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중국 최후의 날]
한순간 청문회장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자리에 위치한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물론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도, 그리고 한국어를 못해서 통역사를 고용한 외국의 대사도 무슨소리냐고 되묻고 있을 뿐이였다.
환생자.
그 단어가 나타나는 여파는 간단하지 않았다.
자고로 종교란 사후의 미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 어떤 종교도 사후의 일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 종교는 없다.
천국에 간다거나, 극락에 간다거나, 다시 윤회에 든다거나......수많은 사후가 존재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진짜라고 확신하지 않는다.
돌로 도구를 만들던 시절에 천둥을 무서워 하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현 시대에 천둥을 무서워 하는 사람은 나쁜 기억이 있거나 하지 않는 이상 오히려 드물다. 그저 자연 현상인걸 알기 때문이다.
사후를 알게된 인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평생을 착하게 살아도 천국에 가지 않고, 평생을 나쁘게 살아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살아갈 가치는 어디에 있겠는가?
환생자라는 뜻은 인간의 현 종교관과 사상을 거스르는 반증이였다.
"환생자라니,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십시오, 피고인"
"말 그대로지 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났다는 소리니까. 그걸 수십, 수백번을 반복했으니까 오히려 약한게 이상한거 아닐까? 그 정도 시간동안 단련하면 굼벵이도 격투기 선수 때려눕히겠다"
결국에는 경험이 중요하다. 인간의 일생으로 쌓을 수 있는 경험은 한계가 있지만 최악은 그걸 누적시켜서 오랫동안 반복했다. 현재의 강함은 그 결정체나 다름없다.
환생자라는 사실에 소란이 거세진다. 사후세계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환생이라고 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말하는겁니까? 그렇다면 이 세상의 기본적인 법칙은 불교를 따르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방금 환생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환생자라고 하긴 했는데 이 세계는 잘 모르지. 같은 정부 산하의 부서라도 같은 서류를 처리하는 방식이 똑같지는 않을거 아니야? 크게는 같아도 세밀한 부분에서 차이가 날텐데, 그게 바로 종교로 나뉘는 법이야. 이 지구의 사후에는 천국이 있을지 극락이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
"흠......."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환생자라는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중요한 사실을 말한 덕분에 사람들의 의문이 커져서 그에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악은 그들의 물음에도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내가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20년이 넘었어. 그런데도 불구하고 근 1년 사이를 빼면 큰일 하나 없이 조용히 살아왔다고 방금 전에도 말했지. 만약 내가 평범한 20대 청년이였다면 이 힘을 가지고도 그렇게 살았겠어?"
"그건......"
"당장에 마스터 유저로서 활동만 하더라도 군대는 면제가 되고 돈이다 뭐다 해서 부와 명예가 들어올텐데, 진짜 20대 청년의 생각으로 그걸 무시하고 평범하게 살려고 했을까?"
힘을 가지고 있다면 휘둘러 보고 싶은게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주라는 말이 있다. 초월적인 무력은 곧 권력이 되는 법이고 정말로 20대 청년에게 그런 힘이 주어졌다면 최악의 이름은 이미 전 세계에 알려지고도 남았다.
"근데 난 돈이랑 명예 같은건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런거 있어봤자 죽으면 결국 빈손으로 가는 법이니까. 떵떵거리면서 사는건 생각외로 심심할 뿐이다? 평판 신경쓰고 징징거리는 사람들 의견 들어줘야 하고 그러면 아주 그냥 한도끝도 없어. 그런 인간 군상들 접하면서 살아가느니 차라리 마누라랑 자연인처럼 산에 틀어박혀서 알콩달콩 사는 편이 훨씬 편하겠다"
"흐음........"
그의 말을 듣는 입장에서 권태로움이 느껴진다. 이미 볼장 다본 사람의 태도라서 오히려 그게 연기라면 연기의 달인이라고 생각될법한 모습이였다.
그 어떤 위업을 쌓고 이름을 날리고 돈을 번다 하더라도 죽어서 없어진다면 별 의미는 없는 법이다. 오히려 그동안 한 노력만 아깝고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즉, 물질적인 가치에 얽매이는 욕망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후에는 천국도 극락도 없는겁니까?"
"그건 나도 죽어봐야 안다니까. 그래도 영혼이 윤회하면서 환생하는 구조는 같아. 천국이 있어도 평생 거기에서 살지는 않을껄. 영혼이란게 얼마나 귀중한 자원인데"
"자원이라......."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건 신의 존재에 대한 반증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신 같은거 나한테 물어보지마. 나는 신이랑 영 관련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최악은 신을 싫어한다. 개인적인 안면을 터서 신과 그 추종자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과 개인간의 친구 사이로 지내는건 납득하지만 신을 숭배하는 행위 자체를 혐오한다.
그가 아는 신은 기도를 해도 들어주지 않는 무능한 존재다. 그나마 판타지 세계에서 나오는 신성력 같은걸로 축복을 내려주는 신은 낫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존재만 하는 신은 혐오 대상이다.
불교나 기독교 등의 종교도 마찬가지. 하지만 신앙하는게 아니라 학문의 일종으로 본다면 관심은 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라던가 번뇌를 털어버리고 해탈하자는 것 등등이 말이다.
"니들이 신 타령해봤자 그치들이 눈 하나 깜빡이기라도 할것 같냐? 있다는 둥, 없다는 둥 존재를 부정하진 않겠지만 있어도 도와주지 않는건 걔네들이 엉덩이 무거워서야. 그러니까 알아서 잘 처신해야 하지"
".........피고인이 환생자라면서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신앙하지 않는겁니까?"
"세상 창조한 사람도 아닌데 왜? 신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전능하지 않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했는데 그런거 믿으면 좀 덜떨어지는거 아니냐"
"신이 존재한다면 진화론보다 창조론이 더 신빙성이 있는것 아닙니까?"
"신이 세상을 만든거 아니라니까. 절대자들이 만든건데 당사자 앞에서 그 소리 하면 기분 나빠할껄?"
"절대자?"
"아, 여기 이야기까지 하면 본론에서 너무 간거니까 다시금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너무 갔잖아"
"흠, 흠......."
최악은 머리는 특출나게 좋은건 아니지만 환생자로서의 지식량은 상당하다. 그걸 접하는 차원 교류도 못하는 수준의 문명인으로서는 지식의 보고나 다름없는 느낌이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질문의 방향성이 청문회에서 벗어났다.
마치 뭐 위키를 뒤적거리면서 링크 타고 가다가 처음 검색했던 것에 한참 떨어져 있는 뭔가를 검색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그래서 나는 환생자로서 이런 무력을 갖추게 되었다. 고작해야 20년 정도 이능력을 익힌 수준으로는 수천년을 단련한 내 수준에 이르기에는 몇세기도 부족하지"
"알겠습니다. 피고인의 능력은 그런 것에서 비롯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능력만 가지고 있다면 그런 능력으로 여태까지 조용했던게 이상하고 이능력이 모습을 드러낸 고작 20년 수준으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납득이 된다.
서로 의논하는 청문회장에 소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논제가 논제였던 만큼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소란이 가라앉는데는 열마디 말보다 잠깐의 시간이 필요할거란걸 파악한 이남석 대통령은 휴식을 선언했다.
"잠시 휴식 후에 다시금 청문회를 개정하겠습니다"
약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 * * *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 후에 어느 정도 소란이 사그라 들었다.
생방송으로 청문회를 보고 있던 국민을 비롯한 전세계 사람들 중 상당수는 환호성을 질렀다. 환생자와 신의 존재를 증명했으니 사후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신의 권위를 떨어트린 최악의 발언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이미 선서까지 하고 한 말인데 거짓말이라고 이유없는 비난을 퍼붓거나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사회의 혼란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다시금 청문회는 이어졌다.
"예, 그러면 다시 청문회를 개정하겠습니다"
이남석 대통령은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를 정리하면서 최악에게 심문할 질문을 더듬었다.
환생자라는 사실과 신의 증명, 두가지 때문에 그도 현실을 깨닫는게 조금 걸렸다. 만일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사람들은 보다 충실하게 현실을 살아갈 목적이 생기는 것이니 말이다.
"이번에 저희가 할 질문은 피고인이 아니라 피고인의 처에 대한 것입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최악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한명의 마스터 유저와 두명의 그랜드 마스터가 언제든지 나설 수 있도록 대비했다.
상대가 자기 아내를 건드렸다고 나라 하나를 사실상 멸망시켜버린 사람이다. 본인 면전에서 모욕이라도 했다간 당장 날뛴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는 조용히 이남석 대통령을 노려보았다. 살기는 내뿜지 않았지만 최악이 저지른 일은 전부 이남석 대통령의 심적인 부담감이 된다.
종잇장 같은 구속구를 차고 있는 맹수를 앞에 둔 사람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순간 잡아먹힐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냥감이 만만하지 않다는걸 안 맹수는 방향을 달리하기로 했다. 상대가 무례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니 양보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
"........피고인의 처, 시온씨는 현재 호라이즌이라 불리는 우주선과 함께 지구의 문명 수준으로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계신걸로 압니다만. 맞습니까?"
"뭐, 반중력 기술이나 블랙홀 축퇴로 같은거 쓰긴 하는데 맞긴 맞지. 근데 기술 쪽 자문을 구하는거면 내가 아니라 마누라한테 물어보는게 좋을텐데"
"오.......!!"
누군가 탄성을 지른다.
반중력 기술이나 블랙홀 축퇴로 같은 기술은 현 지구에 있어서 머나먼 미래의 기술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기술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까 꿈을 꾸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다못해 조금 떨어지는 기술을 한두개쯤 받는다면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하다. 애초에 상대는 우주 진출도 자유롭게 가능한 우주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수정 좀. 호라이즌은 우주선이 아니라 차원항행함이야. 물론 우주여행을 못하는건 아니지만 보통은 차원의 틈새를 돌아다니기 위한 배지"
"흠, 그렇군요"
차원이란 개념은 적성종 때문에 지구도 이미 알고 있었다. 적성종이 들이닥치기 전에 갈라지는 현상을 차원진이라 불리는 시점부터 다른 차원의 개념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다만 그걸 심도있게 분석하지는 못했다. 차원진을 통해 갈라진 차원의 틈새에서 파편 한조각 하나 붙잡지 못한 이상 연구의 진행은 불가능하다. 그것도 충분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고.
"시온씨는 인간입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구인이 맞습니까?"
"우리 마누라 외모를 봐봐. 자연적인 지구인에게서 나올법한 그런 외모는 아니지?"
".........."
팔불출의 마누라 자랑 같지만 사실이였다. 이 자리에 시온의 외모를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적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성장폼과 디폴트 폼을 오가며 찍혔던 사진 때문에 어느쪽의 수요도 만족하는 경국지색을 넘은 경성지색의 미모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조형적인 미를 띄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을 정도다. 사진으로만 본 사람들은 실존하는 인물인지 의심하다가 영상으로 보고 나서야 인지하기도 했다.
"울 마누라는 외계인이야. 그 모습은 어디까지나 의태 비슷한거고"
"으음......."
최악이 환생자라는 사실보다는 덜 충격적이지만 놀라운 사실이였다. 원래부터 외계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그 의문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외계인이 아니라면 저런 지구의 문명을 한참 초월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게 당연하다. 저런 거대한 우주선, 아니 차원항행함을 지구에서 건조하는데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었을리 없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소재가 나왔다.
최악의 힘도 충분히 탐이 나지만 제어가 불가능한 힘이다. 나라 하나를 뭉게버린 힘이 자신을 향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시온의 가진 외계 기술력은 반중력 기술이나 제염 기술, 에너지 관련 기술만 하더라도 인류 문명을 수백년은 앞서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얻기만 한다면 어떻게 다루던 자유자재로 가능하다. 심지어 제염 기술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그걸로 핵발전만 마구 돌려도 에너지 걱정은 없는거나 다름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변한다. 시온에게로 논제가 넘어갔으니까 지금 자리를 빌어서 그에게서 뭔가를 얻어내려는 자들이 호시탐탐 노려보고 있었다.
"흠, 흠, 의장님. 발언을 해도 되겠습니까?"
"아, 김용진 의원.......예, 발언을 허락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악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여당의 실세인 김용진 의원은 예전에 최악과 만난적이 있었다.
예전에 대성 그룹 회장 생일 파티 때 만났는데, 겉으로는 안면만 익힌 사이라고 하지만 내면으로 들어가면 최악에게 있어서 그는 절대로 호감있는 사람은 아니였다.
당시에는 성장폼의 시온도 동반하고 있어서 만약 시온이 돈과 힘이 없었다면 꽤나 추잡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럴 경우에는 최악이 자기 이름대로의 결과를 만들어줬겠지만.
"우선 피고인이 저지른 일은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되돌릴 수 없는 과거보다는 바꿀 수 있는 미래를 생각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지 않습니까, 피고인?"
여기서 동조를 이끌어낸다. 그걸로 발판이 만들어진다.
피해를 입은 국가는 중국이지만 이제 중국은 강대국에서 한참 떨어졌다. 수도는 반파되고 정부는 붕괴되었으며 나라는 갈라졌다. 더 이상 예전 영광을 되찾을 기미는 없다.
결국 국제 정세라는 것은 힘으로 움직이는 법. 강대국의 위치에서 내려온 중국을 편들어줄 국가는 없다. 애초에 최근의 외교도 강압적으로 대해서 평판이 떨어져 있는 판에 제대로 얻어 맞은거다.
최악만 동조한다면 여기서 최악의 죄를 무마해주고 시온의 기술을 얻을 수 있다. 서로가 좋은 상부상조의 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최악은.
"아저씨 어디서 돈 받아처먹었지?"
내막도 모르지만 찍어서 팩트를 꽂아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