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화 〉[중국 최후의 날]
시준핑 주석은 한동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보좌관의 찢어질듯한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보고를 받아서 알고는 있었지만 차원을 찢어 이동하는 최악의 능력은 기술이 아니라 문명 자체를 초월한 느낌이다. 차원진과 같이 주변에는 반투명한 육각 파편들이 흩날리면서 그 틈새 사이에서는 적성종 대신 마스크를 쓴 최악이 튀어나왔다.
"끄아아아아아아악!!!!"
"넌 좀 닥쳐. 이웃한테 민폐잖아"
"저희 집 방음 설비는 완벽합니다"
"아, 그랬지"
덕분에 바깥에서 대기 중인 미국과 러시아 요원들도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래서 소란은 집 내부에서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보좌관은 끅끅거리면서 덜렁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최악은 그대로 차원의 틈새 사이로 그를 던져놓고 걷어찼다.
퍼석, 하고 뭔가 수박 같은게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꽤나 허무한 최후다.
"거 얼굴 보는건 처음이구만. 주석 아저씨"
"완,웅남........"
중국을 멸망 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여태까지 시준핑 주석은 최악과는 직접 만날 수 없었다. 군용 장비로 접근하려고 하면 그대로 박살내고 격추시켰기 때문에 접선할 방법이 없었고 무엇보다 최악이 그를 죽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서 섣불리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닥치자 수십년의 정치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금방이라도 죽일듯한 모습, 마스크의 아이가드 부분 너머로도 보이는 흉흉한 눈매.
더군다나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살아 있던 보좌관은 틈새 뒤에서 머리가 박살나 핏자국만 남았다. 겁먹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 아저씨도 나한테 소국의 미친놈 운운할거야?"
"아, 아닙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마오슌인지 뭔지 처음 만날 때 그 소리 하던데"
".........."
하필이면! 이번 일을 일으킨 장본인 주제에 죽어서도 도움이 안되는 작자였다. 속으로는 온갖 욕을 내뱉으면서 시준핑 주석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최악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굽신거렸다.
"전부 보좌관의 섣부른 행동이 부른 일이였습니다. 저희 중국 공식 입장은 아닌걸 알아주십시오"
"마오슌 위원은 뭐 공식적인 입장이여서 내가 이 짓 하는줄 아냐?"
"저희는 모든 과오를 반성하고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설령 아틀라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공표하고 사죄하라고 한다면 그러겠습니다"
"왜 진작에 안하고? 이제와서 쫄리니까 하는 짓은 별 의미가 없는거야"
"무엇을 바라시는 겁니까? 저희가 어떻게 해서든 전부 해드리겠습니다!"
"중국의 멸망"
최악은 대화를 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이 자리에 온건 시온의 안전이 위협 받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악이 아니였더라도 시온도 초월자이기 때문에 고작 포스 유저 수준의 힘으로는 손가락 하나 꺽을 수 없다.
용하연이 와도 불가능한데 아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어이없는 짓이다.
"내가 제일 빡친게 시온을 건드린거였고. 그 두번째로 화난게 아틀라스랑 손잡고 쎄쎼쎄 한거였지. 중국이 아닌 다른 국가가 했어도 마찬가지로 그 국가를 쓸어버렸을 사유야"
딱히 중국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시온을 건드려서 그런거다.
최악에게 있어서 시온은 최우선 사항, 시온의 안전은 그 이상의 최우선 사항이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죽이는 것보다 전부 죽이는게 더욱 확실하다.
"주석 아저씨. 생각해봐. 내가 여태까지 가면 쓴 히어로로 움직였는데. 왜 지금은 그 평판 다 까먹고 이 지랄을 한다고 생각해?"
"그건......."
"시온, 시온이지. 우리 마누라.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내 목숨보다 더 우선시 되는 가치. 누가 손대서 지문 하나 남기는 것도 용납되지 않는 그런 소중한 것이야"
근데, 그걸 누가 건들였지?
속삭이는 듯한 말에 시준핑 주석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마, 마오슌 위원은 당신이 죽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 복수는 끝나신거 아,아닙니까?"
"그놈 하나 죽여서 끝낼 일이였으면 진작에 끝냈지"
과연 연관된 사람만 죽여서 끝을 낸다면, 어디까지 죽여야 끝을 낼 수 있을까?
직접 강간하려고 했던 마오슌 위원?
아니면 납치했던 공안인 마오진 경독?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같은 공안 동료들? 묵과해주던 공산당원들?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다. 그냥 다 죽여버리고 후환을 없에버리는 편이 제일 낫다.
"지금의 날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이다. 힘과 의지로 막는거, 근데 너네는 그게 둘 다 없네?"
그럼 죽어야지.
그게 여태까지 저지른 과오에 대한 대가다. 그들은 인민의 지도자란 명목으로 많은 대가를 누리며 살아왔다. 그 의무는 저 멀리 저버리면서.
지도자가 양심을 버리면 그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한다.
최악도 인간을 이해하기에 어느정도 선까지는 납득한다. 하지만 이득을 위해 남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면 그 순간부터 썩은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무, 무고한 인민들을 생각해 주십시오"
"양심 없는 정치인들은 세상에 널려 있지만, 인간성을 저버린 놈들은 또 드물지. 근데 니들은 그 부류야"
"하, 하지만......."
"니 새끼 입에서 한번만 더 인민 타령 나오면 팔다리를 꺾고 혀를 뽑아서 잘난 인민들 앞에 던져주지. 과연 그놈들이 널 위해서 구급차나 불러줄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야"
여태까지 인민을 도구로만 본 주제에 인민 타령하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작전은 통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동정심이란게 있었다면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 전에 지금 네 목숨이나 걱정하시지? 내가 지금 너도 죽일까 말까 고민 중인데?"
"저, 저를 죽이면 중국은 지도자를 잃어서 갈라지게 될겁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더 큰 혼란이 일어날거고요!!!"
"그래봐야 도찐개찐이지. 인민들은 죽어나가고 수뇌부는 권력다툼에 책임 문제로 서로 싸우는 혼란스러운 판이면 나름 괜찮을것 같기도 한데 말이야"
"윽........"
"아, 맞다. 그런데 요즘 인터넷 보셨습니까? 이 사람 루리 학생에게 손 뻗으려다가 데였습니다"
"뭐? 이 새끼 아직 정신 못차렸네?"
"아, 아닙니다! 그건 오해서가 있어서......."
최악은 저울 위에 시준핑 주석의 목숨을 올려두고 재보고 있었다.
물론 일을 벌인 보좌관은 이미 죽였지만 그를 데려온 시준핑 주석에게도 책임이 없는건 아니였다. 애초에 지도자란 책임을 지는게 일이다. 워낙 양심없는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렇지.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오호"
차원의 틈새 너머, 중국의 파괴현장 한 가운데서 그를 만나러 온 사람이 있었으니까.
바로 백리였다.
* * * *
최악은 차원의 틈새에서 나와 자신을 막으러 온 백리를 보았다.
전보다 한결 강해지고 굳은 눈의 백리를 보면서 최악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게 대견하게 큰 아들을 보는 기분인지, 아니면 고생하는 자식을 보는 듯한 기분인지는 본인만 알 뿐이다.
최악은 근처에 아무 건물 파편에 걸터 앉으면서 말을 걸었다.
"너는 실패를 견딜 수 없었지......."
"아니?! 중국 인구를 절반으로 만들것 같은 대사는 하지 말아줄래요?!"
"이 시점이면 반반무마니가 아니라 싹다 몰살이야"
"아씨, 기왕 왔는데 좀 정상적인 말로 인사해주면 안될까요?"
"며칠이나 못봤다고 인사까지냐?"
적대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친근한 대화였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도 형 동생하던 감정이 남아 있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백리에게는 좋은 소식이였다. 용하연 때와는 다르게 백리는 오로지 그 정 하나만으로 최악이 죽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꽤 많이 변했네. 대충 짐작은 가는데, 관리자라도 만난거냐?"
"네, 좋은 사람이더라고요"
"하기사, 이능력 하나 없던 차원에 다짜고짜 맞춰서 이능력 생기는 시점에서 예상은 하고 있었지. 근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권한이 쌘 녀석인데?"
"여러가지 받았어요. 준 1급 권한이라던가?"
"아니, 그거 말고. 주인공 보정 같은거"
".........여기까지 와서 소설 이야기는 좀"
"진짜로 있어. 별이나 우주, 혹은 차원의 의지 같은게 인과율 보정같은거 해주는걸 말하긴 하는데. 온갖 행운이 따르는 그런 상황 같은걸 말하지. 근데 널 선택하다니 어지간히도 보는 눈이 없구나?"
"꼭 그렇게까지 말해야 해요?!"
"너는 정말로 애매한 녀석이야. 완전히 영웅 태생도 아니고 애매한 마인드지"
백리는 확실히 영웅 자격이 있다. 단 그게 한 수십년 쯤 지났을 무렵의 경우에는 말이다.
지금의 백리가 가지고 있는건 별로 유별날것 없는 영웅심과 인간성 뿐이다. 최악이 그걸 높게 쳐주기 때문에 봐주고 있는거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다.
"전에도 말하긴 했지만. 그 길은 진짜 험한 길이야. 내가 널 아들같이 생각하는걸 그냥 그런거라고 생각하니?"
그는 생각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다.
육체적 나이는 20대여도 거의 비슷한 나이대의 예진이를 단 한번도 성적으로 본적 없고 마찬가지인 또래의 백리를 거의 아들 보는만큼 대하는건 그만한 정신 연령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나이를 쌓아오면서 많은 인간을 보았다. 개중에는 영웅의 길을 가는 인간도 마찬가지로 함께 보았다.
"내가 아는 한. 진짜 최고의 영웅조차도 존나 힘든 길을 가고 있는데. 네가 그런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 그러니까 여기서 그만 두자"
"그럴거 였으면 여기 안왔어요. 그리고 한명쯤은 있다는 소리 아니예요 그거?"
"넌 배고프다고 잡아먹으려고 드는 괴물에게 자기 팔 한짝 떼어주고 지금은 이걸로 참으라고 할 수 있냐?"
".........."
"못하지? 그럼 짜져 새꺄"
"치사하게 굴지 마요, 형"
솔직히, 그건 최악이 허들을 높게 잡은 감이 없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는 영웅은 차원 레벨에서도 대영웅이라 불리우며 조직으로서는 누구도 대적하길 바라지 않는 대마왕 족속들을 적대하는 자다.
최악이 자신을 죽이길 바라는 사람이며 시온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그가 사후에 시온의 신변을 맡길 정도로 뛰어난 영웅이기도 하다.
전 차원을 뒤져서 겨우 한명 나오는 수준을 백리하고 비교하기란 어려운 일이였다. 한 수십년쯤 지난 다음에 어느정도의 영웅과 비교하면 또 몰라도 말이다.
"넌 요즘 보기 드문 착한 애야. 그러니까, 더더욱 네 행복을 위해서 싸우고 싶어졌다"
"제가 행복해지길 바라면 그냥 지금 하는 일을 멈춰주면 안될까요?"
"그건 시온 문제니까 안돼. 그리고 네 행복은 그런게 아니라 다른 문제거든. 자질은 있지만 그게 너무 일러. 술도 과정과 시간에 따라서 와인이 되기도 하고 식초가 되는거 알고 있지? 대충 그런 느낌이야"
"흐음......."
"뭐, 대충 너 같은 애들 누르는 일은 많이 해봤어. 어디 한번 야매로 얻은 힘을 시험하는 김에 평가해 볼까? 과연 네가 내 대적자로 싸울 수 있는 그런 존재인지 말이야!!!!"
최악은 백리를 상대해줄 생각이다.
단순히 그가 친한 동생이라서가 아니라 관리자의 권한을 일부 위임받은 대적자로서 나타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를 심판하는 대마왕. 하지만 그가 심판하는건 어디까지나 '사회'이지 '개인'이 아니다. 홀로 덤빈다면 아무리 약한 상대라도 손수 싸워 쓰러트리고 굽혀야 직성이 풀린다. 그게 사회를 심판하는 최흉의 대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다.
콰콰콰콰콰!!!!!
두사람의 기파가 충돌했다.
최악이 전력을 발휘하면 백리가 버티는걸 넘어서서 그거만으로 북반구에 위치한 지각이 뒤엎어지겠지만 그러면 흥이 떨어진다. 최악은 싸우기 위해 주먹을 쥔거지 마구잡이로 상대를 압살하려고 주먹을 쥔게 아니였다.
"싸운 뒤에도 뒤끝은 남기지 말기!!!! 끝난 뒤에는 가게에서 반반무마니 먹으면서 수다 떨기다!!!! 물론 술값은 지는 쪽이 내기!!!!"
"거 시발, 제가 존나 불리한 내기네요!!! 치킨 값은 내주세요!!!!"
"조아써, 딜!!!!"
기세가 충돌한 다음에는 주먹이 충돌할 차례다.
백리의 주먹이 쥐어짐과 동시에 최악의 주먹이 백리의 턱을 후려쳤다. 빠각! 하고 지금의 백리조차도 뼈가 부러질법한 묵직한 일격. 일반인이였다면 진작에 대가리가 뜯겨나가고 마스터 유저라도 턱이 떨어져 나갔을 위력의 주먹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백리도 멀쩡하진 못했다.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광대뼈가 부러졌다. 격렬한 고통이 그대로 뇌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백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부러진 광대뼈도 원래대로 돌아와 금새 멀쩡한 모습이 되었다.
"너......?"
"은근히 편해서요"
백리는 그동안 최악과 장기전으로 싸우고 용하연과의 계속되는 대련을 버틸 수 있게 특성을 각성했다.
그 특성은 '초재생'. 일반적인 재생보다 위의 특성이다. 예전에 그가 한강 공원에서 만났던 개구리 원종의 재생 특성을 보고 얻은 특성이다!
"이거면 좀 싸울만 하겠죠?"
"싸울만한건 모르겠고 샌드백으론 충분하겠네"
최악은 웃으면서 이어서 주먹을 휘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