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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화 〉[중국 최후의 날] (209/507)



〈 212화 〉[중국 최후의 날]

그건 일방적인 폭력이였다.


백리는 남아 있는 한줌의 가이아 포스를 사용해 특성으로 전신을 보강했지만 묵직한 주먹은 그것만으로도 백리의 골을 울렸다. 잘못 맞았는지 시야가 흔들리고 쪼개질듯한 두통이 느껴졋다.

맞은건 분명 볼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머리 전체가 아프다. 흔들리는 시야에 처맞고 날아가면서 배경이 휙휙 바뀌니 그 고통은 더욱 진해졌다.


"끄, 으억......."

정신을 차렸을 때의 백리는 렌즈를 통해 세상이 보이지 않는걸 깨닫고 자신의 마스크의 일부가 박살난걸 깨달았다.

최악의 마스크는 애초에 본인 능력으로 막고 있는터라 재질이 약해도 본인이 박살내지 않는 이상 부서지지 않겠지만 백리의 마스크는 수트와 같은 것이고 내구도를 중시했기 때문에 훨씬 튼튼하다.

하지만 단 일격에 마스크 중 일부가 박살났다. 솔직히 부서지지 않았다면 더욱 큰 데미지가 머리에 전해졌겠지만 더듬거리면서 부서진 부위를 확인해 보았다.


왼쪽 광대뼈 부분 위의 마스크가 전부 날아갔다. 찬 바람이 느껴지고 그 틈으로 파괴된 도시가 불타는 매연의 냄새가 맡아진다.

마스크 너머로 보았던 현실이 느껴진다.


"영웅 놀이는 이제 끝났냐?"


"으, 어어억......."

어느새 자기 앞까지 온 최악의 물음에 백리는 일어나려고 했지만 조금 심한 뇌진탕이 온 백리의 머리는 일어나기는 커녕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였다.


마스터 유저이기 때문에 그걸로 죽지는 않겠지만 타격이 큰건 확실하다. 그대로 기절하거나 포기해도 누가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백리가 책임질 필요도 없는 이야기였다.


최악이 죽이려고 하는건 어디까지나 중국이란 국가와 거기에 소속된 국민들에게 한정되어 있었고 백리가 아는 지인들이 죽을 염려는 없다.

무시하고 방관해도 아무도 그에게 뭐라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리는 지금  자리에 왔다.

"으으으......."

백리는 아직도 머리를 어지럽히는 두통을 무시하고 휘청거리면서 일어섰다.

하지만 최악은 그런 그를 자비없이 걷어찼다. 이번에는 복부에 들어간 발차기가 백리의 몸을 저 멀리 처박았다.


일반인이였다면 내장파열이 확실하다 못해 장기자랑을 걱정해야 할 일격이였다. 그나마 백리가 마스터 유저 수준이라서 괜찮은거지 멀쩡한건 아니여서 속에 있던걸 게워내기 시작했다.

"으억! 우웩! 으어어억!"

최악은 그 모습을 덤덤하게 지켜보았다.

일주일 전에 먹은것 까지도 토할 기세였던 백리는 숨을 꺽꺽 거리며 겨우 정신줄을 붙잡고 있었고 최악은 그런 그의 몸뚱이를 다시 한번 걷어차 땅에 굴렸다. 죽이진 않아도 죽기 직전까지 패주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였다.

맞은 것만 따진다면 몇대 맞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빈사 상태다. 백리는 다시금 일어나기 위해서 땅에 손을 짚었다가 그대로 최악의 발길질이 작렬했다.

빠각!!!

백리의 팔뚝뼈가 단말마를 내질렀다. 깔끔하게 부러져서 엑스레이를 찍은 의사가 본다면 감탄할 정도의 깔끔한 골절이였다.

"으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고통이 없는건 아니다. 분쇄골절로 인해서 뼛조각이 근육에 파고 드는 수준의 격통은 아니지만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르는 고통이 백리의 팔을 두들겼다.

이어서 부러진 팔을 잘근잘근 밟아주고, 최악은 그의 앞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백리야, 형이 충고하겠는데. 여기서 그만해라"

"으, 으으......."

의견이 충돌하는 상황이라도 여태까지 알고지낸 정이 어디 가는건 아니였다. 특히나 최악의 눈에는 백리같은 사람은 보기 드무니까 더욱 그랬다.

그는 필요하다면 자식에게도 매를 드는 사람이였다. 시온 외의 다른 사람과 결혼하여 자식을 두더라도  한번도 오냐오냐 키우지 않았다.


지금 그가 보기에는 백리는 스스로 가시밭길을 가려는 미련한 자식놈과 같아서 말리고 싶을 뿐이다.

"내가 여기서 그만 두는건 둘째 쳐도. 이번 일로  허들이 너무 낮아졌어.  그대로 한국으로 돌아가면 평범하게  자신이 있냐?"


백리는 그 착한 심성 때문이 여태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일에 많이 나섰다.


거기에 마스터 유저라는 경지까지 오르게 되니까 더욱 그랬다.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처럼 백리는 그 힘을 바른 곳에 사용하려고 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어느 정도의 선은 있었지만 이번 일로  허들이 너무 낮아져버렸다.


"내가 만약 물러나서 네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 만약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내전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다고 하면  그거 보고 참을 수 있겠냐?"

마스터 유저라고 안죽는건 아니다. 초월자인 최악도 안죽는다고 못하는데 백리 수준에 그럴  있을리가 없다.

최악은 그런 영웅심을 가진 사람을 많이 봐왔다. 그런 그들의 죽음은 그리 좋지 않으며 누군가를 구하다 목숨을 잃는게 태반이다.

그런 자기희생의 길은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보상조차 확실하지 않다.


"네가 그런 성격인게 소방관인 아버지 때문인지 여동생인 루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네 천성인지는 몰라도 넌 좋은 녀석이야. 호구 잡힐것 같아도 착한거지 바보는 아니니까 어디가서 보증서고 그러진 않겠지. 돌아가면 네가 선택할 길은 많아"


그대로 치킨집을 운영해도 되고 아니면 정체를 밝히고 커밍아웃해서 국가 소속 마스터 유저로 활동해도 된다.

만약 전자를 선택한다면 평범하고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고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사람도 구하면서 명성도 얻는 보람찬 인생이  것이다.

"그러니까 분수에 안맞는 영웅심 던져두고 돌아가라. 좋은 말로 할때"

백리는 꿈틀거리면서 움직였다.

그리고 띄엄띄엄, 작지만 확실하게 그에게 말했다.


"좆....까.....요......."


백리의 대답에 최악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웃음은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게 비유하자면 아들이 어느덧 장성하여 군입대 하는걸 보는 기분이였다.

대견하고 장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앞서는, 그런 느낌.

"새끼, 남자답구나"


콰아아앙!!!

최악의 주먹이 백리에게 마지막 일격을 먹였다.


*  *  *




용하연은 멀찍히서 두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끝난 기미가 보이자 기절한 살라딘을 끌고 다가왔다.

백리를 후려갈겨서 생긴 커다란 크레이터가 그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번의 최악의 일격은 백리의 마스크를 완전히 박살냈기에 그의 얼굴이 전부 드러나 있었다.


"그렇게 심하게 해도 괜찮은건가? 친한 사이로 보이던데"


"내가 살면서 저런 녀석들  많이 봤지. 일부러 가시밭길을 걸어가려는 바보같지만 대견한 놈들이야"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존중 받아 마땅하다.

최악이 마지막에 백리를 향해서 내지른 주먹은 그런 존중의 의미였다. 만약 존중하지 않았다면 몇번 걷어 차다가 끝냈을 것이다.


"그리고 좀 과한감은 있어도 힘 조절은 했어"

백리는 정신을 잃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팔이 부러지고 내장이 상하고, 마스터 유저의 회복력으로도  오래 입원해야 할법한 중상이였다.


죽이지는 않아도 죽도록 패주겠다는 말은 실천했다. 단지 마지막에  더 힘이 들어갔을 뿐.

"이놈은 어떻게 할거지?"


용하연은 끌고 오던 살라딘을 내던지면서 말했다.

두사람의 대결을 방해했으니 지금 당장 목을 쳐버려도 분이 풀리지 않을  같다.

"아직 이야기는 안끝났어. 백리는 깨어나면 분명 다시 날 막으러 올테니까 마무리 될 때까지는 그놈 목숨은 보류하기로 하자"

"아쉽군"

"나도 맘 같아서는 그놈 목 쳐버리고 싶은데 일단 터키 수도를 날려버린걸로 잠깐 참으려고. 일단 집행유예 시간을 주는거지"

그리고 다시 이어서 하던 일을 계속할 때다.

중국을 파멸시키는 것.

"나중에   끝나면 그레이던 만병왕이던 만나게 해줄테니까. 예전은 본적 없어서 모르겠는데 지금 수준으로는 차원 이동도 못하고 좌표도 없잖아. 얌전히 있으면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줄테니까 빠져있어"


"그러도록 하지. 그러면 이놈과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겠다"


"오케이"

백리도 지금 치료가 필요하다. 용하연이라면 백리의 신변을 맡길  있다.

다만 백리나 최악 둘다 정체가 들킬 위험이 있지만 이미 그건 각오한 일이다. 애초에 정말로 정체를 숨길 생각이였다면 시온의 얼굴을 알고 있는 마오슌 위원부터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을테니까.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건 어디까지나 보여주기 위함이다. 인상 더러운 일반인 최악이 아니라 라쿤맨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군"

"너 무슨 이상한  하려는건 아니지? 너랑 쟤랑 나이 차이 생각해라?"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리고 스승님 외에는 그럴 생각 없다"

"시불년. 사제 관계가 씹창나서 조으시게써요"


"그렇다 따지면 잔 사제의 제자의 제자인 너는 사손(師孫)뻘인데 그렇데 대하는것 자체가 기사멸조 아닌가?"

"응, 정식 제자 아니야~. 사승 관계 따지고 싶으면 정식으로 제자 들이지 않은 울 스승님 찾아가서 따져보던가"

용하연이 쥔 대검에 힘이 들어갔지만 이내 풀렸다. 승산없는 싸움을  시작하기에는 지금 있는 짐이 무거웠다.

살라딘은 둘째쳐도 백리는 치료해줄 가치가 있었다. 그녀가 용화정일  한국으로 가서 백리와 대련해준 것처럼 장래가 유망한 젊은이는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최악과 싸우는걸  후다. 뻔히 질껄 알면서도 싸우는 사람의 의지는 존중받아 마땅하다.

"슬슬 다시 죄다 때려부수고 다녀야겠다. 이제  도시도 아작났으니 딴 도시로 넘어가볼까. 중국은 땅도 넓어서 박살내는 것도 일이네"

"그렇게 귀찮으면 안하면 될거 아닌가? 이 쯤 된다면 경고 정도는 됐을텐데?"

"내가 경고 하자고 정체 까발릴 생각으로 이 짓을 하려는걸로 보여? 다 죽일꺼야"

최악이 죽인 사람들 중에서는 분명 무고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중국인 뿐만이 아니라 해외여행으로 놀러온 사람이나 일 때문에 중국으로 온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사람 한명한명 사정 봐주면서 죽이면 언제 다 죽이나? 사람은 외출 할  실수로 밟아죽일 개미는 신경쓰지 않는다.

"난 살인을 부정하지 않아. 내가 죽인 사람들이 나한테 따지겠다면 나도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다. 살인은 무거운 죄인 만큼 그걸 부정하는건 등신같은 행동이니까"

".......진 사제의 생각과 비슷하군"

"같은 천살성이니까"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만한 사람을 죽여놓고 죄책감이 없는건 이상하니까"

살인은 인간의 영혼을 깍아내는 행위다. 그건 조각을 하는것 같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그리고 영혼을 깍는 칼의 이름은 죄책감이다.


하지만 개중에는 살인을 저질러도 죄책감이 존재하지 않는 천성이 있다. 약간의 태생에 정신적이 충격이 얽혀 생기는 정신병의 일종과도 같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걸 천살성(天殺星)이라 부른다.

"진 사제도 천살성이였으니 그 제자도 천살성일테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너도 천살성일테지. 애초에 스승님이 창안하진 천살진기(天殺眞技)는 천살성인  사제를 위해 만드신 무공이니까 당연한 일이겠지"


"늦게 말하는것 같은데. 그  사제라고 부르는 사람 제자이자  스승님 이름은 류(劉)다. 흐를 류가 아니라 죽일 류자 써서 성도 없이 이름만 그냥 외자인 류"

"묘한 이름이군"


"복수를 위해 이름 같은거 다 버렸데"


"........그런 천성이지. 아무렴"


용하연을 보며 최악이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말릴 생각 없지?"


"눈치 챘나?"

"눈치 못채면 등신이지. 난 빡대가리일 뿐이지 눈치가 없는건 아니야. 그래서 이런 나라도 좋아한다고 들러붙는 여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고생한줄 알아? 하렘은 로망으로 남아야 좋은 법이라고. 정력 딸리는 새끼는 나가 뒤져야지"

"거 참 자랑 한번 잘 하는군"

"으응? 좋아하는 사람이 얀데레를 싫다고 실연당해서 도망치는 사람이 하는 말은 잘 안들리는데~!"

콰아아앙!!!

용하연의 대검이 최악의 정수리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아무런 데미지가 없었다. 의지가 깃들어도 역장 때문에 일정 이상의 공격이 아니면 그에게 데미지를  수 없기 때문이다.


"난 간다. 그레이 얼굴 봐서 넌 안죽이는거다만. 그래도 또 덤비겠다면 그때는 년 단위로 장기요양이 필요할 정도로 조져줄테니까 백리랑 그놈 데리고 꺼져"


".....도대체 언제까지 할 생각이지?"

"중국이란 나라가 없어질 때까지"

용하연은 죽일 때는 확실하게 죽이는 자비없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동정이나 연민이 없는건 아니다. 더군다가 최악은 사승관계만 따지면 사손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정식 제자는 아니더라도 '피는 물보다 진하고 정은 피보다 진하다'라는 그녀의 스승의 말이 있듯이 쉽게 내버려둘 생각은 없었다.

"중국이란 나라만 없어지면 되는건가?"


"으음........"

최악은 조금 고민했다. 지금 용하연이 물어보는 것은 약간의 편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확답을 내리기 어려운 말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대답을 보류하기로 했다.

중국을 없에버린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그 과정의 문제인데......그건 용하연이 들을 이야기가 아니였다. 중국의 마스터 유저가 아니라 무림인인 마룡후 용하연이라면 말이다.


"글쎄"


최악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걸로도 만족했는지 용하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거면 됐다"


"뭔 짓 하려는지 대충 짐작간다. 적당히 해라. 오케이?"

"알았다. 적당히 굴ㄹ.....아니, 적당히 하지"

"굴린다고 했어! 방금 굴린다고 했어!!!"

이래서 조기교육이 중요한 법이다.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온 최악은 으르렁거리며 자리를 떠났다. 가볍게 움직여도 음속의 수배에서 십수배로 움직이는 그를 추적할 수 있는건 현 지구의 기술로는 어림도 없었다.

용하연은 살라딘과 백리를 챙기고 우선 병원부터 찾기로 했다.


그리고 백리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제자를 또 들이게 될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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