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9화 〉[중국 최후의 날]
루리는 시온에게 빠르게 사정설명을 했다.
그녀가 열명에 가까운 남자들의 부랄을 깨는동안 겨우 5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는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설령 시온이라 하더라도 그곳 상황을 모르는게 당연한 일이다.
"일단 제 친구 어머니 구출하러 가려는데 위치 좀 알아봐줄 수 있어요?"
[그거야 간단합니다만.......예진이는 괜찮습니까?]
"그냥 정신을 잃은거예요. 잠든거라 시간 지나면 깨어날테니까 괜찮아요"
[그런거라면 다행입니다만. 이 이야기는 절대 남편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 그르네"
루리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시온을 건드렸다고 중국을 통째로 분해시켜버린 사람이 자기 딸 같은 애가 약에 당하고 납치당할뻔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 행동할까?
[단순히 일본을 멸망시킨다는 선택지만 존재한다면 저도 별말 안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최악의 선택지가 아니니까 문제입니다]
"아, 화성 이주하는데 자리 남아 있어요?"
[루리 학생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아무튼 처음 잘못해서 얻어 맞은거랑 경고 했는데도 저지른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이가 진짜 빡쳤을 때는 겉으로 감정이 없어져서 저도 무
섭습니다]
"진짜 빨랑 화성으로 국적을 바꿔야지 안되겠다"
[아무튼 일단 예진이는 사람을 보내서 데려가겠습니다. 루리 학생의 친구......그러니까 이세영이라고 했습니까? 그 학생 어머니의 위치는 약간 걸리겠지만 금방 찾을 수 있을테니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넹, 빨리 부탁해요"
이 일은 최대한 극비에 부쳐야 했다. 최악이 만약 이 이야기를 알게 된다면 결코 좋은 꼴은 못본다.
일본이란 나라가 망하는 꼴은 그나마 낫다. 중국을 패망시킨 후에도 이런 짓을 한걸 알면 '역시 인간은 경고를 해도 안듣는구나'같은 마인드가 되어서 최악이 아니라 최흉의 대마왕으로서
일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세영이......앗, 기절했네. 하긴, 남정내 부랄 깨부수는 꼴은 좀 매니악하긴 하지!"
방금 전까지만 깨어 있었던 세영이는 마음이 놓인건지 정신줄을 놓은건지 예진이랑 나란히 테이블 아래에서 기절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카페 안으로 누군가 들어온다. 회색빛 머리칼에 꽤나 잘생긴 외형을 지닌 서양인, 하지만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있는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윽고 루리를 발견했다.
"어......그게 그러니까, 루리 학생?"
"안능하제옇!!!!"
"아, 네. 안녕하세요. 레이즈 익스페어라고 해요. 일단 시온씨 아래에서 일하고 있어요"
"앗?! 첫인사 개드립에 무덤덤하게 받아주다니!!!"
보통 루리같은 애가 아무리 예뻐도 요상하게 인사를 해오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레이즈는 그런건 익숙하다는 듯이 덤덤하게 받아 인사를 건냈다.
"워낙 주변에 괴짜들이 많아서요. 루리 학생 정도면 귀여운 편이죠"
"........헤"
그 순간 레이즈는 뭔가 늑대 앞에 선 어린양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스터 유저에 이른 루리도 레이즈 앞에서는 사실상 어린애에 불과하다. 마스터 유저라도 기술의 최정점을 찍는 델타 캐슬에 비교하면 오히려 약한 축이다. 그쪽의 기본 커리큘럼만 제대
로 이수한 레이즈는 오히려 루리보다 강하다.
다만 강하고 약하고는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총을 들어도 호랑이를 사냥하기 어려운거랑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아무튼 예진 학생은 제가 데려갈께요. 아........친구분도 기절한 모양인데 같이 데려갈까요?"
"일단 세영이네 어머니도 구출해야 하니까 데려가 주세요. 그리고 따로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할것 같은데......."
"보니까 호라이즌에는 그런쪽 설비도 잘 되어 있더라고요. 아마 괜찮을거예요"
"그럼 됐고요"
바닥에 굴러다니는 남자 아닌 남자들은 흐느끼거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불러줄 구급차는 없다. 이런 놈들 태워주려고 불렀다가 진짜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아, 그리고 아저씨......그러니까 최악 아저씨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들키면 큰일나요"
"알고 있어요. 그분이 화나면 이런 문명 하나 정도는 가볍게 쓸려나가니까요. 원래 대마왕 업무에 사감을 넣으면 안되지만 국가적으로 이런 짓을 하는 시점부터 문명 판별 대상으로 들어
가서 잘못하면 수십억이 죽어나가죠"
납치는 명백하게 범죄다. 그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납치가 합법화 되는 나라는 적어도 이 지구상에는 없다.
법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지켜지지도 않는 옛날이라면 또 모를까, 충분히 정신적으로 성장한 문명에서 납치 같은걸 했다면 최악도 충분히 소집할 껀수가 된다.
"인질 구출하는 것도 도와드릴까요?"
"엣, 말씀은 감사한데 저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괜찮아요"
"혹시 손 필요하면 따로 연락 주세요. 금방 도와 드릴께요"
"나중에 데이트라도 혹시?"
"에이, 진도 너무 빠른거 아니예요? 농담이라고 고맙네요"
"농담 아닌데"
"엑"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고 레이즈는 세영이와 예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허공에서 갈라진 차원의 틈새가 호라이즌까지 직행하는 통로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리는 핸드폰으로 온 문자를 받았다.
[인질이 있는 위치로 추정되는 곳을 따로 길찾기 어플이랑 연동해서 보내드렸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문자로 보내진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바로 화면에 나온다. 카페에서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장소였다.
"가즈아아아아!!!"
부랄까기 인형 루리나가신다아!!!
* * * *
일본에는 괴담같은 것으로 퍼져 있지만 높으신 분들이 운영하는 비합법적인 단체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비교하자면 한국의 국정원의 마티즈와 코렁탕 같은 괴담이지만.......사실 그게 어느 정도의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퍼진 것이란걸 생각한다면 그것도 똑같았다.
실제로 그들은 일본 법무성 직할로 움직이는 특별 사법 경찰로서 겉으로는 법무성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맡아 하지만 실제로는 은밀하게 해야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조직이였다.
예를 들어서 현 내각에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뭔가 비리를 발견해 조사하고 그걸 공론화 하려는 언론인이라던지.......그런 사람들을 처리하는 업무가 그들의 주된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인거냐!!!!"
일단 명목상 공무원이라 하더라도 포스 유저가 정식적인 루트로 넘어오는건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다. 그래서 촉박한 시간 내에 넘어온 인원 중에서도 포스 유저는 기껏해야 다섯 정도지
만 그들의 세운 계획에서라면 충분히 다섯이란 수로도 완벽하게 계획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계산하지 못한 변수가 있다면 상대가 루리라는 점이다.
평범한 포스 유저라면, 그것도 전투 경험도 별로 없는 여고생 포스 유저라면 건장한 성인 남성인데다 사람을 상대로 싸운 경험도 풍부한 그들이 질리가 없다.
만약 예진이가 세명 있어도 그들 한명이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 최악도 예진이에게는 따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루리는 다르다.
"똑똑똑, 같이 눈사람 만들래~?"
".........!!!!"
그들이 있는 곳은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어느 한 건물의 1층이였다.
전에 있던 가게가 망해서 새 입주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을 다른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서 빌리고 리모델링 공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칸막이를 쳐두어 임시 아지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배달 업체 직원이 아니면 전혀 오지 않을 곳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었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모두 피......."
"햣하!!! 코코로 뿅뿅할 시간이다 이 새끼들아!!! 니들은 일본인이니까 더 잘 알겠지!!!!"
콰앙!!!
바깥에 시야 차단용으로 쳐놓은 방음 칸막이를 박살내며 들어온 루리는 부서진 칸막이 파편을 후려차서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꽤나 큰 소리지만 주변에서 사람이 몰려올 걱정은 없었다. 애초에 이전 가게가 망했던 것도 터가 좋지 않아서 그런것이고 그들이 그 건물을 아지트로 삼은 것도 인적이 드물다는 것을 주
목해서 그런거니까.
"한놈, 두시기, 석삼, 너구리......어이구. 여기는 열명 정도 있네? 포스 유저는 거기 있는 아저씨들이 전부구나?"
일반인 열명, 그리고 포스 유저 네명을 포함해서 도합 열네명. 만약 카페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일반인만 18명에 포스 유저만 5명이다.
아, 어차피 숫자는 상관없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죄다 부랄이 깨질테니까.
"카페에 갔던 인원은 이미 당했나......하지만 혼자 오다니. 이만한 숫자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조씨. 그거 패배자의 대사인거 알아? 아, 일본어로 해줘야 알아 들으려나? 방사능을 너무 처먹었더니 정신이 훼까닥 돌아버린건 아니지?"
"이 조센징 년이......!!!! 마침 잘 됐군! 사사키! 오카와! 붙잡아라!!!"
이 자리에서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포스 유저가 명령하자 두명의 포스 유저가 루리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그건 루리가 바라던 바였다. 오히려 이상함을 느끼고 뒤로 뺀다면 루리도 열명이 넘는 사람이 도망치는 와중에 놓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첫번째가 세영이네 어머니를 구출하는거고 두번째가 이번 일에 연관된 놈들의 부랄을 깨버리는거다!!!
........그놈의 부랄은 좀 건너 뛰었으면 좋겠지만.
"다른 어른들이 사람이나 납치해서 여고생 협박이나 하고. 참 잘하는 짓이야. 그치?"
두명의 포스 유저들은 빠르고 위협적으로 루리에게 접근했다. 서로간의 연계도 잘 되어 있는데다 적성종이 아니라 인간을 상대하는데 특화된 움직임이였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황해서 어느 한쪽을 대처하려고 하다가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러니 참 잘했어요. 가드를 올려요"
참고로 올려야 할 가드는 머리가 아니라 사타구니다.
콰앙!!!
"크억?!?!"
압도적인 스펙 앞에서는 기술도 쓸모가 없는 법이다. 일반적인 포스 유저와 마스터 유저간에는 그런 수준 차이가 있었다.
풍압으로 중심을 무너트리고 그 사이에 사타구니 사이에 다리를 차올린다. 퍼억, 하고 뭔가 터지는 흉악한 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그 모습을 본 다른 납치범 일당들도 자신도 모르게 움츠
러들었다.
범죄자고 나발이고 남자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들이 겪어야 할 일이기도 했다.
"끄아아아아아악!!!!"
"일단 한놈"
그리고 등 뒤에서 덮쳐오는 남은 한명을 보지도 않고 몸을 틀어 뒷차기를 날린다. 정확히 특정 부위에 꽂힌 발차기는 마찬가지로 그의 남성성을 박살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리고 둘. 아, 이런거 셀 시간에 존 윅 아저씨는 3명을 더 죽이는데!!!!"
"이년이!!!!! 전부 덮쳐!!!!"
"내가 아무리 매니악해서 처음부터 윤간 플레이는 초큼 하드하지 않아? 아무렴 뭐 어때"
언제나 제정신이 아닌 루리는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 그들을 보고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진짜 총이라도 의미가 없다. 특성이 없어도 그냥 강화한 신체능력으로도 권총탄 정도는 안통하기 때문이다.
텅! 터어엉!!! 터엉!!!
한국은 총기 반입이 어렵기 때문에 대용으로 쓰이는 에어건이지만 충분히 살상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튕겨나온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소리쳤다.
"총이 안통해!!! 보통 포스 유저가 아냐!!!"
"어쩐지 선발팀이 당했더라니.......!!!"
"인질을 데려와!! 보통 방법으로는 제압할 수 없다!!!!"
"누구 맘대로!"
루리는 괜히 거창하게 난입한게 아니다.
일부러 소란을 피우면서 등장하면 인질을 지키던 인원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튀어나올게 분명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인질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지금만 하더라도 전 인원이 루리를 잡기 위에서 나와 있었다. 그렇다는 소리는 결국 인질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소리다.
최악만큼은 아니지만 건물 하나 정도로 한정하면 루리도 기감으로 인질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애초에 별 하나를 커버 가능한 최악의 기감이 무식하게 큰거다.
"셋, 넷, 다섯, 여섯!!!!"
"끄악!!!"
"우아아아악!!!"
"사, 살려줘! 살려......크아아아아아!!!!"
"이, 이런 이야기는 못들었, 끄아아아아아아악!!!!"
한두명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계속해서 부랄만 까서 으깨버리자 그제서야 그들도 현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그들을 곱게 제압할 생각이 없다. 인질을 구출해서 목적을 달성해도 그들의 남성성을 부숴서 철저하게 지옥으로 빠트려줄 것이다.
"남을 죽일 생각을 하고 시도 했으면 반대로 자기가 죽을 각오도 해야하는 법이지"
그건 사실 최악의 지론에 가까웠다. 하지만 루리도 그런 사실쯤은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죽을 각오도 없고 죽일 각오도 없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죽을 각오만 있고 죽일 각오가 없는 사람은 자살희망자에 불과하다.
죽을 각오는 없고 죽일 각오만 있는 사람은 그들과 같은 쓰레기다.
죽을 각오도 있고 죽일 각오도 되어 있는 자만이 누군가의 생명을 거둬갈 최소한의 조건을 만족한다.
"근데 아저씨들은 이런일 하면서 죽지도 않고 부랄만 으깨져서 평생 성불구자로 살다니. 얼마나 대가가 후해? 루리의 넓은 마음씨에 감사해도 좋아!!!!"
"이 미친년이.......!!!!"
말이 통하는 상대와 싸우면 나름의 협상의 여지는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말이 안통하는 광인과 싸우면.......도리어 공포만 느껴질 뿐이다.
"다음은 어떤 놈이 으깨지고 싶어? 몇명 조져보니까 이제 노하우가 쌓여서 딱 쇼크사로 안죽을 정도로만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게 만들어주면서 뭉게버릴 수 있다구?"
"히이이이익!!!"
누군가가 비명을 질렀다. 맹수를 앞에 둔 초식동물의 격렬한 반응과 같았다.
"........협상을 하자"
"협상?"
"아무리 그래도 우린 일본 공무원이야. 외교적인 문제와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가중 처벌이 들어갈 수 밖에 없지. 죄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기 전에 일이 길어지면 대학 입시에 악영향
이 있을텐데?"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무리 납치를 저질렀어도 그들은 일본 법무성 소속이다. 외교 문제로 번질 수 밖에 없으며 아무리 한국이 백리 편을 들어서 루리를 도와줘도 일은 길어지는 법
이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간과하고 있었다.
"4딸라!"
"........?"
루리는 여전히 제정신이 아니라는걸.
"4딸라!!!!!"
루리는 아까보다도 더욱 맹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납치범들은 이제 자기 아들내미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