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4화 〉[중국 최후의 날]
루리는 TV를 보다가 욕을 내뱉었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뭐라고 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욕하는 일은 없지만 지금은 욕을 하지 않고서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것 같았다.
"시발! 좆됐어!!!"
"야! 고운말 써야지! 그리고 너 뭔짓을 했길래 뉴스에 나와?!"
"내가 잘못한거 아니거든? 아오 시발! 일본 이 새끼들은 그런 전적이 있는데 제정신머리가 있는걸 먼저 의심했어야지 나도 참 등신같게!!!"
터지면 한두사람이 죽는걸로 끝나지 않는 일이다. 주로 일본이.
하지만 정작 그걸 일본에서 터트려버렸다. 이미 한국의 방송사도 이 소식을 듣고 집중 취재를 하고 있어서 이남석 대통령이 묻으려고 해봤자 이제와서 무리다.
힘이 부족하다는게 아니라 사건이 크게 터져서 수습할 수 없다는 소리다. 일본 정부에서 대놓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오고 백리의 여동생인 루리가 관련된 일인데 반응이 조용할리 없었다.
그러다 웅웅거리면서 백리의 핸드폰이 진동하며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음을 알려주었다.
"어? 야키토리씨네?"
"누구? 아, 일본 외무성 차관이라는 그 사람?"
"응, 이 타이밍이 전화를 걸었다는건........"
"잠깐 전화좀 줘봐"
"아니, 내가 이야기를 해야지. 네가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거 아냐?"
"이미 그런거 의미 없는 지경이니까 잠깐만 줘봐"
"........"
백리는 조금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내주었다. 루리는 통화버튼으르 누르고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어요"
[아......루리양 혹시 오빠분은 안계십니까?]
"오빠 지금 딸쳐서 바빠요. 아, 일본어로 오나니"
"야!!!!!!!"
[...........]
야키토리 차관도 백리의 분노에 찬 외침을 들었는지 침묵했다.
바로 옆에 있는데도 루리가 받았다는건 당사자가 할말이 있다는 뜻이다. 그 정도의 눈치도 없으면 차관직을 맡지도 못했다.
"차관님. 우린 좆됐어요. 아니, 한국은 모르겠는데 일본은 좆됐어요. 그러니까 하나 충고해 드리겠는데 빨리 탈일본하고 한국으로 다른 나라로 이민가세요"
[이번 일은.......]
"알아요. 차관님도 연관은 있지만 여기까지 바라진 않았다는거. 애초에 이 타이밍에 전화를 걸었다면 둘중 하나였을텐데 오빠한테 들어본 이야기로 보면 차관님은 그럭저럭 양심있는 사람이였거든요. 미인계 쓰려는건 좀 아니였지만"
"미인계라니, 너......."
"아! 오빠는 좀 다물어! 남자가 일관성이 있어야지 예진이랑 썸타면서 미인이 달라붙으면 헬렐레 거리잖아!!!!"
"안그랬거든?!"
"아무튼 이 사건의 중심은 예진이니까 좀 닥쳐봐"
".........예진이가?"
백리의 눈빛이 변했다.
루리는 백리에게도 비밀로 하기 위해서 자기가 겪었던 사건을 함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져버려서 그게 의미없게 됐지만 자세한 내막은 백리도 모르고 있는 상태다.
과연 일본이 예진이와 루리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될까.
백리는 중국에서도 무고한 사람이 죽는걸 막기 위해서 최악 앞에 섰지만........과연 지금도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개인이 멋대로 저지른 짓이라면 모르겠는데 이번 일은 일본 정부 자체가 저지른 일이다. 거기에는 변론의 여지도 없었다.
못해도 방관이다, 틀림없이.
[........저는 현 정부의 방침과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이번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연락을 드렸습니다]
"수습? 이미 터트린 시점에서 수습은 물건너갔어요. 지금 일본이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 알기나 알아요? 일본만 패망하면 차라리 존나 다행이겠다. 아니, 경제적인거 고려해도 나라 몇개 망하는 정도로 끝나도 더 좋을텐데"
[네?]
"루리야?"
"오빤 아저씨한테 들은 이야기 없어? 분명히 있을텐데?"
"그야......."
그 순간 백리의 등 뒤로 싸늘한 감각이 스쳐지나갔다.
백리는 최악에게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이 지구에서는 최악이 마음 터놓고 이야기 했던 몇 안되는 상대인만큼 보통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는 것들도 있었다.
최악은 단순한 초월자가 아니다.
문명을 심판하는 대마왕 중에 한명이다.
".......씨발"
"아까 나보고 고운말 쓰라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미안해. 그런데 지금 상황이........"
"내가 얼마나 답답한지 알겠지? 이제 다 좆됐어. 못해도 지구는 이제 문명이 1,2백년 뒤로 후퇴할거야"
[잠시만요. 그게 무슨 소리죠, 루리양? 최악씨가 일본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위협할거란 소린가요?]
"위협? 위혀어어어어어업? 시발, 위협으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이 중에서 그 사실은 모르는 자는 야키토리 차관 뿐이였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의미가 없다. 가르쳐준다고 한들 와닿지도 않고 현실을 부정할 뿐이다. 없는 편이 나으니 루리는 전화를 끊기로 했다.
"잘 들어. 차관님이 어느 파벌에 속해 있던지 이번 일은 다 망했으니까 그냥 딴 나라로 이민가세요. 아, 화성 이주민 신청 하는것도 나쁘진 않겠네. 지금 우리가 손 쓸 수 있는 방도는 없으니까 닥치고 도망가는 것 밖에 남지 않았어요"
[하지만 백리씨는 한번 최악씨를 막지 않았습니까?]
"지금 울 오빠한테 죽으라고 하는 소리 맞죠?"
[그런 뜻이 아닙니다]
"보통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괜히 찔리니까 하는 소리죠. 시발, 중국에서도 둘 중 하나가 뒈져야 끝났던 일인데 둘 다 살아온거 보면 모르겠어요?"
최악이 중국에서 손 쓰는 것을 그만둔건 어디까지나 백리의 의견을 존중하고 봐줘서 그런거다.
만약 그가 독하게 마음먹었다면 백리는 싸움이란게 성립되기도 전에 죽었다.
"결국 차관님도 울 오빠를 이용해먹으려고 전화 걸었는데. 이쪽은 볼일 없거든요? 저는 우리 가족 화성 이주 신청서 써야 하니까 바빠서 이만"
[잠깐만요, 루리양......!!!]
뚝.
루리는 붙잡는 말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 남은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백리와 루리 뿐이였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할지 정말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제일 편한 선택지가 나몰라라 하고 도망가는거였다.
"미리 신청한 사람들은 땡잡았네. 뭐, 우리집은 인맥빨로 되겠지만"
".......어떻게 방법 없을까?"
"오빠 미쳤어?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안돼. 아저씨 한명도 이기지 못해서 뒤지게 얻어터진 주제에 못해도 아저씨랑 비슷한 수준인 사람들이 네명은 더 오는데 그 난장판에 끼어들려고?"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엄청 많은 사람이 죽을거야"
"오빠가 죽는 것보단 낫지. 우리집 대 이을 사람은 오빠 말고 없거든?"
"........데릴사위"
"아니, 자꾸 그렇게 태클걸거야? 그렇게 뒤지고 싶으면 호적 파고 나가 뒤지던가. 최소한 나는 정신이 이상한거지 현실을 보는 사람이야. 편치 한방에 태양도 아작낼 수 있는 괴물하고는 상종하기 싫어"
"으으으......."
최악 한명이면 봐주고 봐줘야 겨우 손댈만한 일이 된다. 그나마도 그가 일 하는 상황이 아닐 경우에.
하지만 본격적으로 마음먹고 일을 시작한다면 백리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이번만큼은 촤악이 봐주지도 않고 막으면 죽여버릴 것이다.
"아니, 아저씨가 죽일 필요도 없겠다. 남은 다른 대마왕들에게는 오빠랑 인연도 없으니까 그사람들이 나서서 오빠를 죽여버리면 그만이야"
".........."
"제발 현실을 봐 오빠. 주제도 모르고 사람 구하겠다고 난리피우지 말고. 적어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노력해. 이건 이미 우리 손을 떠났어"
루리의 가슴을 찌르는 말에 백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의 손을 내려보았다.
* * * *
"인민 여러분! 이제 저희 중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깨우친 생각과 의지로 이 라우장센에게 한표를 던져주십시오!!!!"
중국은 현재 전국시대나 다름없었다. 홍콩과 티벳, 위구르와 대만들을 비롯한 독립성이 강한 지역들은 이미 독립 선언을 하였고 각 지방도 지금은 대놓고 독립 선언을 하고 있었다.
이미 공식적으로 남은 공산당원들은 없었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최악의 경고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그들은 처참하게 찢겨 천안문 광장에 전시되었다.
자업자득이다. 개인의 지유보다 국가를 우선시한 자들의 말로가 그런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살아남은 공산당원이 아닌 정치인들은 서로가 한표를 부르짖으며 자신의 공약을 내새우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끌어보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한번에 너무 많은 공산당원이 죽어서 그들의 자리를 매꾸기에는 사람이 부족했다.
덕분에 치안은 개판이 되고 혼란에 빠진다. 그나마 베이징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충분히 치안이 유지되고 있지만 정작 수도는 개판이다. 그도 그럴것이 최악이 절반 가까히 되는 도시를 파괴했기 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들이 중요했다. 베이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름의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표는 중요했다.
물론 민주주의식으로 투표를 통해서 권력을 얻으려는 자도 있는 만큼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주로 군 고위 간부의 같은 경우는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서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건 권력이다. 단순히 한 지역의 패자 따위가 아니라 새 중국의 권력자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건 먼저 갈라지는 현 중국을 바로잡는 것이다.
같은 의견을 모은 다른 군 간부들도 있었기 때문에 일의 진행은 수월해졌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이 있지만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지금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결속력입니다!!! 갈라지고 있는 중국을 바로잡고 다시금 나아갈 수 있어야 하기에 지금이야말로 더욱 결속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는 잃은 것은 많지만 아직 잃지 않은 것은 더욱 많습니다! 예전과 같은 중화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지지가 중요합니다!!!"
라우장센은 허베이성 출신의 육군 장성으로 정확한 계급을 말하자면 중장이다.
그보다 더욱 높은 계급의 군 간부도 있지만 일부는 베이징에서 최악한테 죽었고 일부는 그와 의견을 동조하고 있다. 어떻게 본다면 마치 삼국지의 유비가 난세에 수백의 병력으로 뛰어든 것과 같은 모습이였다.
라우장센 중장은 베이징에서 가까운 허베이성의 군 간부였기 때문에 이점이 많았다. 피해도 비교적 적었고 가깝기 때문에 행동하기 편했다. 중국은 땅의 크기가 크기인만큼 이동에도 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에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은 크게 작용했다.
수도를 손에 넣는다면 다름은 이야기가 쉽다. 전 정부를 계승한다는 명목으로 각지의 반발세력을 억누르고 시간을 들여서 차차 독립을 선언한 홍콩 같은 곳도 정리하면 그만이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라우장센 중장의 생각은 그랬다.
쩌저저적!!!!
"어?"
"차, 차원진이다!!!"
"경보는 울리지 않았는데!!!!"
그가 연설하고 있던 천안문 광장 한가운데, 허공에서 거대한 차원진이 열리기 시작했다. 차원진 경보도 없이 울리는 차원진의 규모는 보기 드물정도로 남달라서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정치인들과 권력을 잡아보려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 모여있던 중국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악이 상당수 죽여버렸어도 남은 사람은 많다. 천안문 광장에 모인 사람만 하더라도 수십만명은 가뿐하게 넘었다. 거기에서 차원진이 일어난다면 대참사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차원진 안에서 나온 것은 적성종같은게 아니였으니까. 아니, 오히려 적성종이 나왔으면 다행이였을 것이다.
쿠웅!!!!!!
차윈의 틈새를 비집고 뭔가 거대한 것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육군 출신의 장성인 라오장센 중장이라도 익히 보고 아는 것이다. 몇달 전에 겨우 건조 완료하여 실전 배치를 한 중국의 두번째 항공모함, 산둥함(山東艦)이였다.
전장만 300미터가 넘으며 약 7만톤에 달하는 배수량을 자랑하는 항공모함은 이전에 있던 러시아 항공모함을 개량하여 만든 중국의 손으로 만든 항공모함으로 치자면 첫번째 항공모함이였다.
기술은 둘째치더라도 의미가 다르다. 애초에 항공모함을 보유할 수 있는 국가조차 얼마 되지 않다는걸 생각한다면 한대라도 보유하고 있다는게 강대국의 증거다.
그리고 그 항공모함이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바다도 아닌 하늘에.
"어? 어어어? 어어?!?!"
쿠우우웅!!!!!
차원진에서 나온게 적성종이 아닌 항공모함이라는 현실에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이윽고 그대로 떨어져내리는 항공모함에 짓눌려 죽었다. 묵직한 충격파와 진동이 뒤이어서 울린다.
그리고 거대한 충격이 항공모함을 덮쳤다. 300미터가 넘는 거대한 물체가 단숨에 두동강이 난다.
지극히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치던 사람들 중 일부는 허탈함과 형언하기 힘든 무력감을 느끼고 그것을 지켜보다가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기회를 준건. 예전과 같은 중국이 되지 말라는 의미에서였지]
중국인들에게는 익숙한 목소리, 아니 의지가 그들에게 울려퍼진다.
중국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 의지는 섬뜩하게 전 국민을 두들겼다.
[예전과 같은 중국이 된다면 내가 너희들을 살려둘 가치가 없다. 기억해라, 이건 경고니까]
쿠구구구구구구구!!!!
반으로 쪼개진 항공모함은 그대로 천안문 광장 한가운데에 처박혀 V자 형태로 꽂혀졌다. 현대예술과도 같은 전위적인 모습이였지만 아무도 그걸 감명깊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끔찍한 사실을 목도하고 이윽고 현실을 깨달았다.
중국은 갈라져야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