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중국 최후의 날]
나는 중국에서 한바탕 해주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걸로 제대로 경고를 해줬으니까 이제 수작도 못부릴거다.
인간은 다수가 되면 강해지지만 그 강함은 간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다. 배짱이나 깡다구가 있는거면 모르겠는데 간이 커지면 주제를 모르고 날뛰거나 배째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에서 인구 많은 국가 톱에 드니까 오죽할까. 중국은 갈라져서 여러개가 되어야 그 버릇이 고쳐질 것이다. 앞으로 중국은 통일하게 정말 힘들어질거다.
분노 뒤에는 새로 쌓기 어려운 법이다. 프랑스 혁명도 보면 최초로 인권을 주장한 혁명이지만 그 뒤에는 사회던 경제던 씹창나서 괜히 레볼루숑! 하고 뒤통수 까댄게 아니다.
프랑스는 나폴레옹 없었으면 내전 존나게 했을껄?
아무튼 중국은 더 이상 합쳐지지 못한다. 그 큰 땅에 많은 사람들이 비집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충분한 사회 시스템을 동반하지 않으면 무리인 일이다. 근데 중국은 그런 시스템은 커녕 미국만도 못하잖아. 땅도 인구도 충분한 주제에.
중국에서 일을 끝냈으니까 나는 구치소로 돌아왔다. 누군가가 문 앞에서 내가 나타나자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도망쳤다.
따로 복장을 갖춰서 입은거 보니까 구치소 직원인듯 하다. 아이고, 고생 많겠네.
생각해보면 한 일이 꽤 많다. 내가 알리언 박사를 죽인 사실도 미국에 있는 연구소에 살기 띄고 흉흉한 기세로 가서 물어봤으니 분명 알거고,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음, 저지른게 상당히 많군. 알리언 박사 죽인걸로 미국이랑도 척질지 모르나.
아, 씨. 미국 이놈들은 보면 꼭 외계인 특공 같은거 들어가서 무섭단 말이야. 인디펜던스 데이 안봤냐. 대통령도 전투기 타고 외계인 조지는거.
물론 어디까지나 영화이기는 하지만 영화가 아닌 장면도 본적 있어서 난 참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적성종도 막 물리공격 통했으면 진작에 다 뒤졌어.
"최악씨!!!"
"뭐야, 누군가 했더니 제이슨 요원 아니야? 무슨 볼일인데?"
"딱 시간 맞춰서 돌아오셨군요, 혹시 알리언 박사님은........?"
"뒤졌어"
"........"
기다리고 있었는지 구치소 직원이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제이슨 요원이 들어왔다가 굳었다. 아니, 솔직히 그럴만한 일이긴 하지.
"정확하게 말하면 죽였어"
"아니, 어째서.......그분은 미국의 보물입니다!"
"보물이 사람 잡아먹는 보물이면 그래도 가지고 싶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틀라스란 곳에 대해서 조사해봐. 아무래도 미국도 꽤나 연관되어 있을것 같으니까"
알리언 박사의 영자 컴퓨터가 있던 마지막 연구 시설은 미국에 위치해 있었다. 아무리 시간을 들여서 몰래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시설을 만들려면 물자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비밀로 하려고 했어도 완전히 비밀로 하는것보다 차라리 아군을 만들어두는게 훨씬 편할테니 미국 정부 내에도 알리언 박사와 붙어먹은 놈이 있을거다.
"근데 어쩐 일이야? 알리언 박사의 일 물어보러 왔어? 아니면......."
나는 바깥에서 대기중인 누군가의 기척을 감지했다. 꽤나 특이한 기척이다. 굳이 비교한다고 하면 루리랑 비슷할까.
그걸 보니 누군지 대충 짐작은 간다. 만나자고 하기도 했으니까.
"......이 시국에 본인이 직접 만나고 싶다고 강행하셔서 겨우 오신겁니다. 제발 그분만큼은 손대지 말아주십시오"
"알리언 그 새끼는 뒤질만 하니까 뒤진거야. 너도 그 새끼가 뭔짓 했는지 알면 한편으로는 잘 죽었다고 생각할껄?"
나는 죽여도 곱게 죽였지만 놈은 사람을 죽어도 죽느니만 못한 꼴로 만들어서 죽였다. 살아 있지만 서류상으로 죽은걸로 만들던, 아니면 살아서 실험체로 써먹던 간에 말이다.
이윽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구치소 안의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상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예쁘기는 하지만 특출나게 예쁘진 않은 외모의 여성이였다. 루리랑 비교하면 비슷하지만 시온이랑 비교하면 태양 앞에 반딧불이나 다름없는 외모였다.
하지만 그게 진짜 외모는 아닐거다. 보면 갓-루리루리와 그냥 루리도 기반은 같아서 수준이 틀리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초면이죠?"
"초면이기는 하지. 앨리사 니어. 편하게 앨리사라고 불러줄까?"
"아무렇게나 부르셔도 됩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냈다.
미국의 예지계 포스 유저이자 이 차원의 우주의 관리자의 단말인 사람이였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녀는 전생에 시온과 같은 동족인 하논이였던 사람이였다.
* * * *
나는 루시안에게 하논의 사후에 대해서 들었다.
시온과 유토피아, 두사람의 종족인 하논은 4대 차원종에 속하는 종족이다. 단순한 초월종이 아니라 차원종이라 부르는 이유는 차원종은 이 세상을 보수하고 유지하는데 일조하기 때문이다.
설명을 하려면 좀 길어지는데......4대 차원종에 대해서 다시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우선 먼저 하논. 에테르라는 에너지체로 이루어져 있으며 차원을 방랑하고 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종족. 감정이 거의 없는게 특징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좋아한다.
두번째로 아레기쉬. 환생을 하는 모든 영혼들이 한번쯤은 거쳐가는 영혼의 좌에서 헤엄치는 영자로 이루어진 종족이다. 그들은 환생하는 영혼들의 생전의 업과 기억을 먹어치워서 다음 생으로 편하게 인도해준다.
세번째로 드림 자이언트. 꿈을 수호하는 수호자들. 드림랜드에 거주하며 꿈이란 보물에 손 대는 자들을 벌하는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블러디어. 최흉의 포식종. 얘네들은 길게 이야기하기 싫으니까 그냥 폐기물 쓰레기 처리반이라고 해두자. 어차피 얘네가 차원종에 들어간 일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니까.
여기서 한가지. 차원종이란 차원과 세상을 유지, 보수하는 것이 일이기에 하논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이너스 밖에 되지 않는다.
하논의 일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언젠가 이 우주가 모든 힘을 다해 그 끝을 맞이했을때, 그러니까 빅 크런치던 빅 프리즈던 우주가 종말을 맞이하면 자신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에테르를 소멸시켜서 그 반동으로 빅뱅을 일으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한다.
그래, 표절 같은 느낌으로 말하자면 '빛이 있으라'같은거다. 숭고한 자기희생 같은거지만 나는 시온한테 그런거 절대 안시킬거다.
아무튼간에 하논은 자기 자신을 희생시켜 에테르를 소멸시키고 그 힘으로 우주를 창조하고 힘을 다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뒤에는?
하논도 영혼이 있다.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건 만들어진 생명들을 빼면 영혼과 육체의 구분이 없어지는 로드 정도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지 윤회에 들어갈 수 있고.
하논은 사후에 그 숭고한 자기희생의 업을 인정받아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대로 윤회에 들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우주의 관리자로서 일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택 중에 후자를 선택한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솔직히 나는 하논이라고 해도 유토피아랑 시온 외에는 다른 하논은 본적 없거든. 개들은 개체수가 너무 적은데다가 행성 한두개에서 노는 애들도 아니고 수많은 차원에 우주를 날아다니는 놈들인데 만나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아무리 전 하논이라고 해도 만나기 어렵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라면 찾아가고 그럴지도 모르지만 수천년의 환생 중에서도 시온과 유토피아 외의 하논을 만난적은 없다.
그만큼 숫자가 적고 만나기 힘든 녀석들이란 소리다.
"이미 알고 계셨군요"
"아는 사람한테 들어서 얼마 전에 안거야. 몇시간도 안됐어. 근데 전생이라도 다른 하논을 만나는건 처음이라서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겠네"
시온과 유토피아. 둘 다 하논으로서는 돌연변이나 마찬가지다. 개중에 시온은 전생이 인간이였던 애고 유토피아는 우주가 멸망하는 것도 보는 하논 중에서도 제일 나이를 많이 처먹은 놈이다.
둘 다 예외여서 어떻게 평균치를 내려보기 애매하다.
"저도 태고 이후로 오랬동안 하논으로서 방랑했지만 동족을 만난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니 크게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본적으로 무덤덤한 성격이니까요"
"아, 그건 울 마누라랑 비슷하네"
"하논이였던 시절의 감정이 드물던 종족의 한계는 벗어나더라도......감정 표현이 미숙한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건 천성이라서요"
"원래 그런 애들이라더라"
유토피아도 겉은 사근사근한 느낌이다. 어디까지나 겉만. 하지만 대마왕 중에서 제일 삭막한 감정을 가진 놈을 꼽으라면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일단은 인간, 팬텀도 전 인간, 누리도 비슷하고 시엔느도 팬텀을 아빠로 둔 덕분에 인성은 나름 괜찮다. 하지만 유토피아는.......한창 마음이란게 완성될 때 마무리를 잘못해서 마음 한구석이 망가진 괴물이다.
"나랑 이야기를 하러 왔다면 뭔가 일이 있는거겠지. 뭔데?"
".......지금 하려는 일을 그만둬 주실 수 있으신가요?"
"싫어"
"역시나네요"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원래 내 일이기는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별로 큰 일은 아니다.
우주의 관리자인데 이 우주에 행성이 몇개고 개중에 지성체가 있는 행성만 따져도 수없이 많다. 그런데 고작 행성 하나 가지고 태클걸면 상당히 미련한 일이다.
이 행성 하나에 열중할 정성이 있으면 어차피 같은 노력으로 다른 행성에 신경을 쓰는게 어떨까? 어차피 좆되는건 맞지만 인류가 멸망할 정도는 아니니까.
"저는 각 문명을 존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처럼 멸망을 막기 위해서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대충 알고 있었어. 댁은 성격은 나쁘지 않더라"
여태까지 이능 하나 없다가 난데없이 20년 전에 이능력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알것 같다.
그녀는 하논이다, 정확히 말하면 하논이였다. 설령 환생했어도 전생의 영향이 없지는 않다. 그건 환생자인 내가 보장한다. 전생을 완전히 털어버릴 수 있는 놈이 얼마나 있으려고.
그리고 하논은 기본적으로 물리법칙을 다루며 이능력과는 상극이다.
시온도 보면 지니고 있는 강대한 힘에 비하면 무공이나 마법 한점 쓸 수 없다. 아마 밸런스 패치 같은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리법칙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신에 이능력은 다룰 수 없게 된것 같다.
그런 하논이였으니 이능력보다는 기술 개발에 몰두하는게 당연지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치자면 마법 기술 안올리고 과학 기술 테크만 탄 격이다.
물론 적성종이 등장한 뒤로는 부랴부랴 이능력을 만들어서 뿌린거겠지만.......
"엉성해. 만약 좀 더 인간을 믿었다면 가이아 포스가 아니라 기나 마나를 뿌렸어야지. 특화되지는 못해도 범용성이 개쩐게 얼마나 좋은데"
대충 아무 차원이나 가서 무림 하나만 찾아도 신공이라 불릴만한 무공만 수십개는 우수수 나온다.
인간의 발상과 노력을 생각하면 입문이 어려운 것보다 개인 재능에 달려있어도 범용성이 높은게 좋다.
"그건 지금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때는 생각을 못해서......"
"실수를 하다니, 인간적이네"
"나쁜겁니까?"
"반대야. 좋은거지"
실수에서 반성을 하는 법이고 그렇기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게 노력한다. 아예 안한다고 하기에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니까.
가이아 포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걸 뺀다면 그녀는 인간을 적성종에게서 스스로 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오히려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가지 충고하겠는데. 예전에 게임 시스템 차용했다가 나한테 목 따인 관리자도 있거든? 그건 조심해라"
"당연한겁니다. 숫자로 표현되는건 수학으로 충분하지 인간의 가치를 숫자로 표현해서는 안되는 법입니다"
"그건 의견이 맞는구만. 역시 댁은 성격 괜찮아"
막 현실인데 스탯창! 아이템창! 그러고 다니고 능력치 찍고 그러면서 재미야 있겠지.
그런데 사회는 그럴까? 같은 사람이라도 스테이터스 1차이 나는걸로 우위가 갈리는데 그런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같은 사람 목숨인데 누굴 먼저 살려야 할까 그러면 스테이터스로 갈릴텐데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냐? 김밥 옆구리 터진 소리 하고 있네.
그딴 세상이 오면 난 단숨에 멸망시킨다. 소집시킬 필요도 없다.
"나는 뭘 해도 마음을 바꾸지 않겠어. 딸 같은 애가 못된 짓을 당하고 와서 저지르는 보복성 폭력 같은 느낌이지만.......어디까지나 나는 소집을 하는거지 직접 멸망시키는건 아니거든. 결국에는 여태까지 했던 일들이 결과를 낼 뿐이야. 잘 했으면 애초에 긴장할 필요도 없다고?"
"........역시나군요"
"뭐야, 대충 이 부분까지 예상은 했어? 그러면 막지 그랬어?"
"제가 간섭하면 인과율이 뒤틀리니까요. 저는 관리자자 초월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과율을 뒤트는 만큼의 대가가 필요합니다"
자업자득, 주는대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인과율은 결국에는 저지른 것에 대가를 치르는 법.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란 영화를 본적 있는가? 그 영화의 공통적인 주제는 죽을 운명을 벗어난 사람은 결국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과율도 똑같다.
물론 나 정도 되면 인과율을 감당할 수 있다. 누구 하나 죽는 결과가 있다면 내가 그 부담을 받아내서 인과율을 소모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관리자라는 입장에서 인과율을 거스르기에는 상당히 부담된다.
더군다나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관리자란 관리하라고 해놓은 직책이다. 깽판은 용납되지 않는다. 초월자이자 대마왕인 나와는 권한이 다르다. 음......비유하자면 공사 현장의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랑 철거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차이다.
"그냥 지켜봐. 관리자들은 크던 작던 문명에 애정이 있지.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 새끼에게는 매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법이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다시는 그러지 않도록 반면교사 삼는거지"
".........당신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관리자조차도 내 행보를 막을 권한이나 힘은 없다. 이 우주가 파괴될 때까지 싸운다 하더라도 결국 승리하는건 나다.
대마왕이란 그런 직책이다. 매를 들어서라도 올바른 길로 나아가게 만들고 싶은 그런 악당을 떠맡는 존재지.
"마지막으로 한가지. 그 아이, 시온을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머니로서 그 아이에게 조금도 부모다운 일을 해주지 못했으니까요........"
"그건 전해줄......어?"
아니 잠깐만. 지금 뭐라고 했어?
내가 의문을 표한 얼굴로 되묻자 앨리사 니어의 얼굴 또한 의문을 표했다.
"전부 알고 계신거 아니였습니까? 그 아이는 제가 하논이였던 시절에 낳은 아이입니다"
"아니, 여기서 장모님 커밍아웃이이이이이이?!?!?!"
나는 턱이 빠질 정도로 놀라면서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