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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화 〉[중국 최후의 날] (229/507)



〈 232화 〉[중국 최후의 날]



중국에 다녀온 이후 백리는 매스컴의 공세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미 그가 라쿤맨 2호라는 사실은 세간에 까발려진지 오래고, 더군다나 최악의 폭주를 막은 사람이라고 했기 때문에 라쿤맨의 뒤를 이은 영웅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느에에에에~"

"루리 너 왜 그래?"

"수능 끝난 고삼만큼 가장 잉여로운 존재도 없는 법이야......."

"아, 맞다.  수능 보고 왔지"

그동안 루리는 수능을 치루었다. 공부할만한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시험을 치루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모든 긴장이 풀린 루리는 거의 액체마냥 늘어지면서 잉여인간이 되었다. 학교를 나가도 딱히 할 것도 없고, 수시만 넣을 생각이였기 때문에 결국은 수능 결과가 나와야 아는 법이다.

"가채점 해봤잖아? 대충 어떻게 나왔어?"

"일단 과목 다 합쳐도 한두개 틀린것 같긴 한데 그래도 거의 만점이야. 크으, 별다른 일만 없었어도 만점 받을 수 있었는데!!!"

"잘 봤네. 나는 수능 점수가 어땠더라......"

"오빠 수능 평균 3등급이잖아. 내가 발로 봐도 그것보단 잘 나왔겠다"

"야! 3등급이 뭐가 어때서!!! 평균은 했다고 해!!!"

"평균이 3등급이라고 했지 전부 3등급이라고는 안했어. 오빠가 제일 못본 과목 점수 알려줄까?"

"......용돈 필요해?"

"흐으으, 이제 직장도 못나가는 오빠한테서 용돈 타먹기는  그렇네요~"

"직장이야 구하면 되거든? 이제 다른 직장 구하는거 엄청 쉬운데 뭐!!!!"

"이력서 어디다 넣어봤는데?"

"일단 유엔에다 넣어봤는데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어"

"........진짜 그 유엔?"

"응, 국제연합 그거"

20년 전 당시 적성종과 포스 유저의 출현으로 혼란스러운 와중에 최소한의 규범을 갖추기 위해서 유엔에 소속된 국가들이 모여서 협약을 맺었다.

포스 유저 연합을 만들고, 포스 유저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쓸 수 없다는 제약 또한 거기서 맺은 협약의 일부다. 물론 일부 나라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포스 유저는 적성종을 대처하는게 일이지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다.

백리는 최악과 싸운 이후 자기 힘을 좋은 곳에 사용하기 위해서 유엔에 소식을 취했다.

그 때문에 한국 정부에서 사람이 나와서 설득했지만 백리의 의지는 확고했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지금의 백리를 품기에는 너무나 좁았다. 기껏해야 수도권 방위에 투입될텐데 그러면 서울 시민들은 구할지 몰라도 전세계에서 따지면 비효율적이다.

"흐음, 나도 그냥  오빠 하는거 도와주러 다닐까. 힘 쓰는건 몰라도 매니저 정도로는  수 있을것 같은데"

"뭐래. 너는 그냥 어디 회사 취직해서 돈 벌어"

"사실 나도 이제 마스터 유저인데!!!!"

"구라치지마 잉여인간아!!!"

"진짠데!!!!"

"......진짜?"

"ㅇㅇ, 진짜임"

"잠깐만?!  그거 초성체로 어떻게 말하는거야?!"

"약간의 노하우가 필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의지를 사용하는 것에 이해가 있다면  수준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거야"

"뭔가 끔찍한 것의 편린을 본것 같아......크툴루 같은거"

"증기선 몸통박치기에 뻗는 나약한 놈은 취급하지 않는다!!!"

하핫! 혼란하다 혼란해!!

백리는 약간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최악이 말했듯이 백리가 가려는 길은 가시밭길이다. 그런 길을 가는건 혼자가 낫다.

루리는 아직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입만 다물면 미인인데다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있다. 게다가 백리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인망도 생길테니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건 쉬운 일이다.

"너는 나랑 다른거 하는게 좋아. 이거 엄청 힘들테니까 나 따라오는건 말리고 싶어"

"사장 오빠도 그런 뜻으로 오빠 갈군거 아니야?"

"........"

"뭐야, 내가 정곡을 찌르다 못해 팩트로 심장을 쑤셨나?"

"네 말이 맞을거야. 아마도"

백리는 말과 다르게 그게 확신이라는걸 깨달았다. 싸웠을 때는 몰랐지만 최악은 그를 걱정해서 그렇게 상대해준거다.

본인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남이 생각할 때는 오죽하겠는가. 약간 섭섭하기도 하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사장 아저씨 보면 화성으로 이주할 것 같은데 슬쩍 붙어가서 우주 개발 연구 하면 어떨까.......?"

"뭐? 너 우주 쪽에 관심 있었어?"

"이공계라면 어느 쪽이던 상관 없는데 기왕이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이 좋잖아? 돈도 잘 벌고 명성도 얻을 수 있고. 거기에 화성에 땅 사두면 부동산 투기로 떼돈이 들어온다구!!"

"결국 돈이구나!"

"오빠도 돈 좋아하면서 뭘!!!"

그때, 백리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상황이 이러니 대부분의 전화는 거절하고 그냥 아예  번호로 하나 개통 했지만 그래도 자주 오는 전화가 많다.

등록도 안된 낮선 번호. 하지만 백리는 일단 누군지는 알고 차단하기 위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 백리씨 되십니까?]

"그런데 누구신데요?"

약간 발음이 샌다. 한국인은 아닌것 같은 한국어라서 백리는 정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젊은 여성의 목소리다. 백리랑 많아도 몇살 차이 나지 않을것 같은 그런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일본 외무성의 아키토라 미노리라고 합니다.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일본이요? 왜 또요? 저번에 거절하지 않았나요?"

여러 국가에서 백리를 회유하기 위해 온게 한두번이 아니다.

상황이 개판이라 정신이 없는 중국을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당연하고 미국은 물론 영국과 러시아, 심지어 중동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백리는 단호하게 그들을 쳐냈다.

어느 한 나라에 소속되면 몸이 편하고 지원도 좋을지 몰라도 백리가 원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게 된다. 지금만 하더라도 치안조차 제대로 유지되지 못하는 아프리카 쪽의 국가는 적성종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

더군다나 일본은 이미 마스터 유저 보유국이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자국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 더더욱 관련없는 나라였다.

[아닙니다, 백리씨. 이번 일은 스카웃 쪽인 이야기가 아니라 약간의 협조를 부탁드리고 싶어서 연락을 드린겁니다.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만나서 이야기 할  있을까요?]

"협조요? 전화로 이야기하기 곤란한건가요?"

[비슷합니다]

"흐음......."

백리가 슬쩍 루리에게 시선을 돌리자 루리는 대충 뭔지 이해가 갔는지 혀를 내밀며 역겹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백리나 루리나 둘  그런쪽 일은 내키지 않는다. 부모 덕분에 착하게 자라서 그런건지, 천성이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만나는 볼께요. 어디로 가야하나요?"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금 계신 곳을 알려주시면 바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있는 곳을 알려주고 백리는 전화를 끊었다.

루리가 어이없어 하면서 질린 눈으로 백리를 보았다.

"또 그쪽 이야기야? 집까지 쳐들어오던 사람도 있는데 가서 또 뭔 개소리를 들으려고?"

"이번엔 그거 아니래"

"그걸 믿어? 게다가 일본이래잖아"

"너 국가로 사람 차별하면 못쓴다. 그거 거의 인종차별이나 다름없거든?"

"나도 뭐 내 뒤통수 때린 놈이 중국인이던 일본인이던 상관 안하지 때린 놈인게 더 중요하거든? 근데 일본인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거의 종특 수준임"

"그래도 일반화는 안좋거든?"

"잊었음? 우리 나라는 일본에게 항상 뒤통수를 맞았어. 임진왜란 때도 그렇고, 일제강점기도 그렇고. 세번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잖아? 이순신 장군님도 왜는 간사하고 신의를 지켰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고 했어"

"구라치지마"

"진짱뎅"

평소에 구라와 농담을 잘하던 사람이 진실을 말해봤자 설득력이 낮다. 마치 양치기 소년과 비슷할까. 이 경우에는 양치기 소녀지만 말이다.

"일단 가볼께. 별일은 없을거야. 무슨 일 있어도 나한테 아무짓도 못하는데 뭐"

"오빠가  당하느냐는 중요한게 아니야. 우리가  당할 수 있냐가 중요한 법이지"

"........너 가끔 보면 은근히 정곡을 찔러올 때가 있더라"

"암튼 올때 메로나!!!"

이윽고 시간이 지나 일본 외무성 쪽에서 보내준 차량이 도착했다. 백리는 그 차량에 탑승해 그대로 주한 일본 대사관으로 향했다.

그런 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루리가 말했다.

"당분간 고생 좀 하겠네"

루리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   * *


주한 일본 대사관에 도착한 백리를 마중 나와준 사람은 전화로 들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였다.

단정한 여성용 정장을 입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몸매와 관리에 공을 들였을법한 예쁜 흑발은 남자의 시선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더군다나 외모도 그만큼 아름다웠으며 모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끔하고 매력적이였다.

"전화로 연락드린 아키토라 미노리라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고노 의원님 아래에서 차관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하백리라고 합니다"

슬쩍 봤지만 백리는 상대가 포스 유저가 아니란걸 알아차렸다.

백리도 원판은 나쁘진 않았지만 포스 유저로 각성한 뒤로 잘생겨진 미남이 된 만큼 포스 유저로 각성한 사람의 외모는 뛰어나다. 덕분에 모델이나 연예인 업계에서는 포스 유저를 최우선적으로 고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준하는 외모의 소유자가 없는건 아니다. 루리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일반인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의 미녀다. 포스 유저도 아닌데 저 정도의 미녀라는건 관리를 잘 하고 태생이 좋다는 뜻이다.

"일단 안에서 이야기 하시죠. 마실건 뭘로 드릴까요?"

"아......대충 있는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백리가 라쿤맨 2호란걸 들킨 이후로 그를 상대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전부 조심스러워졌다.

그도 그럴게 권룡여제도 못했던 최악에게서 양보를 얻어낸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영향력은 둘째치고 무력만 따져도 지구 최강이라 자부할  있게 되었다. 비록 야매래서 기술로는 밀리기에 힘으로 밀어붙여야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한국 정부도 백리의 유엔 소속 의견에 적극적으로 회유하지 못한 이유가 그거 때문이다. 해외로 뜨면 문제이기도 하나 가장 큰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건가요? 아까 전화로도 말씀드렸지만 전에 이야기 했던 스카웃 제의는......."

"아뇨, 다른 이야기니까 걱정마세요. 이번 일은 백리씨에게도 나쁘진 않을 이야기니까요"

백리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청년이였다. 다짜고짜 그런 사람에게 정치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봤자 전부 승낙하거나 전부 거절하거나 둘 중 하나밖에 못한다.

지금 상황에서 백리는 후자쪽. 천검 이경진처럼 정치와 멀리 떨어져서 움직이고 싶었다.

"우선 러시아의 제염 장비 이야기는 예전에 나온거니까 들어보셨죠?"

"아, 네"

"그리고 저희 일본에서도 대여를 희망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별 소식이 없다는 것도요"

"........"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뉴스로나, 당사자인 시온에게서나.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사건으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었지만 일본은 그걸 컨트롤하고 있다고 허언인지 거짓말인지 모를 말을 지껄였다. 그래서 시온도 '인정도 안하는 놈들에게 빌려줄 의무는 없습니다'라는 말을 러시아에 전해서 일본에게 그게 전해지지 않는 것이고.

"아마 이대로 간다면 저희는 대여기간이 끝날 때 까지 제염 장비를 사용할 수 없을겁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시온씨와 최악씨 두분이 화성으로 이주하신다면.......저희는 영원히 제염 장비를 얻을 수 없을테고요"

"그렇긴 하죠"

아마 완전히 떠나진 않을거다. 시온도 덕질은 해야하고 최악도 가끔은 나들이 삼아서 지구에 올테니까.

하지만 그건 몰래 숨어서 온다는 뜻이지 대놓고 온다는건 아니다. 결국 제염 장비는 스스로 만들던가 아니면 우주로 진출해 화성에 있는 시온에게 직접 만나 협상하던가, 둘 중 하나 밖에 없었다.

어차피  다 수 십년에서 수 백년은 걸리겠지만 말이다.

"저희는 그 전에 제염 장비를 대여하고 싶습니다. 물론 거기에 대한 대가는 확실히 치룰 것이며 백리씨에게도 마찬가지로 지원을 해드리겠습니다"

"............"

"백리씨는 한국인이시니 현 일본에 결코 좋은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본의 무고한 국민들을 생각하셔서라도 조금만 도와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야키토라 차관은 고개숙여서 백리에게 부탁했다.

백리는 이런게 싫었다. 승낙하기도 찜찜하고, 그렇다고 거절하면 더 찜찜한. 그런 이야기가 싫다.

"........일단 말은 해볼께요.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기대는 하지 마세요. 거절해도 전 몰라요"

"말만 해주신다면 다음은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웃는 모습을 보니까 보조개가 예뻐 보이는게 매력포인트다.

그리고 슬쩍, 그녀는 몸을 숙여 백리에게 가까히 붙으며 물었다.

"이건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혹시 애인이 있으신가요?"

"네?!?!?"

백리야! 동정 유지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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