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3화 〉[중국 최후의 날]
최악이 중국에서 깽판을 부리는 동안 시온과 예진이는 한국에서 비교적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로 인해 불안정한 치안과 경제 때문에 소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거야 집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 두사람에게는 별로 크게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예진이는 이 소란이 벌어진 후 학교에는 따로 말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집안 사정으로 결석한다고 하고 시온도 학교에 전화를 해서(약간의 인맥의 힘도 있다) 별다른 일 없이 결석 처리 될 수 있었다.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티타임이 지나간다. 두사람은 TV앞에서 최악이 저지른 참사 뉴스를 보고 있었다.
시온은 익숙하기 때문에 평소와 같은 무표정이지만 예진이는 복잡한 표정이다.
"아주머니. 저거 그냥 내버려둘거예요?"
"제가 말려도 안들을겁니다"
"그래도 저건......"
예진이는 아틀라스에게 납치되어 못볼꼴을 많이 봤다.
인간이였던 사람이 인간이 아니게 되어 실려가는 것도 보았고, 자기 자신도 현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약물을 주입되어 꽤나 질 나쁜 환상도 보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만 단위로 죽어나가는 참사는 처음이다. 그리고 그 원흉이 자신이 잘 하는 사람이 저지르는 것도.
".......좀 너무한거 아니예요?"
"제가 당한게 있으니 그이는 '시온의 안전을 위협하는 원인......그것은 중국! 파괴한다!'같은 마인드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이에게는 제 안전이 최우선이니 그 원인을 전부 말살할 때까지 그만두지 않을겁니다"
"제가 말려도요?"
"그이는 분명 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만약 예진 학생을 위해서라면 팔 한짝 정도는 웃으면서 잘라줄 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자기 신체 일부를 떼어줄 수 있을만큼 정이 깊은 사람은 확실히 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최악에게 있어서 시온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신체가 아니라 영혼까지라도 팔아넘겨서라도 시온의 안전이 보장받을 수 있다면 떨이로 팔아넘기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정으로 따지면 그이에게 저만큼 소중한 사람도 없습니다"
최악은 환생자. 수 백번의 환생을 통해서 수천년을 살아왔다. 조금 달라도 시온도 여태까지 최악과 수천년을 같이 살아온 영혼의 반려다.
단순히 지내온 세월만 따져도 시온 이상의 개인은 없을 지경인데 겨우 몇달 알고지낸 예진이를 위해서 팔 하나 정도는 내줄 수 있는 최악이 정이 많은건 확실하다.
"그리고 한가지 말할게 있습니다"
"뭔데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저희랑 멀어지는게 좋을겁니다"
"......네?"
예진이는 한순간 시온이 뭐라고 말하는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서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는 얼빠진 소리로 되물었다.
"이번 일로 그이는 자기 정체가 드러나도 어쩌냐는 식으로 다 부술겁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이번 일은 사안이 크고, 결국에는 타의던 자의던 가면을 벗게 될겁니다"
여태까지 조용했던 것은 최악이 우스꽝스런 라쿤 가면을 쓰고 라쿤맨이란 가면 쓴 히어로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가면을 벗은 히어로는 그 주변 인물들이 노려지기 마련이다.
그 어떤 히어로도 자신의 정체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거의 신에 가까운 힘을 가진 슈퍼맨조차도 코믹스에서는 일반인으로 위장을 하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DC가 아니라 마블로 옮겨진다면 아이언맨 시리즈 3편에서 정체를 드러낸 여파가 어떻게 되는지 잘 나온다.
고작 현 수준의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테지만 한손으로는 열 손을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정체를 드러내면 분명 예진 학생도 지금같은 생활은 보내지 못할겁니다. 분명 여러가지 차별을 받고, 경계를 받고, 위협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아주머니는요?"
"저는 괜찮습니다. 여차하면 초신성 폭발이라도 일으켜서 지구의 절반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데 지금의 지구에서는 절 해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설령 지구 외의 차원 너머의 문명에서 온 프로메테우스라 하더라도 시온을 해치는건 불가능하다. 4대 초월종이라 불리는 하논으로 태어난 시온은 어지간한 초월자라도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는 그런 종족이니까.
물리법칙 무효에 기본 광속으로 이동하고 자폭하면 우주도 창조하고 남는 그런 종족을 쉽사리 건들 수 있는 초월자는 차원 레벨로 따져도 드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다른 가정에 입양되거나 따로 떨어져서 관련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살 수 있을겁니다. 전산 처리는 제가 해줄거고 필요한게 있다면 다 마련해드릴 수 있습니다"
시온은 예진이의 행복을 바랬다. 그리고 최악의 옆에 있기에는 그녀는 너무 나약했다.
인간의 악의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인간의 문명을 심판하는 최흉의 대마왕인 최악이나 수백년동안 기술을 지원해주던 문명에게 배신되어 위기를 겪었던 시온만큼 인간의 악의를 잘 이해하는 사람도 드물다. 특히나 시온은 그 일 때문에 지금도 약간의 대인기피증을 보이고 있었다.
"평생 돈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을겁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괜찮으니 따로 나가서 사셔도 됩니다"
"........."
전이라면 몰라도 최악이 지금 하는 꼴을 본 이상 예진이도 조금은 고민될 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사람을 죽여서 생기는 원한은 짙고 깊다. 그게 수천만명에 달하니 길 가다 누군가에게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만 하더라도 조선족 출신인 사람들이 행패를 부려서 치안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고민하던 예진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됐어요"
"괜찮겠습니까?"
"전 시설 출신이예요. 좋은 원장님을 만나서 잘 자라긴 했지만 그게 부모의 사랑이냐고 물으면 조금 고민을 할 정도죠"
그 시절의 최악과는 다르게 예진이는 꽤 좋은 시설에서 자란 축에 속한다. 원생에게 관심을 쏟아주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예진이는 한명이다. 그 전부에게 똑같은 관심을 주기란 힘든 법이다.
"그렇지만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한번도 본적 없는 저를 데려와서 자식처럼 대해주셨어요. 아무리 사회 생활을 몰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사실 최악과 예진이의 사회적인 나이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생과 올해 막 전역한 청년. 많아도 5살 이상은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같이 자랐다면 모를까 전혀 다른 타인을 데려와서 이성으로 안보고 자식뻘로 대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악이 환생자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어리거나 젊은 사람은 자식처럼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예진이도 처음에는 최악의 외모만 보고 혹시......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악은 가족으로 대할 뿐이였다.
"제가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이런 가족을 만날 수 있을까요?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같은 가족을 두고 가고 싶지는 않아요"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그런건 아틀라스에 납치 됐을 때 이미 잊어버렸어요. 설마 그거만큼 절망스러운 이야기가 어디있다고요?"
"지금 알고있는는 친구랑도 헤어지고 앞으로 사람 사귀는 것도 힘들어질지 모릅니다"
"친구야 어차피 몇달 사이에 친해진 사이고. 제 외모에 앞으로 평생 노처녀로 살겠어요? 뭣하면 백리 오빠 꼬셔서 결혼해서 잘 살면 되겠죠 뭐"
"그이가 백리 학생 조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립니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딸 가진 아버지들을 위한 샷건을 들고 깽판부리는 광경이 눈에 선하다.
아무튼 시온의 예진이의 각오는 들었다. 남은건 그 뒤를 대비하는 것이다.
자고로 시온만큼 이런 쪽 대처에 빠른 사람은 없다. 최악이 워낙 깽판을 치기 때문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슬슬 준비하도록 하십시오"
"무슨 준비요?"
"위에 앉은 사람이라고 바보는 아닙니다. 분수에 걸맞지 않은 욕심이 넘쳐도 그에 대한 처세술이 있기 때문에 그만한 자리에 앉아 있는겁니다. 분명 조만간 저희 집에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겁니다"
시온은 이미 중국에서 마오슌 상무위원에게 얼굴을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외모이며 성인 폼도 아니고 디폴트 폼으로 그랬기 때문에 발뺌할 수도 없다. 게다가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이니 국민 전체를 범위로 삼는 것보다 훨씬 찾기 쉽다.
바보가 아니라면 진작에 그녀의 신원을 찾고 있을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를 찾아 집으로 방문해 올 것이다.
진작에 정체를 알고 있던 KFU의 조인형 팀장, 중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그 외 기타등등의 국가들. 그리고 한국 정부까지.
"찾아올 사람은 많고 개중에는 누가 제일 먼저 찾아올지 내기하는 것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습니다"
시온은 옅은 미소를 보이면서 말했다.
* * * *
시온의 예상대로 각국의 수뇌부들은 저마다의 루트를 통해서 그녀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서 중국 같은 경우는 실패를 만회하려고 노력하는 마오슌 위원의 노력으로 시온의 외모를 단서 삼아서 찾기 시작했다.
그리 어렵고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다. 한국의 행정 시스템을 해킹할 필요 없이 자국의 입국 기록만 확인하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기록을 삭제해도 시간 문제나 다름없으니 시온도 귀찮아서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위원님! 찾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마오슌 위원은 보좌관이 가져온 서류를 받아 프로필을 읽어내렸다.
거기에는 시온의 이름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어디에 거주 중이고 직업은 무엇인지, 필요한건 전부 있었다.
그리고 라쿤맨으로 확실되는 그의 남편, 최악의 인적사항 또한 적혀 있었다.
마오슌 위원은 서류의 상단에 나와 있는 최악의 사진을 보면서 이를 으득 하고 갈았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당한 것만 생각하는 법이다. 특히나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자존심만 콧대가 높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곧바로 한국으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보게"
"예?"
한시가 급한 일이다. 당장에 한국으로 가서 어떻게든 시온을 설득해 최악을 말려야만 중국이 살 수 있다.
현재 베이징의 3개 도시를 파괴한 최악은 계속해서 그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피난을 유도해서 처음과 같은 인명피해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재산 피해는 앞으로 십수년은 복구에 신경 써야 할 판이다.
그도 그럴것이 조금도 써먹지도 못하게 건물과 시설은 철저하게 파괴했다. 건물 한층이라도 멀쩡하면 뭉게버려서 작살내고 지하의 시설도 신경써서 무너트려 그가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권룡여제는 두번이나 붙었다가 털리고, 터키에 파견 요청을 해서 온 살라딘은 약간의 트라우마 증세를 보이는데다 현재 터키의 수도 앙카라는 중국과 같은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라쿤맨 2호로 보이는 청년도 현재 의식 불명이다.
폭격도, 폭탄도, 인간의 만들어낸 그 어떤 무기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핵폭탄을 언급했지만 아무리 미쳐도 자국의 수도에 핵을 터트리는 멍청이는 없다.
물론 터트려도 방사능 제염 장비가 러시아에 있기는 하지만.......애초에 그건 러시아의 것이 아니라 라쿤걸이 대여해준 것에 불과하다. 그래, 시온이 말이다.
"한국으로 밀입국 루트를 알아봐.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영장들은 몇이나 있지?"
"상황이 상황인지라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해도 한,두 팀 정도는.......위원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겠지"
"주석 각하께서 아신다면 경을 치실겁니다!"
"그럼 지금 상황에 말로 해서 상대가 들을것 같나? 지금 우리가 완웅녀에게 제시할 수 있는게 뭐가 있지?"
보좌관은 속으로 '이게 다 당신 때문이지 않냐?'하고 따지고 싶었지만 억지로 꾹꾹 눌러 삼켰다. 이런 일을 하는 만큼 본심을 숨기는건 특기다.
"인질을 삼지 않으면 우리들이 그녀와 대등한 위치에 서는건 불가능하지. 본인을 사로잡는건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 주변 인물들이라면......."
마오슌 위원은 시온을 데려가기 위해 차원을 찢고 나타난 최악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이동한다면 어디에서든 올 수 있을테니 본인은 사로 잡을 수 없다.
하지만 연관된 그 주변 인물들이라면?
".......실패했을 경우의 단점이 너무 큽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해야한다는걸세"
".........."
그만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과연 바라는게 있을까? 돈이 필요하면 제염 장비나 기술만 팔아도 평생을 살 수 있고 재생 포션을 뿌린다면 의료계를 말아먹을 수 있다.
그런 사람과 같은 위치에 서서 교섭을 하려면 그런 패를 마련해야 하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보좌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의견에 수긍한다는 뜻이 아니였다.
마오슌 위원의 사무실에서 나온 보좌관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이라면 받아들일만한 제안을 한 곳이 있었다.
"예, 라오 샹입니다. 전에 했던 그 제안 아직도 유효합니까?"
[물론입니다, 미스터 라오. 저희 미국의 품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자고로 탈중국은 지능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