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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3화 〉[대마왕 강림] (260/507)



〈 263화 〉[대마왕 강림]

백리도 정신을 차리고 사태를 이해하자 승산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저 멀리 보이는 우주 바깥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구보다 거대한 존재의 모습은 백리 따위가 아니라 인류가 모든 사력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주먹 한방으로 태양조차 파괴할 수 있을법한 거인이였다.

그것만 보더라도 전의가 죽었다. 하지만 남자라면 패배할걸 알아도 싸워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피할 수 없는 심판 앞에서도 백리는 몸을 내던졌다. 목표는 하늘에 떠 있는 최악이다.

다른 둘은 건드릴 수 없었다. 팬텀은 애초에 우주 바깥에 있었으며 유토피아는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덤비는 순간 저항도 못하고 죽을거라는걸 알기 때문이다.

싸워야 한다면 한번 싸운적 있던 최악이 그나마 승산이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달려드는 백리의 모습을 세명의 대마왕이 지켜보았다. 최악은 그런 백리를 보고 한숨을 쉬면서 주먹을 쥐었다.

[일할 때는 건드리는건 아니란다 백리야]


콰아아아아아앙!!!!!

음속을 돌파해 비행하고 최대한 공격을 막으려고 태극나선경을 펼치며 돌진하던 백리를 압축된 핵폭발과 맞먹는 힘으로 후려쳐서 날려버렸다.

봐주는거 없는 작정하고 후려친 맹격이다. 힘조절도 안해서 지상으로 추락한 백리는 사람의 몰골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초재생 특성 덕분에 빠르게 몸을 회복했다. 순수한 물리적인 공격이여서 망정이지 아니였으면 그대로 죽었다.

"크윽, 끄으으으으.......!!!"

하지만 고통이 없는건 아니였다. 몸의 뼈는 멀쩡한걸 찾는게 더 빠를 정도에 내장도 짓뭉게진 상태에서 주는 고통과 회복하는데 생기는 고통은 이중으로 느껴진다.

어떻게든 다시 움직일 정도로 회복한 백리는 비틀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뭐해? 계속 하지?]

[쟤 전에 치킨집에서 봤던 걔 아니냐?]

[맞아]

[근데  초월자 초입이야? 그동안 어디서 경험치 노가다라도 뛰었냐?]

[여기 우주 관리자한테 내 대적자로 선택을 받았거든]

[내 제자놈도 아닌데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네. 그런데.......]

[수준은 대충 보이는데요? 시간이 너무 부족한거 아니예요?]

[그렇긴 하지. 누구누구처럼 재능을 경지 올리는데 몰빵해도 10년은 걸리는데 고작 몇달 사이에 오를 수 있는 수준이야 뻔하니까]

[넌 언제적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냐]

[아무튼 어떻게 할거예요? 보통은 판결 도중에 건드리면 그대로 처형인데]

쿠우우우!!

현재 팬텀의 손끝은 후지산 깊숙히 박혀 있을 뿐,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완전히 모르는 사이였다면 무시하고 그냥 진행했겠지만 한번이나마 얼굴을 본 사이다. 예전에 백리가 최악에게서 치킨집을 이어받아서 할 당시에 한잔 하면서 통성명을 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적자라면 꽤나 골치아픈데. 관리자 대리라는 소리잖아. 판결에 태클건다는 소리야 뭐야]

[그런거 없고 그냥  마음 가는대로 덤벼든거야. 그냥 진행해]

[이거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지. 나중에 관리자가 태클 걸면 귀찮아]

[어차피 힘으로 억누르면 그만 아니예요?]

[야, 유토피아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될껄. 여기 관리자가 우리 장모님이였더라]

[.........아니, 그거 무슨 개소리예요? 농담 한거면 한 1억년만에 진심으로 웃어줄 생각 있는데, 거짓말이죠?]

[진짜야]

[저도 여태까지 만난 동족을 생각하면 기껏해야 서른 안팍인데 말이죠. 여기서 만나게  줄이야]

[시온한테 장모님이면 너랑 항렬이 어떻게 되냐. 응? 네가 하논 중에서 제일 나이 많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말이 안되는데?]

[정말로 시온한테 장모님이면 그녀에게는 제가 큰아버지 뻘일걸요]

[사촌 오빠가 아니라 할아버지잖아!!!!]

[결혼도 안한 사람한테 할아버지가 뭐예요?]

[그럼 결혼을 하던가!]

[할 생각 없는데요]


진중한 심판에서 개인사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덜덜 떨면서 그들의 눈치를 보는건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초월적인 존재들이 인간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는게 더 두려웠다. 그런 힘을 인간의 의지로 휘두른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그냥  강한 인간이면 그냥 죽여버려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는데, 하필이면  동족의 대리인......애매한데 최악씨는 어때요?]

[니들 마음대로 해]

[그래도 괜찮냐? 아는 사이잖아]

[일  때는 개인적인 사감을 넣지 않기로 했잖아]

[그렇긴 하지]


쿠구구구!!!

백리는 눈 앞의 거대한 절망을 직시했다.

지구보다 거대한 거인, 태양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외계인, 사회를 통째로 죽이는 살인귀.

어느  하나 지금의 백리로서는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들이다. 초월자로서의 격을 지금  자리에서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나  멀리 우주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거인은 수준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백리의 인지능력으로도 이해가 불가능할 수준의 존재였다.

[애매한 입장이지만 본보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나중에 더 귀찮아지는 법이지. 그러니 처분하겠다]

그걸로 끝이다. 백리는 아주 잠깐 사이에 덮쳐오는 힘에 의해 피를 토했다.

팬텀은 아무것도 안했다. 그저 백리를 보고 그러고자 마음먹었을 뿐이다. 마치 무림 고수가 살기만으로 상대를 해할 수 있듯이 그는 고작 하겠다고 마음을 품은것 만으로도 백리를 그 자리에서 즉사 시키는게 가능했다.

아주 조금, 어차피 팬텀의 입장에서도 크게 힘을 쓸 필요 없으니 가볍게 손을 쓴게 백리로서는 몇초나마 저항하여 목숨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백리로서는 팬텀의 의지를 털어버릴 수 없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백리는 여기서 숨을 거두게 될 것이다.

쩌저저적!!!

차원이 갈라지면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루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외형적으로 조금 더 어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미소녀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싱글벙글 웃으며 소리쳤다.

[누리! 급히 오다!!!!]


별다른 일이 생겼다.

  *  *  *


 5인의 대마왕 말석.

자유의 대마왕 누리.

정확히 말한다면 자유와 권리의 대마왕 누리. 최악이 사회를 담당하는 대마왕이라고 한다면 그녀는 사회의 자유와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를 보는 대마왕이다.

백리의 여동생인 루리와 비슷하게 생긴 외형은 당연한 것이다. 누리는 루리와 같이 갓-루리루리의 정보 수집 단말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리는 능력을 각성하고 그녀에게 반기를 들어서 독립한 존재다. 마왕으로서의 각성은 오히려 최악보다 빨리 했지만 대마왕으로서는 제일 마지막으로 각성하여서 선후배를 따진다면 루리가 가장 막내다.

그렇다고 누리가 약한건 아니다. 대마왕은 가치관과 무력, 두가지가 성립되지 않으면 선택받을 수 없는 자리다. 고작해야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누리도 혼자서 지구 정도의 별 하나쯤은 흔적도 없이 갈아버릴  있다.


[꽤 늦었구나]

[에이, 나는 아저씨 오빠들처럼 막 단숨에 외진 차원까지 날아올만큼 힘이 넘쳐나진 않거든. 솔직히 차원 수십개를 단숨에 찢고 오는거나 웜홀로 우주 단위로 점프하는걸 어떻게 이겨?]

[시엔느는 어쨌어? 보통 같이 오지 않아?]

[볼일 있다고 좀 늦게 올것 같아. 그래도 얼마 안걸릴거고. 그런데 숫자가 안맞아서 나 혼자선 판결에는 못낄텐데.......꽤 재미있는 상황이네?]


세명에서 한명을 더하면 네명. 짝수이기 때문에 다수결로 하면 반반으로 의견이 갈릴 여지가 있기 때문에 숫자가 짝수가 된다면 나중에 온 사람이 빠지게 된다. 루리는 일본의 판결에 대하여 참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판결이 아니라 백리의 처우 문제였다.


[그런데 그 녀석 편을 들어주는거냐? 너랑은 별로 연관없을텐데?]

[내 단말 친구의 오빠야. 솔직히 그냥 냅둬도 상관은 없는데 무시하면 나중에 뒷맛이 찜찜해서 그렇거든]

[흐음.......]

[그리고 좀 애매한 상태지 않아? 죽이기도 뭐하고, 안죽이기도 뭐하고. 그런데 세세하게 저울에 올려놓고 보면 안죽이는 쪽으로 기울여지지?]


누리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백리의 끝은 죽음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애매하긴 하더라도 백리는 심판을 방해한 이상 죽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틈에 누리가 나타났다. 아무리 막내라고 할지라도 누리는 그들과 같은 대마왕이다. 팬텀이 최강이라고 홀로 2표를 던지는게 아니듯, 누리가 막내라고 발언권이 없는게 아니였다.

더군다나  일은 문명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방해한 사람에 대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판결이 아니라 거기서 생긴 일에는 개인적인 감정을 넣어도 되는거잖아? 그러면 나는 이 오빠 편 들어줄래]

[나이로 따지면 거기 있는 인간보단 훨씬 나이 많지 않아요?]

[여자는 언제나 소녀인 법이야]

[소녀는  절대영도로 다 얼어 죽었나봐요]

[뭐야, 유토피아 오빠는  시비야. 아저씨들 사이에서 혼자 결혼 안한 사람이라서 오빠라고 불러주는데 왜 돌에서 태어난 손오공 같은 소리를 하고 있어?]

[무슨 뜻이예요?]

[왜 애미없는 원숭이 소리를 하고 있냐고]

[.............]

누리의 성격은 루리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루리보다 훨씬 성격이 더럽고 선을 넘는 짓을 자주 한다.

물론 자신만의 가치관 앞에서는 지키는 룰이 있지만 아는 사이라도 면전에서 패드립을 박는 여자가 뭔들 못할까.


[아무튼 내가 이 오빠 편 들어줄건데 뭐라고 할 사람?]

[됐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 넘어가]

[거 제수씨 어머님 대리인이라서 죽이기도 좀 그렇긴 했는데 대충 치우기만 해]

[.......여기서 계속 저만 따지고 들면 제가 나쁜놈 같잖아요?]

[나쁜놈 맞잖아]

[이 새끼  나쁜새끼예요!]

[팬텀  새낀 언제적 시절 드립을 치고 있냐. 그거 도대체 언제적 영화야?]

[그 드립을 기억하는 당신은........!!!]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진중했던 그들의 분위기가 한결 장난스러워지고 가벼워졌다는 점이다.

한 성별로 편중된 사회나 조직은 장점도 있겠지만 단점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여기에 누리가 끼어듬으로서 중간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백리는 간신히 초재생 특성으로 숨이 돌아와 꺽꺽거리며 가픈 숨을 토했다. 누리는 그의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주고는 대충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래서? 심판은? 계속할까?]


쿠구구구구!!!!

그의 의지에 맞물려 거대한 손가락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일본 열도와 접촉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건물이 흔들리는 수준의 격렬한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대로 조금 더 힘을 주고 밀어내면 그대로 일본은 짓눌린 벌레처럼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게 된다. 땅은 좀 남겠지만 인간과 그들이 살았던 흔적은 전부 쓸려나가게 될 것이다.

[에이, 그러면 못써. 어차피 이 행성의 국가는 못해도 수십개인데. 예외를 뺀다 하더라도 하루에 열개씩 봐도 며칠은 걸릴껄? 기왕 모인김에 단합회나 하면서 천천히 하면 안돼?]

[갑자기 무슨 단합회예요?]

[솔직히 우리들이 이렇게 다 모여서 오래 모여 있는 경우는 드물잖아. 그리고 상대도 하루만에 처리하는 것보다 시간을 들여서 봐주는게 더 무서울거고. 자고로 공포에는 신선도가 있다고 했어]

[흐음, 과연. 인간을 괴롭히는 방향성으로는 동감이네요. 하루만에 싹 무너트리는 것보단 시간을 들여서 공포를 새겨주는 편이  낫겠죠]

[이럴 때만 공감하니까 니 새끼가 욕을 처먹는거야]

[그래서 어쩌라고요?]

[넌 동의하냐, 최악?]

[글쎄다. 솔직히 오래 걸릴것 같은데 숨 돌리면서 하는 것도 나쁘진 않고. 어차피 누리도 왔는데 네명이서 심판 못하면 한명 빼야 하는거고. 시엔느를 기다리는게 낫지 않겠냐? 어차피 니들도 죄다 멸망하는 것보다 다섯이서 판결하는 편이 낫잖아]

[전 아닌데요]

[아오,  인성파탄자 새끼]

[살인귀가 뭐래요?]


대마왕은 다섯. 홀수로 맞추면 1명, 3명, 5명으로 판결을 해야한다.

심판하는 존재가 한명인 것보다 다섯인 것이 훨씬 이득이다. 한명의 한표보다 다섯의 한표가 멸망할 확률이 더 낮으니까.

그들은 마구잡이로 문명을 멸망시키는게 아니다. 인류가 좀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불안한 요소를 제거하는, 사랑의 매를 드는 역할이다.

유토피아만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다. 어지간한 우주보다 긴 시간을 살아오고 차원을 떠돌아다니는 차원종이 고작 인간 하나의 문명을 보려고 일부러 오는건 애정이 없어서야 불가능하다.

비록 그 애정이 비틀린 감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인류가 멸망하는건 바라지 않는다. 한 문명을 몰살하는 일은 상당히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좋아, 우리들은 잠시 물러나겠다. 일본의 처우는 잠시 두도록 하지]

[하지만 보류일 뿐. 아직 처분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라. 약간의 시간을 둔 뒤에 다시 심판을 시작할테니까]

[차라리 일찍 멸망하고 끝내는데 속이 편할텐데 말이죠]

[유토피아 오빠는 성격이 나빠서 탈이야. 아무튼 시엔느 올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결론이 나고 팬텀의 후지산을 뭉게버린 손가락은 다시금 대기권을 빠져나가 우주로 넘어갔다.

활화산 하나가 뭉게졌지만 마그마는 분출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자연재해로 대마왕의 심판을 피하면 면목이 서지 않으니까. 팬텀의 의지가 일본을 멸망시킬 천재지변도 막을 수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들은 언제나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팬텀의 경고에 전 인류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들은 진정 초월자를 목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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