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0화 〉[중국 최후의 날]
생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였다. 여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자에게는.
절묘한 힘조절을 통해서 알만 깨고 기둥은 남겨두었다.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면 적어도 그 뒤에 소변 배출 문제는 걱정 없지만......
"아, 다시 말해서 성불구자가 됐다, 이말입니다"
뭐,뭐요? 내가, 내가 고자라니! 말도 안된다고 으허허허!!!!
땅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할 뿐인 사람들 사이에서 루리는 유유하게 서서 가볍게 주변을 둘러보고 건물 안쪽에 따로 만들어둔 공간에서 인질을 구출했다.
따로 약을 쓴건지 정신을 잃고 있어서 오히려 편했다. 깨어 있었다면 오히려 정신건강에 심하게 좋지 않았을테니까.
"이거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하려나......"
이 사건을 공식적으로 알릴 수는 없다. 그건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 정부는 본인이 잘못한걸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이겠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의 붕괴로 대처하기 바쁜 와중에 일본까지 최악한테 털려버리면 경제적인 문제만 따져도 큰일날테니까 그렇다.
"뭐, 죽은 사람은 없으니까 다친 사람은 양심 찔리는 사람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상식없는 무능력한 또라이가 아닌 이상 대놓고 적반하장식으로 나올리도 없고"
루리가 낸 결론은 그냥 털어버리는 것이였다. 어차피 뒷일은 알바 아니다.
인질은 구했지만 두번 다시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루리는 세영이네 어머니도 따로 시온에게 맡기기로 했다.
"여보세요? 폴리스맨?"
[폴리스맨은 아니지만 가끔 경찰 제복 플레이를 하기도 합니다]
"음, 테크닉 같은거 전수해주실 것 있나요?"
[허리를 잘 쓰십시오, 체력 소모가 많아도 좀 과하게 흔들다 싶은게 오히려 좋습니다]
"올ㅋ"
[아무튼 세영 학생 가족은 제 쪽에서 돌보겠습니다. 그런데 세영 학생 아버님은.......]
"세영이는 모녀 가정이예요. 아마도 그래서 노린것 같고요"
[음,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봤는데 인성도 나쁘지 않고. 화성 이주를 바란다면 허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래서 사람은 인맥빨이 있고 봐야 한다니까"
루리가 음음,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혈연, 학연, 지연 등등이 심한 한국에서 자라난 폐해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다.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그들이 쉬쉬하면서 넘어가기에는 사안이 크다.
자국에서 타국의 요원들로 인해서 국민이 납치되었고 그 과정에서 루리가 하긴 했지만 스무명이 넘는 멀쩡한 남자들이 (성)불구가 되었다.
이게 뉴스 안타면 오히려 이상하다. 벌써부터 냄새를 맡은 기자들도 있을지 몰랐다.
"언니가 손 써도 사람을 막을수는 없을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흠, 이럴 때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통해서 막는겁니다]
"누구요?"
[이 나라 대빵이 있지 않습니까?]
"앗, 예전에 했던 청와대 복선이 여기서!!!!"
아니 여기서 복선회수가?!
장난인줄 알았던 말이 현실이 되어서 돌아왔다!!!!
[제가 따로 연락을 합니까. 아니면 직접 만나러 가시겠습니까?]
"기왕 여기까지 온 이상 끝장을 봐야겠죠. 직접 만나서 부탁(물리)하고 마무리 짓자고요"
상대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일본 정부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패를 낼 수 밖에 없었다.
단순히 힘으로 짓누르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려고 했다가 소문이 터져나오면 최악이라는 최종보스가 튀어나올 여지가 있었다.
"결정 했으면 이럴 때는 역시 그 대사를 해줘야죠"
[아, 뭔지 알것 같습니다]
"하나, 둘, 셋!!"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훗, 그래야 내 손님답지!!!"
제정신이 아닌 여자 두명이 힘을 합치니 무섭다.
거기에 능력까지 있으면 더더욱.
* * * *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알아봐야 할게 많다.
청와대라고 한들 다짜고짜 푸른 기와집......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청와대 본관을 찾아가도 정작 대통령은 없을 가능성은 있었다. 따로 다른 곳에서 업무를 본다거나 아니면 관저에서 쉬고 있다거나.
하지만 시온에게 있어서 그걸 파악하는건 쉬운 일이다. 솔직히 그걸 파악할 능력이 있다면 본인이 직접 만나러 가면 되지만 머리에 나사가 한두개쯤 풀린 사람들의 세계는 이해를 못하는 법이다.
[자고로 이런걸 로망이라고 합니다. 효율이나 그런걸 집어치우고 오로지 간지만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로망인겁니다!!!]
"로망? 로리망가요?"
[과태료 3000만원 받는 그거 아닙니다]
"에이, 이놈의 대한민국, 딸도 제대로 못치나. 여자들 데리고 성매매하면서 문란하게 노는 놈들을 조져야지 집에서 곱게 딸치는 놈들을 조지면 어쩌자는거야?"
[범죄자가 폭력게임 했다고 다짜고짜 게임이 나쁘다고 지랄하는 머리 나쁜 놈들이니 오죽하겠습니까?]
"아무튼 대통령 아저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자기 관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휴식이라고 해도 몸만 쉬는거지 전화로 여러가지 지시를 내리고 있는걸 보면 나름 열심히 일하는걸로 보입니다]
"몇년 전의 닭대가리보다는 일 잘해서 마음이 편-안"
[이 세계에서는 탄핵하기 전에 오지 않아서 본적은 없지만 대충 알겠습니다. 저도 남편처럼 어지간해서 대통령 욕은 잘 안하는데 그년은 욕처먹어도 쌉니다]
"닭대가리가 워낙 못해서 어지간하면 선녀 같겠는데 잘하는 사람이 오니까 좋네요"
시온은 인간의 문화를 좋아하는거지 정치 쪽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친해서 지내는게 좋기 때문에 억지로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정치관은 최악이랑 비슷해서 기왕이면 좋은 쪽을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다. 커버쳐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남는건 욕 밖에 없다.
"그러면 관저로 가볼까요?"
[그런데 루리 학생 은근히 기척 죽이는 실력이 뛰어나 보입니다. 따로 익힌 기술입니까?]
"그냥 울 오빠 딸 칠 때 몰래 놀래켜주려고 익힌건뎅"
[................]
"농담이예요"
[윤리적으로 안좋은 농담은 심장에 안좋은 농담보다 더 철렁한것 같습니다]
"씨, 나도 보는 눈이 있지 울 오빠는 초큼......"
[객관적으로 보면 백리 학생은 좋은 신랑감이긴 합니다. 위기감이 좀 부족한거 빼고는]
"사위 사랑은 장모가 한다고 하더니"
[........? 아, 그러고 보니까 생각해보면 장모님이 되는거 아닙니까?]
청와대는 대통령이 거주하면서 업무는 보는 곳인만큼 경계가 삼엄하다. 사방에 CCTV가 깔려있고 어느 누구 하나 포스 유저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하는 일이 일인만큼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를 모으고 보호와 경계를 위해서 감지계 특성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포스 유저들이 널려 있어서 감시망에는 사각이 없었다.
시온이 설령 CCTV를 비롯한 전자기기를 해킹한다 하더라도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없지만 지금의 루리는 그게 가능했다.
"이렇게 보니까 마치 암살자 같네요"
[다 죽여버리면 암살입니까]
"앗,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꼭 울 남편 같은 소리 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아주머니랑 아저씨 두분이였다면 저는 재미있었을걸요. 오빠는 스트레스 받다가 혈압 올라서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아, 다왔다"
집무실이 있는 본관에서 걸어서도 몇분 거리에 있는 관저. 마치 기와집 같은 단층 건물을 ㄱ자로 두개쯤 이어붙인 형태의 건물이다.
안에서는 루리의 기감에도 몇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대통령과 그 가족들인 모양이다.
관저에는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로 도어락이 걸려 있었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것도 아니고 따로 주문제작한거라 비밀번호가 없다면 들어가기 어렵다.
[핸드폰 충전기 꽂는 부분을 도어락에 대고 잠깐 기다려 보십시오]
"이렇게요?"
덜컥,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열렸습니다. 원래 이런건 따로 경비 시스템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잘 처리하지 않으면 귀찮은 법입니다]
"호옹이"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대통령 사는 곳답게 나름 깔끔한 실내가 보인다. 원목으로 이루어진 고풍스러운 가구들이나 장식들은 막 화려하진 않지만 실용적이면서 단아한 미가 있었다.
청와대도 일정 시설은 관광이 가능하지만 관저 같은 경우는 대통령과 그 가족들의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에 쉽사리 접근하는게 불가능하다. 난생 처음 보는 대통령 거주지에 루리가 눈을 빛냈다.
"오오오옹, 여기가 대통령들 사는 곳이구나?"
[그래봐야 대통령 기숙사 밖에 더 됩니까. 나름 크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저희 집.....아, 팔았지]
"크윽, 아주머니는 이제 집 없는 신세네요"
[........아무튼 대통령은 지금 관저 내부의 집무실에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따로 보안 설비가 없으니 들어가셔도 문제없습니다]
루리는 마치 제집마냥 대통령 관저를 거닐었다. 대통령이 산다고 펜트 하우스 같은 분위기는 아니였지만 단층임에도 불구하고 천장이 높아서 넓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옹~"
"거우얭이!!!!"
[앗, 젖소무늬 고양이! 쓰다듬어주지 않고는 못배기겠습니다!!!]
"아주머니는 댕댕이하고 놀아주세요"
[크으으윽, 저는 고양이파냐 개파냐를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모든 동물을 좋아하는겁니다!]
"애에에옹~"
동네에서도 길냥이들이 있다면 한두마리는 보일법한 흔한 무늬의 젖소 같은 얼룩 무늬의 고양이였다. 대통령이 키우는 고양이인지 루리를 보면서 냥냥거리며 울고 있었다.
루리도 고양이라면 사족을 못쓰기 때문에 목을 쓰다듬어서 귀여워 해주었다. 낮선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나름 익숙한건지 루리의 손에 얼굴을 비비면서 애교를 부린다.
[크윽, 이렇게 된 이상 저는 호랑이를 키우겠습니다. 화성에도 동물은 필요할테니.......!!!]
"아니, 그건 동물은 동물인데 맹수잖아요"
[결국 고양이랑 호랑이는 크기 차이일 뿐입니다]
"앞발 냥냥펀치 맞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차이도 있는데"
애교 부리는 고양이를 앞에 두니 루리도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십의 포스 유저로 이루어진 경호원보다 오히려 고양이 한마리가 더 유능했다.
시바, 지금 대통령이 문제냐! 고양이가 눈 앞에 있는데!!!
하지만 결국 여기에 온 목적을 수행해야 할 때였다. 루리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집무실, 집무실.......아, 핸드폰에 관저 배치도좀 띄워줘요.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파악할 수 있어도 여기 구조를 모르니까 어딘지 몰라요"
[바로 띄워 드리겠습니다]
관저 내부에도 사람은 있었다. 대통령과 그 가족들, 그리고 관저에서 일하는 직원들까지. 한명이면 곧장 그곳으로 가겠지만 구조도 모르는 곳에서 사람도 여럿 있다면 오히려 찾아가기 어렵다.
이내 시온이 보내준 관저 내부 시설 지도를 통해서 대충 찾아 들어간다. 중간에 사람과 마주칠뻔 했지만 숨어서 피했다.
"오오, 이제 대통령만 암살하고 튀면........핫?! 마인드가 진짜 어쌔신이 되어버렸다!"
[그걸 해야 했다면 몇년 정도 늦은겁니다]
"뭐, 그 사람은 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대통령 최초로 감옥가는 치욕을 받는게 더 낫지 않겠어요? 나 같으면 쪽팔려서 자살한다"
[독재자 딸년이 오죽하겠습니다. 아, 진짜 저도 어지간해서 정치인 욕은 안하는데........]
"욕먹을 사람은 욕 먹어야죠.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하고 손가락질 받을 각오 정도는 해야 하는게 당연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루리는 관저 내부의 집무실 문 앞에 섰다.
어떻게 들어가는게 좋을까 하다가 일단 루리는 노크를 하기로 했다. 매너는 지켜야지.
똑똑.
-들어오세요.
관저 직원이나 가족으로 생각한건지 안에서는 흔쾌히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루리는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힘차게 뛰었다.
폴짝, 그런 소리가 날 법하게 가볍게 뛴 루리가 방으로 들어섰다.
"입장은 점프가 개념!!!!"
"?!?!?"
낯선 목소리, 거기에 낯선 사람. 그런 사람이 난데없이 의미를 모를 말과 동시에 들어오자 이남석 대통령은 뭐라 반응해야할지 몰라 당황했다.
테러리스트라면 뭔가 낌새가 있거나 다짜고짜 제압부터 했을테지만 상대는 얼굴도 가리지 않은 (외모는)예쁜 여성이였다.
애초에 진짜 테러리스트였다면 얼굴부터 가려서 정체를 들키지 않았을텐데 아무리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도 당황스러워 할 그런 상황이였다.
"안능하제옇!!!!"
그리고 루리는 활기차게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