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4화 〉[중국 최후의 날] (221/507)



〈 224화 〉[중국 최후의 날]

라쿤맨의 만행은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대학살을 저지르기도 했지만 북한 같은 폐쇄적인 국가의 최고권력자를 닥치고 끌고와서 이야기를 나눈 모습은 비상식의 결정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 대한 위험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일부의 사람들은 북한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의 국가이며 김정은은 한 국가의 대표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라쿤맨이 어느 나라의 대통령을 납치해 끌고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초월자라는 개념도 슬슬 국민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라쿤맨이 저지른 일들은 하나하나 분석되어 추정되는 무력조차 하나의 나라나 다름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애초에 베이징에서 깽판치면서 박살난 중국군만 어지간한 나라의 군사력을 초월한다.

"저희 중국 정부는 완웅남과 극적인 타협에 성공했습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주신 완웅남 2호께 감사하며 3일 후에는 자리를 마련하여 협상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확실히 라쿤맨이 학살과 파괴 활동은 멈추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라쿤맨 2호의 신원을 확인했다는 소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서 중국 정부는 빠르게 기자들을 소집해 회견을 열었다.

아무리 중국이란 나라가 여론을 신경 안쓰는 나라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였다면 신경 안쓸  없는 노릇이다. 외교적으로도 거의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는데 하물며 내부에서도 말썽이 생긴다면 국가붕괴 위기에 이를 지경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상당수의 지역에서 독립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라쿤맨이 행동을 멈추자 독립 운동도 마찬가지로 기세가 죽었다. 좋은 징조에 시준핑 주석은 흐뭇하게 웃었다.


앞으로의 뒷처리만 잘 한다면 적어도 지금의 권력은 보전할  있다. 대충 봉합만 잘 하고 나중에 해외로 빠져나가서 빼돌린 돈으로 떵떵거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지금 상황은 어떻지?"

"여론도 잠잠해지고 독립 운동의 기세가 죽어서 현지의 군대로도 어느정도 종식시킬 수 있었씁니다. 그리고 완웅남과의 협상을 촬영하기 위한 기자들이 현재 빠르게 입국 중입니다"

"좋아, 아주 좋아"


상황이 나아지자 공항도 운영할  있었다. 물론 베이징 공항은 파괴 활동 때문에 무리지만 중국에 공항이 베이징에만 있는건 아니였다.

물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비참하기 그지없지만 여태까지의 최악의 상황과 비교한다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완웅남 2호......그러니까 백리 청년은 지금 어떤가?"

"귀빈으로서 초대하기는 했지만 자국에서 가족들과 있겠다고 합니다"


"흐음, 첫인상을 너무 잘못 보였어. 우선 선물부터 보내서 환심을 사게. 나중에 다시금 완웅남이 일을 저지르더라도 막을  있도록 말일세"

"알겠습니다"

백리는  이상 조용하게 살  없어졌다.


설령 더 이상 나설 생각은 없더라도 이미 그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시온의 신원이 드러나 마찬가지로 최악의 정체가 드러나게 됨으로서 물건너간 일이긴 했지만 그냥 지인과 개입한 사람의 차이는 다르다.

현재 한국 정부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백리에게 러브콜을 보내오고 있었다. 중국을 박살낼뻔한 라쿤맨, 그리고 그를 막아낸 라쿤맨 2호. 두사람이 싸웠던 도시는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었으며  여파는 위성에서도 관측 가능한 수준이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백리가 용하연의 뒤를 이은 그랜드 마스터라고 추정하고 있었다. 물론 권한은  이상이지만 용하연의 무력을 생각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협상방안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으음......."

시준핑 주석은 조금 고민했다. 화장실 갈 때랑 나올 때의 사람 마음은 다른 법이지만 그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설사라면 나중을 대비해야 하는 법이다.


최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어설프게 협상에 임해서 요구조건을 깍아내리려고 했다간 다시금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되도록이면 그가 원하는걸 들어주는 편이 낫겠지. 그저 돈 같은걸 바란다면 충분히  수 있고 말이야"

"돈 같은건 필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혹시 그가 요구할만한 것을 예상할 수 있겠나?"

"여태까지 그의 행적과 과거를 조사해봤지만 크게 특이하다고 할만한건 없었습니다"


시온을 만나기 전의 최악은 지극히 평범하고 조용한 인생을 보냈다. 시비가 걸려도 어지간한건 넘어가거나 경찰을 부르고, 딱히 바라는것도 없고 특출난 것도 없이 조용히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였다.

시온과 만난 뒤로는 어느정도 트러블이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요리 이외의 다른 취미는 얼마 없다. 그나마도 요리는 비교적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취미다.

"결론적으로 짧게 말하자면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애처가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을 벌였지. 빌어먹을 마오슌 놈.......!!!"

시준핑 주석은 이미 죽은 마오슌 위원을 욕했다.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였지만 장례식조차 치뤄지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아들조차도 마오슌을 위해 지전(紙錢) 하나 태우지 못했다. 지금 중국에 있어서 마오슌 위원은 대역적이나 다름없으니까.


이미 존재조차 말소되고 입에 언급하기도 힘든 존재가 되어서 아무도 그를 입에 올리고 싶지 않아했다. 아마 시간이 지난다면 이름만 남지 그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아내는 뭘 좋아하나?"


"으음......."

이미 분석은 끝냈지만 보좌관은 대놓고 '덕질을 좋아합니다'하고 내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온은 단순히 덕질 외에 다른 것도 좋아했다. 최악도 알고는 있지만 딱히 신경은 안쓰는 미술품 수줍이라던가 문화재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들은 모르지만 하논이란 초월종은 기본적으로 문명이 쌓은 예술품들을 좋아한다. 그런걸 수집할 의사가 있는건 둘째 치더라도 사이코패스 취급 받는 유토피아 마저도 은근히 그런 기색이 있는데 시온도 마찬가지다.


"그의 아내분께서는 예술품들을 좋아하더군요. 관리 때문에 수집은 조금 생각하시는것 같지만 관람하는건 즐기시는것 같습니다"

"흠, 국내에 한국에 관련된 문화재가 있던가?"


"몇점 있지만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거라도 일단 반환하게. 그리고 은밀하게 국내의 예술 작품들에 대해서 알아봐. 환심이라도 사둬야 할게 아닌가?"

"알겠습니다"


중국은 마오쩌둥 때문에 파괴된 문화재가 많다. 그래서 시온에게 내줄 문화재는 적지만 그래도 예술작품이라 한다면 현대에도 어느 정도 존재한다.

시준핑 주석은 그런 예술 작품까지 시온에게 보낼 생각이다. 그녀의 환심을 사둬야 나중에 일을 무마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리고 여제께서는 어떠신가?"

"현재 휴식 중이십니다. 적성종에 대한 대처는 어느정도 출동하고 계시지만......뭔가 예전과 다른 느낌이라는 보고는 있습니다"

"그런가?"


권룡여제 용화정은 이제 마룡후 용하연이 되었다.


지금이야 이득 때문에 중국 정부의 요청대로 움직이고 있지만, 글쎄......나중에는 어떨까?

그녀는 결코 정의로운 사람이 아니다. 스승의 영향으로 나름 생명이 귀한건 알고 있지만 손해보면서까지 남을 구하려고 하는 위인은 절대 아니다.


과거 무림을 침공하려는 세력조차 덤비니까 박살을 낸거지 정파라서 뭉게버린건 아니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미국에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여제께서 하백리 씨와 같은 대영위신장(大靈威神將)에 이르셨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여제께서도 부정하지 않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수준을 비교한다면 경지 자체는 백리가 높을지 몰라도 무력은 용하연이 더 강하다. 재능이 있어도 고작 며칠 배운 사이로는 백리가 용하연의 수준을 넘기에는 힘들다. 이래서 야매는 안되는 법이다.

"그리고 하백리 씨가 여제까 구배지례를 드렸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구배지례라 하면.......스승으로 모시겠다는 것 아닌가?"


"그 뒤로 쉬지 않고 대련을 했다고 하니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 입니다"


"좋은 소식이군.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더니"

시준핑 주석은 간만에 웃었다. 사제관계라 한다면 떼어놓을 수 없을테니 분명 나중에 도움이 될게 분명하다.


이제 남은 걱정은 최악, 라쿤맨과의 협상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이군. 이제 중국은 구원 받았어"

시준핑 주석은 웃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의 바람대로 이루어질지는 둘째치고서 말이다.


*  *   *  *



중국 정부가 말한 3일 뒤. 그들이 말한대로 라쿤맨과의 협정이 이루어지는 날이였다.


각국에서 날아온 기자들이 모여서 이번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정보를 모으고 조사하기 바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보는 중국측에서 나온 확실치 않은 것에 불과했으며 라쿤맨에 대한 정보는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아직 정부 쪽 외에는 최악의 정체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걸쳐있었기 때문에 겨우 무사한 천안문 옆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협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나오는 라쿤맨의 모습은 드물다 못해 거의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온갖 깽판이란 깽판은  뒤의 일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려서 인터뷰 따기도 힘들었다.

각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기자들. 개중에는 최악과 인연이 있던 MBS 방송국의 진서희 기자도 있었다.


최악이 처음 라쿤맨으로 활동했던 영등포 백화점 사건 당시나 부산 해운대 등등의 사건에서도 조우했던 그녀였다. MBS 방송국도 그래서 그런지 그녀를 지금과 같은 현장에 투입해서 좋은 특종을 촬영하려는듯 싶었다.

"누나, 오늘 최대한 특종 잡아야 해요. 사장님이 비싼 비행기 표값 내주고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그냥 어영부영 하면 큰일난다고요"


"새끼, 너도 나 덕분에 출세했는데 걱정마. 라쿤맨도 내 얼굴 알고 있으니까 어느정도 인터뷰는 응해주지 않겠어?"


"그건 누나 개인 의견이고요!"

인민대회의당은 마치 한국의 국회의사당과 같은 곳이였다. 커다란 건물 안에 중앙에 발표자를 위한 발표대를 중심으로 부채꼴 모습으로 좌석이 마련된 형태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은 그 좌석이 여당과 야당을 나누어 배치된다면 중국은 대부분이 공산당의 좌석으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솔직히 크게 차이점은 없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간다. 어느덧 중국 정부가 발표한 시간이 되자 그 앞의 천안문 광장에 육각 파편들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온다! 진짜야! 진짜라고! 라쿤맨이 나타나는거야!!"


"저게.......!!!"


은연중의 정보로서 라쿤맨이 차원을 찢어 마치 적성종처럼 나타난다는 사실은 소문이 퍼져 알고 있었다.

같은 차원진을 쓴다고 마냥 그걸 비판하기에는 같은 총을 쓴다고 경찰과 범죄자를 동일시하는 느낌이 있어서 은근히 부정했다. 사실 그게 미국이 슬쩍 퍼트린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윽고 갈라진 차원에서 라쿤맨이 걸어나왔다.


"라쿤맨!!!!"

"라쿤맨! 라쿤맨!!! 혹시......"


"라쿤맨!!! 오늘 협상할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우스꽝스런 금속질의 미국너구리 가면을 쓴 그는 무덤덤하게 천안문 광장을 지나쳐갔지만. 유일하게 진서희 기자의 물음에 걸음을 멈추었다.


"라쿤맨!  아시죠?"

".........."

라쿤맨은 걸음을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아는 얼굴에 대해서는 조금은 반응을 느끼는게 인간이다.


최악도 바보는 아니다. 단지 본능에 충실할 뿐. 아는 얼굴의 사람이 질문하는데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어렵다. 애초에 반쯤은 의도한 결과다.

그는 진서희 기자를 보고 멈춰섰다. 그에 주변 사람들이 얼굴을 굳히고 질문하기를 멈추었다.

무시로 일관하던 사람이 유일하게 반응하던 사람이다. 도리어 그걸 무시하고 질물을 퍼붓기에는 상대의 반응이 너무나도 궁금하다.

"거 간만에 보는 아가씨네"

"기억 하시는군요!!!"


진서희 기자는 환희에 찬 목소리로 화답했다.

"저번에 준 참치는 잘 먹었어?"

"아, 그거는 맛있게  먹었어요. 초장 찍어먹으니까 안주가 따로 없더라니까요"

"에이. 참치는 기름진 맛이 넘쳐서 초장으로 먹으면 맛이 덜한데......뭐, 그건 개인 취향 차이니까 넘어가지 뭐"


이 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대부분이 엘리트다. 그리고 라쿤맨이 한국인임을 아는 만큼 한국어를 아는 기자들로 뽑아 보내져서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가 하는 말은 모두 즉석해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중국 정부와 협상하러 가는 길일텐데. 기분이 어떠세요?"

"별거 아니지 뭐. 내가 이 지랄을 했는데 중국이 별거겠어?"

누군가 수근수근거렸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진서희 기자는 이어서 냉철하게 다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당신은 많은 인명을 학살하고 파괴 행위를 일삼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중국 시민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건 자기 권리와 자유를 찾지 않은 죄 때문이겠지. 시발, 그러니까 누가 남의 마누라 납치해서 강간 하려고 하래?"

소란이 더욱 커졌다. 사방에서 의견을 나누지만 은연중에 흐르던 소문에 확신이 더해진 것이다.

미국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최악이 그런 대학살을 저지른 이유는 고위 공산당원이 그의 아내를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이란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현재도 그런 소문을 믿고 실드 쳐주는 사람이 있어서 의외로 우호적인 의견이 있었는데 지금 증명 되었다.

"내가  짓은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따질 생각이면 나한테 와라. 다 받아줄테니"

"하지만 사람들은 당신의 정체를 모릅니다"

"........."

그녀의 질문에 라쿤맨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서 한숨을 쉬더니 이내 손을 자신의 마스크에 올렸다.


"아가씨,  좋구만. 어차피 알 사람은 다 아는거지만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이게 처음이니까"

진서희 기자는 처음에는 뭔지 이해 못했지마 이내 라쿤맨의 마스크가 철컥! 하고 얼굴 뒷편을 뒤덮은 부분이 풀어지자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정체를 들어낼 생각이다.

촬영하던 카메라가 줌 인되고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히어로가 자기 정체를 밝히는 것은 누가 말할 것도 없이 특종이였다.

이내 마스크가 벗겨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눈매는 더러운 남자의 얼굴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크게 눈에 띄는 얼굴은 아니다.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았지만 눈매가 더러워서 그걸 다 말아먹는 첫인상이 나쁜 얼굴에 그들을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뉴스를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워낙 평범한 사람이였는데 그가 세간에서 말하던 라쿤맨일 줄이야!!!!

이내 라쿤맨, 아니 이제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최악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이 엠 라쿤맨"

기자들의 질문 세례와 플래시가 이어졌다.


그리고 진서희 기자는 익숙하게 그 대사를 읊었다.

"아싸! 땡 잡았다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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