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8화 〉[중국 최후의 날]
유례없을 정도로 넓게 마련된 청문회장은 한국의 국회의원 뿐만이 아니라 외국의 대사또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어렵게 초청한 사람도 앉아 있었다. 청문회장 한구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미녀. 권룡여제.......아니 지금은 마룡후인 용하연이였다.
"아직 멀었나? 시간은 됐을텐데?"
"아, 예! 준비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조금 오차가 있는 모양입니다"
"피고인이 문제는 아닐테고 또 정치인 놈들의 잘못이겠지. 알만하다"
".........."
중국의 마스터 유저, 아니 이제는 그랜드 마스터지만 정작 당국인 중국에서는 최악이 백리에 의해서 중국 파괴를 멈추었을 때 행방을 감추었던 그녀가 지금은 한국에 와 있었다.
그녀는 이제 중국 소속이 아니다. 무림인이였던 시절의 기억이 더 강한만큼 정부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자유롭게 행동하는걸 더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자국의 그랜드 마스터를 잃은거나 다름없지만 그걸 따질 정부가 현 중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 자리에 있는건 본인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문회에 참석하고 싶다고 먼저 의사를 드러내서 한명이라도 더 경호 인력이 필요했던 한국 정부는 얼씨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어?! 스승님?! 여긴 어쩐일이세요?"
"너도 온거냐?"
"네, 저는 참고인 자격으로요"
"고생이 많겠군. 원래 위정자 놈들이랑은 얽혀서 좋은 일은 없는 법이다"
"그런데 때로는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해야 하고 싶은걸 할 수 있더라고요"
"좋은 깨달음이군"
자기 좋을대로 살아가는 자유로운 감성의 무림인이랑, 사람을 구하고 싶은 백리의 사상은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전부 털어버리는 것이지만 후자는 되도록 많은 것을 쥐어야 하는 법이다.
아직 대기 중인 상황에서 두사람은 청문회장을 둘러보았다. 이미 이 안에만 수백명의 사람들이 가득하다. 경호 인력, 기자, 정치인, 외국의 대사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단 한명 때문에 모인 것이다. 심지어 바깥을 보면 이미 수만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다.
용하연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던 끝은 좋지 않겠군"
"......알고 계셨어요?"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온거지. 그놈이 지구를 파괴하겠다고 날뛰면 최소한 뭐라도 해보기에는 이 자리가 제일 좋으니까"
그녀는 경험이 많은만큼 사회 돌아가는 모습도 대강 파악할 수 있다. 지금의 현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이미 깨달은지 오래다.
중국 정부의 말도 듣지 않는 그녀가 직접 요청까지 하면서 한국으로 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하려는 것도 대강 알것 같군. 적어도 분수에 맞는 일을 하거라"
".........."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고통과 인내를 감내하는 일은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걸 타인을 위해 행한다는건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지. 하지만 태풍에 맞서려고 했다가는 아름드
리 나무도 부러지는 법이다. 네가 할 수 없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하고 그걸 실천하는게 좋을거다"
"충고는 감사드려요"
웅성거리면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청문회장의 자리에 차기 시작했다. 한껏 거드름을 피운 몇몇 국회의원들이 마저 자리에 착석하자 본격적으로 청문회가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용하연과 백리, 두 사람도 각자의 자리를 찾아갔다. 용하연은 청문회장 한편에 경호 목적으로서 천검 이경진과 같이 서 있었고 백리는 참고인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제일 마지막으로 이남석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청문회장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서 마이크를 통해 청문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럼 지금부터 중국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한 최악씨의 조사청문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안이 큰 만큼 대통령의 주관 하에 청문회가 진행된다. 즉, 의장은 이남석 대통령이란 소리였다.
"증인.......아니, 피고인은 자리에 참석해주세요"
그의 말에 청문회장 한쪽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서 수명의 포스 유저들의 연행을 받아 이끌려오는 최악이 모습을 드러냈다.
청문회장이 한순간 소란스러워졌지만 이내 사그라 들었다. 최악은 청문회장 정중앙에 마련된 이남석 대통령 바로 앞 자리에 착석했다.
"본래 청문회에 참석하는 경우는 증인이라고 호칭하지만 최악씨의 경우는 사안이 다르기 때문에 피고인이라고 호칭하겠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별거 아닌데 넘어가지 뭐"
"크흠!"
누군가 불편한 헛기침을 한 소리가 났지만 정작 당사자나 이남석 대통령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이 자리는 재판장이 아니라 청문회장이였지만 최악의 여러가지로 예외의 상황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청문회의 절차도 조금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우선적으로 심문을 하기 전에는 선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먼저 선서가 있겠습니다. 피고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최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 외워야 할 선서문은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 놓여져 있기 때문에 딱히 외우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오른손을 들어올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저 선서 낭독으로만 선서했다.
"본인은 현 청문회에 관련하여 심문에 대한 질문에 성실하고 거짓없이 답변할 것이며 일부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음을 숙지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던 피고인이던 묵비권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최악이 이 나라의 국민이고 주민인 한 인권은 보장받을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묵비권은 필시 존재한다.
선서가 끝나자 다시금 청문회는 진행되었다. 먼저 확인해야 할 문제의 심문부터 시작한다.
"피고인은 세간에 라쿤맨이라고 알려져 있는 미등록 포스 유저로서 활동했던 적이 있습니까?"
"네"
"피고인은 중국에서 벌어진 대량 학살 및 파괴 행위 등에 대한 테러리스트적 활동에 주범이 맞습니까?"
"예"
"그로 인해서 현 중국의 분열을 조장한 사실이 맞습니까?"
"예"
확인 절차는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심문 시간이 되었다.
심문은 딱히 이남석 대통령만 하는게 아니였다. 청문회 시간을 몇시간으로 잡은만큼 여러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지게 될거다.
그게 바로 이 자리에 외국의 대사들이 참석한 이유다. 그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던 것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한국의 청문회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대사들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발생한 외교적인 이득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면 한국 정부로서는 솔직히 춤춰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애초에 중국의 붕괴로 흔들린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빠서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었다.
"확인이 끝났으니 다음으로는 세세한 것을 묻겠습니다. 중국에서 그런 사건을 일으킨 이유가 무엇입니까?"
"집사람이 중국의 고위 공산당원에게 납치 및 강간 미수, 억지로 마약 복용 등등의 일을 당해서 훼까닥 돌아서 저질렀습니다"
"흠......"
거기까지는 알려진 사실이였다. 덕분에 최악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없지않아 있었다.
어떤 남편이 자기 아내가 그런 짓을 당했는데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도 당장 열불을 내면서 경찰서로 달려가 고소장을 접수할 일이다.
그런데 상대가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면?
물론 사건은 알려지기도 전에 묻어질 것이다. 최악의 경우 죽어서 입막음을 당할 염려도 있었다. 흔히 말하는 '자살 당했다'같은 것으로.
하지만 자신이 강대국이랑 정면에서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일기당천의 실력자라면?
상대는 조용히 묻으려고 하지만 조용히 묻을 생각이 없는 이상 협상은 결렬, 결국 트러블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한 국회의원이 최악에게 물었다.
"당사자까리 합의를 할 여지는 없었습니까?"
"씨발, 말 곱게 쓰려고 했는데 어지간히도 개소리를 늘어놓네. 댁이 똑같은 짓 당해도 곱게 넘어갈 수 있는지 한번 볼까? 응? 응?"
"힉?!"
최악이 가볍게 살기를 뿜어내자 경호 하고 있던 포스 유저들은 물론, 이경진과 용하연, 백리까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여차하면 나설 생각이지만 유혈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국회의원은 황급하게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떴을 뿐. 아마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여분의 바지가 있지 않는 한.
"크흠, 질문을 다르게 하겠습니다. 당사자만 처벌한 후에 넘어갈 여지는 없었습니까?"
이남석 대통령이 다시 질문을 하자 그제서야 최악은 살기를 거두었다.
합의와 처벌은 다른 법이다. 작은 단어 선택 하나에도 사람을 화나게 만들 수도, 반대로 가라앉힐 수도 있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어디까지 처벌해야 할지 감이 안잡혔으니까. 주범인 고위 공산당원 하나만? 아니면 거기에 동조한 다른 공안들도 함께? 그것도 아니면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른척한 다른 공산당원들까지?
파고 들어가면 결국에는 그런 놈들을 내버려둔 국민인 그들의 책임이겠지. 하나하나 골라서 죽여버릴 수는 없으니까 다 죽였다"
".........그렇군요"
청문회장이 소란스러워졌다.
각자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견을 교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부는 최악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었다.
아무리 넓어도 최악이 그 목소리 하나 듣지 못할리는 없는데도 지껄이는걸 보면 생각이 없거나 무시하는 것 같다.
"그럼 다음 질문입니다. 저지른 일에 대한 반성의 의지는 있으십니까?"
"아뇨. 반성이란걸 결국 후회한다는 뜻이고 그러는건 저질러놓고 책임을 저버린다는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반성을 하지 않는 대신에 그에 따른 책임은 지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책임이라도 한다면?"
"제가 이 자리에 곱게 잡혀온것 부터 생각하시죠"
최악은 이경진과 약속한 것도 있지만 죄를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현실을 따진다면 최악은 절대로 지구 문명으로는 잡힐 수 없다. 설령 지구가 멸망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초월자인데 고작 핵무기나 써대는 문명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최악이 잡혀준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한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알고 현 지구 문명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했던 일은 그 존중 따위보다 시온이 더욱 위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고.
"조사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20년 넘게 대한민국에서 자랐습니다. 시설 출신으로 자라면서 군대도 다녀오고, 온갖 부조리한 일도 겪어봤지만 여태까지 조용했죠"
"예, 확인된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까지 조용하다가 터진거 보면 얼마나 빡돌았는지 이해 가십니까? 심지어 군대 다녀왔는데도 안터졌는데? 아니, 군대 안간 상당수의 국회의원님들은 모르려나?"
"크흠!!! 피고인은 언동에 주의해 주십시오!"
"사실을 말해도 까냐? 찔려서 그래? 댁은 병장 만기전역 했어?"
"그건 청문회 안건과 관련 없는 이야기입니다!"
"찔리니까 그러는거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가진 사람일수록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법이다.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애매하지만 최소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자리에 오른 자들이라면 그 책임은 확실히 해야한다.
하지만 정작 그 책임을 지기 싫어서 회피한 사람들도 많다. 당장이 이 자리에 모인 국회의원 중에서 병장 만기 전역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설령 당사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자식이나 친적 중에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나?
지금 당장 최악이 병장 전역 아닌 놈 아가리 닥치라고 하면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거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한가지 문제를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는 질문입니다"
잠시 공기를 바꾼 이남석 대통령은 다른 질문을 물었다.
"현재 가이아 포스가 생기고 포스 유저가 나타난지 올해로 20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에 비한다면 최악씨는 1998년생이지요"
".........."
최악은 그가 무엇을 물어볼지 짐작이 갔다.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대답해주지 않을 수준은 아니다.
참고인 석에서 앉아 있는 백리도 그걸 깨달았는지 안색이 조금 변했다.
"최악씨는 강대국을 상대로 싸워 이길 정도의 무력을 지닌 존재입니다. 본인 입으로 초월자라고 하셨는데. 이걸 생각하면 거의 한두살 갓난아기 시절부터 그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요?"
"방금 전의 이야기만 들어봐도 그렇죠. 20년 넘게 자랐다는 것은 그 세월을 자각하고 있다는 뜻이고, 시설에서의 기억도 남아 있다는건 어렸을 때부터 그런 시선과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
이남석 대통령은 괜히 대통령이 아닌지 나름의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에 최악도 조금은 놀란 눈으로 그를 다시보게 되었다.
"대통령 아저씨는 내가 뽑진 않았는데 꽤 능력있네요"
"피고인! 이런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는 하지 마십시오!!!"
누군가 최악을 향해 소리쳤다. 안봐도 뻔한 성급한 국회의원일게 당연했다.
하지만 애초에 최악은 그런 사람을 낚으려고 한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뭔놈의 정치적? 그 때에는 미성년자라서 투표권이 없어서 못뽑았다는 소리인데, 님 혹시 무슨 생각하셨음? 아까 대통령님이 나 98년생이라고 한거 못들었어요?"
"........크흠!!!!"
헛기침만 하다가 목이 닳아버리겠다.
아무튼 다시금 논제로 돌아왔다. 이남석 대통령은 다시 질문했다.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물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것입니까? 초월자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힘과 능력, 그리고 더불어서 아내분의 기술까지........겨우 20년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상세하게 밝혀주십시오"
사실 묵비권을 행사해도 된다. 그건은 기본적인 권리니까.
하지만 최악은 되도록이면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선서도 그렇게 했고 의문으로 남겨두면 앞으로의 대화가 힘들어질테니까.
그는 조용하게 대답했다.
"그야 그건 내가 환생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