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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2화 〉[대마왕 강림] (259/507)



〈 262화 〉[대마왕 강림]

천검 이경진은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다.

아무리 마스터 유저라고 치켜세워준다고 한들, 결국엔 의미가 없다.  거대한 존재들 앞에서는 마스터 유저라고 한들 결국 한낱 개미에 불과하니까.

뭘 어떻게 대적할 생각 따위는  멀리 날아갔다.

심지어 소년처럼 보이는 유토피아마저도 이길 수 있을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옅게 웃고 있지만 그의 눈에서는 세월을 짐작할 수 조차 없는 공허함과 무거움이 느껴진다. 마치 우주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청문회장의 국회의원들은 전부 덜덜 떨면서 책상 아래로 도피했다.  방공호에 들어가 있어도 의미가 없는데 고작 책상 아래로 숨은걸 본다면 그만큼 그들은 도망칠 겨를도 없었다는 소리가 된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용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이경진이 정신을 차렸다.

"설마.......이런걸 예상하셨습니까?!"

"정확히는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이럴거라고 생각은 했으니까. 하지만  정도였을 줄이야......."

용하연은 초월자지만 그들 앞에 선다면 수준을 비교하기도 힘든 차이가 있었다.

최강, 최악, 최흉. 세명의 대마왕은 대마왕 중에서도 톱 클래스. 더군다나 심연의 거인으로 보이는 팬텀은 최강이라 불리는  차원 최강의 존재였다.

"지금은 지켜보는 수 밖에 없겠군"

"어떻게......방법이 없겠습니까?"

"뭘? 저런 자들을 상대로? 어차피 한국은 심판이란걸 벗어났다. 두고 보기만 해야할 뿐"

"그런........"

"뭔가를 해보고 싶다면"

용하연은 슬쩍 청문회장 한구석을 가리켰다.

이미 최악이 박살내서 천장이 날아간 상태지만 무너진 와중에도 정신을 잃은 백리가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보통은 야매라고 해도 백리정도 되는 초월자가 쉽게 정신을 잃지는 않지만 최악은 일부러 방해될것 같아서 후려칠 때 영혼과 육체의 연결을 흔들어 기절시켰다. 평범한 방법이 아닌만큼 초월자에게도 효과적이다.

"저 아이를 깨우는게 좋을거다"

"..........!!"

용하연의 충고에 이경진을 마음을 굳게 먹었다.

고작해야 20대 초반의 청년에게 이런 무거운 일을 맡기는게 어른으로서 실격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이였다.

그는 굳은 얼굴로 백리를 향해 달려갔다.

 * *   *

심판은 끝나지 않는다. 통합 정부가 아닌 문명은 한번이 아닌 국가 단위로 심판을 하기 때문에 오래 걸리는게 당연하다.

적어도 그들은 대충 판단하진 않는다. 자신의 가치관을 확고히 하고 거기에 개인적인 사심을 끼워넣지 않아야만 대마왕으로서 인정받을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으로 넘어가볼까]

[야, 중국은 건너 뛰어]

[왜요? 이번 환생은 중국인.......아니, 한국부터 시작했으니 한국인이잖아요? 무슨  있어요?]

[내가 한바탕 지랄 해서 지금 막 분열 중이야. 홍콩이나 티벳도 독립하고 있는 와중에 심판하면 오래걸리고 귀찮아]

[신생 국가는 심판하기 애매하니까요. 게다가 최악씨가 먼저 손 썼다면 미리 심판 받은거랑 다름없으니까.......]

[그렇다면 중국은 보류해두도록 하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류다. 심판을 건너 뛴게 아니니까 주의해라]


심판은 한국에서 시작했다. 심판을 할 때는 사심을 넣지 않으나 소집을 부른건 개인 감정 문제가 있기 때문에 페널티로 최악의 현 출신 국가인 한국부터 시작했다.

한국에서 북한, 그리고 중국을 넘어갔다면........그 다음으로 가까운 국가는?

당연하게도 바로 옆의 일본이였다.


[다음은 일본이다]

 의지에 일본의 국민들은 기절할 듯이 덜덜 떨었다.

현재 청문회를 보고 있던 상당수의 사람들은 몇몇 영상이 끊기긴 했어도 계속해서 방송되고 있는 현장의 카메라 덕분에 최악을 비롯한 다른 두명의 대마왕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볍게 나라를 심판하는 모습은 스케일이 너무 거대하여 와닿지가 않지만, 보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버릴 거대한 심연의 거인이 똑바로 노려보고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일본을 직시하는 붉은 안광의 기색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깨닫게 되었다.

[근데  사람 다 한국인이였다고 몰매 때리려는건 아니죠?]

[누가  같은줄 아냐? 적어도 판결에는 감정 넣고 안해]

[애초에 감정 없는 사이코패스 놈이 뭘 알겠냐.  뭐냐, 왕은 사람의 마음을 모른다 그거]

[왕은 왕인데 대마왕이네]

[최저 최악의 대마왕이고]

[두 사람 성격 비슷해서 호흡이 딱딱 맞는거 좀 짜증나는데요]

[근데 일본은 헤이세이 끝났냐?]

[지금은 레이와여]

[잡담은 나중에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죠?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것 같은데]

아무도 기다린 사람 없다. 오히려 미룰 수 있다면 평생 미루고 싶은게 지금 상황이였다.

하지만 그들의 내심이 무색하게도 심판은 계속된다. 유토피아는 싱긋 웃으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그게 바로 유토피아가 '최악의 대마왕'으로 불리는 이유다.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는 볼 수 없기에. 기차괸과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어긋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대마왕의 직위에 올라와 있는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력으로 따진다면 팬텀이 최강이며, 단순히 죽이는 것으로 따진다면 최악이 위지만 기술, 즉 테크놀러지 분야로는 유토피아가 두사람을 뛰어넘는다.

[과거에 무엇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를 반성하는 것이다. 정말로 부끄러운 것은 실수를 저지른 것 자체가 아니라 실수를 하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그런데도 너희들은 전범국 주제에 반성하는 기미가 없구나]


일본은 과거 독일과 같은 전범국으로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온갖 만행을 거듭했다.

학살은 물론이고 폭력, 강간, 그 외에도 추악한 범죄까지. 물론 그때 이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그들에게 반성의 기미 따위는 없었다.

현 사회에서도 종종 픽션 같은 곳에서 악의 축으로 나오는 독일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자신들의 잘못 정도는 반성하고 있다. 대로 한복판에서 나치식 경례를 했다간 경찰이 와서 잡아갈 정도로 말이다.

비록 배상금 문제가 남아 있다고 하지만 그건 시간을 들여서 해결해줄 문제이지 반성 쪽으로는 독일과 일본은 큰 차이가 있었다.


[잘못을 한 주제에 부끄러움이 없고. 오히려 잘한것도 없으면서 태도는 당당하구나. 판결한다. 나는 유죄를 선고한다]


쿠우우우!

옅은 분노가 일본을 덮친다. 그것만으로도 가볍게 일본 열도가 진동하면서 작은 지진이 일어난다.

아직 심판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멸망시킬 수는 없지만 결국 그것도 시간 문제다.


[일본은.......어? 기술 수준은 한국이랑 비슷하게 고만고만한데 여기는  개판이 됐어요?]

[아, 그거 최근에 지진 때문에 한번 터진게  터졌어. 후쿠시마만 망했지]

[도시 단위 레벨이 아닌데요? 아주 그냥 나라가 통째로 방사능 범벅이 되어버려서 몇년만 지나도 사람이 살지 못하게 될텐데요? 솔직히 살 수는 있겠지만 기대수명이 30세로 줄어드는 땅에서 누가 살아요?]

[냅둬도 망하겠네]

[할일은 해야지. 유토피아, 계속해]

[아무튼 정작 조심해야할 것을 대비하지도 않고 주의를 하지도 않은데다가 정작 사건이 터졌는데도 그걸 외면하고 대처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죠. 사고에 절대란 것은 없을테니까 사고가 터진거에 감점은 많진 않지만 그 이후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요]


그들의 이야기에 당사자인 일본인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꼈다.

후쿠시마 발전소가 폭발했던 사건 자체는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두번이나 터졌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였다.

[게다가 뭐야, 방사능 때문에 나라가 개판 나기 오분전인데도 정작 정치인들은 해외로 도피하고 있었네요? 이야, 이건 일본 멸망시킨 후에 따로 처리해야 할것 같은데요?]

[어쩌려고?]

[괘씸하니까 개인적으로 손 봐줄께요. 눈 앞에서 가족을 사지절단하고 뭉게버린 다음에 아무것도 없는 오지에 던져버릴까요?]

[판결만 하고 나중에 해라]

[어차피 이 행성의 국가는 한두개가 아닌데 이것만 처리하고 좀 쉬죠? 어차피 시엔느랑 누리도 올테니까 기다리는 김에]

[난 찬성]

[나도 찬성]

[그러면 어디까지 했더라.......아! 아무튼 위험한 기술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에요. 하다못해 대처라도 잘 했으면 봐줄 여지가 있었는데 그것도 못하다니. 기회가 날아갔네요. 저는 유죄를 줄께요]

두번째 유죄.

대마왕의 판결은 다수결. 3명 중에서 2명의 표가 유죄라면 두고볼 것도 없이 결과가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심판을 내리진 않는다. 최후의 최후까지, 모든 대마왕들의 판결이 정해진 후에야 처우를 결정하게 된다.

마지막은 최악의 차례였다.

[팬텀이랑 같은 소리 하는것 같지만,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는건 욕 처먹어도 당연한 짓이지. 그걸 감수할 생각이 있으면 또 몰라도 말이야]


최악도 살인을 저질렀다. 그러고도 반성을 하지 않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가 나쁜 놈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건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최악보다도 더 질이 나쁘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자기 지지율로 삼는 정치가들이 통치하는 사회는 썩은거나 다름없다. 전범의 위패를 올린 신사에 참배를 하고, 혐한 발언을 하는걸로 주의를 돌리며 자기 마음대로 법안을 바꾸는 놈들이 있다면 재고할 필요도 없으니 간결하게 판결한다]

혹자는 말한다. 일본에 한국을 혐오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일부 뿐이라고.

하지만 혐한 발언을 통해 지지율이 올라가는 일본 정치인들을 보면 그게 과연 일부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지율은 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유없는 혐오는 이용당하고 불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렇기에 최악은 현 일본의 실태를 결코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그저 속으로 쓰게 생각하고 넘기겠지만, 지금은 대마왕으로서 판결을 하고 있는 상태다.

[나는 유죄를 선고한다]

[이걸로 3명  유죄네요. 또 만장일치네]

[3명 중에 3명의 유죄 판결로 일본은 심판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심판자는........간만에 내가 해보겠군]

[너무 오버 스펙 아니야?]

[방사능 처리까지 겸할거니까 태클걸지 마. 심연에 처박는 것도 아니고 영토만 남기고 부숴버릴거니까]


쿠구구구구구구구구!!!!!!

지구가 진동한다. 거대한 심연의 거인의 움직임에 호응하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흉악하고도 거대한 손이 펼쳐진다. 비율만 따지면 인간에 비해 손의 크기가 두배쯤 커다란 손이였다. 하지만 애초에 인간이 아닌 모습이니 그런건 상관없었다.

이윽고 거대한 손은 주먹을 쥐고 검지 손가락 한개만 들어올렸다.

검지 손가락이라고 작게 볼 수는 없었다. 그 손가락만 하더라도 일본 열도를 전부 합친것 보다 훨씬 거대했으니까.

콰가가가가가!!!!

우주 바깥에서 거대한 손가락이 내려 찍어진다. 끝 부분이 동물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손가락 끝이 일본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거대한 크기에 비한다면 찍어내리는 속도는 느려 보이지만 실제로  속도는 음속의 수십배였다. 대기권을 뚫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어마어마한 마찰열이 발생했지만 팬텀에게는 조금의 영향도 주지 못했다.

"으아, 으아아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어어어!!!!!"

"흐흐흑,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일본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종말을 보고 광란이 벌어졌다.

대다수의 인간의 정신은 그리 강하지 못하다.  앞까지 다가온 종말 앞에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누군가를 향해 빌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미쳐서 정신이 나가는 것 정도 밖에 못한다.

눈 앞에 있는 종말은 막을  없는 그런 종말이였다. 지구에 떨어진  어떤 운석보다도 거대한 손가락이 일본을 짓누르려고 온다. 마치 여드름을 짜내는 간단한 동작이였지만 그 손가락질 한번에 국가 하나가 날아간다는 스케일이 다르다.

쿠우우우웅!!!!

이윽고 완전히 대기권을 돌파한 팬텀의 손가락이 일본 열도의 바로 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접촉한다.

사람으로 치면 고작해야 손가락. 아니, 손가락도 아닌 손톱을 뾰족하게 갈아서 그 끝 부분의 첨단부 부분이 일본 대륙에 꽂혔다.

위치는 일본 야마나시 현의 후지산. 일본의 상징이라고 할  있는 그곳의 정상에 팬텀의 손가락 끝이 찍어져 내렸다.

산이 무너지고 터진다. 후지산은 활화산이기 때문에 그런 자극은 분화로 이어질 수 있지만 후지산이 설령 일본을 멸망시킬 수준으로 분화한다 한들 팬텀의 손가락이  수백배의 힘을 담

 있었다.

꿀렁이면서 올라오려는 마그마는 그의 힘에 의해 정상적인 자연 법칙을 거스르고 안으로 사그라들었다.

대마왕의 심판은 오로지 대마왕 스스로가 해야하는 법. 자연 현상 따위에 영향을 받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해발 4000미터에 가까운 일본의 상징이 그대로 박살났다. 거대한 산의 흙이 터져나가고 사방으로 번지면서 지옥이 펼쳐진다.

인근의 주민들은 산사태, 아니 산이 무너졌으니 그저 토사에 휩쓸려 산채로 매장된다. 사람 뿐만이 아니라 마을과 도시가 통째로 파묻힌다. 살아남는 사람은 누구 하나 없이 수천톤이 넘는 흙에 짓눌려 죽고 무너질 뿐이다.

팬텀의 손가락은 겨우 손톱  부분의 일부 정도만 들어간 격이다. 조금만 더 깊숙하게 지긋이 벌레 눌러 죽이듯 짓누르기 시작하면 후지산 따위가 아니라 지역 단위로 쓸려나간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괴성이 들린다. 그것은 일본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공포와 고통에 찬 것이 아닌 무언가를 앞두고 맹진하는 자의 기합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백리가 최악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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