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4화 〉[중국 최후의 날] (211/507)



〈 214화 〉[중국 최후의 날]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가 바빠지고,  와중에 한국 정부라고 바보는 아니였다. 정체불명이여도 자국 출신의 포스 유저가 깽판을 부리고 있으면 어떻게든 말려야 하는건 당연했다.

외교부는 중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날아온 대사들을 상대하느라 바쁘고 국내 거주, 혹은 체류 중인 조선족과 중국인들로 인해 생기는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국민의 여론을 진정시키는데 땀을 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다 하더라도 살인은 중범죄이며, 수천만의 생명을 앗아간 라쿤맨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만행을 저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중국과 협력하여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변인! 천검의 파견 예정은 있습니까? 파악한 바에 따르면 현재 권룡여제, 살라딘, 라쿤맨 2호까지 전부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데 천검 한명으로 상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대변인! 구체적으로 어떤 협력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변인!!"

"대변인......!!"

정부의 대변인으로 나선 문화부 장관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식은 땀을 흘렸다. 강해지는 적성종만으로도 벅찬 상황에 이런 참사까지 일어나니까 처리하는게 장난 아니다.

기자들의 질문 중에는 지금 당장 대답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는 답변을 아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섣부른 확답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법이니까.

현재 정부 쪽에서는 천검 이경진의 파견 문제로 싸우기 바쁘지만 대체로 보내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고 있었다.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위해서라도 파견을 보내야 합니다!!!"

"승산이 있다면 보내는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권룡여제에 살라딘, 마스터 유저로 추정되는 라쿤맨 2호까지 전부 압도적으로 패배하고 전투불능 상태가 되었는데 이 상황에서 이경진씨를 보낸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중국과의 외교는 단절될지도 모릅니다. 라쿤맨이 일단은 저희 국민인 만큼 그에 대한 성의 표시는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괜히 이경진씨 마저도 전투 불능이 되어서 돌아온다면 그동안 생기는 적성종 피해는 어떻게 하실겁니까? 만약 인간형 적성종이 나온다면 피해는 극심해질텐데 그걸 막을 사람은 이경진씨 밖에 없습니다. 정말로 그런 피해가 생긴다면 위원님이 책임지실겁니까?"

"흐음......."

자고로 책임에 대해서는 자기들이 제일 앞장서서 떠맡아햐 할 것을 회피하기 바쁜게 국회위원들이다. 책임 문제가 나오면 대답하기 어려워질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천검의 중국 파견은 물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소란스러운 대한민국의 밤. 인천 앞바다의 구석진 항구 어딘가.

"다왔수"

작은 어선 하나가 사람들이 한적한 틈을 타서 항구에 정박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어업 나갔다 들어온 어선 같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가장 의심스러운 점은 갑판에 물기 한점 묻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물을 치고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면 필연적으로 묻어 있어야 할 물기가 전혀 없었다. 단지 물고기 대신에 배에 올린건 있지만.

따로 개조하여 갑판 아래의 보관 창고를 넓게 만든 곳에서 누군가가 올라왔다. 숫자는 십수명. 작은  하나에 타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꽤나 많은 숫자였다.

"돌아갈 때도 부탁하지"

"돈만 챙겨준다면"

"그러지"

밀항하고 있던 사람들의 리더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어투에서는 이해하는데는 문제 없지만 약간 어투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배에서 내린 그들은 한데 모였다. 그리고 빠르게 이동해 어디론가로 향했다. 내린 곳이 인천이였으니 거기서 가까운 곳에 그들의 거점이 있었다.

그들의 몸놀림은 보통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날렵하고 빨랐다. 누군가 그들이 달리는 속도를 본다면 분명 포스 유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좀  이쪽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움직임이 적성종을 죽이는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데 특화되었다는 것을  수 있을 것이다.

이내 그들은 한국의 거점에 도착했다. 붉은 장식이 가득한 거리는 한국의 거리라고 하기에는 이국적인 면이 많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은 화교 출신들이 모여 만든 인천의 차이나타운의 가게 중 하나다.

남자는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에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달도 흐린 야밤에 무슨 볼일이시오?"

"달 보는데 방해가 된다면 구름을 흩어버려야 하는 법이지"

".......들이오시구려"

나이가 지긋한 사장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하듯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전부 들어오자 사장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문을 닫았다. 그리고 십수명의 사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숨을 돌렸다.

"이야기는 들었소. 목표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바로 드릴테니 조금만 기다리시오"

"알겠소"

화교 출신의 사장이 그들에게 차를 내주고 잠시 자리를 떠났다.

자고로 차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빼놓지 못할만큼 중요한 것이다. 식후에는 언제나 차를 마시고 설령 차가 없어도 한여름에 뜨거운 물을 마실 정도로 차를 좋아한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속을 비운다 하더라도 갈증을 달래기 위해서 차를 마시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더군다나 사장이 내온 차는 향도 좋고 맛도 깔끔한 좋은 차였다.

안에 뭔가를 넣어도 포스 유저도 눈치 못챌만큼.

"어.......?"

한국인에게도 김치는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은 있어도 중국인에게 차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한결같이 차를 마시다가 정신을 잃은 그들은 그대로 테이블 위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이윽고 전부 정신을 잃은걸 확인하자, 가게 뒷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포스 유저지만 국적이 달랐다. 명백하게 서양인의 외견을 보이는 그들은 정신을 잃은 중국 포스 유저들을 끌고가기 시작했다.

"VIP과 그 주변 인물들을 보호하는 것보다 그 원인을 먼저 처리하는 편이 일하기 편한 법이지"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CIA의 제이슨 요원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다음은......"

중국에서의 일을 끝마치고 돌아가던 길에 한국에 들러서 처리했던 것이지만 아직 그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 *  * *



조용하지만 확실히, 여러 국가들의 정보전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온도 누가 가장 먼저 찾아올까 내기를 걸어볼 정도로 흥미진진한 과정이였지만 결국 우승자는 생기기 마련이다.

가장 먼저 찾아온 사람은 미국의 CIA 소속의 제이슨 요원이였다.

"실례합니다. 혹시 여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십시오]

"흠......"

제이슨 요원은 시온의 집을 방문했다가 소개가 끝나기도 전에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조금 놀랐다. 누군가 올 줄 알았다는건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홀로 방문했다. 그가 소지한 장비를 통해서 따로 지원팀에 정보를 보내기는 하지만 포스 유저도 아닌 그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자기방어 수단도 없이 접근하는건 위험한 일이지만 그는 자원해서 나섰다.

만난적은 없지만 제이슨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에서 라쿤맨인 최악을 만나고도 죽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곧 어느정도 호의를 사고 있다는 뜻이며 그렇기 때문에 다짜고짜 죽을 가능성은 없다.

비록 그게 확신에 지나지 않더라도 당사자인 그가 생각하기에도 설득력이 높은 말이였다.

집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이윽고 현관으로 나온 시온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CIA 소속의 제이슨 브라이트라고 합니다"

"시온이라고 합니다"

"사진으로만 봤는데 직접 보니 훨씬 아름다우신 분이군요"

"과찬입니다"

"솔직히 과찬이 아닙니다"

시온의 외모는 인간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조형적인 미가 있었다. 인간이 아니라 인형을 보는것 같은 느낌이 있기에 약간 마이너스 요소가 있지만 그걸 제외하고도 오히려 그 이상의 미모를 보여주었다.

괜히 제이슨 요원이 시온을 보고 아름답다고 한게 괜히 하는 말은 아니였다. 어느 정도는 진심이 담겨있으니까.

비록 지금은 어린 모습이라도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미 그는 시온이 성인 여성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파악한 상태다.

"제가 러시아에서 들었던 것보다는 조금 어린 모습이시군요"

"아, 이거 말입니까?"

단숨에 그녀의 신체가 변형된다. 성장 속도를 수백배 가속한듯 키가 자라고 외견이 변한다. 한층 성숙한듯한 모습을 지니게 된 시온은 러시아에서 라쿤걸로 활동할 때의 모습처럼 성인 폼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자란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오......."

"솔직히 겉모습은 저에게 의미가 없습니다만. 아무튼 들어오십시오. 커피를 끓여두었습니다"

"아, 예"

일단 포스 유저롣 등록되어 있어도 사람이 갑자기 성장하는 모습은 충분히 비현실적인 광경이다.

더군다나 시간을 들인게 아니라 눈앞에서 겨우 몇초만에 바뀐 것이라면 더더욱. 덕분에 좀 넉넉하게 입었던 시온의 옷도 딱 맞게 되어서 한결 움직이는게 편해 보였다.

식탁에 앉아서 시온이 내준 커피를 마시던 제이슨 요원은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나름 커피에는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끓여준 커피는 흠 잡을 곳 없이 맛있는 커피였다.

"그이가 커피에는 까다로워서 원두부터 끓이는 방법까지 잘 해야 좋아합니다. 그냥 인스턴트도 좋아하지만 그래도 더 좋은걸 마시게 해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인지라"

"아, 그렇군요"

그이라는 말에 제이슨 요원이 조금 긴장했다. 이미 들어왔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본인 입에서 확신을 든는건 다르다.

제이슨도 바보는 아니다. 최악이 지구 전체에 경고를 하고 중국에서 날뛰기 시작하자 예전에 그가 천검 이경진의 딸 이윤과 만나러 왔을 때 그녀의 보디가드를 맡았던 비앙카 로웰로부터 얻은 몽타주를 통해서 최악의 신원을 조회했다.

단지 거의 그의 신원을 찾기 전에 시온에 대한 정보가 들어와서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볼일이 뭔지는 알겠고. 거기다가 나름 첫번째로 오신 손님이니까 특혜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특혜, 말입니까?"

"어떤 질문이던 두가지. 솔직하게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왜 하필이면 두개입니까?"

"하나는 너무 적고 세개는 너무 많은것 같아서 말입니다. 게다가 세가지를 물어본다면 대충 어떤걸 물어볼지 짐작이 가서 기왕이면 변수를 조금 넣어보고 싶었습니다"

"으음......"

두가지, 물어보고 싶은 것.

그가 귀에 꽂아넣은 이어폰에서 지원팀의 여러가지 조언이 들렸다. 어떤 것을 고르면 좋을까 고민하던 그는 이윽고 가장 합리적인 질문을 가장 먼저 입에 올렸다.

"남편분을 말릴 수 있으십니까?"

"안됩니다"

"못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안하시는겁니까?"

"그건 두번째 질문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

"농담입니다. 아무튼  질문에 답하자면 못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미 제이슨은 이번 일이 일어난 원흉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차라리 돈을 주고 여자를 샀다면 스캔들에 휘말려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겠지만 납치에 강간미수에 마약 문제는 미국에서도 무기징역이 나올지도 모르는 문제다.

"그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건 저고.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면 저의 안전이  중요합니다. 이미 그이는 중국이란 국가를 제 안전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인식했고. 그 전부를 파괴하고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겁니다"

"........방법은, 따로 없겠습니까?"

"뭐, 편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그 방법이 뭡니까?"

"그건 두번째 질문입니까? 아, 이번건 농담 아닙니다"

제이슨 요원은 곰곰히 생각했다. 지원팀에서도 해주는 조언은 반반이다. 물어보라는 의견과 다른걸 물어봐야 한다는 의견. 제이슨은 잠깐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다른걸 물어보겠습니다"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뭡니까?"

"........"

무엇을 불어봐야 할까?

중국이 망하면 미국으로서는 경제적인 타격이 좀 있을지 몰라도 아시아의 패권을 잡는데는 오히려 이득이기 때문에 지금 그대로 내버려둬도 좋다. 한국이나 일본은 이미 우호국이고 북한은 중국이 망하면 끈 떨어진 연이나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당신의 정체는 뭡니까?"

"흐음"

고민하다 나온 질문은 사회적인 문제나 최악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에 대한 것이였다.

이미 미국에서는 최악에 대해서 나름의 조사를 통해 파악해둔 정보가 있다. 이미 20년동안 한국에서 살아오면서 정보를 얻을 곳과 기회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온은 아니다. 서류상으로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가 한국으로 귀화했다고 되어 있지만 조금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비록 외국에서 투병 생활을  기록이 있어도 조금도 국내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없었다.

게다가 그런 기술과 사업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정보부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확실하다고 자부할  있다.

"사실 전 외계인입니다"

"예?"

"사실 전 외계인입니다"

그리고 시온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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