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중국 최후의 날]
백리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태극나선경을 확실하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자세를 잡고 제자리에 서서 펼쳐야 한다는 점이다.
공격을 흘려내는 정도야 그냥 펼칠 수 있지만 분해의 이치를 내포한 태극나선경은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현재 백리의 경지로서는 그게 최선이다. 예전에는 단순히 흘려내기만 하는 것도 자세를 잡아야 했다는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분해의 이치만 하더라도 어느정도 능숙해지면 이 지구에서는 적수가 없다. 설령 코 앞에서 핵폭탄이 떨어져도 그 모든 충격과 열기를 흩어버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테니까. 방사능?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초월자가 방사능으로 죽을리 없다.
지금의 백리도 초재생 특성 덕분에 핵폭탄을 맞아도 더럽게 아프긴 아프겠지만 죽지는 않는다. 방사능에도 금방 회복하거나 가이아 포스로 보호하면 그만이니까.
단지 안타까운게 있다면 백리의 상대가 너무 나빴다는 점이다.
"커억?!"
최악의 주먹이 백리의 어께를 후려치고 동시에 옷깃을 붙잡아 당겼다. 몸을 회전시켜 그 반동을 이용해 팔꿈치로 백리의 가슴팍을 찍고 팔을 들어올려 손등으로 백리의 얼굴을 후려친다.
이어서 촌경, 흔히 원인치 펀치라 불리는 발경이 백리의 배를 후려쳤다. 거기에 계속해서 맹격이 들어온다. 어느것 하나하나 무시할 수 없을만큼 강렬한 공격은 백리의 정신을 뒤흔든다.
그의 특성인 보강을 몇겹이나 중첩해 압축한 방어벽 마저도 관통해서 타격이 들어온다. 더군다나 매섭다. 반격의 여지와 시간을 주지 않는다.
"내가 사회를 심판하기 때문에 다수를 상대하는데 적합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나는 대인전이 특기거든?"
같은 대마왕 중에서 광범위한 파괴를 무력으로 따진다면 최악은 가장 아래다.
몸을 거대화 해서 별 하나를 주먹 한방에 부숴버리거나, 초신성 폭발을 일으켜 성계까지 통째로 날려버리거나, 혹은 물리법칙을 지배해 블랙홀을 만들고 반대로 물리법칙에서 벗어나 광속으로 가속해 별을 갈아버린다.
물론 최악도 별 정도는 얼마든지 박살낼 수 있다. 단지 그 효율과 범위가 다른 대마왕들에 비해서 낮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한다. 대마왕 중에서 그의 발언권은 최강의 대마왕인 팬텀과 동등한 수준이다.
그 이유는 그가 대인전에 특화되어 사람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다수로 와도 뒤지고 소수로 와야 그나마 승산이 있는데 하필이면 대인전이 특기. 당사자인 내가 봐도 밸런스 좆망 수준인데 겨우 그런 수준으로 덤비려고 들어?"
틈을 주지 않는 공격 속에서 백리는 정신줄을 부여잡는게 고작이였다. 초재생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팔이 부러져도 겨우 몇초만에 회복하지만 그 이상의 공격이 1초에 수십번은 들어온다.
"끄윽!!!!"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백리는 아까와 같이 발에서 가이아 포스를 방출하여 도망가려고 했지만 최악이 그의 발을 후려찼다.
빠악!!
"억?!"
발의 각도가 바뀌고 마찬가지로 도망치려던 방향이 후방이 아니라 전방으로 바뀐다. 겉으로 보기에는 백리가 최악에게 돌진하는것 같았다.
"아무리 천재에 뛰어난 기술에 좋은 스승을 만나더라도 실전 한번만 못한 법이야"
한순간에 음속의 두어배 속도로 돌진하는 백리를 가볍게 피하고 등을 향해 팔꿈치로 찍는다. 그와 동시에 무릎을 차올려 그의 복부를 가격. 위아래로 동시에 전해지는 충격은 몸 안에서 충돌하여 위력이 배가된다.
백리는 꺽꺽거리면서 피를 토했다. 일반적으로 각혈 같은 것이 픽션에서 보여주는건 부상의 정도를 의미하는거지만 실제 각혈은 내부 장기에서 출혈이 발생했다는 소리이기 때문에 그것보다 훨씬 많이 심각한 상처다.
방금 일격으로 백리의 내장은 상당수가 짓이겨졌다. 단지 초재생 특성 덕분에 빠르게 재생해서 죽지 않았고 결국에는 회복이 가능한 상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
뻐어어어어억!!!
최악의 손아귀가 백리의 얼굴을 강타했다. 한순간 얼굴 가죽이 뜯겨나가는거 아닌가 싶은 충격이 그의 얼굴에서 뇌로 전해진다. 한곳에 전해진 힘은 그의 몸을 허공에 던져진 젓가락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 그런 그를 향해 최악의 발차기가 작렬한다. 한바퀴 회전을 더한 거센 발차기가 그대로 복부에 들어갔다. 그 덕분에 백리는 총알처럼 빠르게 튕겨나갔다.
"크헉.......?!"
간신히 거리를 벌리고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백리는 일어나서 자세를 잡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초재생 특성이 있어도 내장이 뭉게진 부상은 쉽게 회복하기 힘들다. 그나마 심장이나 뇌가 박살난 상처보단 빠르게 회복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비교적인 경우다.
백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고작해야 몇초. 그나마도 최악이 느긋하게 다가왔기에 가능한 기적의 시간이다.
간신히 몸을 추스릴 정도로 회복한 백리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을 때 반겨주는건 묵직한 최악의 주먹 뿐이였다.
"이대로 가면.......!!"
무자비하게 닥쳐오는 공격들은 마스터 유저라도 치명적이고 사망에 이를만한 공격이였다. 백리가 마스터 유저보다 훨씬 강하고 초재생 특성까지 있으니 겨우 버티고 있는거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지는건 백리다. 지금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가이아 포스를 초재생 특성에 때려박고 있었다.
마치 최악과 같이 출력만 한정되어 있을 뿐 가이아 포스의 양에는 한계가 없는 백리지만 다른점이 있다면 최악은 의지에 따라 출력이 변동하는데 비해 백리는 한결같이 같은 출력이다.
결국 밀리면 패배하는 끝이 보인다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를 타파해야 한다. 지금 일어나서 맞서 싸워야 한다.
그 의지와 관리자가 주어준 인과율 보정이 맞아 떨어졌다.
키이이이잉!!!
"어?"
최악이 이어서 날리려던 주먹이 빗나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튕겨나갔다고 해야 정확했다.
백리가 반사적으로 내뻗은 손에 태극의 이치가 담겨서 그걸 그대로 튕겨낸 것이다. 아니, 만약 흘려냈다고 한다면 그냥 흘려냈다고 하지 튕겨냈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건......분해의 이치의 반발력을 이용한 기술이였다. 하나인 힘을 분해하려고 한다면 그대로 분해될 것은 없다. 특히나 최악같은 초월자의 힘이라면 더더욱.
그렇기 때문에 그 이치에 따라 손을 움직이자 최악의 주먹이 반사적으로 튕겨나간 것이다.
"오, 이 새끼 중요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고 반격하는거 봐라? 그것도 움직이면서 하네?"
고오오오오!!!
백리는 얼추 회복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비록 완벽하게 회복은 하지 못했지만 일어설 정도는 되었다.
"이제........!"
"설마 그 정도로 반격할 수 있다고 보는건 아니지?"
최악이 내뻗는 주먹에 백리가 마찬가지로 손을 뻗어 튕겨내려고 했지만 최악의 주먹은 광룡의 발톱으로 바뀌어 머리카락 하나 차이로 백리의 목을 노리며 들어갔다.
광룡흉조수!!!
아주 약간의 차이로 백리의 태극나선경을 피하고 그대로 목을 향해 들어간 광룡흉조수는 그대로 백리의 목 일부를 뜯어냈다. 파악! 하고 살점과 피가 흩날린다!!!
"꺼윽?!"
"반격이고 애초에 이 싸움의 결말은 정해져 있는 법이야"
백리는 최악을 이길 수 없다.
그 결말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설령 운명의 절대자가 오더라도 최소한의 기본은 있어야 바꿀 수 있는 법이다.
하다못해 백리가 온전히 초월자에 들었다면 또 모를까. 고작 애매한 경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최악이 있기 때문에 지구에서도 왕으로 군림할 수준의 무력으로도 아무것도 못한다. 애초에 그 경지조차 최악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수천년을 생사를 오가며 견뎌내 살아온 사람과 겨우 몇달 정도 이능을 깨우친 사람간에 차이는 매우 큰 법이다. 비록 거기에 약간의 보정이 들어갔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포기해라"
최악은 백리의 머리를 향해 힘찬 발차기를 날려 그의 두개골을 일부 부수고 말했다.
백리도 나름 경지에 이르고 관리자의 인과율 보정을 받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차이는 현재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끄으으으윽......."
한순간 두개골이 박살난 충격에 백리는 뇌가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전에 그가 한강에서 만났던 개구리 원종과는 다르게 백리는 나름의 경지에 올라있기 때문에 뇌에 데미지를 입어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 완전히 짓뭉게면 또 모를까 적어도 일부만 데미지를 받는거면 괜찮다.
백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균형 감각이 회복되지 않아서 휘청거리는데도 불구하고 백리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전 이거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어요"
"............"
고통 앞에 무덤덤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반대로 쾌락에 무덤덤한 사람은 없는 법이다. 결국 사람은 어찌되었던 간에 꺽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그게 언제냐의 문제일 뿐이지.
백리는 죽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거다. 결국 그를 꺽을 방법은 죽이는 것 밖에 없다.
"거 시발 간만에 상대하려니까 좆같네"
최악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가장 효과적이지만 가장 최악의 방법이기도 하다.
죽이는거? 죽이는건 간단하고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런걸 쓰기에는 최악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양보하마"
"어........?"
백리는 한순간 머리가 잠깐 맛이 가서 이해를 못하는거 아닌가 의심했다. 하지만 최악이 말하는건 양보해준다는게 확실한 말이였다.
"니가 바라는대로 이 무의미한 학살은 그만 하마. 무고한 사람들까지 조지는건 이제 안할께"
"어......정말요?"
"내가 구라치는 사람으로 보이디?"
최악은 진실은 숨길지언정 거짓말은 안하는 사람이다. 애초에 천성이 그렇다.
백리에게 양보하겠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설령 거기에 다른 의미가 있다 할지라도.
"대신 너도 양보해라"
본론이 슬쩍 들어왔다.
백리는 최악을 이길 수 없다. 최악은 백리를 죽일 수 없고 백리는 죽기 전까지 포기 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면 서로의 의견이 충돌했을 때 서로 양보하는 수 밖에 방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바라는 협상안 자리에 앉아주마. 대신 너도 양보해야 할거야. 그 협상에서 내가 무슨 조건을 걸든 참견하지 마라"
양보해주는 대가는 그거였다. 최악이 양보하는 대신 백리도 양보하는 부분이다.
백리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물었다.
"막 사람들 목숨 내놓으라거나 그런건 아니죠?"
"안죽인다고 했는데 그런짓 하겠냐? 최소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지 않는다는건 약속하마"
"........"
백리도 방금 전의 싸움으로 현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최악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초월자의 경지는 한수 차이여도 그 공백이 엄청나게 넓다.
지금의 백리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최악을 이기지 못한다. 한 십만번쯤 그러면 모를까.
"너도 알고 있지? 어차피 내가 그만 두더라도 죄를 진 놈들은 처리해야 한다는거. 그러니까 내가 협상 자리에서 뭘 요구하던 참견하지 말고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
".......정말이예요?"
"그래, 더 이상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않을까. 죄가 있는 놈이라면 또 몰라도"
"흐음......."
백리는 고민했다. 결국 그가 중국까지 오게된 이유는 최악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고한 사람들을 두고 죄를 진 사람만 처리한다면 백리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압도적으로 밀리는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너는 돌아가서 중국 정부에 내 말을 전해주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될거야. 나는 몰라도 적어도 너는 영웅 대접 받을 수 있을껄? 출세했네, 치킨집 사장님에서 영웅이 되고"
"뭔가 은근히 탐탁치 않아서 좀 그래요"
"흐음......."
최악은 고개를 까딱였다. 대충 효과는 나오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인간을 심판하는 대마왕이라도, 소집도 심판도 안한 이런 상황에서 나라 하나 말아먹는건 찜찜해. 하고 나면 신경은 안쓰겠지만 네가 그렇게 막으면 솔직히 맘을 바꿀만 하지"
"찜찜하다는 사람이 이미 저지르고 있는게 말이 되는거예요?"
"아, 그리고 아까 잠깐 집에 들렀다가 시온한테 들은건데. 중국 정부 쪽에서 루리를 납치하려다가 데였다는데"
".................."
"구라 아니니까 나중에 인터넷 뒤져봐"
그게 바로 결정타였다.
백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백리라 하더라도 여동생을 납치하려고 드는 쪽의 편을 들어줄 수 없다. 차라리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도 친한 형을 믿고말지.
최악이 손을 내밀자 백리는 물끄러미 그의 손을 보았다.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바로 그게 이 일을 매듭짓는 일이다.
"앞으로 무고한 사람들은 죽이기 없기예요?"
"무고한 중국 국민들. 오케이? 정확히 해둬야 나중에 트러블 안생기지. 아무튼 지금처럼 막 다 때려부수고 박살내고 죽이고 그러지는 않을께"
"약속한거예요"
백리는 최악의 손을 잡아 악수를 건냈다. 그의 의견에 합의한 것이다.
물론 그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실적인 면을 계산했을 때 단지 가장 가능성이 높은걸 선택했을 뿐이다. 그 덕분에 지금과 같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꼴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단지 그걸 보고 선택하기에는 백리의 장래는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손해보는건 아니니까 말이야"
영웅은 이상주의자. 현실과 타협한 이상 영웅은 될 수 없는 법이다.
한번 지름길로 나아간 사람은 쉽사리 원래 길로 나아갈 수 없는 법이니까.
"어, 시온. 난데. 지금 집에 아직도 그 주석 아저씨 있지? 일 끝나서 잠깐 만나봐야 할것 같은데"
[있긴 있습니다]
"별일은 없고?"
[크게 일은 없습니다만.......]
"작게는?"
최악의 물음에 시온이 약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중국에서 벌이는 만행을 그만두지 않으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북한이 위협사격을 했습니다. 막 뉴스에 나오는 중인데 시준핑 주석도 당황해 하는 눈치입니다]
"흐으음"
북한은 고립된 국가다. 미국도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중국과 전면전을 할 가능성이 있어서 두고 있는거지 아니였으면 진작에 탈탈 털리고도 남았다.
지금 그 도발을 하고 있는것도 국제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기 싫기 때문에 하는 일일 것이다. 정작 중국 정부에는 말도 안하고 말이다.
최악은 슬쩍 백리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어떻게 할까?"
"저도 군대 다닐 때 북한이 도발해서 생활관에 짱박혀서 상시 근무 대기 하던적 있거든요? 그때 진짜 목욕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참 뭐같았는데"
"대충 알겠다"
최악이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