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화 〉[중국 최후의 날]
백리는 나름 자질이 있었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최악도 그거 하나만큼은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질이 있고 없고의 문제를 떠나서 백리에게 필요한건 시간이였다. 당장 그가 포스 유저로 각성했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겨우 몇달 전. 1년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였다.
하다못해 몇년의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아무리 둔재라 할지라도 백리만큼의 기회가 주어졌다면 나름의 경지는 이룩하는 법이다. 누군가 백리를 본다면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다.
피지 못하고 봉우리가 떨어지는 꽃은 슬퍼할 수 밖에 없으니.
콰아아앙!!!
"큭!!!"
"자세 잡아라 백리야!!!!"
최악의 묵직한 펀치, 하지만 역장만 두르고 있을 뿐이지 기술 하나 들어가지 않은 그저 그런 평범한 펀치에도 불구하고 백리는 휘청거리면서 막는데 급급했다.
실전 경험은 며칠간 용하연에게 굴려지면서 초재생 특성까지 얻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수준의 강행군을 통해 어느정도 기본기를 다졌지만 그래봐야 야매에 불과했다.
재능이 없어도 수천년의 시간을 들여서 갈고 닦은 사람과 겨우 며칠만에 쌓은 사람을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차이가 난다.
"피하거나 막기만 해선 한도 끝도 없는데!!!!"
"그니까 다르게 해야지"
아무리 봐주면서 싸워도 백리와 최악 사이에는 크나큰 스펙 차이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백리가 최악과 싸우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기술이 필요하다.
날아오는 주먹을 막거나 피하는게 아니라 흘린다.
태극나선경은 태극에 이치를 둔 만큼 마찬가지로 힘을 흘리는데 특화되어 있다. 백리는 내질러지는 최악의 주먹을 향해 손등으로 비껴냄과 동시에 손목의 스냅을 이용하여 공격을 효과적으로 흘려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귓가를 미세하게 스쳐지나갔지만 여태까지 밀리던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며칠 전에는 이것마저도 못해서 쥐어 터졌으니까.
"오? 그래? 근데 난 기술 하나 안쓸것 같니?"
"으억?!?!"
다시금 내질러지는 최악의 손. 이번에는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였다. 주먹은 쥐지 않았지만 손가락은 짐승의 발톱처럼 구부려 마치 조공(爪功)과 같은 공격이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팔을 비틀어 내지름으로서 회전을 더해서 위력을 훨씬 더했다.
묵직함은 없지만 날카로움은 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의 공격에는 태극나선경으로 방어하려고 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하기 힘든 변칙적인 힘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백리는 막다 못해 튕겨져 나갔다. 형편없이 땅을 구르지는 않았지만 중심을 잡지 못해 휘청거렸다.
"뭐예요 방금 그거?!"
"조금은 진심으로 하려고. 수라광룡투(修羅狂龍鬪)야"
최악은 재능은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무공을 처음부터 만드는 일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남에게서 배운 기술을 경험을 토대로 자신에 맞게 다듬고 정립하여 하나로 묶었다.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그냥 기술 모음이다. 그에게 맞춰진 기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쓴다 할지라도 최악만큼의 효과를 보기 힘들다.
애초에 이름에 수라와 광룡이 들어가는 시점에서 그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수라는 그렇다 쳐도. 광룡은 창조의 절대자가 만든 무공인 만룡무(萬龍武) 중에서 하나 배운거거든? 각자 특징이 있는데 광룡은 특징이 뭔지 알아?"
"뭔데요?"
"변수 부여"
한 사람이 같은 기술을 똑같은 내공을 담아 공격한다면 약간의 오차는 있을지 몰라도 어지간해서는 비슷한 위력이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광룡에는 평균치나 고정값이란게 없었다.
같은 기술을 날리더라도 그에 따라 매초마다 공격의 성향이 변한다. 운이 좋다면 한줌의 내공으로도 거목을 박살낼 수 있지만, 반대로 바위를 박살낼 힘으로도 젓가락 하나 부러트리지 못할 수 있었다.
"그런걸 왜 배워요?! 무공도 가챠 돌려요?!"
"그야 딴 사람이 배우면 그렇겠지. 솔직히 이건 아무리 실력이 높아져도 결국은 운빨이라 안배우는 것보다 못하거든. 근데 난 가능성의 특이점이거든?"
광룡은 그렇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이 드문 만룡무였지만 최악에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는 가능성의 특이점. 그 덕분에 옛날부터 생존할 확률이 얼마가 되었던 살아남았으며 그걸 통해 배워서 확률 조작이 특기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이 쓰는 광룡은 전부 당첨!!! 가챠로 치면 SR이랑 SRR이랑 UR만 나오는 씹혜자 가챠나 다름없었다! 꽝은 커녕 노말이나 레어조차 없다!!!
"오히려 공격에 변수가 들어가니까 대충 갈겨도 상대가 대처하기 존나 힘들지. 나름 경지에 이르면 나름 대처할 수 있겠지만.......자세 잡고 집중해야지 겨우 주먹이나 막는 네가 이걸 제대로 막을 수 있을까?"
수라광룡투의 조공 기술 중 하나! 광룡흉조수(狂龍凶爪手)! 최악의 손가락 끝이 마치 발톱처럼 백리의 살점을 뜯어낼듯이 빠르게 뻗어졌다!
힘 조절은 했어도 그의 손에는 광룡지기(狂龍之氣)가 담겨 있었다. 일렁이면서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불규칙적인 기가 손을 휘감고 있어서 섣불리 막으려고 했다간 그대로 관통당한다!
"파도파도 괴담만 나오는것 같네 진짜!!!! 혹시 조상님이 양파세요?!"
백리는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다리에 힘을 줄 시간도 없어서 발바닥에서 가이아 포스를 응축해 바로 방출. 그 반동으로 뒤로 날아갔다. 덕분에 광룡흉조수는 피할 수 있었지만 뒤이은 공격은 피할 수 없었다.
최악의 광룡지기가 담긴 주먹이 백리의 복부 앞에서 폭발했다.
"광룡산탄(狂龍散彈)!"
퍼어어엉!!!!
묵직한 충격이 백리의 전신을 두들겼다. 보강 특성을 통해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한순간 그 보호막에 금이 갈 정도의 위협적인 공격이였다.
하지만 최악이 날린 공격치고는 비교적 견딜만 했다. 광룡이 무공에 변수를 부여해 위력의 변동이 있다면, 비교적 제일 낮은 위력을 맞은걸까?
"이거면 견딜 수 있......."
퍼엉!!!!
"크허억?!"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공격이기에 타격이 더욱 컸다. 최악은 그저 보고만 있었는데 무언가가 자신을 후려친듯한 강렬한 충격이 어께에서 느껴졌다.
"딱히 변수를 부여할 수 있는게 위력에 한정된건 아니거든?"
"시간차 공격.......!!!"
백리도 바보는 아니고 한자는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광룡산탄의 산탄은 산탄총의 산탄과 같은 말이다.
즉, 최악이 날린 주먹에 깃든 광룡지기는 산산히 깨져서 기탄으로 변해 그의 몸에 박혀 있는 상태다. 그것도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르는 위협적인 기탄이 말이다.
만약 본격적인 전투가 일어나는 도중에 다시금 기탄이 터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아니, 반드시 그럴거다.
퍼어엉! 퍼엉!!!
"큭......!!!"
다시금 방어를 강화하자. 이어서 기탄이 터졌다. 아까와 같이 크게 데미지를 받지는 않았지만 보이지도 않는 기탄을 감지할 수도 없으니 어디에 얼마나 터질지 몰라서 상시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 까다롭다.
하지만 이내 백리는 나름의 답을 찾아냈다.
"흐읍!!!"
콰콰콰콰!!!!
그냥 닥치고 전신에서 가이아 포스를 전력 방출!!!! 한순간에 주변을 초토화시킬 수준의 강렬한 가이아 포스가 빛과 열을 만들어내고 그것마저도 모자라 그를 중신으로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백리의 전신에 깃들어 있던 광룡산탄의 기탄은 떨어져나갔다.
"오, 머리는 잘 돌아가는데?"
"옷에 고양이 털이 묻으면 빨아야죠"
"그게 당연하긴 한데 빤다고 다 떨어지는건 아니다?"
최악은 이어서 다시금 백리에게 덤벼들었다.
백리는 전체적인 힘은 용하연보다는 강했다. 가진 가이아 포스의 양도, 육체적인 능력이나 특성도 좋았다. 하지만 그녀보다 강한가? 하면 고개를 저어야 한다.
최악이 용하연에게 사용했던 기술들은 흉천만리나 파호시월 같은 필살기 레벨이다. 개념을 다루지 못하는 초월자는 막을 수 없기에 만약 둘중 하나만 쓰더라도 백리는 방어도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일부러 그런 기술들은 봉인하고 대인전 기술과 무공만 사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닿으면 상대를 소멸시키는 멸룡마저도 봉인해 싸우고 있었다.
그건 최악이 백리에게 보여주는 나름의 존중이였다. 며칠간이지만 강행군을 통해 고생했으니 최소한 그 보람은 있도록 싸워주는 자비였다.
"후우우......!!!"
백리는 양손으로 태극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돌과 바위들이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한다.
"분해의 이치? 수준은 낮아서 볼품없기는 한데 그래도 며칠 사이에 배울건 아닌걸 어떻게 배웠냐?"
"날 잡고 두들겨 맞으면서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하면 뭐든 입문은 되더라고요.......!"
"무아지경이라도 경험한거냐. 새끼 얼마나 굴렸으면"
백리가 운이 좋은점이 하나 있었다면 그건 그가 첫번째 제자가 아니였다는 점이다.
용하연은 환생하기 전에 한명의 제자를 두었다. 재능은 다를지라도 한번 가르쳤던 경험이 있으니 다시 가르치는데는 나름의 노하우가 쌓인게 당연하다.
한계까지 몰아붙여 무아지경을 유도하고 깨달음의 방향성을 바로잡는건 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어렵지도 않았다.
"근데 그 정도 수준이면 힘으로 뚫리거든?"
태극나선경은 단순히 무림 하나의 절기 수준이 아니라 차원 레벨에서도 손꼽히는 무공이다. 태극의 이치와 '분해'의 이치를 섞어 완성했기에 거의 공방일체의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걸 극성으로 사용한다면 못막을 기술이 없지만 백리의 수준에서는 힘으로 깨부술 수 있다.
"이것도 한번 막을 수 있나 볼까!!!"
최악은 땅을 차고 가속해 백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그 추진력과 힘을 오른발에 싣고 그대로 내뻗는다!
수라유성각(修羅流星脚)!!!
안목 있는 사람이 본다면 방어 따위는 도외시한 일격! 겉보기에는 발 이외에는 무방비 상태지만 애초에 최악은 대부분의 방어력이 역장에서 나오기 때문에 애초에 신경쓸 필요가 없다.
설령 초월자라도 최악의 역장을 깨려고 한다면 상당힌 수준의 힘이 필요하다. 용하연이 대륙을 반으로 갈라버릴 공간참을 날려도 최악에게는 긁힌 상처 하나 나지 않았던걸 생각하면 별을 박살낼 수준이 아니고서야 못한다.
그런 역장 덕분에 방어를 신경쓰지 않고 싸울 수 있어서 겉으로 본다면 수라처럼 죽음과 고통을 두려워 하지 않고 광룡처럼 날뛰기 때문에 수라광룡투(修羅狂龍鬪)다.
"크으으으으으으으!!!!!"
단순히 발차기라고 아무 힘도 없는게 아니였다. 멋대로 방출되는 광룡지기는 백리의 기감을 뒤흔들고 자세를 무너트린다. 이미 자세를 잡고 태극나선경을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깨졌을 것이다.
백리는 빠르게 손으로 태극을 그렸다. 거의 몇보 사이를 두고 최악의 발은 바로 앞까지 와 있었으며 아직도 그 기세가 죽지 않았다. 태극나선경으로 만든 힘이 조금이나마 완화해줘서 막힌거지만 그마저도 시간문제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하던 백리는 이윽고 손이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그의 발이 다가오자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발끝을 흐려쳤다.
터어어어어엉!!!
묵직하고 두터운 금속을 후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만이 아니라 고막이 찢어질듯한 충격파가 퍼진다.
"어?"
"어라?"
받아친 당사자는 물론 최악도 놀랐다.
전력으로 쳐내기는 했지만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는 법이다. 다짜고짜 개미가 코끼리를 쓰러트렸다고 한다면 납득이 되지 않지만 정말로 운이 좋아서 개미가 코끼리의 귀를 타고 뇌까지 들어가 전두엽을 갉아먹어서 쓰러트렸다고 한다면 확률이 극히 희박해도 가능성이 있는 법이다.
단지 그 인과가 터무니 없을 뿐이지.
허공에서 한바퀴 공중제비를 돌아 가볍게 착지한 최악은 오른발을 가볍게 털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금 그건 피하라고 날린 공격이지 반격하라고 날린건 아닌데 말이야"
"저도 좀 어벙벙하거든요?"
"마룡후가 널 존나 굴리긴 한 모양이다. 반사적으로 그렇게 나오다니. 아니면........"
위기의 순간에 가장 빛을 발하는 존재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설정이 아니라 초월자가 누군가를 주시할 때 생기는 인과율을 말하기도 한다.
백리는 이 차원의 관리자를 만났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힘을 가지고 최악과 대적하고 있으며 그 힘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인과율 보정? 이 타이밍에? 그것도 나한테?"
인과율이란, 쉽게 말해서 원인 없이는 결과도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은 기본적으로 그런 인과율이 얽히고 섥혀서 돌아가고 있으며 그걸 거의 완벽하게나마 파악하고 있는게 최악의 뒷배를 봐주는 운명의 절대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운명의 절대자만 그 인과율을 다룰 수 있는건 아니다. 개념을 다루는걸 넘어서 더욱 경지에 이른 초월자만이 가능하다.
백리를 선택한 관리자는 분명 그만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 초월자다. 지금의 백리는 평소라면 쉽게 찾아오지 않을 행운이 넝굴 채 굴러오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복권이라도 하나 사면 그대로 당첨이 될 정도로.
단지 그런 인과율 보정으로도 이길 수 없을 정도로 상대와 압도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에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것 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최악은 주먹을 쥐었다.
"영웅이란건 현실에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놈들이지"
그는 웃으면서 백리를 노려보았다. 여태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기세가 백리를 덮쳤다.
오싹하고 공포스러운, 죽음을 코앞에 둔 듯한 느낌. 백리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살기였다.
애초에 백리는 살기를 처음 느껴보는 것이였다. 용하연과의 대련을 통해서 투기는 적응이 됐지만 살기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다.
짙은 살기는 근육을 경직시키고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경지에 이른 고수는 살기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백리도 어디 가서 살기만으로 죽지는 않겠지만 상대가 너무 나쁘다. 사회를 죽이는 최흉의 대마왕의 살기는 권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격하의 존재에게는 반드시 통한다.
"과연 너한테 그 자격이 있는지 묻겠다"
초재생 특성에 인과율 보정까지 있다는걸 확실하게 확인 했으니 다음은 무자비하게 두들겨줄 뿐이다.
적어도 죽진 않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