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중국 최후의 날]
내가 알리언 박사에게 주먹을 휘둘러 권압으로 놈을 해치우려고 하자, 보이지 않는 힘이 그의 몸을 낚아채 그대로 고기완자 같은 생체 컴퓨터 쪽으로 데려갔다.
아무래도 시온의 추적을 계속 방해하던 영자 컴퓨터가 바로 이건가보다. 놈이 뿜어내는 강렬한 기파는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도 짓뭉겔 정도로 거센 압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만약 역장이 없었더라면 놈의 기파에 움직이는것도 힘들었을것 같다.
"가이아 포스랑 라프 에너지의 융합을 끝낸 모양이다? 이게 완전체냐?"
"결국 문제는 가이아 포스와 라프 에너지의 융합에서 발생하는 세포의 괴사였으니까요. 이건 괜히 만들어진게 아닙니다. 라쿤맨 2호......그러니까 하백리씨의 도움도 받았죠"
"뭐?"
"아는 사람이니까 들으셨겠죠? 한강에서 나왔던 개구리 원종 기억하십니까?"
예전에 백리가 루리랑 기분전환삼아 한강으로 놀러갔을 때 나왔던 개구리 원종. 지금의 백리는 초재생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근원은 개구리 원종의 재생 특성이다.
내가 여태까지 본 것으로 가이아 포스와 라프 에너지의 융합에 필요한건 재생 능력도 필요하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부정적인 감정도 필요하다. 이전에 영국에서 봤던 테러리스트 보스처럼 부정적인 감정이 라프 에너지를 더욱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두가지 이능력을 합성하면서 생기는 반발을 견딜 능력은 있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아, 그래서 안죽이고 살려서 쓴거구나?"
"이해했습니까?"
"너 진짜 성격 더럽네"
아까 본 유리관 안에 있던 포스 유저들, 그들은 죽지 않고 숨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몸뚱이가 필요한거면 그저 시체만 남겨서 써먹으면 될것을 왜 귀찮게 그런짓을 하나 했더니 놈은 숨을 붙인 포스 유저들을 통해서 지속적인 가이아 포스를 공급받음과 동시에 그들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널 싫어하는거야. 사람 목숨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게 당신이 할 말입니까? 중국에서 수천만을 죽인 주제에? 제가 여태까지 20년 넘게 이 행성에서 살아오면서 실험으로 죽인 사람들도 당신보단 훨씬 적을겁니다"
"난 그나마 내가 등신 새끼란거 알고 있거든? 근데 넌?"
나는 사람은 죽이지만 내가 잘못했다는 자각은 있다.
내 욕심을 죽였고 내 의지로 죽였다. 그게 잘못한 것이란걸 알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할거다. 물론 용서받을 생각도 없고.
근데 알리언 박사 저 새끼는 자기가 사람 죽인 일이 대의라고 지껄이면서 합리화시키고 있다. 그 말을 죽은 사람들한테 해보면 무슨 소리가 날아올지 궁금해지는데?
자기가 한 짓을 온전히 받아들이는거랑 회피하는게 같냐? 똥 묻은 내가 겨 묻는 놈한테 뭐라 하는 격이지만 그래도 당당한 쪽이 낫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곱게 뒤질 생각은 말아라. 시체도 남기지 않을거니까 그거랑 같이 산산조각을 내주마"
나는 주먹을 쥐고 다시금 주먹을 날렸다. 이번에는 단순히 권압을 날리는게 아니라 공간을 격하는 한층 더 강하고 높은 개념의 공격이였다.
터어엉!!
하지만 그 공격도 허공에서 막혔다. 거의 아파트 4,5층 크기만한 덩치라서 박살내기 쉬울줄 알았는데 놈의 전신에서 흐르는 역장이 두텁다.
순도가 문제가 아니라 두께의 문제이기 때문에 상위의 개념이 아니라 힘으로 박살내야 한다. 물론 상위 개념을 통한 공격도 충분히 들어가겠지만 어중간한 힘으로는 의미가 없다.
"출력 하나만큼은 인정해줄께"
어지간한 초월자 수준의, 그러니까 백리의 대충 10배 정도 되는 출력이네.
"근데 힘으로 하면 나도 안지거든?"
콰콰콰콰!!!!
내 전신에서 멸룡이 흘러넘친다. 인피니티 포스 코어의 출력을 멸룡으로 전환하여 뿜어내는 것이다. 그러자 사방의 모든 물질이 소멸되기 시작했다.
멸룡은 증오를 기반으로 하여 모든 물질을 소멸시키는 힘. 설령 이능력이라 하더라도 어중간한 힘으로 멸룡 앞에서는 버틸 수 없다. 멸룡을 견딜 수 있는건 오로지 상위 개념으로 인한 공격이나 동급의 이능력 밖에 없다!!!
"나선멸룡(螺旋滅龍)!!!"
콰아아아아!!!!
두마리의 용이 형태를 이루고 내 팔을 휘감듯 나선을 이루어지면서 주먹을 내지름과 동시에 뻗어져 나갔다.
지상에서 쓰면 보통은 협곡을 만들어내는 정신나간 기술! 그치만 생각해보면 이건 조금 강한 평타다!!!
이윽고 멸룡이 놈의 역장과 충돌했다. 내가 멸룡을 뿜어낸걸로 조명이 죄다 박살난 지하 시설이 한순간에 밝아질 정도의 격렬한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인근 지형이 붕괴한다.
"이곳은 미들타운 인근 지하 시설입니다! 그렇게 날뛰면 지상의 사람들이 죽어나갈텐데요?"
"내가 그런거 걱정하는 사람으로 보여? 나는 인질을 구출하기 보다는 복수를 확실하게 해주는 파라서 말이야!!!!"
나도 저놈이랑 똑같이 다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는것 같지만 다르다. 최소한 나는 자기합리화는 안하니까.
잘못한 것에 변명을 하는 것은 추한거다. 잘못을 했다면 깔끔하게 받아들이고 차라리 용서를 빌어라.
"역장은 좀 깍아낸듯 싶지만 뚫는건 무리였나? 저번 프로메테우스처럼 공간계 역장이라도 가지고 있는거구나?"
"글쎄, 어떨까요?"
쿠구구!!!
붕괴하는 지하 시설에서 거대한 고깃덩어리가 부상하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지반에서 둥둥 떠서 이제는 이동마저 자유로운 그것은 그대로 나를 향해서 날아왔다.
강력한 역장을 두르고 있는 놈은 단순한 몸통박치기라도 훌륭한 공격수단이 된다. 오히려 내 멸룡과 놈의 역장이 충돌하면서 조금씩이지만 멸룡이 깍여나가고 있었다.
"이놈 새끼 출력이 꽤 되는데?"
"이건 제가 다섯 사도들을 격퇴시키기 위한 최후의 무기니까요!!! 아직 완성도는 모자라지만 충분한 위력은 낼 수 있습니다!!! 고작 당신 정도로 고생하면 여태까지 연구한 보람이 없죠!"
"그래? 그러면 그 보람은 폐기물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려라"
콰아아아아아아!!!!
조금 더 인피티니 포스 코어의 출력을 올렸다. 그러나 깍여나가던 멸룡은 다시금 꿈틀거리고 오히려 그 여파에 의해 고깃덩어리가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크윽.......!!"
"겨우 이걸로 다섯 사도인지 뭔지 하는 놈들을 족치려고? 야, 니들 문명 수준 알만한데?"
"아직 멀었습니다!!!"
쿠우웅!!!
묵직한 충격이 나를 덮친다. 고깃덩어리가 발하는 염동력이 수천톤의 무게가 되어 나를 후려쳤다.
한번이 아니다, 몇번이고 계속해서 나를 후려치기 때문에 무너지던 지하 시설의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었다.
"일단 장소는 좀 바꾸자. 이런 곳에서 싸우다가 파묻히는건 빠져나가기 귀찮다고"
위로는 수 킬로미터의 지층이 있지만 나는 예전에도 비슷한걸 한적이 있다.
나는 주먹을 쥐고 휘두르면서 힘을 집중했다.
의지근원론에 의거하여, 이 주먹에 별의 무게를 담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
"성제붕권(星帝崩拳)"
쩌어어어어엉!!!!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깃덩어리의 역장이 몇겹이나 박살나는 소리도 함께 들리면서 정통으로 놈의 몸에 꽂힌다.
내가 내지른 일격에는 한순간이지만 별의 무게를 담았다. 못해도 몇십조톤이란 질량이 겨우 주먹 하나에 담겨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물리법칙상 그 정도의 질량을 주먹 하나에 담으려면 블랙홀이 생기겠지만 개념을 이해하고 의지근원론을 체득하면 이런 비상식적인 것도 가능해진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구!!!!!
내가 날린 주먹의 여파는 놈을 그대로 밀어올렸다. 수 킬로미터의 지층도 문제가 되지 않고 고깃덩어리를 그대로 지상까지 밀어붙여서 날려버린다.
나는 빠르게 날아올라 놈을 뒤쫒았다. 단순이 처맞고 날아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놈의 속도는 음속의 몇배에 달한다.
콰아아아앙!!!!
이윽고 놈이 지상에 도달했다. 마치 폭발하듯 튀어올라 그것도 모자라 저 하늘까지 날아간다.
성제붕권의 여파로 주변 도시 일부가 박살난 모양이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별 피해 없이 잡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지하에서 싸우면 그대로 도시 단위의 싱크홀 때문에 대판 싸워도 괜찮은 필드가 필요했으니까.
하늘이라면 충분히 좋은 장소다. 발판이 없어서 힘들것 같지만 나는 능력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크윽.......진짜 무식한 힘이군요. 데이터는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별의 질량을 담아서 그대로 때려박았는데 멀쩡한거 보면 역장 진짜 단단하네"
성제붕권은 개념을 담은 공격이기는 하지만 물리적인 데미지가 훨씬 강하다.
그런 공격에 멀쩡하다는건 역장의 공간 간섭력이 꽤나 높다는걸 의미했다. 아마 중국에 있던 프로메테우스보다 훨씬 더 강할 것이다.
"여기라면 여파 신경 안쓰고 싸울 수 있겠지"
방금 전 까지의 배경이 지하 수 킬로미터였다면 지금은 지상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였다.
공기조차 희박하고 온도도 낮다. 아마도 성층권이나 중간권 중에서 한 곳까지 날아온 모양인데 지상까지의 거리를 보니까 성층권은 아닌걸로 보인다.
"모순적이네요. 다른 사람이 죽는건 상관 없지만 일부러 여기까지 날려서 싸우겠다니"
"기왕 하는거 겸사겸사지. 사람이 더 죽는 쪽과 덜 죽는 쪽을 고르라면 당연히 덜 죽는 쪽이니까"
"인간다우시군요"
"그러면 너는 어때?"
".........."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실험체로 써먹는 조직의 대표에게 인간성을 묻는다.
과연 그런 사람에게라도 인간성은 남아 있을까?
내가 해본 결과로는.......일단 대답은 예스. 결국 인간성은 남아 있다.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다는건 본인도 잘못했다는걸 안다는 증거고 그건 곧 인간성으로 이어진다.
인간성이란건 애매한 주제에 결국 무한히 나눠도 아주 조금은 남아 있는 이상한 것이다. 지금의 나도 인간성이 있냐고 물으면 대답을 고민할 정도로.
"이야기는 끝내고 하던거 마저 하자고"
"사실 이쪽도 시간 끌기는 잘 한것 같아서 좋군요. 공간 간섭계 데이터 해석이 막 끝났거든요"
"호오?"
키이잉!!!
고깃덩이의 역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하연과 같은, 그리고 중국에서 보았던 프로메테우스와 같은 공간참을 날렸다.
상대방의 방어력을 무시하고 개념 방어가 아닌 모든 것을 베어내는 공간참은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이다. 더군다나 보이지도 않고 어지간한 기술로는 감지도 할 수 없다면 오로지 개인의 감 밖에 믿을게 없는 무시무시한 것이지.
카가가각!!!
나는 손을 뻗어 공간참을 그대로 막아냈다. 단순한 역장이 아니라 멸룡을 집중해서 막아낸 것이다.
"기능 참 많네. 뭐 좀 더 쌘건 없냐?"
"이런게 있죠"
키잉! 키잉! 키이이잉!!!!
연발로 계속해서 놈 주위에 무언가가 위협적으로 떨리기 시작한다. 마치 백리가 쓰던 수트에 달려있던 보이드 블래스터와 같이 공간을 진동시켜서 그 범위 안에 있는 모든 물질을 분해시켜버리는 응용 기술이였다.
거의 반경 수십미터를 커버하는 광범위한 공격이였다. 공간참보다 위력은 덜할지라도 범위가 훨씬 넓기 때문에 더욱 까다롭다.
"자꾸 귀찮은걸 쓰네"
키이이잉!!!
하지만 결국에는 내 역장을 뚫지 못한다.
내 역장은 내 마지막 보루이자 최고의 방어막이자 최고의 공격수단이다. 능력은 보통 자신의 몸에서 가까울수록 그 효과가 크다. 하물며 내 몸 바로 위에 시전하는데 그 위력은 오죽할까.
"네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마지막은 미련 없이 가는게 좋겠지"
누구한테 시비를 걸고 그 사이에는 터무니 없는 격차가 있기 때문에 쓸데없는 발버둥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생각이다.
날 이용한 것에 대한 분노도 있지만 저런 타입은 자기가 해왔던 것이 쓸모가 없단 것을 깨달아야 후회를 한다. 그렇다면 나도 진심을 보여서 그 차이를 알려주어야 끝마무리는 쉽게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연민도 있다. 환경 탓을 하면서 범죄를 합리화 시키려는 사람도 있지만.......생계형 범죄라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변명 따위가 아니라 정말로 못먹어서 내일 당장 굶어 죽을것 같은 사람이 라면 하나 훔치는 일을 그런걸 뜻하니까.
만약 그가 지구 같은 평범한 차원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머리는 좋을테니 지금처럼 박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연민은 가지지만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없다.
"내 이름은 최악. 최흉의 대마왕직을 받은 초월자다"
"뭐를........"
"세계가 넓다는걸 알고 무너져라"
파지지직!!!
내 전신에서 멸룡이 아닌 전격이 몰아친다. 전기는 보통 청백색이나 픽션에서는 청색, 혹은 금색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뿜어내는 전격도 마찬가지다. 내 전신을 휘감은 전격은 금색. 황금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아름다운 금색이였다. 자연물에 의지가 담기면 이런 변화가 생긴다.
아까 사용한 성제붕권(星帝崩拳), 그것은 유토피아를 본떠 만든 기술이다.
그리고 예전에 사용한 적 있는 암제붕권(暗帝崩拳). 그건 팬텀을 본뜬 기술이였다.
흉제붕권(凶帝崩拳)은 나를 나타내는 필살기. 그리고 이건.......
한때 최강이였던 썬더 로드이자 심판의 절대자. 그레이를 본뜬 기술이다.
"뇌제붕권(雷帝崩拳)"
터어어어어어어엉!!!!!
공기가 비명을 지르고 공간은 단말마를 지를 사이도 없이 찢겨나간다.
고깃덩어리의 역장은 내 주먹 앞에서 종잇장과 다를바가 없었다.
놈의 몸뚱이에 박혀 있던 포스 유저들의 몸뚱이가 든 유리관들은 그대로 터져나가 안에 있던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으며 심판의 전격이 전신을 지져서 재생 특성조차 회복시키지 못할 정도로 영혼에 상흔을 남긴다.
그리고 뒤늦게 물리적인 충격이 닿는다. 충격파가 수십킬로미터 아래의 지상까지 전해질 정도로 흉악한 물리력이 놈의 몸뚱이를 후려갈겼다.
"크어어어어어어억?!?!"
알리언 박사는 그 여파에 휘말려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아무 능력도 없는 무능력자다. 포스 유저도 아니고 적성종도 아니며, 중국에서 봤던 프로메테우스처럼 목숨을 포기하고 힘을 얻은 것도 아니다.
갈라진 공간의 틈새로 놈은 화성까지 날아가 처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