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중국 최후의 날]
살라딘은 절규했다. 자신의 무력함을 저주하고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간청이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를 향해서 염동력의 폭격이 쏟아져 내렸다.
고작해야 주먹 하나로 응축된 힘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거리 하나는 초토화 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으아, 으아아아아아!!!!"
콰쾅! 콰가가강! 퍼어엉!! 콰아앙!!!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난데없이 일어나는 테러와 같은 행위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뿐이다.
한순간에도 수십번의 주먹을 날린 최악은 그 어떤 폭격기보다 빠르고 강한 위력으로 도시를 날려버렸다. 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간 것은 빼고.
보이지 않을 정도의 상공에서 보는건 아니기 때문에 살라딘의 눈에도 부서지는 익숙한 도심의 모습은 너무나도 잘 보였다.
지금만큼은 마스터 유저의 뛰어난 시력을 원망하고 싶은 지경이다. 하지만 현실은 지독했다.
"차라리! 차라리를 나를 죽여라!!!"
"무슨 소리야?"
최악은 마저 주먹에 깃든 염동력을 찢겨진 차원 너머로 쏘아내며 말했다.
"설마 너 아직까지 자기가 죽지 않을거라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어딘가 B급 요괴가 할법한 대사였고 말하는 사람도 명백하게 악당이다 못한 대마왕이였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았다.
세상은 기적같이 굉장한 일은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그 외의 사람은 알바 아니다.
구원조차 사람 가려가면서 도와주는 판이 기적이라고 아무나 편들어주지 않는다.
그제서야 살라딘은 현실감이 들었다.
"으, 어......!!"
그가 나쁜건 아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건 어디까지나 최악이 나쁜 것이고 그런 그를 쓰러트리는데 힘이 부족하다면 기습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단지 실패한 뒤의 디메리트를 지게 되는것 뿐.
죽을 각오도 되어 있지 않은 놈은 남을 죽일 권리도 없다.
"거기 변호인. 편들어줄 생각 있냐?"
"손 댈 생각 없다. 솔직히, 나도 감정 상한게 좀 있으니"
"그렇겠지"
용화정일 때는 나름의 이득손실을 계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용하연으로 완전히 융화된 지금의 그녀는 완전히 무림인이나 다름없었다.
익힌게 이름만 마공이지 어지간한 정공보다도 정순하고 힘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무림에서 수백년을 구른 기억은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런 그녀가 1대1로 싸우는 와중에 끼어들어서 암습을 한 사람을 곱게 볼리 없다.
아무리 그게 대의라고한들 대의 타령하는 놈 치고는 좋은 놈이 없다. 진정 대의를 이루고 싶다면 눈앞의 작은 일부터 실천해야 하는 법이니까.
무림에서도 그런 살수들과는 상종을 안했는데 지금이라고 별반 다를바 없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지금은 중국 정부 소속에서도 나올 생각이니"
"뭐야, 미련 남은것도 없나봐?"
"관과 무림은 애초에 불가침이 아니였나?"
"지금 시대의 정부를 관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말이야"
살기에 짓눌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살라딘 앞에 선 최악은 수도를 들어올렸다.
눈앞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발버둥조차 칠 수 없다. 그나마 말을 할 수 있었던건 최악이 마지막 가는 길 유언이라도 남기라고 해준 자비에 불과했다.
그리고 최악의 수도가 휘둘러졌다.
살라딘의 목을 노리고 내려쳐지고 단숨의 그의 목을 잘라낼 수 있을 힘을 담아서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아!!!!"
비명소리. 하지만 그 비명 소리의 주인공은 살라딘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최악이나 용하연은 아닌 제 3자였다.
음속의 몇배의 속도로 돌진한 라쿤맨 2호, 백리가 살라딘을 낚아채고 그대로 최악의 곁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도망가지 못했다. 최악이 백리를 염동력으로 붙잡았기 때문이다.
"베이징에는 가장 먼저 도착한 주제에 가장 늦게 나타나다니. 니가 무슨 주인공이냐?"
"형이 박살낸 다른 도시에서 생존자들 구출하고 오느라 늦었거든요?!"
살라딘과 용화정, 두사람과 비교하더라도 수트를 통해서 음속의 수배로 이동할 수 있는 백리의 기동력이 제일 뛰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나타난 이유는 눈에 띄는 생존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눈에 띄는 건물을 부수고 닥치는대로 죽이기는 했어도 하나하나 일일히 다 죽이지는 않았다. 가뭄에 콩나듯 살아남은 사람은 있으며 그게 중국이라 많은 인구수에 비례해서 좀 많았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백리가 구한 사람의 수는 백여명이 넘지 않았다. 좀 더 일찍 왔다면 생존자도 좀 더 남아 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얼마 되지 않았을게 분명하다.
"뭐하러 왔어? 가게는 어쩌고?"
"형식이 형이 아는 사람 데리고 온다고 해서 대신 땜빵하기로 했어요"
"흐응"
마스크 너머의 서로의 시선이 닿는다. 살라딘은 죽음의 공포 앞에서 충격 때문에 기절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마스터 유저라 하더라도 초월자가 코앞에서 작정하고 죽이려고 했는데 멀쩡한게 이상하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최악의 살기에 짓눌려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방금 그 충격으로 기절했어도 이해 해줄 수 있는 부분이다.
"뭐하러 왔냐?"
"형을 막으려고요"
"잘난 영웅심으로? 예전에도 그랬는데 너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 가지고 있으면 평생 손해보면서 산다?"
"상관 없거든요? 제가 손해보고 살던 그게 뭔 상관인데요?"
"그게 지금 네 목숨을 위협할거라는게 문제지"
최악의 염동력이 백리의 손에서 살라딘을 떼어놓았다. 억지로 붙잡으려고 해도 손가락 마디마디 태산과 같은 힘의 염동력이 억지로 움직이게 하는데 설령 팔이 부러지는걸 각오해도 잡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바로 살라딘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대로 용하연을 향해 내던졌을 뿐이다.
".......마음 바꿨어요? 그 사람 안죽이려고요?"
"지금 억지로 저놈을 죽여봐야 네 반감만 사겠지. 그러니까 너랑 이야기 끝난 뒤에 죽이려고"
일면식 하나 없는 타국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걸 막기 위해서 바다를 건너온 사람을 힘으로 짓누르는건 쉽지만 마음을 꺽는건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최악은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힘으로 꺽으면 다시 회복할 뿐이지만 마음을 꺽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힘보단 마음을 꺽는 편이 낫다.
"형수님한테는 이야기 들었어요. 분명 나쁜일이긴 하지만 벌 받을 사람만 받으면 끝나는 일 아니예요? 형한테는 그럴만한 힘도 있잖아요!"
"벌 받을 사람이 누군데 그런말을 하냐?"
"그거야......"
"울 마누라 납치한 놈? 직접 강간하려고 했던 놈? 아니면 그걸 묵인해준 공안 동료들? 그놈 취미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쉬쉬했던 공산당원들? 그러면 그런 공산당원들을 냅둔 이 나라 국민들?"
"그건 확대 해석이잖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했어요!"
"아무것도 안했으니까 뒤지는거지. 뭔가 하려고 했던 국민들은 천안문에서 다 죽었어"
"여기서 말장난 할거예요?"
"내가 지금 장난하는걸로 보이냐?"
사람만 천만명도 넘게 죽여놓고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생명의 무게는 너무나도 크다.
최악이 가볍게 죽이기는 해도 생명의 무게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인성파탄자라 욕해도 수긍해 넘길 정도로 자기 자신도 인정하고 있었다.
"세상은 언제나 불합리함과 부조리함으로 가득해. 그걸 이겨나가는게 인간이지. 근데 너는 그걸 견뎌낼 자신이 있어서 온거겠지? 응? 뒤지기 전까지 패주마"
막으러 온거라면 여태까지의 정이 있으니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백리도 죽을 각오까지는 안해도 된다.
하지만 죽을만큼 처맞을 각오는 해야할 것이다.
"시발! 지금 사람이 죽는데 그게 문제예요?!"
콰앙!!!
백리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최악과 승부가 안될거라는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이길 승산을 벌기 위해서는 선공으로 기선제압을 하는게 최우선이다.
방금 전의 용하연과 최악이 격돌했을 때 사용되었던 태극나선경의 묘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준은 용하연과 비교해서 한참 떨어지는 수준. 그걸 내세워서 싸우겠다면 일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터엉!!
같은 태극나선경으로 받아칠 필요도 없이 최악의 가벼운 손짓에 백리의 양손이 튕겨나갔다. 양손과 한손, 거기에 팔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라 손목을 까딱거리는 힘 정도지만 백리는 그걸 전부 상쇄하지 못하고 뒤로 거칠게 밀려났다.
"윽?!"
"최소한의 힘마저 없는데 통할거 같냐? 아무리 경지에 이른 태극권이 상대의 공격을 되돌려주는데 거의 힘이 안들어간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0에 수렴한다는 소리지 0은 아니거든?"
백리와 용하연 사이에는 크디큰 격차가 있었다. 그리고 용하연과 최악 사이에도 그 이상의 격차가 있었다.
거기서 만들어지는건 당연한 공식이다. 백리와 최악의 사이에는 수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그렇다면!!!"
키이잉!!!
백리의 양손에서 보이드 블래스터가 쏘아졌다. 용하연의 공명검을 기술로서 발현하여 공간 공명을 일으키는 공격! 그 진동에 의해서 범위 내의 물질을 소멸시키는 힘이 최악의 몸을 뒤덮었다.
주변의 토사들이 바스라지고 소멸되지만 그 사이에서도 최악은 멀쩡했다. 조금의 타격도 없이 아무런 공격도 받은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그대로 서 있었다.
"마룡후의 공간참도 안통하는데. 의지 하나 깃들이지 않은 과학 기술 기반의 공격이 통할것 같니?"
"큭.......!"
초월자에게 기본적으로 물리법칙은 어지간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경지에 따라 수준 차이는 있지만 최악은 더욱 그런 편이다. 역장 덕분에 태양 중심부에서도 찜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순수한 물리법칙은 듣지 않는다.
물론 완전 무시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타격은 있다. 단지 머리에 중성자별을 때려박아야 혹이 조금 날 정도에 불과해서 그렇지.
키이이잉!!!
백리는 보이드 블래스터를 난사했지만 최악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애꿎은 주변의 지반만 무너트릴뿐. 아니, 애초에 용하연과의 전투로 인근 지반이 폭삭 주저앉아서 더 무너질 지반도 없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보이드 블래스터마저도 소용없자 백리는 온전히 자기 힘을 사용하기로 했다. 가이아 포스를 통해 전신을 강화하고도 모자라 특성인 보강까지 더해서 최대한 육체를 강화했다.
아무리 경험이 부족해도 마스터 유저의 포스를 전부 육체 강화에 때려박자 적어도 마스터 유저 수준에서는 중상위 수준의 스펙을 지니게 되었다.
그 힘을 다리에 집중해 땅을 박차고 최악에게 돌진한다. 태극나선경은 소용 없으니 순수한 힘으로!!!
"하압!!!!"
콰아앙!!!
백리가 전력으로 내지른 주먹이 최악의 인중에 틀어박혔다. 공기가 떨릴만큼의 굉음이 울려퍼졌지만 정작 맞은 당사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쾅! 콰앙! 쿵! 쿠우우웅!!!
백리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그의 급소 부분에는 전부 주먹을 날려 조금이라도 타격을 주려고 했지만 최악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조금의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의지를 다루지 못하는 필멸자와 경지에 이른 초월자간의 차이는 바로 이것이다.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가 존재한다.
"으, 으으으으윽!!!!"
그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우스꽝스러운 팬터마임을 보는듯했다. 전력으로 주먹질을 하는데 정작 상대방은 맞은 것 같지가 않았다.
백리는 악을 쓰면서 계속해서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최악은 느긋하게 백리의 발버둥을 지켜봐주었다.
한참이 지나 육체를 강화하던 포스와 체력이 떨어져서 숨만 헉헉거리던 백리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의 발버둥을 끝까지 지켜본 최악은 이내 물었다.
"이제 끝났냐?"
"........."
이 쯤 된다면 백리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와 자신의 격차는 생각보다 훨씬 크며 평생을 노력해도 닿을 수 없을만큼 넓다고. 하다못해 얼굴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다는게 그 반증이다.
하지만 백리는 숨을 헉헉거리면서도 다시금 일어섰다.
"전 이거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요"
"캡틴 만큼은 아닌데 약간 고결하다는건 인정해주마"
만난적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바다를 넘어올 정도면 그 정도의 마음가짐은 있었다.
뿌득.
최악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주먹을 쥐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변하고 공기가 차갑게 식는다.
"근데 그 염병할 고결함이 니가 처맞을 주먹을 대신 맞아주는건 아니거든?"
뻐어어어억!!!!
백리의 안면에 묵직한 일격이 휘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