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화 〉[중국 최후의 날]
차이나 신드롬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은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차이나 신드롬이란 단어는 핵연료가 녹아서 그 고열 때문에 땅을 서서히 녹여서 지구 내부까지 파고 들어가 결국은 지구 반대편까지 뚫고 나갈거라는 일종의 도시전설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핵연료가 뜨거워도 땅을 파고들어가면 지각을 뚫어도 맨틀이, 맨틀을 뚫어도 외핵과 내핵이 있다.
아무리 과열된 핵연료의 온도가 높아도 맨틀의 두께만 3000킬로미터에 가까운데 그걸 뚫고 가다가 식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은 현재진행형이였다.
현재 사람 한명 없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1,2호기의 노심은 멜트스루가 확인된 상태다.
하지만 3호기는 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는데.......그건 어디까지나 멜트스루가 일어나지 않았을 뿐, 고열의 핵연료봉은 아직도 내부에 남아 있었다.
처리할 수도 없고, 처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그것 또한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기에 그대로 남아서 마치 봉인된 마왕처럼 풀려날 것만 기다리고 있던 그것은 이윽고 고대하던 날을 맞
이했다.
우르르르르르르릉!!!!!
"꺄아아아아악!!!"
"지, 지진이야!!!! 피해!!!"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는 묵직한 진동. 건물은 흔들리고 금이 가며, 사람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수준의 진동이 퍼진다. 진원지에서 가까운 지역일수록 산사태가 일어나며 기어가지도 못
할만큼 큰 지진이 일어난다.
그 충격은 아스팔트와 블럭으로 뒤덮힌 도로마저도 부수고 가른다. 가리지 않고 많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마치 생지옥의 참상과도 같았다.
갈라진 지층 사이로 사람이 떨어지고, 무너지는 흙더미들은 마을을 덮친다. 지진으로 일어난 여파가 일본 전역에 들이닥쳤다.
후쿠시마도 그 예외는 아니였다.
쿠구구구!!!
이미 예의 사건 당시 폭발했던 후쿠시마 발전소의 건물이 격렬한 진동에 무너진다. 원전 3호기가 있던 건물도 마찬가지였다.
무너지는 건물 파편들은 갈라진 지층 아래로 떨어진다. 원자력 발전소를 그렇게 허술하게 지었을리는 없지만 이전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 관리도 안하니까 위험
성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층 틈새로 떨어지는것 중에는 원전 3호기의 원자로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단지, 거기까지라면 문제 없었을지도 모른다.
갈라진 지층의 깊이는 상당히 깊었다. 떨어진 충격에 원자로에서 흘러나오는 고열의 핵물질은 강렬한 방사능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근처에 사람이 있었다면 몇초만에 죽어버릴법
한 강렬한 방사능이였다.
하지만 다행인 점이 있다면 핵물질이 있는 곳은 깊은 지층 아래이며 그 위로 발전소 건물 파편들이 떨어져 거의 밀폐된 상태가 다름없었다는 점이다.
오랜 시간만 주어진다면 적어도 최악의 결과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시간 후.
에에에에엥!!!
[현재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인근 주민들께서는 최대한 지대가 높은 곳으로 피하십시오!!!]
후쿠시마 현을 비롯한 인근 해안 지역에 쓰나미 경고가 내렸다. 애초에 후쿠시마에는 사는 주민도 별로 없었지만 아예 없는건 아니다. 그들은 경고에 따라 대피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 해안가의 바닷물이 썰물이 일어난듯 밀려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서 거대한 파도가 빠르게 다가온다.
콰콰콰콰콰콰콰!!!!
지진의 위력에 비례한 쓰나미의 크기는 거대했다. 수십미터에 달하는 파도는 이윽고 해안가에 닿아 게걸스럽게 건물과 도심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도시를 덮치고도 파도는 멈추지 않았다. 더욱 깊숙하게, 더욱 많은 제물을 원했다.
파도는 어느덧 무너진 원자력 발전소에 도달했다. 대량의 바닷물들은 갈라진 지층으로 흘러들어간다.
거의 밀폐된 공간, 대량의 바닷물. 그 두가지가 합쳐지면서 최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바뀔 때는 약 1680배 정도로 부피가 늘어난다. 그리고 고열의 핵물질에 바닷물이 닿는 순간 급격한 기화로 인해서 화산 지대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수증기 폭발이
일어났다.
마치 현실을 인지하지 않고 눈을 돌린 자들에 대한 천벌을 내리듯, 그것은 거의 핵폭발에 준하는 위력이 되어 그 분노를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물론 진짜 핵폭탄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서 생기는 여파가 핵폭탄 이상의 효과를 냈다.
폭발은 그 위에 있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모든것을 날려버리고 거기에 있던 방사능 물질과 오염수들을 비롯한 방사능에 찌든 것들을 전부 날려버렸다.
그것은 바람을 타고, 비를 타고 일본 전역으로 퍼지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지층 깊숙하게 있었던 핵물질 때문에 지하수를 타고 방사능이 퍼질 것이다. 단순히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
이 지날수록 그것은 더욱 넓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체르노빌은 그나마 나았다. 사람을 갈아넣어서 겨우겨우 처리를 하여 최악의 사태까지는 막았으니까.
그러나 일본은 그러지 않았다. 무시하고 외면하던 재앙은 이제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들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절대 피할 수 없는 대가를.
* * * *
후쿠시마에서 터진 폭발은 핵폭탄은 아니고 폭약을 사용한 것도 아니지만 그쪽을 기준으로 한다면 몇 킬로톤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킬로톤, 즉 kt이라 한다면 단위가 천 톤이다. TNT 천 톤을 폭파시킨 수준의 위력의 몇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히로시마에 떨어진 것에 비하면 그 반에 반을 겨우 넘을까 말까한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남은 건물들을 박살내고 인근 시설들마저 삼키기에는 충분했
다.
차라리 핵폭탄이였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고열과 폭풍에 의해서 그 파편들은 전부 녹거나 증발하고 대부분의 에너지는 우주로 날아갔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핵폭발이 아니라 수증기 폭발이다. 운이 나빠도 더럽데 나빠서 벌어지는 일인데다가 위력은 그에 준하고 방사능에 오염되다 못해 찌든 것을 그대로 사방으
로 날려버린다.
물은 비가 되어 인근 지역에 쏟아져 내린다. 수증기는 바람을 타고 흘러가 죽음의 바람이 될 것이다.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사태 이후 인근에는 관리를 위한 직원들이 있지만 그들마저도 폭발에 휘말려 건물이 무너져서 사망했다. 그래서 정부에 보고가 올라가는 시간이 늦어지게 되었
다.
더군다나 지진과 쓰나미가 겹쳐서 그거에 신경쓰느라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후쿠시마 인근에는 주민들도 살지 않으니......재앙의 크기에 비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게 됐다는
소리다.
일본 정부가 사태를 파악한건 3시간이 지나서였다.
"이게.......이게 사실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일본의 노베 총리는 올라온 보고를 보고는 절망하다 못해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현재 사건이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인근의 건물을 비롯한 모든게 날아가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였다.
거기에서 나오는 방사능이 문제였다. 고농도의 방사능과 핵물질들은 그대로 공기, 수분, 먼지를 타고 일본 전역 구석구석으로 날아간다. 자연의 행위를 막을 수 없으니 결국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 독이 될 뿐이다.
"현재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폭발로 일본 전역으로 퍼지는 방사능의 농도는 3000만 베크렐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나마도 낙관적인 수치이기에......"
"하아아........"
체르노빌은 그나마 처리 했었고 러시아에서 시온이 대여해준 제염 장비를 통해 체르노빌의 방사능 처리가 완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안전하다고 지껄이는 곳에 제염 장비를 빌려줄 의무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그럴 생각도 없었다. 시온과 최악이 러시아에 제염 장비를 대여해 준 이유는 제 7군단장 루루와 싸운 이후 그 여파로 핵 폐기물들이 러시아의 땅을 오염시켰기 때문이다.
그건 어디까지나 초월자들간의 전투로 생긴 여파이기 때문에 납득하고 빌려준 것이다. 만약 인간으로 인해서 생긴 문제라면 대여해줄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이건......"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그들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이 한가지 있다면, 피난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후쿠시마 인근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고. 폭발의 여파는 일본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로 도망치려는게 아닌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아니, 해외로 도망쳐도 마찬가지다. 바람을 타고 지구 전역으로 퍼질 방사능도 있을테니까.
"총리님. 이건 저희의 역량을 벗어난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지 않은가?"
"요청할 상대가 있습니다"
".........그들 말인가?"
노베 총리의 머릿속에는 두명의 남녀가 스쳐지나갔다.
모르면 이상한 것이다. 한명은 중국을 망하게 만든 원인이고 한명은 우주선을 가지고 있는 남다른 기술력의 소유자니까.
"그들이 러시아에 대여해준 제염 장비의 성능은 이미 체르노빌에서도 증명이 됐습니다. 러시아에 다시금 대여 요청을 하는 것보다 주인인 당사자들에게 말을 하는 편이 더 빠를겁니다"
"하지만 이미 러시아에서도 거절했네. 그런데 지금 와서 요청한다고 한들 수락하겠는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보좌관의 말에 노베 총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당시의 최악, 라쿤맨은 세계의 영웅이였으나 지금은 중국을 멸망으로 몰아넣은 학살자이자 범죄자다. 그의 신원은 전부 밝혀지고 정부에게 구속되었으며 시온은 그나마 우주선 커밍 아웃
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마찬가지로 잡혀갔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의 인사들을 이용하면 될겁니다. 조만간 청문회가 열린다고 하니까 거기서 약간의 로비만 한다면 지금 벌어진 일도 해결할 수 있을겁니다"
일본은 로비의 국가다. 심지어 피자도 토마토 들어갔다고 야채라고 하는 미국조차도 한수 접어줄 정도로 뇌물이 오가기 때문에 로비로 뭐든지 가능한 만능의 나라다.
그건 타국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금액만 맞는다면 한국의 정치에도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군. 어차피 그쪽의 이야기는 들은게 있으니 그런 방식으로 바꾼다면.....흠,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아무리 기술을 가지고 있는게 그녀라 할지라도 남편이 감옥에 가는것 보다
는 차라리 제염 기술을 내어주는 편이 낫겠지"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마구잡이로 돈을 때려넣진 않는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능성이 10퍼센트라면 그들은 1퍼센트 정도라고 할까.......가챠의 발상지 다운 생각이다.
그들은 현재 신병을 구속중인 최악을 빌미로 시온에게서 제염 기술을 뜯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걸 통해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일을 해결하고 앞으로 이런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자체
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지려고 했다.
하지만 몇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최악은 남이 구속해서 끌려간게 아니라 자의로 끌려갔다는 점이다.
나라 하나를 망하게 만든 괴물이 스스로 잡혀가준 것을 미처 생각 못한 그들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보험은 필요하겠군"
"라쿤맨 2호......그러니까 하백리씨와 전투를 통해서 라쿤맨이 양보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를 회유한다면 훨씬 이야기가 쉬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일단 접촉을 시도해보게. 그동안 언론은 통제하도록 하고 말이야"
만약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상황이였다면 그들이 언론에 수를 쓰기 전에 이미 이야기가 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쿠시마 인근에 거주하던 주민이나 일반 직원들은 일부는 지진에 의해 사망했고 이후에는 쓰나미 경보 때문에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에 폭발이 일어났으니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거의 없을 뿐이지 몇명 정도는 있지만.....일본이란 국가는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정반대의 국가다. 위에서 결정하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야 하
는 체계다.
방사능 때문에 사람들이 다짜고짜 즉사하진 않을 것이다. 이미 즉사했을 수준의 방사능은 후쿠시마 인근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거기에는 사람이 없다.
"알겠습니다. 한국으로 사람을 보내서 이번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두겠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방한 날짜를 잡게. 방사능이 도쿄에 닿기 전에는 나가 있어야 할테니"
"예, 걱정 마십시오"
일본 국민들은 방사능에 찌들도록 내버려둔 상태로 총리 혼자면 해외로 도망가 있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문이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자민당 소속의 내각 위원들도 슬슬 해외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시온에게서 제염 장비를 얻어내 일본이 정화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 분명했다.
다만 그들이 간과한게 있다면 최악은 생각보다 또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백리는 최악과 대등하게 싸워서 양보를 얻어낸 것이 아니라 존나 처맞다가 백리를 죽일수는 없었던 최악의 양보로 겨우 최악만 면했을 뿐이다.
백리를 회유한다고 해서 최악이 그의 의견을 들어줄리는 없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아마 최악도 백리를 데리고 같이 화성으로 이주하는건 허락하겠지만 제염 장비를 빌려주진 않을 것이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잘못이니까.
"만약 제염 기술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일본은 여태까지의 모든 역경을 넘어 손에 꼽는 대국으로 나아갈 수 있을걸세"
"그렇게 된다면 대동아 공영권도 꿈은 아닐겁니다"
그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
현실을 보고 나아가야 할 시점에서 꿈을 꾸는 자는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영웅이냐, 영웅이 아니냐.
그들은 절대로 전자는 아니였다. 하다못해 현실과 타협한 적이 있던 백리가 더욱 영웅에 가까웠으니까. 그들이 꾸는 꿈은 비현실적이다 못해 허구적이라 단언할 수 있는 것이였다.
노베 총리를 비롯한 다수의 자민당 위원들이 외교 업무란 명목 하에 해외로 떠났다.
일본 국민들만 남아서 전국적으로 퍼지는 방사능의 여파를 맨몸으로 견디게 되었다.
물론 당장 죽지 않는다. 발원지인 후쿠시마에서 가깝지 않은 이상 당장 급성 방사능 중독으로 죽을리는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그들은 죽어갈 것이다. 어느덧 눈치챘을 때는 이미 죽음이 코 앞까지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죄가 없다고 하지는 않는다.
나라가 그 꼴이 되고 정치인이 그런 성격인 것은 결국은 국민들 책임이니까.
그들은 그 책임을 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