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7화 〉[중국 최후의 날]
최악이 구치소에서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의사당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이 뉴스에 낱낱히 나오고 있었다.
다른 조사라면 몰라도 청문회는 알리기 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문회는 공개적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그건 최악이 받을 조사청문회도 다르지 않았다.
일단 명목상 중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청문회라고 하지만 그 목적은 다르다. 최악의 힘, 그리고 시온의 기술력. 어떻게 해서는 그 두가지를 얻어내기 위한 여러가지 정치적인 목적이 들어간 일이다.
사람을 죽였으니까 재판 후에 처벌에 따라 징역에 처한다. 대한민국은 사형이 폐지된지 오래니까 사형(할 수 있는건 둘째쳐도)이 내리진 않아도 무기징역에 처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최악도 쓸 수 없고 시온도 그저 묵시할 뿐 그녀에게 손을 내밀 수도 없다.
나라 하나를 파괴해 승리하는 힘과 외계의 기술력은 목구멍에서 손이 나올 정도로 간절한 것이다. 당장에 호라이즌이 서울 상공에 떠 있는 것만 보더라도 반중력 기술이 들어간게 분명한데 그거 하나만 있어도 인류는 비약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최악에게 징역이란 처벌은 내려지지 않는다. 설령 본인이 바란다고 하더라도 이득을 위해서 움직인 그들은 그런 처벌을 내릴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도 그의 편을 들어주고 처벌이란 명목 하에 사회봉사라는 이름으로 적성종 퇴치 등등을 시키고 시온에게서 기술을 받아 이용할 생각으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기식의 행사에 불과했다.
"나 괜찮아? 어디 옷 구겨진데 없지?"
"그래, 그래. 옷은 괜찮네"
"정말?"
"뒤질때 입을 옷 정도면 괜찮네"
"..............."
백리도 시간에 맞춰서 나갈 준비를 갖추었다.
천검 이경진 같이 그가 경호나 연행 명목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훨씬 전에 나갔어야 하지만 백리는 어디까지나 참고인 자격이다.
중국에서 최악을 막은 당사자로서 참석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복장이나 스타일을 중시해야 했다. 애초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별 의미 없지만 말이다.
"오빠 진짜 내가 경고하는데. 부모님이랑 나 냅두고 죽을 생각 아니면 함부로 깝치지 마. 분노조절장애 있는 것도 아니고 절대로 개기면 안돼"
".......알았어"
"그 침묵은 뭐야? 뒤질 생각이면.......에휴, 됐다. 오빠 천성이 그런걸 어떻게 해. 아빠한테 오빠 장례식 할 때 시체도 안남을거니까 그냥 관만 맞춰서 하자고 해야겠다"
"아니, 알았다고 했잖아?"
"오빤 의외로 머리보다 행동이 앞서. 그래서 정작 눈 앞에서 벌어지면 막으려고 달려들거야. 그런데 그거 알아? 그래봤자 의미없는거. 오빠가 하려는 일은 결국 태풍을 막으려고 드는 개미에 불과해"
"그 정도 차이는 아닐것 같은데......."
"그 정도 차이 맞아. 최악 아저씨가 대마왕 중에서 제일 약한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제일 강한건 아닌데, 한명도 못이기는 판에 다섯을 어떻게 이겨? 오빠보다 강한 사람도 이기기는 커녕 막는게 고작이야"
"흠......."
"대충 어떻게 흘러갈지 안봐도 뻔한 일이네. 그러면 나도 준비는 해야겠다"
"무슨 준비?"
"화성으로 이주할 준비. 때 되면 아빠랑 엄마 억지로 끌고 시온 언니 우주선으로 튈거니까 오빠도 집에 부모님 없으면 알아서 와"
백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할지 착잡함만 느껴진다.
사람은 당장 눈 앞에 닥치지 않으면 직시하지 않고 도피하는 일도 있다. 주로 10년 전쯤에 일어난 후쿠시마 발전소 사건의 일본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방사능 유출을 무시하고 그저 방관했다가 그 결과가 이 지경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한 사건을 나비의 날갯짓이라 비교할 수는 없을것 같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태풍보다 더욱 거대하다.
"지금이라도 일본에 연락해서 사과하고 끝낼 수는 없을까?"
백리의 말에 루리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핸드폰을 꺼내서 녹음된 통화 내용을 들려주었다.
[하루리씨 되십니까?]
[누구세요?]
[예, 일본 외무성의.......]
[아, 대충 무슨 소리할지 알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잡설 치우고 본론만 말해주세요]
[.......꽤 곤란하신 상황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 일본 정부는 언제든지 협상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무슨 협상이요?]
[슬슬 대입을 준비하시는 중이실텐데 사건이 이대로 지속되어 세간의 시선이 집중되면 지장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최악씨와의 협상을 주선해 주신다면 이번 사건도 원만하게 마무리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응, 느그 엄마 히로시마에서 핵맞고 뒤졌어~, 거기서 태어난 댁은 베이비 붐 세대가 아니라 뉴클리어 붐 세대네!!!]
[.......?!]
그리고 통화 내용이 끊겼다. 루리가 바로 전화를 끊은 것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대화였는지는 백리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상대는 애초에 잘못했다는 자각 자체가 없고 사건을 이용해먹을 생각만 한가득이다.
"왜는 간사하기 짝이 없어 신의를 지켰다는 말이 들은적 없다는데, 맞는 말이야. 여윽시 충무공"
"망했네. 네가 패드립 날릴 정도면 볼장 다본거잖아"
"참고로 이게 1번. 2번도 있는데 들려줄까?"
"됐어"
루리는 정신이 이상한거지 예의가 없는게 아니다. 지킬 것은 지키고 예를 표해야 할 곳에서는 충분히 품행단정하게 행동한다.
온갖 드립은 잘 날려도 패드립만큼은 자제하는 루리가 다짜고짜 패드립을 날렸다는 소리는 어지간히 빡쳤거나 상대가 되도않는 개소리를 지껄였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번에는 둘 다다.
"만약 상대가 아저씨만 아니였다면 나도 그 협상을 받아들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상대를 잘 봐야지, 이래서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지구가 무사할 가능성은?"
"지구는 무사해. 인류가 무사할지는 장담 못하지만"
"최악이네"
"아저씨 이름이 그래서 그런듯"
반쯤 자포자기한 루리는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현재 한국이나 일본을 넘어 인류 존속이 위험하다는걸 아는 사람은 잘 쳐줘야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사실을 알려서 막아보라고? 천동설을 정설로 믿던 시기의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생각해보자.
지식을 전파하려면 설득력과 영향력이 있어야 하는데 초월자란 개념도 생소한 지구에 대마왕이란 이야기를 꺼내면 그저 중2병이나 판타지 소설 작작보란 소리만 들을 뿐이였다.
"나도 보험이나 들어둬야겠다. 오빠가 어디 가서 객사하지 않으려면 인맥빨 최대한 써봐야 하니까"
"네가 인맥이 누가 있다고? 형수님?"
"아무리 마누라라도 자기 일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하는건 좀 아니지? 배갯머리 송사라는 말도 있지만 사람 목숨 달린 일에 섣부르게 판단하진 않는 법이야. 나도 나름 인맥은 있어"
"그거 혹시......."
백리도 최악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다만 확신이 들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루리는 희미하게 웃을 뿐이였다.
* * * *
최악의 조사청문회는 현 세간의 모든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다. 단순히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국가에서도 생방송을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의 방송사 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 온 방송사의 기자들이 빼곡하게 자리를 채워 카메라의 렌즈를 빛내고 있었다. 덕분에 항공사들은 수많은 기자들로 인해 때 아닌 성수기를 맞이했지만 그런 것보다 지금 벌어지는 사건이 더욱 중요했다.
"저기 온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리고 포스 유저 연행용 특수 차량이 접근 제한된 도로를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따로 경호 인원을 모아서 사람들을 막고 있지만 몰려드는 사람의 수가 장난 아니였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는 기자들만 모여든게 아니였다. 그냥 구경꾼, 최악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 경외하는 사람등등이 몰려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의 비명과 환호성, 그리고 각양각색의 목소리에 뒤섞여 뭐가 뭔지 모를 거대한 소리가 울려퍼진다. 어지간히 가까히서 말하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법한 큰 소란이였다.
이윽고 차량이 정차하고 안에서 먼저 천검 이경진을 비롯한 다른 포스 유저들이 내렸다.
천검 이경진은 완전무장을 한 상태였다. 허리춤에 찬 검을 제외하더라도 등에 따로 주문제작해 만든 검집에는 십수개의 검들이 꽂혀 있었다.
언제라도 그의 의지에 따라서 뽑혀 검무를 출 검들은 인간이 아니라 적성종에 대응하기 위한 수준의 만전의 상태였다.
그리고 이어서 이 행사와 사건의 주인공이 차에서 내렸다.
그냥 보면 경호 인력의 보호를 받는 귀한 손님 같지만 그 손님에게 수십의 구속구가 채워져 있다는게 다르다. 걷는 것만 가능하고 그 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거리지 못할 정도로 채워진 구속구는 최악의 위험성을 알려주지만 솔직히 그런걸로는 부족했다.
본인의 능력을 생각하면 손오공마냥 팔괘로에 처넣어도 모자랄판에 고작 그런 구속구로는 보여주기 식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보여주는게 중요하긴 했다. 그걸 보고 멋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서 소리치고 있었으니까.
"촤악씨! 지금 어떤 심정이십니까?"
"야 이 새끼야! 네가 사람 새끼냐!!! 야아아!!!!!"
"화성으로! 저를 화성으로 데려가 주세요!!! 우아아아아아!!!!"
"여기좀요! 한마디만 해주십쇼! 제발요! 으악, 밀지마! 밀지 말라고!!!!"
최악은 그들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무시하고 따로 마련된 공간을 통해서 청문회장을 향해 연행되었을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해 소리친다. 개중에는 도를 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퍼억!!!!
"엇?!!"
".........!!!!"
"누, 누구야?! 누가 던졌어?!"
누군가가 최악의 머리에 계란을 던져 정확히 맞췄다.
그 모습에 쏟아지던 플래시 세례도 한순간 끊기고 싸늘한 기운만이 감돈다. 중국의 수천만 인명을 빼앗은 괴물의 심기를 건드는 일이였기 때문에 무슨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
최악을 연행하던 포스 유저들은 목적이 경호가 아니라 연행이였기 때문에 주변이 아니라 최악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이경진도 있었지만 애초에 그는 막지 않았다. 이미 본인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까.
"........."
최악은 그저 조용히 계란 껍데기와 그 내용물들을 손으로 쓸어서 털어냈다. 분명히 계란에 맞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이다. 심지어 머리카락에 물기하나 묻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다시금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방금 전의 행동으로 비난하던 자들의 소란은 줄어들었지만 기자들의 질문공세는 더욱 짙어졌다.
"최악씨! 중국에서 항공모함을 천안문 광장에 내던졌다고 했는데 중국의 분열을 부추기신겁니까? 아니면 각 지역의 독립을 위해서 하신 행동입니까?"
"미국에서는 알리언 박사의 행방불명에 대해서 한말씀만 해주십시오!!!!"
"하백리씨의 여동생 하루리씨의 일본 외교관 폭행 사건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기요!!!! 저요!!! 저 기억나세요?"
기자들의 목소리에서 누군가가 최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 한구석에 있던 목소리라서 최악도 고개를 들어 보았다.
예전에도 인연이 있고 중국에서도 그가 가면을 벗게 만든 진서희 기자였다.
서로 안면이 있고 또한 모르는 사이는 아닌만큼 이런 자리에도 오는데 한몫 했을터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름 기자로서의 커리어를 다지게 된 그녀는 굳은 얼굴로 최악과 대면했다.
"한마디만 해주세요, 라쿤맨"
".........."
되도록이면 청문회장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최악은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그 자리에 우뚝 멈춘 그에게 연행을 담당한 포스 유저들이 붙어서 밀어보지만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최악보다 키와 체격이 큰 건장한 남성들이 끙끙거리면서 그를 밀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 마치 마임과 같이 우스웠다.
최악이 이경진을 보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무언의 허락이였다.
"그래, 한마디만 해주지, 모르는 사이도 아니니까. 뭐가 궁금해?"
"........!"
침묵을 유지하던 그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였다.
기자들은 한순간 그의 말에 집중하며 입을 다물었다. 대신 서로 다투면서 마이크를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다.
그녀는 조용히 질문을 골랐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중요한건 지금 당장이였다. 저질렀던 일보단 저지를 일에 대해서 아는 편이 좋을거라고 판단했다.
"청문회의 방향성에 대해서 어떻게 흘러갈 것 같나요?"
나름 합리적인 질문이다. 다만 최악은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이였다.
"청문회 자리니까 거짓말은 안할거야. 대신에 어떻게 흘러갈지는......뭐, 좋게 끝나진 않겠지"
"그게 무슨 뜻이죠? 좋게 끝나진 않는다니, 설마........"
"한마디 끝. 난 이제 간다"
정말로 한마디만 해준 최악은 미련없이 자리를 벗어났다. 다른 기자들이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지만 아까처럼 무시하면서 청문회장으로 향했다.
이윽고 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청문회가 시작된다.
그게 종말로의 카운트다운인지도 모른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