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중국 최후의 날]
처음보는 사람이 미녀이기는 하지만 기묘한 인사법으로 인사를 건내오면 뭐라고 반응해야 할까?
"안능하제옇!!!! 중요하니까 두번 인사했어요!!!!"
두번이나 인사를 건내고 나서야 이남석 대통령은 정신을 차렸다.
"아......만나서 반가워요. 이남석이라고 합니다."
"대통령 아저씨랑 이렇게 직접 이야기 하는건 처음이라서 설레설레임! 슬슬 추워지는 날씨라서 요즘 아이스크림은 안땡기는데!!!!"
".........."
"농담이예요. 잠깐 앉아도 될까요?"
"아, 네"
겉으로 보기에는 미녀이기는 하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은 아닌 발육에 당장 옷만 잘 입고 돌아다녀도 모델로 착각할법한 외모다. 단지 입을 열면 그게 전부 깬다는게 문제지.
문득 이남석 대통령은 그녀를 어디선가 본것 같은 느낌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대통령이라는 직무상 한번 본 사람은 완전히 기억은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남아 있을텐데 기억이 흐릿한걸 보면 직접 만나지는 않고 다른 것으로 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루리애오. 냠냐미 주새오"
"......츄르라도 드려야 할까요, 루리 학생? 분명 하백리씨의 여동생이셨죠?"
"앗, 오또캐 알아찌!!!"
"하백리씨의 간단한 인적 사항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백리는 최악을 막은 유일한 사람인만큼 현재 시온의 호라이즌과 최악의 행방을 비롯해서 현 뉴스가 관심사를 가지는 세명 중의 하나다. 일단 본인 입으로 UN에 들어가겠다고 공표한 일
이 있지만 그래도 추정하기로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경지에 이른 두명 중 한명으로 보고 있는 중이였다.
이미 신상도 다 털려서 조금만 찾아보면 백리네 가족 정보는 다 나온다. 여동생인 루리도 마찬가지고.
"앉으시죠. 여기까지 왔다면 따로 이야기할게 있다는걸로 봐도 될테니.......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오셨습니까? 경호원들도 널려 있고 보안 설비도 여기저기 설치 되어 있었을텐데"
"기척 죽이고 들어오니까 아무도 눈치 못채던데요"
"..........?"
이남석 대통령은 포스 유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들이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라는건 알고 있었다.
물론 루리도 포스 유저란 것은 인적사항을 볼때 기억하고 있지만 그래도 겨우 여고생 한명에게 특수한 훈련까지 받은 엘리트들이 쉽사리 뚫릴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게 가능하다고 한다면.......한가지 가정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이남석 대통령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
"마스터 유저가 된겁니까?"
"된건 며칠 안됐어요"
"어찌되었건 좋은 소식이군요"
최악의 일만 없었다면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스터 유저가 한명만 있어도 국가적, 경제적 이득은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백리와 루리. 남매가 쌍으로 그랜드 마스
터와 마스터 유저라니 축복받은 집안이라고 생각될법하다.
사실 재능이 있는 쪽은 백리가 아니라 루리지만......
"마스터 유저가 되고, 여기까지 몰래 들어왔다면 따로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천천히 이야기 하도록 하죠. 차라도 한잔 마시겠습니까, 루리 학생?"
"주신다면 감사히 받을께요"
이렇게 보면 또 예의바른 숙녀다. 태세전환이 극과 극을 달리는게 오히려 대처하기가 힘들다.
집무실 한구석에 있는 커피 포트로 물을 끓여서 커피를 내왔다. 그리고 커피를 타오는 동안 이남석 대통령은 생각을 끝마쳤다.
"용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죠. 뭘 원하십니까?"
"아, 그게......."
루리는 여태까지 일을 설명했다. 아직 밤이기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지 하루는 커녕 고작 몇시간도 지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다행이다. 사건 처리를 빨리 할 수 있으니.
이야기를 듣던 이남석 대통령은 인상을 찌푸리다 이내 한숨을 내쉬면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일본이......."
"대놓고 그런짓 하는거 보면 일부가 그러는건 절대 아닌걸로 보이더라고요. 포스 유저는 입국도 어렵지만 출국 자체도 검사하니까 자국 내에서도 협조가 없다면 이렇게 빨리 입국할 수는
없었겠죠"
포스 유저는 어지간해서 국외 여행이 힘들다. 가능하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힘들다. 시온도 최악이 깽판치기 전에 중국으로 여행 갈 때는 따로 인맥과 돈을
동원해서 가능했던거지 보통은 안된다.
입국하려는 국가에서도 검사하지만 출국할 때도 검사하는 법이다. 특히나 포스 유저라면 기내에서 뭘 하려고 하면 큰일날 수 있으니까 더욱.
고작 하루이틀 사이에 일본의 포스 유저가 한국으로 넘어왔다면 연관된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국은 물론, 일본 내부에서도.
"일단 인질은 구출해서 마무리하긴 했는데. 뒷처리 하기가 힘들어서요. 시온 아주머니가 손 써도 사람의 눈과 입은 막을 수 없는 법이잖아요? 그래서 대통령 아저씨한테 부탁드리고 싶어
요"
"흐음......."
만약 단순히 루리만 건드린 일이라 한다면 이남석 대통령은 고민하다가도 죄를 떠안고 실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국민 한명보단 국가를 우선시하고 일본이게서 외교적 우위를 점했겠지.
하지만 이번 일에는 루리와 그녀의 친구만 관련된게 아니였다.
최악이 이번 생에서 딸처럼 여기는 예진이도 관련되어 있었다.
"이거 알려지면 진짜 장난 아니예요. 보통 일으면 아몰랑! 하고 내빼겠는데 이번 사안 터지면 사람 한둘 죽는걸로는 안끝나요"
인맥만 보면 지구에서는 예진이가 짱이다.
양아버지로 두고 있는 최악이나, 썸을 타고 있는 연인 직전의 백리나. 무력만 따지면 어지간한 나라는 상대도 안된다.
루리도 자기 친구가 자기 때문에 피해를 본건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건 바라지 않았다.
"예진이 건드린거 알면 일본은 중국꼴 날거고 거기에 울 오빠도 이번에는 예진이 건든거 보고 화나서 간섭 안할 확률이 반이거든요. 국제 사회란게 혼자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중국도 저
꼴이 났는데 일본도 싸그리 패망하면 우리 나라 꼴이 어떻게 될지 훤히 보이거든요?"
"당연한 소리입니다. 지금만 하더라도 중국이 혼란스러운 상태라서 경제적인 타격이 심상치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이 사건 묻어버리자고요. 최악 아저씨가 일본 조져버리기 전에"
이남석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하게 묻어버리려면 어느정도 힘이 있어야 하는데다가 일본이랑 따로 합의도 봐야할테니까 자신을 찾아온 것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다만 몰래 찾아오는건 조금 이해가 안갔지만. 하다못해 백리를 통해서 연락이라도 취하던가.
"한번 청와대 와보고 싶었어요"
"..........농담입니까?"
"진짱뎅"
오빠는 멀쩡하고 착한데 여동생은 마음이 심란해질 정도의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싶다. 세상을 편하게 사는건지 정신세계 자체가 다른건지.
아무튼 이남석 대통령은 루리의 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중국의 분열로 혼란스러운 이 시기에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을만한 국가는 기껏해야 한국과 일본 정도다. 몽골은 땅이 크긴 하지
만 공업기술이 부족해서 패권을 쥐기에는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 일본에게서 외교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충분한 기반을 쌓을 수 있다. 북한도 지금 최악 때문에 핵을 비롯한 방사능 물질이 죄다 날아가서 빈 껍데기나 다름없는 와중에 잘
하면 그 기반은 통일에 기여할 수도 있었다.
이남석 대통령도 욕심은 있었다. 자기 임기 내에는 무리더라도 훗날 한국이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듣고 싶었다. 단지 과욕을 부리지 않을 뿐.
"일단 알겠습니다. 이 일은 제가 처리하도록 하죠. 루리 학생은 안심하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따로 큰일 나진 않겠죠? 입 무거운 사람들로 쓰세요"
"어지간해서는 그런일 없을겁니다. 사람이 머리가 있다면 이 사건의 중요성을 알테니까요"
우선적으로 한국에서는 그들만 입을 다문다면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두사람이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일본은 선빵 쳐놓고도 진 후에 질질 짜면서 피해자 코스프레한 전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 * *
청문회까지는 고작 하루가 남았다. 원래라면 최악도 그 전에 구치소로 돌아가서 기다려야 하지만 어차피 청문회 하기 전에만 돌아가면 그만이다.
"아, 그냥 얼른 끝내고 화성 이주해서 울 마누라랑 알콩달콩 여생이나 보냈으면 좋겠다"
"여생이라고 표현하니까 늙은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 몸은 20대인 주제에"
"정신적인 문제지 뭐. 내가 한 몸으로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자꾸 몸 갈아치우다 보니까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아 있어"
"저도 사실 이주 한 뒤로 팅자탱자 노는거 생각하고는 있습니다만.......뭐, 일단 여기 일 끝내는게 좋긴 합니다"
최악은 시온이랑 노닥노닥거리고 있었다. 일을 할 필요도 없고 따로 할것도 없으니 남은건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 뿐이다. 가끔 게임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할 때는 시온을 끌어안고 조용히 있는 것이였다. 작은 체구의 그녀를 껴안고 시온의 체온을 느끼고 있을 때면 마음속의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근데 예진이는 뭐해? 댕댕이랑 노나?"
"......지금은 잠깐 자고 있습니다. 아마 루리 학생과 놀고온게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그래?"
약간의 느린 반응이 있었지만 최악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시온은 절대적인 가치다. 만약 그녀가 흰것을 검다고 하면 그건 검은거라 생각할 정도로 절대적이기에 거짓말이란걸 알더라도 그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온 또한 최악을 위하니 뭔가 숨기는게 있어도 결과적으로 그를 위해서 숨기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간만에 밥이나 해서 먹을까. 호라이즌에 보관해둔 식재료들이 좀 있을텐데......."
"전 고기가 좋습니다"
"알았어. 고기 반찬 해줄께"
"야채 곁들여서 오는건 봐드리겠습니다"
"오늘 반찬은 그러면 스테이크네. 가니쉬로 볶은 야채도 좀 쓰고"
최악은 호라이즌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사실 말이 식당이지 요리 관련 항목에 쓰는 기계나 시설들을 전부 우겨넣어서 거의 대형 쇼핑몰 같은 크기를 자랑한다.
덕분에 온갖 식재료들을 보관하고 있어서 질 좋은 생 식재료들을 사용할 수 있으며 인공적으로 생성한 식재료또한 구분 없이 존재하는 요리사들의 낙원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원래라면 이런 시설은 이렇게 크게 만들진 않지만 최악이 요리를 좋아해서 여러가지 추가하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식당에 도착한 최악은 밥 시간이 된건지 거기서 레이즈와 만났다.
"오, 너도 밥 먹으러 왔냐?"
"먹어야 일을 하죠. 워스트씨는요?"
"나야 뭐 울 마누라 밥 해주러. 요리가 특기거든"
"요리가 특기라고 하시니까 예전에 팬텀씨가 했던 요리를 먹은적이 있는데......."
"아, 그 새끼도 요리 꽤 잘하지. 근데 걔는 레시피가 나보단 적거든. 열중한 시간이 달라서 그래"
"저도 1인분 부탁해도 될까요?"
"어차피 만드는 김에 손 더 쓰면 되니까 그러지 뭐. 여기서 만들어주는 밥도 내 레시피 등록이 되어 있어서 맛있기는 한데 사람 손맛이 없어, 손맛이"
"손맛 같은건 반쯤 미신이 아닐까요? 손에서 조미료가 나오면 몰라도"
"이놈 새끼가 손맛을 무시하네? 아무리 맛있어도 기계가 만든건 기계가 만든거야. 정성이 없잖아, 정성이"
"여기 인공지능이 들으면 시무룩하겠네요"
식당 안의 넓은 주방으로 들어간다. 오로지 기계로만 수작업으로 운영하는 조리실도 있지만 사람이 쓸 수 있게 만들어둔 주방도 있다.
기본적인 조리 기구들에서 시작해서 지구의 여러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들, 그 외에도 각양각색의 차원에서나 쓰일법한 전혀 짐작 못하는 수준의 조리기구까지, 별게 다 전시되어 있었다
.
"고기는......그냥 소고기보다는 다른거 쓰는게 낫겠지? 간만이니까 다른걸 먹어볼까.....고기, 고기....흠"
최악은 주방 한 쪽에 있는 홀로그램 패널을 넘기면서 고기 목록의 스크롤을 내렸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종류와 특성, 조리시 주의사항 등등이 적혀진 목록은 처음 보는 사람도 다룰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 부분에서도 편의성이 좋은 것은 최악이 자
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목록에서 한 항목을 골랐다.
"아, 이거 괜찮겠다"
그 항목을 선택하고 그 외에도 몇가지 재료들을 고른 후에 선택 완료 버튼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방 구석에 있는 문이 열리더니 고른 식재료가 담긴 카트가 자동으로 굴러왔다.
재료를 카트에서 꺼내고 최악은 요리를 시작했다. 빠르고 정확하게, 요리할 때 만큼은 그의 능력과 재능이 좋은 쪽으로 발현된다.
고기를 굽고 소스를 만들고 야채를 볶는다. 일련의 과정 중에서 낭비는 일초도 없었다.
"자, 다 됐으니까 와서 먹어라"
"어? 이 냄새......"
"익숙한 냄새지?"
"이거 다크 로드 캐슬 특산 마수 고기 아니예요? 마수 종 이름이 뭐였더라......"
"뭐 어때, 맛만 있으면 그만이지. 팬텀 그놈이 요리 잘하는지라 그런쪽 특산물도 잘 나와서 나도 좋거든. 근데 단가가 씹창이야"
심판의 절대자, 그레이가 만든 문명인 델타 캐슬처럼, 최강의 대마왕 팬텀 또한 군림하고 있는 문명이 있다. 기본적으로 마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운 다크 로드 캐슬이란 곳으로 델타 캐슬
과 비교해도 꿇리지 않는 수준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인 팬텀으로 인해서 한편으로는 요리 관련 문화가 발전해서 식재료 값이 싸고 맛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이 먹는 마수 고기는 단가가 비싸다. 그만큼 맛있
다는 소리다.
"으음, 간만에 잘 먹네요. 사실 어제까지 유동식 먹고 있었거든요. 밥 다운 밥은 동면 이후로 이게 처음이예요"
"오, 그러면 잘 먹어야지. 고기 많이 먹아라 고기"
"일단 저도 먹고 예진양이랑 다른 사람들 밥도 좀 챙겨주러 가야겠어요"
"........다른 사람들?"
한창 고기를 썰던 레이즈의 나이프가 우뚝, 멈췄다.
"아, 별건 아니고 이주 희망자인데. 루리양 친구분이 가족이랑 함께 신청해서 먼저 호라이즌에 승선시켰어요. 시온씨도 알고 있으니까 가서 물어보세요"
".........."
최악은 레이즈를 노려보았다.
기세는 일으키지 않았어도 레이즈는 그가 최흉의 대마왕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명을 전문으로 파괴하고 죽이는 공포의 대상.
비록 그게 사랑의 매를 드는 존재라 할지라도 맞는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문명이 발전한만큼 레이즈는 초월자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다.
억지로 태연함을 유지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레이즈의 모습을 최악은 끝까지 지켜보았다.
"뭔가 숨기는게 있어 보이지만......울 마누라 관련된거 같으니까 내가 참고 넘어가마. 모르는척 속아줄께"
"............."
레이즈는 내심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