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6화 〉[중국 최후의 날]
호주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고 장점과 단점이 있지만, 그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장점 하나만 꼽자면 소고기 값이 싸다는 점이다.
오히려 호주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비싸다. 하루 세끼 소고기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값이 싸서 그냥 나오는 스테이크도 가격에 비해 양이 장난 아니다.
돈? 핸드폰이 있는데 돈 걱정이 뭐가 있냐. 요즘 시대에 카드 안되는 가게 찾는게 더 어렵고 카드가 된다면 핸드폰 결제 서비스도 될테니 걱정 없다. 단지 나중에 여기서 썼다고 들키면 소란스러워지는게 귀찮은거지.
"주문하신 스테이크 나왔습니다"
"아, 고마워요"
"더 필요하신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내가 도착한 남쪽의 작은 도시는 그렇게 발전된 곳은 아닌 한적한 곳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마을과 도시의 중간정도, 큰 마을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이다.
마치 서양 시골에 온 듯한 느낌이다. 그나마 여기가 번화가 같은 곳이고......하기사, 마을 바깥에서 원종들이 돌아다니는 곳인데 그렇게 자연이 있는 곳 근처가 발전하고 있을리 없지.
하지만 있을건 대강 다 있었다. 개중에 나름 백화점이라고 하나 있긴 있는데 그냥 동네 쇼핑몰 수준이다. 한 5층 크기의 건물에 브랜드 몇개 들어선 정도.
여기 인구수 생각하면 그것도 크긴 하겠지. 아무튼 나는 밥이나 먹어야겠다.
"음, 냄새 개쩐다"
자고로 고기는 갓 구워서 뜨끈뜨끈하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기를 호쾌하게 썰어서 먹어야지!!!
양념 갈비 같은 양념을 한 쪽도 맛은 있지만 그건 단거 좋아하는 시온 취향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고기 본연의 맛을 좋아해서 손을 많이 쓰지 않은 쪽을 좋아한다.
두툼하고 기름기가 흐르는 만화에서 잘 나오는 T자 뼈다귀 달려있는 그런 스테이크.......아, 톰과 제리에 나오는거면 뼈가 작고 조그마한 것을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 원본인 진짜 T본 스테이크는 뼈가 크다.
나도 덩치가 있어서 손이 큰데도 내 손을 펼친 것보다 큰 스케이크가 눈 앞에 있다. 따로 소스는 없고 소금과 약간의 허브만 사용하여 구워서 소고기 특유의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올라온다.
아, 이 고소한 냄새......단순히 굽기만 한건 아니다. 버터도 약간 들어갔는걸. 크으으!!! 안그래도 기름진데 거기에 버터라니! 내가 버터 좋아하는거 어떻게 알고!!!
나도 가끔 시온이랑 같이 간장 버터 계란밥 해먹고 그런다. 은근히 맛있거든.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자른다. 끝 부분을 적당히 잘라서 그대로 한입 먹으니 풍부한 맛이 느껴진다.
으음, 값도 싼데다 이렇게 맛있기도 하다니, 막 한우 꽃등심이나 와규 같은 기름기는 없지만 오히려 담백한 느낌이 더욱 좋다. 뭐든 과하면 안좋은 법이야.
"이 집 고기 맛있네"
앗, 방금 뭔가 정모에서 할법한 대사였어.
간만에 바깥에서 먹는 밥에 고기 다운 고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신나게 밥을 먹었다. 그리 작은 크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전부 다 먹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고기만 먹어서 느끼할것 같았지만 가니쉬로 나온 구운 야채도 종종 먹으니까 괜찮더라. 음, 나쁘진 않았어.
한끼 든든하게 먹고 커피까지 시켜서 잠깐 쉬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나오는게 아니라 가게의 TV의 화면으로 나오는 뉴스를 보면서 현 정세를 파악해 본다.
해외 뉴스 채널인지 나오는 화면은 호주가 아니라 중국이였다. 호주에서 파견된 기자가 찍는 장소는 중국의 천안문 광장이였다.
거기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공산당 조지는 국민들은 시위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였다.
[현재 우리 중화 인민 공화국은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많은 인민들이 죽고 다치게 될 것입니다! 공산당원들은 완웅남과의 조건에 따라 자진해서 목
숨을 바친다 하더라도 그 뒤의 빈 자리를 매울 사람이 필요합니다! 저희 민주 촉진회는 여러분들의 지지만 있다면 그 자리를 채울 뜻이 있습니다!!!]
아아, 민주당인가. 중국에도 민주당은 있긴 있었지.
다만 그 영향력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애초에 2000석이 넘는 자리에 비해 민주당의 자리는 400석 정도에 불과한 수준이니까. 그나마 그 중에서도 파벌이 또 갈린다.
그래, 그렇게 잘 해라. 그런 식으로 사람들끼리, 파벌끼리 가르고 놀고 지랄하면 중국은 여러개로 갈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과 다르게 다른 의견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분! 인민 여러분!! 현재 완웅남은 한국에서 구속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 그의 만행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중국을 망치는 일에 동조해서는 안됩니다! 모두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하나된 중국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현실을 보십시오!!!]
뭐지? 중국의 태극기 부대인가? 현실을 봐야하는건 댁 같은데.
기존의 권력자가 싸그리 죽어나가니 온갖 븅신들도 튀어나오는 법이다.
중국에는 공산당, 민주당, 그리고 무소속 정당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홍콩이나 대만 쪽 의석도 있는데 그 사람들은 자기 나라 독립을 할테니 냅두고.
공산당을 조졌으니 남은건 민주당과 무소속. 하지만 그들만으로는 원래 있던 공산당의 자리를 차지하기는 부족하다.
설령 채울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독립을 긍정했으니 독립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놈들이 어디 있겠어? 도시 단위로 할 판에 그걸 막는건 무리다.
게다가 내가 군대란 군대는 어지간히 다 조져놔서 무력으로 하려고 해도 힘들거다. 그리고 이미 중국인들은 레볼루숑! 하고 혁명을 배워버렸다고.
돌아가는 길에 현실을 알려줘야겠다. 저런 놈들에게 동조하는게 많을거라고 생각은 안하는데 중국이 중국인 만큼 수는 많으니 1퍼센트만 동조해도 천만명이니까 귀찮아질것 같다.
사전에 쓸어버려야 나중에 귀찮지 않지.
"뭐야, 어디서 냄새 안나나?"
"무슨 냄새?"
"중국인 냄새 말이야!!!"
커피 마시면서 뉴스 보고 있을 무렵에, 누군가가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싶어서 가게 안을 둘러봤지만 가게 안의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중국인 어쩌고 하면서 인종차별하면 대상이 정해져 있는건 당연하겠지. 일단 무시하고 커피나 마셨다.
[현재 중국은 많은 정치인들이 각자의 공약을 펼치며 국민의 지지를 받는 와중에 한편으로는 파괴된 도시에 대한 구조 작업과 복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정치인이 아니라 내가 박살낸 도시를 복구하는 작업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너무 철저하게 박살내서 청소하기는 오히려 쉬울거다.
뉴스만 보고 있는데 아까 그 두 사람은 그런 나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내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자리에서 일어나 위협적이고 조롱거리는 말투로 물어온다.
"이봐, 중국인. 말 못 들었나? 냄새 난다고. 꺼져!!!"
"거 동양인이면 전부 중국인으로 아나봐?"
"지금 같은 상황에 해외에 나와 있는 동양인은 뻔하지. 그래, 죽기 싫어서 이런 곳까지 도망쳐 기어 들어왔나?"
"하하하! 꽁무니 빼는 솜씨는 좋군"
호주에도 이런 인종차별 주의자들이 있나? 솔직히 호주는 많이 와본적이 없어서 잘 모른다.
"지금 뭐 하시는거예요! 손님한테 시비걸거면 나가주세요!!!"
"제니, 우리 사이에 그렇게 빡빡하게 굴거 없잖아? 가게에서 냄새나는 중국인을 치워주겠다는건데 말이야"
가게의 종업원인 여직원이 말리려고 했지만 상대는 건장한 남성 두명이다. 게다가 슬쩍 보니까 그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포스 유저였다. 거기에 무기까지 가지고 있었다.
설마 국가 소속의 포스 유저가 아무리 동양인이여도 민간인에게 시비를 거는건가 싶지만 뭔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따로 있을것 같았다. 한국에서 포스 유저가 대놓고 이랬으면 당장 잡혀가서 깜빵행이니까.
"일단 니들한테 말할게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 나는 중국인이 아니야"
"동양인이 거기서 거기지. 냄새 나는 것도 똑같고 말이야. 동양인 그 특유의 누린내 같은거!!"
"니들 땀내가 더 심하거든? 그리고 두번째.......나는 중국에서 일어난 사태를 피해 도망친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저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라고"
"그게 무슨 개 같은 소......."
그제서야 그들은 웃음을 그치고 내 얼굴을 바로 직시할 수 있었다.
종업원에게는 일부러 고개를 돌리는 등, 얼굴을 잘 보이지 않아서 들키는걸 방지했지만.......이런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지.
"익숙한 얼굴이지?"
"너, 너너너! 너너!!!!"
"히이이익!!!!"
시비를 걸었던 사람이 알고보니 유명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을 때의 느낌을 서술하시오(5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들은 기겁을 하면서 나에게 무기를 뽑아 겨누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혹은 애매한 길이의 검. 나름 관리는 되어 있는지 날의 상태는 괜찮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미 공포에 질린 자의 움직임은 보잘것 없고 쓸데없는 반항도 하지 못하게 된다.
나는 그대로 그들이 내민 덜덜 떨리는 검을 잡았다. 검날은 내 역장을 뚫지도 못하고 그대로 으스러지고 가루가 되어 박살난다.
손에서 철 가루가 떨어진다. 그들은 그 모습을 보고 멍하니 정신이 나가버렸다.
"뒤지고 싶어?"
"으, 으아아아아!!!!"
"사, 살려줘! 살려줘어어어!!!"
그들은 그대로 도주했다.
나는 쫒지 않았다. 어차피 저런 놈들을 쫒으면 시간 낭비고 필요도 없다. 내가 여기서 해야할 일은 오로지 하나.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실험실을 박살내는 것 뿐이다.
"저런 놈들 많은가보죠? 한국에서 포스 유저가 민간인에게 시비 걸면 바로 잡혀가는데"
"네? 아, 네.......그들은 이 도시 자경단 소속이니까요. 원종에 대처할만한 사람이 그들 밖에 없으니까......."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호주의 원종 숫자는 너무나 많다. 특히나 호주 같은 곳이라면 인구수도 적으면 포스 유저도 적고, 그에 비해 원종은 많다.
그 와중에 호주 정부가 작은 마을, 도시까지 전부 커버칠 수 있을리 없다. 포스 유저만 파견을 받아야 할 판에 원종으로부터 치안을 유지하려면 나름의 무력 체계는 있어야 한다.
물론 군대가 있다. 원종은 적성종이 아니니까 물리 공격이 통하니 총도 통한다.
하지만 토끼나 캥거루 같은 원종에게 탱크 같은거 끌고오는건 심한 낭비에 여러마리라면 상대하기 버겁다. 그러니 포스 유저가 있을 수 밖에.
"저, 저기......."
"밥은 잘 먹었어요. 계산이요"
"그, 그냥 가셔도 되요!!!!"
"누굴 무전취식범으로 보시네. 그냥 계산 해줘요"
돈 없이 공짜로 밥을 먹는건 부끄러운 일이다. 하다못해 그에 걸맞는 일이라도 해줘야 한다.
사지 멀쩡한 남자가 돈이 없어 빌어 먹는다는건 그만큼 사람 취급 받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도 무림 가면 개방 애들 별로 안좋아해.
일단 계산을 하고 나오니 거리가 한결 썰렁해졌다. 주변에서 한두명 정도는 있지만 그나마도 어딘가에 숨어서 유심히 살펴보는 정도였다. 하기사 그럴만도 하지, 내가 저지른 일이 있으니.
여기에 오래 있으면 귀찮아질테니 움직이기로 했다. 어차피 오래 있을 생각도 없었으니까.
"근데 이 새끼들 도대체 어디에 숨은거지.......?"
일단 알리언 박사가 알려준 정보인 만큼 아닐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내 기척 감지마저 피할 정도는 아닐텐데.......
설령 영자 컴퓨터라 하더라도 내 기감을 피할 수는 없다. 그걸 피할 수 있는 녀석은 나보다 상위 초월자 정도. 하지만 나는 거의 만랩을 찍어놓은 수준이라 내 이상의 초월자가 있다면 프로메테우스가 티브란 문명을 무서워 할 이유가 없었다.
"규모가 작지는 않을텐데......."
일단 최소한의 조건만 따져보자.
영자 컴퓨터 보유, 어느 정도 규모는 있음, 여태까지의 경우로 보아하니 불법적인 조직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왜 하필 호주지?
다른 나라도 많다. 사이비 종교든, 갱이던, 레드 마피아던, 썩어빠진 정부던, 결국에는 어떤 나라던 불법적인 일을 하지 않는 곳은 없으며 그건 미국 같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호주는 인구 밀도가 적다. 넓은 대륙 레벨의 땅에 비해 거주하는 사람은 기껏해야 북한 정도의 2500만명이 전부다. 물론 더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너무 적다.
"한국, 러시아, 중국, 영국........"
일단 러시아와 중국은 땅도 크고 강대국에 속하는 나라다. 한국과 영국은 땅은 작아도 나름 작은 고추가 맵다고 말할 정도의 발전된 국가다.
전부 마스터 유저 보유국인건 빼더라도 나름의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연구가 편한 법이다. 만약 나라면 아무리 그래도 호주보단 다른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영자 컴퓨터의 성능은 아무리 가정용 수준이라 할지라도 스펙에서는 슈퍼 컴퓨터에 밀리겠지만 같은 영자 컴퓨터가 아니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만능인 시온조차도 놈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컴퓨터가 있다면 분명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감시의 눈을 피해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텐데, 왜 하필이면 호주지?
정부랑 붙어 먹었어도 2500만명의 인구에서 나오는 인프라가 많을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하다못해 우리나라도 인구 수는 그 두배인 5000만명이다.
"거기에 호주는 어쩐지 매치가 되지 않는데. 하필이면 여기가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있었던건가?"
이 곳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
호주가 아니라면 안되는 이유........이 나라의 장점이 뭐가 있지? 자연 환경이 풍부하다는거? 아니, 그건 어떻게 보면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지. 브라질 같은 곳도 아마존이 지구의 허파 역할을 하지만 브라질 당국 입장에서는 개발을 해야할 땅에 불과하니까.
응? 장점이 단점이 된다면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서 이 넓은 땅에 인구 밀도가 낮다는 점 같은거.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고 조용한 곳을 따진다면......
"뭘 하려는건지는 몰라도 조용한 곳을 찾는거라면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겠지"
지구는 이제 인간에게 좁다. 아마 수백년쯤 지나면 우주로 진출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
호주는 그만큼 넓고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 많다. 당장에 도시에서 나와도 그 근처에 원종을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수두룩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건 뭔가를 몰래 하기 딱 좋다는 소리다.
시온한테서 듣자하니 일본도 지금 후쿠시마 사태(물론 10년 전 쯤에 그거 말고)가 조용한 이유가 애초에 근처에 아무도 안살고 쓰나미 경보 때문에 다 피해서 목격자가 없어서 은폐하기 쉬웠다고 들었다.
놈들도 그런걸 노린거라면? 연구의 진행이야 다른 연구소에 맡기면 그만이고, 영자 컴퓨터는 따로 연산 처리만 한다고 해도 된다.
"이 새끼 이런 맹점을 노린건가? 아니면........"
약간 미심쩍은 점은 남아 있고 사라지지 않는다. 내 감이 뭔가 있다는걸 알려주고 있었다.
뭐가 있던 간에 만만한건 아닌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