한 사람이거나 반대로 존나 나쁜 사람이거나, 둘중 하나인데 둘 다 드물거든"

"지랄 하지 마시고 갓-루리루리나 따먹으러 가십시오"

"아, 이미 따먹고 옴"

".........."

루리랑 시온이 성격이  맞듯이 누리랑 시온도 어떻게 보면 성격이 잘 맞는다.

다만 한가지 맹점이 있다면 누리 이년이 나를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점일까. 누리는 쾌락주의자라서 재미있고 즐거운건 다 좋아한다.

"어떤 여자가 그이를 좋아해도 별로 상관하진 않겠지만 수명 제한 없는 초월자가 상대라면 막을겁니다. 그이를 독점하는 여자는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난 쾌락만 있으면 충분한데!"

"그 쾌락 중에 정신적인 쾌락도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까?"

"큭, 이렇게 된 이상 나중에 여기 루리 오빠나 따먹으러 가야겠다.  대신 닭이려나"

아, 백리에게 묵념을 해주도록 하자.

누리와 이야기가 끝나자 구석에 있던 유토피아가 다가왔다.

"오랜만이네요.  지냈어요?"

"여태까지 잘 지냈는데 지금부터는 잘 못지낼것 같습니다"

"에이, 만나자마자 그런 소리 하기예요?"

"패드립 안박는 이유는 당신이랑 저랑 친척이라서 제 얼굴에  뱉는거라 안하는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휴먼"

"전 휴먼이 아니라 하논이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장모님 이야기도  해야지. 항렬 따지면 유토피아가 큰아버지라는데 그러면 시온이 손녀뻘 아니냐"

"그랬습니까?!"

"편의상 사촌으로 부르는거니까 그렇게 하자고요. 어디까지나 항렬이 그렇다는거지 태고적에 창조된 동기들이랑은 같은 혈연은 아니잖아요?"

"변명은 잘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그렇게 부를거예요?!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결혼하면 짱좋아. 결혼이 인생의 무덤이라는데 난 아니더라"

"마음이 맞는 사람이 없어서요. 수명 문제도 있고"

"그 성격에 누가 좋아해주길 바라는게 문제 아닙니까?"

"자꾸 그렇게 태클걸거예요?!"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들여서 전 세계의 모든 국가를 판별하고 지울건 지워야 한다.

원래 문명 수준이 높아지면 국가의 수는 줄어드는 법이다. 보통은 한번이나 많아도 열번 이하로 심판하면 문명 하나 끝낼 수 있는데 지구는 현재 발전중인 상태라서 국가가 많다. 내가 알기로 200개 가까히 되던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중국처럼 예외의 경우 몇개를 빼도 존나 많은데 언제 다 하냐........

"슬슬 출출한데  안먹어? 여기 요리 잘하는 사람 두명이나 있는데!!!"

"아, 밥 시간이기는 하네"

"여기 성에 주방도 있나? 있으면 거기서 뭐라도 좀 만들면 되겠다. 다들 밥 먹을 필요 없는 주제에 먹기는 왕창 먹으니까 좀 많이 해야겠네"

그런데  와중에 시엔느가 또 폭탄을 털어트렸다.

"근데 아저씨랑 아빠 중에서 누가 더 요리를 잘해요?"

"..........."

"..........."

파직!!!!

나와 팬텀의 시선이 허공에서 스파크를 일으켰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진짜 물리적인 의미로. 허공에서 충돌한 상반된 의지가 물리현상을 일으킨 것이다.

"당근 내가 더 잘하지"

"뭐래,  요리 좆밥이잖아"

"너 지금 뭐라고 씨부렸냐? 주방으로 따라나와!!!!"

간만에 실력 발휘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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