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화 〉[중국 최후의 날]
다짜고짜 정장남들을 후려치고 루리는 비명과 함께 도주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애초에 대로 한가운데서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자들이 몇명이나 몰려 다니는데 시선이 안갈수야 없다. 단지 어디 직원인가 싶어서 가볍게 넘겼을 뿐이다.
하지만 겉모습은 일단 모델 뺨치게 예쁜 루리가 도망치면서 비명을 지르자 그 시선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뭐야? 뭐야?"
"저 아가씨 105동 사는 학생 아니여? 그 왜 애 아빠가 소방관 하는 그집"
"그러면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야?"
아무리 폐쇄적인 아파트라 할지라도 백리네 집은 주변에서 나름의 인망이 있었다.
일단 백리나 루리 둘 다 포스 유저라서 외모가 남다르고 루리는 공부를 잘해서 학교에서도 손꼽히는 수재인데다 백리는 성격이 좋아서 종종 경비 아저씨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 주고는해서 딸 가진 아주머니들에게는 은근히 신랑감으로 찍어두었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아버지인 하정욱은 직업이 소방관, 일부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대다수의 제정신인 사람들은 충분히 존중하고 치켜세울만한 직업이다. 덕분에 동네에서는 나름 좋은 쪽으로 알려져 있었다.
"자, 잠깐만요! 루리 학생! 저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멀쩡한 대낮에 건장한 아저씨들이 여럿이서 몰려와서 수상쩍게 물어보면 거기서 거기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고요!!!!"
"볼일이 있었으면 먼저 전화부터 하고 한명만 오는게 정상이지 멍충이들아!!!! 그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잠시 따라와달라고 하면 그게 납치아냐!!! 동네 사람들! 여기 사람 납치하려는 새끼들 있어요! 경찰에 신고해요! 신고!!!!"
그들이 잘못한게 있다면, 여태까지의 행보가 그러했다.
중국은 외교적으로 양보를 용납하지 않는 압박적인 외교를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와 접선할 때도 별 생각없이 다수로 가서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만약 상대가 한명이였다면 루리도 이야기 정도는 들어줬을지도 모르지만 포스 유저가 포함된 여럿이 몰려온다면 당사자로서는 압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굽혀야 하는 입장에서 그러지 않았고, 그런적도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찍지 마세요!!! 찍지 말라고!!!"
사람들은 도망치는 루리를 보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들은 그런 사람들을 말리려고 했지만 오히려 말리려고 핸드폰을 빼앗은게 역효과였다.
한손으로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고 억지로 하는 행동은 반발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누군가의 핸드폰에 찍혀 그대로 인터넷에 올라간다.
[오늘 집 앞에서 여고생 납치하려는 짱깨 봄]
피카츄 배 만지라는 놈이나 주작이라고 하는 놈도 있을것 같아서 동영상 첨부한다. 구라 안까고 오늘 여고생 납치하려는 짱깨 새끼들 봄.
우리 집 근처에 포스 유저인지 존나 예쁜 여고생 한명 있거든? 성격은 좀 이상하다고 소문나긴 했는데 그래도 입 다물고 있으면 미인임.
근데 정장 입은 떡대 대여섯이 몰려와서 뭐라고 하다가 갑자기 비명지르고 튀었음.
솔직히 그런 상황이면 수상한거 아님? 게다가 납치라는 소리 들려서 일단 인증용으로 찍었지.
보면 핸드폰 뺏고 중국어로 지랄하는 소리도 좀 들림. 이 새끼들 짱깨 분명한듯.
근데 왜 한국와서 이 지랄이냐? 짱깨는 집에 좀 가라.
아무튼 세줄 요약.
1. 짱깨는.
2. 죽어야.
3. 한다.
-이거 동영상 올라온거 다른 시점 것도 있어서 주작은 아닌걸로 보이는데.......
-짱깨 새끼들 라쿤맨이 깽판 치는거 때문에 쫄리나? 그래서 한국와서 반대로 깽판치는거 아님ㅋ?
-대낮에 도심에서 납치ㄷㄷ, 존나 무섭네.
-견찰 새끼들 뭐함? 저런거 안잡고?
ㄴ조선족들이 지랄하는거 잡느라 인력 부족임.
-시발, 폰 뺏는거 봐라. 누가 보면 여기가 중국인줄.
-짱깨 아웃! 짱깨 아웃!!!
-누가 중중웹 아니랄까봐 귀신같이 누가 비추 박고 갔네. 혹시 조선족이니?
ㄴ조선족이 뭐 어때서 십쌔야.
ㄴ귀신같이 나오는것 봐. 느그 나라로 꺼져. 아, 꺼지면 라쿤맨한테 뒈지지? 불쌍한 쉨ㅋㅋㅋㅋ
ㄴ너 어디사냐.
-일본이랑 똑같이 중국 불매 운동이라도 해야하는거 아니냐?
ㄴ느그 집엔 메이드 인 차이나 없음? 솔직히 중국산 없어지면 살기 팍팍해질것 같은데.
ㄴ중국 없어지면 대신 미세먼지도 없어짐.
ㄴ그건 좀 땡기는군.
-장하다 김라쿤맨, 중국을 네 손으로 멸망시켜 버리렴.
일단 기본적으로 최악, 라쿤맨이 저지른 참사에 대해서 사람들은 3할 정도가 긍정적, 그 나머지인 대다수가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만약 미국 쪽에서 은밀하게 흘린 정도 중에서 라쿤맨의 아내가 고위 공산당원에게 강간당할 뻔했다는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나마 3할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큰 고통 앞에서 중립을 유지할 수 없는 법이다. 무고하게 죽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아무리 분노할만한 일이여도 현대 사회는 복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다만.......그 논리는 반대로도 적용된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 혹은 중국인들이 반발하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패로 무고한 한국인들이 피해를 받자 그들에 대한 옹호 여론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뭐라도 좀 태도가 좋아야 잘 대해주는 법이다. 미운놈 떡 하나 준다지만 그건 미운 정이라도 든 사람한테나 통하는 말이지 그냥 미운 놈이면 국물도 없다.
현재 북한 정도만 적극적으로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규탄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건 없었다. 호주만큼 자국 방어에도 벅찬 국가가 뭘 할 수 있을까.
"이 쓸모없는 것들!!!!"
한국으로 건너온 시준핑 주석은 인터넷에 올라와서 화제가 되는 동영상을 보고 그대로 컴퓨터를 내던져 박살냈다.
가뜩이나 조심해야 할 판에 섣부르게 행동한 탓이다. 루리가 했던 말대로 여럿이 아니라 한명이 가야 했고, 그 전에는 따로 전화를 걸어서 약속을 잡았어야 했다.
외교도 개판으로 하니까 그런 마인드가 뼛속까지 박혀서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바람에 생긴 오해다. 게다가 그 오해는 막을 사이도 없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었다.
"접선하려고 했던 놈들은 당장 본국으로 송환해서 전투조에 처박게"
"알겠습니다"
전투조라 한다면 중국에서 라쿤맨을 막기 위한 포스 유저팀을 말하는 것이다. 최악은 군인이던 포스 유저던 다 가라지 않고 싹다 죽여버리고 있으니 가서 죽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였지만, 그들은 중국이였다. 개인의 권리 따위보다 권력이 더 위다. 망해가는 현재까지도 그러했다.
그들은 한시라도 빨리 시온을 만나기로 했다. 이미 거주지까지 확인했고 집에 있는 것도 알고 있으니 바로 가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이번에는 먼저 연락을 취해 약속 시간을 잡으려고 했지만.......누구가 전화하던지 한번도 받지 않았다.
중국인인 사람의 전화만 받지 않는건지, 아니면 이 사태 때문에 모르는 번호 전부를 받지 않는건지는 몰라도 이렇게 된 이상 가서 만나는 수 밖에 없었다.
시온의 집 앞에 도착한 그들은 입구에서부터 경호를 서고 있는 요원들을 보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과 러시아 놈들.......약삭빠르기는 약삭빠르군"
"이미 먼저 접촉했던 적이 있는 나라입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가지. 나와 보좌관만 따라오게"
"알겠습니다"
국내 방문한 것부터 이곳에 온것까지 전부 비밀이다. 가뜩이나 개판인 여론에 주석이 해외로 나갔다는 소식이 퍼지면 나라를 버린거 아니냐고 생각해 더욱 상황이 악화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설령 라쿤맨의 나라에서 그를 설득해보겠다고 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황에 공산당원을 믿을 수 있을것 같은가? 애초에 사태의 근원지가 그들인데.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크흠!"
따로 언질을 받은건지 입구에 서 있던 미국 소속의 요원이 길을 비켜주었다.
하지만 이미 올걸 알고 있었다는데 연락도 받지 않는다는 모양새가 심히 기분 나빴다.
시준핑 주석은 앞마당으로 들어서 시온의 집을 한번 살펴보았다. 나름 크기는 하지만 조사에 따른 그녀의 재산에 비해서는 꽤나 아담한 집이다. 그리고 최악 같은 힘을 가진 사람이 산다고 하기에도 걸맞지 않아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었는지 시온이 나와 있었다.
프로필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절대적인 조형미가 느껴진다.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감이 없는, 마치 걸어다니는 인형과 같은 미모에 겉모습이 어려도 남자라면 조금은 혹할법한 외모였다.
한편으로는 죽은 마오슌 위원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생각으로만.
"대충 온다는건 알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딱히 환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럴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시온은 기본적으로 무표정이라 최악이 아니면 그 미묘한 감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지금은 누가 보더라도 찬바람이 쌩쌩 부는 대응이다.
그녀는 대부분의 인간의 문명을 좋아한다. 종족 특성 탓인지, 아니면 개인 취향인지는 몰라도 인간이 쌓아온 모든 문명을 긍정한다. 설령 피의 역사라 할지라도 그걸 반성하고 고치려는 의지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수긍한다.
하지만 중국은 남다른 국가다. 현 사회에서도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권리를 무시하며 그 전에는 문화대혁명이란 미명 하에 과거의 유산들을 박살내고 지식인들을 죽였다.
마오슌 위원과의 일이 없었더라도 딱히 좋아할 일은 없었던 국가란 소리다.
"죄송합니다. 기분이 상하신줄 압니다만, 다시금 고개 숙여 사과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엎드려서 절 받는건 딱히 내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애초에 사과도 하지 않았을거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만약 저희도 남편분께서 완웅남인걸 알았다면 이런 짓은........"
"몰랐다면 여전히 저지를거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뒤틀려 있는 심기를 풀어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 원인이 강간 미수라면 상대를 찢여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일이였다.
최악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열받아서 깽판을 치고 있다. 당사자인 시온이라면 훨씬 더 감정이 상해 있을게 분명하다.
"애초부터 만나줄 생각도 없었지만. 뭐라고 변명하는지는 들어보고 싶어서 들여보내준 겁니다. 그러니 어디 한번 준비해 놓은 말부터 꺼내보십시오"
"........저희가 잘못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국제 사회에도 공표하고 사과문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목숨을 잃는 무고한 중국 인민들을 생각하셔서라도 부디 남편분을 말려주십시오"
"거 누가 들으면 예전부터 국민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개인 인권은 커녕 독립한다 소리 들으면 군대나 배치하는 주제에"
"크흠!"
아무리 그래도 한 국가의 대표의 체면이 있지 바로 면전에서 대놓고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건 설령 미국 대통령도 못하는 일이다.
국가간의 예의가 있기 때문에 그러는거지만 시온은 그런거 없다. 다 조까고 그냥 독설에 팩트를 미사일 마냥 꽂아넣는다.
"당신이 여기 온건 중국이란 나라가 패망해서 자기 권력이 무너질까봐 그러는거지 않습니까? 언제 국민이니 인민이니 생각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겁니까?"
"아닙니다, 저희는 정말로......."
"정말로 국민 생각하는 정치인이라면 아틀라스같은 단체랑 손을 잡지도 않고 사람을 납치해서 인체실험에 써먹지도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휴먼?"
"............"
아틀라스는 민감한 소재였다. 중국은 워낙 특이한 나라였기 때문에 아틀라스가 손을 내민 것이지 윤리적으로 인체실험을 허용할 나라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 그런 짓을 한게 알려지면 국가 이미지가 무너지다 못해 회복할 수 없을 레벨로 땅에 떨어질게 분명한 일이다.
"애초에 제가 납치 되어 마오슌 위원에게 강간 당할 뻔한건,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아틀라스의 실험체로 쓰이기 위해서입니다. 애초에 당신들이 아틀라스랑 손 잡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고, 명백하게 당신들 잘못입니다. 그걸 이제와서 없던 일로 하겠다니. 댁의 양심은 안녕하십니까?"
"크흠! 말이 너무 심하신거 아닙니까?"
"그 소리를 과연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들으면 참 잘도 그러겠습니다. 쌍욕 안하는걸 감사하게 생각하셔야 할 판에"
꾸욱, 하고 시준핑 주석의 주먹이 그의 분노 대신 쥐어졌다.
겉보기에 시온은 초등학생의 아름다운 여자아이일 뿐이다. 성인이 아니라 동년배의 남자아이가 오더라도 이길 수 있을법한 외견이였다.
한순간 그는 시온의 프로필에서 포스 유저라는 사실을 잊고 붙잡아서 인질로 삼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로 한순간에 불과했다. 여태까지 당한게 있는데 그렇게 했다간 정말로 곱게 끝나진 못할것 같아서였다.
"전 어지간해서는 손님에게 마실 것을 내오지만. 당신들은 손님 축에도 못듭니다. 조용히 돌아가시고 다신 오지 마십시오"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보좌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시준핑 주석은 보좌관 중에 포스 유저인 사람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그의 끓는 점은 시준핑 주석보다 낮았던 모양이다.
바로 눈 앞에 최악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데다 무방비 상태라고 한다면 방금 전의 시준핑 주석처럼 허튼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빠르게 테이블을 너머 뻗어져 오는 보좌관의 손을 보며 시온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쩌적!!!
"야"
단지, 차원이 갈라지며 익숙한 누군가의 손이 보좌관의 손목을 잡아채 그대로 꽈배기마냥 비틀었다.
"너 이 새끼 내가 울 마누라 안전도 확보 안됐는데 이 짓 할거라고 생각하는 등신은 아니지?"
시온은 조용히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옅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