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중국 최후의 날]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였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할지라도 그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세운 작전은 거의 완벽했다. 본인이 아니라 그 친구를 노려서 미끼로 삼아 준비된 장소로 불러내고, 사장을 구슬려서 빌린 가게에서 손님으로 위장시킨 다른 사람들을 두고 커피에 약을 타서 잠을 재운 후에 비밀 장소로 옮긴다.
도심 한가운데서 행하는 납치지만 이송 루트가 CCTV관련 문제도 전부 해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루리는 평범한 포스 유저가 아니란거.
커피에 든 수면제는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 그 예시로 예진이는 잠에 들어 있었다. 평범한 포스 유저에게는 충분히 효과가 있는 분량의 수면제라는 뜻이다.
하지만 루리는 이제 마스터유저였다. 얼마 전 백리와 잡담 삼아서 이야기 하던 복선이 여기서 터진 것이다!!!!
포스 유저만 하더라도 일반인의 치사량의 약을 써야 하는데, 마스터 유저라면 커피에 탄 수준이 아니라 그냥 그 병에 약을 통째로 들이마셔도 효과가 없을게 뻔한 일이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엌, 부랄 깨지는 소리 잘 들었고요. 다음 사람?"
"어, 어떻게!!!!"
"쏴, 쏴라!!!!!"
당황해하는 납치범들, 하지만 그들은 제빠르게 품 안의 주머니에서 총기를 꺼내들었다. 형태는 권총을 띄어서 휴대하기 간편했으나 안에 든건 총알이 아니라 마취제였다.
총구를 루리에게 겨누고 쏜다. 화약으로 격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에어건을 개조한 것인지 바람 새는 소리가 들린다.
투웅!!!
하지만 마취탄은 루리의 몸에 한발도 박히지 않았다. 애초에 코끼리를 재울 수준의 마취탄을 쏴도 의미 없지만.
"이 애미 뒤진 쉬벌 새끼들이!!!! 남의 친구한테 무슨 짓을 한겨!!!!!!"
루리가 쓰러진건 애초에 잠들은 척 한 것이였다. 그들이 했던 말은 대충 다 들었으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았다.
이세영은 루리가 고등학교 동안 사귄 친구다. 최악처럼 관상 보는 능력은 없어도 적어도 같이 지내면서 돈 따위에 친구를 팔아넘길 사람은 아니란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족이 납치되어서 협박당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루리 자신도 가족이 납치 당해서 협박 당하면 겉으로는 협박범 말에 따라줄 판에 다른 사람은 오죽할까. 상황이 최악의 상황도 아니니 루리는 세영에게 책임을 물을 생각도 없었다.
"루, 루리야!!!"
"넌 일단 입 다물고 예진이랑 테이블 밑에서 숨어 있어!!! 이야기는 나중에 들을테니까!!!"
루리가 세영이와 예진이의 옷깃을 덥석 잡아 그대로 테이블 아래로 내던졌다.
평소에 장난스러웠던 루리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성격 좋던 사람이 분노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크게 분노하듯이, 지금의 루리도 상대의 만행에 선악 판단할 필요도 없이 순수하게 화를 냈다.
납치도, 협박도, 약물도 전부 선을 넘은 범죄 행위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상대를 죽인다면 루리도 과실치사 혐의에 더불어서 포스 유저 특별법 때문에 과중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짓까지 했는데 부랄 날아간 정도로 태클걸지는 않겠지?"
살인은 명백한 범죄이지만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의 상해는 용납된다.
그렇지만 곱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이런 짓을 한 사람이 고작 몇년 징역을 살다가 나오는 꼴은 루리도 못본다.
최소한 남은 인생을 쓸쓸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줄 생각이다.
"느그들 거시기랑 작별 인사 해라! 이제 앞으로 부랄 친구란 말 쓸 수 없도록 만들어줄거니까!!!!"
"마, 마스터 유저 수준이라니!!! 이런 말은 없었잖아!!!!"
"사, 살려......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콰직!!!!!
제일 가까히 있던 남자의 손목을 붙잡아 도망 못치게 만들고 그대로 다시 사타구니를 힘차게 후려찼다. 뭔가 봉지 안에 있는 내용물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에 젖은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땅을 구른다.
남자라면 누구나 소름돋을 모습에 루리를 둘러싼 납치범 일당들이 덜덜 떨었다.
사람을 죽이는거나 납치하는건 익숙해도 눈 앞에서 대놓고 성불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하는 마스터 유저 수준의 포스 유저를 앞에 두고 침착함을 유지한다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실력 있다는 소리다.
그렇지만 실력이 어쩌고 하기 전에 루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했다.
"거기 알바 어쩌고 아저씨. 당장 나와"
"큭........"
카운터 뒤에 숨어 있던 알바생으로 위장한 납치범 일당이 루리의 목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저씨가 이놈들 책임자지? 포스 유저인거 다 아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 부랄 다 까버리기 전에 나오지?"
"도대체 어떻게.......이런 수준의 포스 유저란 정보는 없었는데!!!"
"나도 얼마 전에 그런거야. 한창 사춘기 올 때라서 요즘 애들은 폭풍성장하고 막 그럼. 3차 성징이라고 생각해"
루리는 갓-루리루리라는 최상위 신격의 정보 수집 단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능과 능력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약하다가도 채널만 연결이 잘 된다면 한번에 실력을 뛰어넘을 수 있다. 신의 권속이 약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그나마도 루리가 마스터 유저 수준에 이른건 겨우 얼마 전의 일이다. 난데없이 꿈속 여행을 갔다가 갓-루리루리를 비롯한 전 차원의 다른 루리들과 네트워크 연결이 되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경지가 높아진다는건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의 루리를 막으려면 같은 마스터 유저가 와야 가능했다.
"루리양, 일단 뭔가 오해가 있는것 같은데......."
"이 지경까지 와서 오해라고 지껄이고 싶어? 좆 같은 소리하는거 보니까 입에 좆이 달린 모양인데 아랫도리에 달린건 필요 없겠지?"
"........!!!"
빠른 가속. 루리는 가볍게 발목의 힘만으로 가속해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서운 속도다.
납치 계획에는 많은 포스 유저를 동원할 수 없었다. 밀항이 아닌 이상 정식적인루트로 입국하기에는 절차가 복잡해서 고작해야 몇명이 최대였다.
그나마 납치 자체에도 동원된 포스 유저는 눈 앞에 한명. 만약 다수의 포스 유저가 모여 있으면 의심을 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앙!!!!
루리가 휘두른 주먹에 카운터가 박살난다. 뒤에 걸려 있던 찬장의 커피와 잔들이쏟아져 박살나고 그 한가운데 있던 그는 황급히 도약해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루리가 그걸 놓쳐줄 생각은 없었다.
"오늘 이 가게 안에 있는 남자는 멀쩡히 못나걸거야"
가게 안에 손님은 전부 납치범 일당들이였다. 숫자는 여덞명 정도. 개중에 이미 루리가 해치운 두명을 빼면 남은건 여섯명 정도다. 포스 유저인 위장 알바생을 포함하면 일곱이고.
수적으로 보면 지극히 불리한 상황이다. 루리는 여자고 상대는 건장한 성인 남성 일곱이 상대다.
그런데 고양이가 일곱이 몰려든다고 호랑이를 이길 수 있던가?
"으아아아아아!!!!!"
우드득!!!!
도약해서 도망치려던 위장 알바생의 발목을 붙잡았다. 고작 악력만으로 힘을 주자 그의 발목뼈가 가볍게 으스러졌다.
그를 빙빙 휘두르다가 이윽고 다른 납치범들에게 내던졌다. 루리가 질 가능성은 없지만 인질을 붙잡히면 위험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투 능력없는 세영이와 정신을 잃은 예진이를 보호해야 했다.
보통 인질을 지키면서 싸우는건 힘들지만.......물론 루리에게는 충분히 가능하다.
"도, 도망쳐!!! 저건 그냥 여고생이 아니야!!!!"
"끄아아아아악!!!!"
"햣하!!! 오물은 거세다!!!!"
카페 안은 블라인드가 쳐져 있어서 바깥의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원래 목적은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그 목적이 약간 바뀌었다.
남자에게는 지옥같은 참상이 카페 안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죄다 피로 질척여진 사타구니를 움켜쥐면서 입에 피거품을 물고 있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죄수 같았다.
"자, 잠깐만!!! 그 아이! 이러면 네 친구의 어머니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
한순간 루리의 행동이 멈추었다. 남은건 고작해야 세명. 포스 유저인 그를 포함해서 겨우 세명 밖에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루리와 예진이를 비밀 장소까지 이송해서 따로 교섭이란 이름의 협박을 할 것이였는데 계획이 틀어져도 최악으로 틀어져 버렸다.
"어, 엄마? 우리 엄마........"
슬쩍 루리가 뒤를 돌아보자 참혹한 상황 속에서 정신을 차린 세영이가 중얼거렸다.
"할 수나 있고? 니들이 인질을 잡고 있어서 내가 고작 이 정도로 끝내는거지, 만약 인질을 해치면 내가 어떻게 나올거라고 생각해?"
"그, 그건........"
"니들 일본인이지? 나름 한국어 연습 잘 해서 원어민 수준으로 하긴 하는데 말이야. 치열이 일본인 특유의 그거더라? 한두명이면 우연이니 싶겠지만 죄다 그 모양이라서 파악했거든"
".......!!!"
"사실은 구라야. 어차피 주변 국가 중에서 이런짓 할만한 사람들 생각을 해봤는데. 개중에 일본이 제일 유력해서. 오빠한테 만나자고 했던게 지금 하는 짓이랑 관련 있지?"
"..........."
"아닌척 해봐야 늦었어. 이미 놀라는 반응으로 확증을 얻었으니까. 니들은 날 아주 오빠처럼 개호구로 아는구나?"
루리는 바보가 아니다.
애초에 성적이 전국에서 상위권인 이과생이다. 단지 똑똑한척 하는 것보다 바보처럼 구는 것이 사람들이랑 친하게지내는데 더 좋기 때문에 그러는 이유가 반이다. 나머지 반은 그냥 천성이지만.
아무튼 빠른 통찰을 통해서 상대방의 배후를 파악했다. 상대방도 나름 이런 일의 프로라고 하지만.......자기 부랄이 까이기 직전의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 산에 가서 도를 닦았지 애초애 이런 일 안한다.
"세영이나 아주머니도 구할거야. 애초에 니들에게 뒤는 없어. 그러니까 지금 곱게 말 들을래, 아니면 부랄 까인 뒤에 말 들을래?"
".......마, 만약 순순히 응한다면?"
"감옥 가는건 변하지 않겠지만 최소한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울 오빠 명예 걸고 약속할께"
"........."
아무리 국가를 위한다느니 어떤 명예를 들먹여도 자기 남성성 앞에서는 크게 기울여지지 않는 법이다. 명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많지만 명예를 위해 거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항복하겠다"
"그래, 잘 생각 했어"
양손을 펼쳐들어서 항복의 제스쳐를 취한 위장 알바생의 모습에 루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리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항복했다고 끝난게 아니라 구속한 후에야 일이 끝나기 때문이다.
"아, 맞다 그리고 할말이 있는데. 부랄 안까겠다고 했잖아?"
"...........?"
"그건 거짓말이다"
"윽?! 그거 코만도의......?!"
일본인이니 딱 맞게 일본 쪽 개드립을 쳐주면서 루리가 다리를 걷어차 올렸다. 그대로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뭔가가 터진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어서 통각은 늦게 따라온다. 원래 큰 고통일수록 신경이 전해지는 속도는 느린 법이다.
이내 그는 세상이 무너져도 지르지 않을법한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끄우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울 오빠 명예만큼 쓰잘데기 없는 것도 없지. 떨이로 팔아넘기면 그만이야"
이윽고 루리는 남은 두사람 마저도 거시기를 후려차 불알을 으깨버렸다.
카페 안에는 이제 남은거라고는 루리를 비롯한 세사람과 남자가 아닌 남자 몇명만이 남게 되었다.
"흠, tag : ball busting.......앗, 이게아니지"
루리는 유일한 포스 유저인 위장 알바생 납치범의 바지를 뒤졌다. 피와 요상한 채액으로 뒤섞여 찝찝하지만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 하나를 발견했다.
대포폰이라도 상관없다. 보고나 그런걸 위해서 번호 한두개쯤은 등록되어 있을테니까.
루리는 통화목록을 뒤져보다가 가장 최근에 연락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번 이어지다가 연결되었다. 상대방은 '여보세요'가 아니라 '모시모시(もしもし)'로 전화를 받았다.
"나는 너희들이 누군지 몰라. 그래도 뭘 원하는지는 대충 알겠어. 근데 들어줄 생각은 없거든. 몇번 해보니까 꽤 재미있는 재주를 익혀서 말이야. 지금 당장 세영이네 어머니를 놔준다면 여기서 그만 두겠어. 하지만 그러지 않겠다면.......너희를 찾을거야. 찾아서 너희들 부랄을 깨버릴거야"
[..........]
"아, 이 새끼들 드립 받아칠줄도 모르는 예의 없는 것들이네? 오케이, 니들 아들내미랑 작별 인사 해라"
그리고 뚝, 하고 끊었다. 사실 정보를 얻어낼 상태가 아닌 납치범들에게서 인질의 위치를 알아내는건 어렵지만.......
루리는 이번에는 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시온 아주머니?"
루리는 여기서 치트키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