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5화 〉[중국 최후의 날] (212/507)



〈 215화 〉[중국 최후의 날]

제이슨 요원은 나름 냉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CIA 소속으로 이런 중요한 임무에도 투입되었다.

상대가 무슨 농담이나 말을 하던 당황하지 않는게 그의 특기인데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진 느낌이다.

"또 농담이십니까?"

"농담으로 보이십니까?"

제이슨 요원은 그녀의 표정에서 뭔가 읽어내려고 했지만 시온은 기본적으로 무표정이다.

미묘한 그녀의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있는건 최악 밖에 없다. 오랜시간 그녀와 알고 지내왔기 때문에 가능해서 혈연 관계인 그녀의 사촌 오빠 유토피아도 그녀의 표정을 읽지 못한다.

"재생 포션에 몇세대는 발전한 차원진 감지기. 거기에 현 시대의 기술력으로는 할 수 없는 방사능 제염 장비까지. 제가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란걸 알 수 있고 아무리 그래도 그 기술들은 지금의 지구의 인프라로는 만들 수 없다는걸 알겁니다"


"........."

그런 의견이 없는건 아니였다.


석기시대로 이과생을 보내도 다짜고짜 컴퓨터를 만들 수는 없듯이 잘해야 증기기관이 한계일게 뻔한 일이다.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좀 더 나갈지도 모르지만 그래봐야 오차 범위 안이다.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인프라가 형성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걸 생각하고 시온의 기술력을 본다면 지극히 동떨어진 느낌을 받을  있다.

"거기다가 어느 포스 유저가 자기 몸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바꿀  있겠습니까? 재생이나 회복 계통의 특성을 지닌 포스 유저도 드문 판에 세포 조작 같은 섬세한 것을 할 수 있는 포스 유저는 저 하나 뿐일텐데, 그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건......."


"그리고 이미 알고 계실겁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보다 더 과거의 제 기록은 하나도 없다는걸 말입니다"

물론 서류상의 기록은 있다.


시온은 미국 시민권자였다가 투병을 위해 해외의 다른 병원에서 신세를 지고 퇴원해 한국으로 귀화한 인물로 되어 있었다. 미국 시민권이나 병원 진료 기록 같은 경우는 확실하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만난 사람은 없다. 눈에 띄는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만나보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마치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처럼 말이다.

"제가 숨기지도 않았으니 그런 기록들은 전부 확인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게다가 미국 시민권자라면 미국에서 살았던 흔적이라도 있을텐데, 하다못해 제 부모를 아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제, 조금 믿을 마음이 드십니까?"

시온이 아무리 해킹을 통해 전산 관련 자료들을 숨긴다 하더라도 아날로그 적인 것은 숨기지 못한다. 결국에는 들키는건 시간문제고 언젠가는 맞이할 일이다.

최악은 이미 정체를 드러낼 생각으로 날뛰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온도 숨길 생각은 없다.

제이슨 요원의 귓가에 시끄럽게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난데없는 외계인 커밍아웃에 지원팀의 전문가들도 혼란을 겪거나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지구에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건 꽤나 전형적인 대사 아닙니까? 뭐, 대답해 드린다면 역시 우리 남편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만큼 소중하신 분인 모양입니다"

"그야 당연한겁니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많았다. 미국이라 하면 51구역에 외계인을 고문하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종종 있었지만 그게 진실은 아니였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외계인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는 한가득 있을게 뻔했다.


"저는 하논이라고 하는 종족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외계인이라기 보다는 외계인 같은 초월종에 가깝습니다"


"초월종......남편분은 초월자라고 했는데 비슷한겁니까?"

"자수성가한 사람이랑 처음부터 금수저로 태어난 정도의 차이입니다"


"이해했습니다"

최악과는 다르게 그녀는 태생부터 그러하다는 뜻이다.


문득 제이슨 요원의 머릿속에 시온도 최악과 같은 무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나갔다. 게다가 단순히 무력이 아니더라도 가지고 있는 기술력을 응용한다면 나라 한두개 정도는 가볍게 초토화시키고도 남을만한 무기가......


"그런거 해서 뭐합니까? 그냥 전세계의 모든 은행과 주식 시장을 해킹하면 경제가 파탄나서 알아서 자멸할텐데 말입니다"


"......가능하십니까?"

"미국 국방부 방화벽은 우드락 수준이였습니다"


"..........."


농담으로 하는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 확신을 더해주는게 시온의 여태까지의 행적이였다. 지난 2년 이전의 기록은 없어도 그 2년 동안의 기록에서는 주식 투자나 특허를 통해서 돈을 벌어들여도 세금 문제로 조금의 트러블도 없었으며 조금도 정직하지 않은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인맥을 통해서 상황을 유리하게 끌어간 적은 있을지 몰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합법적이다. 단지 과정에 이르는 시간을 대폭 단축했을 뿐.

"전 그이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니까 무슨  생기면 난리 피우지 않고 조용히 화성으로 이주해서 살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화성이라니......그게 가능합니까?"


"전 뭐 맨몸으로 우주를 돌아다니는것 같습니까? 나름 우주선도 있고 러시아에 빌려준 제염 장비는 원래 테라포밍용 장비입니다. 행성 하나 테라포밍해서 거주 할 수 있는 행성으로 삼는건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제이슨 요원의 귓가에 고성이 폭주했다. 지원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에 홧김에 이어폰을 빼버렸다.

이전의 다른 기술은 물론 지금 말한 우주 개발, 테라포밍까지 아무거나 하나만 얻는다면 세계를 넘어  태양계의 패권을 가질 수 있는게 보이는 수준이다.

커피를 마시며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저희에게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까?"

"딱히 없습니다"

그럴줄 알았다.

뭐가 부족해서 시온이 그들에게 바라는게 있겠는가? 돈 같은건 인간이 만든 가치일 뿐이고 황금이라고 해봤자 우주에 널려있는게 금이나 다이아몬드다. 찾는게 귀찮지만 잘 찾으면 통째로 금이나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소행성도 있다.

그런 이상 권력도 의미가 없고, 결국 그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패가 없다.

"당신들이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대화에 응해주는건 해준 것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해준 것이라니.....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모를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뭐, 솔직히 냅둬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단지 중국인 열댓의 시체만 늘어났을테니 말입니다"


어지간해서 사람을 해치고 죽이는 일은 시온보다 최악이 담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온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건 아니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다. 호의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호의로 대하고, 적의를 품는 사람에게는 마찬가지로 적의로 대한다. 지인들에게 해를 끼치려고 드는 사람을 곱게 내버려둘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하지만 저희 미국의 품은 언제나 열려있으니 만약의 경우에도 불러주신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겠습니다"

"외계인한테도 말입니까?"


"지구인이 아닌게 뭐 어떻습니까?"


"고려는 해보겠습니다. 일단 그이도 명예 미국 시민권 받은게 있고, 저도 서류상으로는 미국 시민권자였던 적이 있었으니 미국으로 이민가는건 쉬울테고.......사실 그런거 따지면 싸인 하나만으로 바로 귀화 효과 나오는 서류를 러시아에서 받은게 있어서 말입니다"


"저희도 바로 준비해서 드리겠습니다. 언제든지 마음 내킬때 싸인 해주십시오"

"답변이 바로 나오는게 좀 신박합니다"

"불곰에게는 질 수 없죠"

그건 정치 문제 이전에 자존심의 문제다. 중국이 저렇게 개판난 이상 지구상에 미국과 견줄  있을만한 나라는 이제 러시아 정도 밖에 없는데 소련과의 냉전 시대부터 이어진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보고를 올리자마자 바로 서류가 올 것이다. 제이슨은 이번 일 만큼은 그럴거라고 확신했다.

"중국은 망했다 치고 발 빼는 편이 좋을겁니다. 설령 남아도 예전만큼의 힘을 낼 수는 없을테니 아시아에서 러시아랑 마음대로 치고박고 싸우십시오"


"꽤나 치열한 전쟁이 일어날것 같군요......"


"뭐, 그래봐야 저희는 팝콘이나 뜯으면서 보겠지만 말입니다. 나중에 화성에 이주할 때 집들이 초청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그건 기대하도록 하죠. 부탁 드리겠습니다"

제이슨 요원이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딩동, 하고 인터폰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 소리가 들렸다.

인터폰에 보이는 화면에서는 제이슨과 같은 서구권 인종의 일행이 보였는데, 시온은 몰라도 제이슨은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 몇몇 있었다.

"아, 불곰 친구들이 이제야  모양이군요"

"이번에는 이겨서 기분 좋으시겠습니다?"


"그야 당연하죠. 나갈 때 제가 지을  있는 가장 좋은 미소를 보여줄 생각입니다"


아직 시온의 집에 올 손님은 많이 남아 있었다.

대접해줄 커피가 남아나지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든다.



 * * *

최악과 싸운 이후 정신을 잃은 백리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세상을 떠다니고 있었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만 백리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주변에서 보이는 광경은 그의 빈약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여기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스스로를 자각하자 형태가 되었다. 손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면서 이게 단순한 자각몽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이아 포스로 가득했다. 마치 가이아 포스의 바다에 온것 같은 느낌은 그의 전신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었다.


"마지막에  했더라.......형한테 얻어 맞고 기절했는데. 기절이 아니라 죽은건가?!"

백리가 있는 곳은 별세계라 불러도 될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바닥과 하늘의 경계도 없고 주변에는 가이아 포스가 흘러넘치며 사방에는 가리지 않고 각양각색의 빛을 뿜어내는 별 같은 것이 떠 있었다.

"저건 별인가?"


[별이 아니라 영혼이지요]

"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니, 의지가 들렸다.

확실하게 목소리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법한 그것은 백리도 전에 한번 느낀적이 있다.


최악이 빡쳐서 중국을 박살내기 전에 세계에 선전포고를 할 때 내뱉었던 말에서 느껴졌던 것은 언어와 소리를 넘어선 의지라고 판단할만한 것이였기 때문이다.

[저것은 모든 포스 유저들과 연결된 영혼의 빛이 발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영혼에 따라 비추는 빛의 색과 밝이도 다른 법이지요]


"누구세요?"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어디서 들리는지도 알 수 없다. 백리는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인기척 하나 없었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주변에서 흘러넘치는 가이아 포스의 파도에 휩쓸려서 눈치챌 수도 없을것 같았다.

[이곳은 보통의 영혼은 버틸 수 없는 곳. 제가 뚫어놓은 회로를 통해서 간신히 그 힘의 일부만 받아 사용할  있는게 전부이고 어중간한 영혼은 들어오는 순간 힘의 압력에 짓눌려 영혼이 갈려나갑니다]

"그거 엄청 무서운거 아니예요?! 그리고 전 멀쩡한데?!"

[이번만큼은 예외. 당신에게는 볼일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초청했습니다]


문득 백리는 최악에게서 들었던 몇가지 이야기들을 기억했다.

가이아 포스는 자연계에서 솟아나는 힘이 아니라 개인의 영혼에 회로가 새겨져서 그걸 통해서 공급받는 식이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욱 깊숙하게, 회로 너머에서는 그 모든걸 조율하는 관리자가 존재한다고 했었다.

백리가 최악에 의해서 회로를 억지로 넓혀서 무늬나마 마스터 유저가  것도 그때였다. 그러니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기억이 남을  밖에.

"당신이 그 관리자인가요?"

[가이아 포스를 통해 인류가 적성종에 대처할 수 있게 만드려는 사람을 말하는거라면 제가 맞습니다]


아마 관리자와 대면하는 것은 백리가 처음일 것이다. 최악조차도 회로를 타고 넘어가다가 불청객으로 쫒겨났으니까 직접 이곳으로 오지 않는 이상 만나는건 불가능하다.

모든 포스 유저들을 주시하고 포스 유저 각성의 기회를 주는 관리자. 눈 앞의 상대가 어떤 면에서는 최악보다 더 크나큰 존재였다.

최악은 마치 벼리고 벼려낸 칼과 같았다면, 관리자는 처음부터 힘의 크기 자체가 달랐다. 힘의 크기는 최악이 아래일지 몰라도 관리자에게 닿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어, 음. 왜 부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대화를 하려고 한다면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그냥 관리자님으로 불러드려요.......?"


백리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관리자는 대답했다.


[여러가지 이름이 있지만 당신에게 익숙한 이름을 댄다면 '앨리사 니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