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화 〉[중국 최후의 날]
한창 창평 구를 파괴하고 있던 최악은 고개를 돌려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방향은 남쪽. 홍콩이나 대만이 있을만한 방향이였다.
"뭐지?"
최악의 기감은 최대로 늘린다면 지구 정도의 별 하나 정도는 가볍게 기감 안에 넣을 수 있지만 그렇게 집중하지 않아도 눈에 띄는 기척 정도는 감지해낼 수 있다.
아주 잠깐이지만 먼 곳에서 그의 주의를 끄는 기척이 하나 있었다. 겨우 마스터 유저 수준이라고 한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지만 지금 느껴진 기척은 아무리 못해도 그 10배는 가볍게 넘어가는 수준이였다.
하지만 그래봤자 자기 아래라는걸 안다. 냅둬도 상관없고 찾아온다면 박살내주면 그만이다.
"오? 이제는 폭격이냐?"
저 멀리서 폭격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H-6K 전략 폭격기. 소련 시절의 H-6 기체를 개량한 폭격기다. 성능은 한계가 있지만 거기에는 사거리가 2000킬로미터에 다다르는 순항미사일이 탑재되어 있다.
최악이야 워낙 오감이 뛰어나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지 실제로 폭격기와 그의 거리는 수십킬로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었다.
접근하는 전투기는 손도 못쓰고 추락해버리니 바보가 아닌 이상 중국 정부도 그와 거리를 띄워야 한다는걸 깨달았을 것이다.
폭격기에서 발사된 순항 미사일이 그대로 최악을 향해 날아왔다. 한대가 아니라 열대가 넘는 몇개 편대에서 날렸기 때문에 그 숫자는 백여개의 육박한다.
"이야, 역시 대륙의 기상이야. 인명 피해 신경 안쓰고 도심에 폭격을 하다니"
창평 구에는 이미 하이뎬 구의 사건으로 시민을 피난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은 있었다.
아직 피난을 하지 못한 사람이나 피난가지 못하는 사람 등등. 수백만의 인구 중에서 남은건 수만 정도였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아직 시민들이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그를 향해 폭격을 강행했다. 몇만의 인민의 목숨보다는 그를 죽이는게 더 급하다고 판단했을테니까.
"불구경이나 할테니까 한번 해보시지?"
중간에 격추시키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날아오는 순항 미사일이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최악의 기감에 들어오면 끝이다. 염동력으로 허공에서 멈춰도 되고 아니면 공중에서 폭파시키면 그만이다.
하지만 최악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기 국민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정부의 꼴사나운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순항 미사일이 아니라 핵폭탄이 날아온다고 한들 타격을 받지도 않는다.
물리적인 데미지는 초월자에게 의미가 없다. 의지를 발현할 수 있는 초월자라면 누구나 물리법칙 위에 서는 법이고 그런 초월자에게 물리적인 공격으로 데미지를 주기 위해서는 낭비라고 생각될만큼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서 초신성 폭발 정도. 그나마 태양계가 날아가는 주제에 정작 최악에게도 큰 타격은 없을 것이다.
콰아아앙!!
이내 순항 미사일 한대가 최악의 인근에 도달해 폭발했다. 아무리 유도기능이 있다 할지라도 인간같은 소형의 물체를 노려서 맞추는데는 아직 기술 발전이 멀었다. 하지만 인근에서 폭발하는 것으로도 그 파편과 폭발은 충분히 닿는다.
백여개의 순항 미사일들이 비처럼 쏟아진다. 최악이 있던 도심의 부서진 잔해들을 전부 불태우고 파괴하며 초토화된다. 최악이 지나가면 하다못해 파편과 시체는 남지만 인간의 문명은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끝?"
자욱하게 일어난 먼지와 화마 속에서 최악이 걸어나왔다. 그의 옷에는 먼지 한톨 묻지 않았고 마스크조차 흠집 하나 없었다. 역장을 강화하여 막으니 파편도 날아오다가 막혀 바닥에 떨어질 뿐이였다.
인근이 불바다가 되어 활활 타오르면서 매연이 일어나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지만 애초에 최악은 공기도, 먹을 것도 필요하지 않다. 단지 그러는 편이 훨씬 낫지만 필수는 아니다.
두두두두두!
어디선가 헬기 소리가 들린다. 매연과 흙먼지에 가려져서 위치는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 대충 짐작했다.
"군용은 아니네. 방송용인가? 중국 국내 방송은 이미 정보 통제 들어갈테니까 해외쪽 방송사일것 같은데"
최악은 만행은 전 세계에서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전쟁터나 마찬가지인 현장을 방문해서 직접 촬영하려는 바보는 적을 뿐 있는 있었기 때문이다.
귀찮다고 죽여버릴 수는 있지만 그쪽은 중국인이 아니다. 게다가 어차피 이번 일은 숨기기에는 늦은데다 나중에 그를 건들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주는 경고이기 때문에 내버려두었다.
공포는 인간을 움직이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다. 특히나 그 중에서 죽음의 공포라면 더욱 그렇다.
"프리-티벳!!!"
손을 저어 매연들을 걷어내고, 저 위에서 날아다니는 방송용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최악이 말했다.
전 세계에 그 모습이 TV에 나오기 시작했다.
* * * *
용기인지, 만용인지 무모인지 몰라도 한 방송사가 찍은 현장의 영상은 전 세계의 방송에 퍼져나갔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과 러시아에서의 일로 나름 현대의 진짜 가면쓴 히어로로서 이름을 알리던 라쿤맨의 모습에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이야, 개오졌다. 짱깨 새끼들 다 뒤져라"
"야, 그래도 사람 죽는거 가지고 좀 그렇지 않냐?"
"시발, 짱깨 새끼들은 살아 있어도 도움이 안되는데? 라쿤맨님 핑거스냅 한번 해서 중국을 반갈죽 해주세요"
"무고한 사람들까지 다 죽이는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어디서 봤는데, 라쿤맨이 저러는건 중국 공산당원 누군가가 라쿤걸 강간하려고 하다가 저 지랄 하는거라고 하던데?"
"피카츄 배부터 만져 새꺄"
"아냐, 진짜야. 솔직히 라쿤맨이 여태까지 한게 있는데 괜히 저러겠어?"
"......진짠가?"
"씨발! 그래도 사람 죽이는 새끼는 뒤져야지! 니들은 그런걸 옹호하고 있냐!!!"
"아, 뭐예요 아저씨. 왜 갑자기 시빈데요? 말투도 좀 이상한데, 아저씨 혹시 조선족이예요?"
"조선족이 아니라 중국인 아님?"
"하긴, 빡쳤다고 칼부림 나는게 종특이면 한국인은 아니지"
"이 새끼들이!!! 어디 한번 진짜 칼맛 볼텨?"
"어어어?! 사장 형! 사장 형!!!"
남자가 품 속에서 칼을 뽑아들자, 이야기를 하던 청년들이 기겁을 하며 가게 사장을 찾았다. 남자는 칼을 휘두르며 두사람을 위협했다.
난데없는 칼부림에 그 대상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뻐어억!!
"끄어어어억?!"
하지만 칼을 휘두르려던 남자는 누군가의 공격에 그대로 손목에 큰 충격을 입고 칼을 손에서 놓쳤다. 땅에 떨어진 칼은 밟아 그대로 부러트리고 그대로 남자의 턱에 주먹을 날려 뇌를 흔들어 쓰러트린다.
"괜찮으세요?"
"이야, 개쩐다. 역시 우리 사장 형이야!"
조선족 남자를 제압한 백리는 손님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경찰을 불러서 신원을 넘겼다.
가끔 가다가 진상은 나오지만 그래도 이런 수준의 진상은 상당히 간만이다.
"어지간한 진상도 여기 사장 형 앞에서는 쪽도 못쓴다니까"
"소란이 일어나서 죄송하니까 맥주 한잔씩 돌릴께요"
"어우, 감사합니다!!!"
최악이 창업하고 백리가 이어받은 치킨집은 언제나 성황이였다. 특히나 백리가 이어서 하는 이후에는 그의 성격도 좋고 살갑게 대해서 손님이 조금이지만 늘었다. 메뉴의 가격 변동도 없으니 새로온 손님이라면 단골이 되고 단골이라면 더 찾아오고 있었다.
종종 나오는 진상들은 힘자랑 한번 해주면 그만이다. 마스터 유저 수준의 힘 필요 없이 조금만 보여주면 알아서 멈춘다. 물론 개중에는 선을 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는 지금처럼 처리했다.
덕분에 가게는 언제나 번창하고 있었다. 가게에는 백리와 최악의 친구 강형식, 그리고 진서애씨와 함께 3명이서 운영하는데도 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
"백리야! 후라이드 두마리에 양념 하나!"
"네? 아, 네!!!"
들어온 주문에 정신을 차리고 손을 분주하게 놀렸지만 백리의 시선은 가게 한쪽에 있는 TV로 향해 있었다.
[현재 라쿤맨은 베이징 하이뎬 구 파괴 후 창평 구로 자리를 옮겨 파괴 행위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현재 발생한 사망자만 천만 여명을 넘어가며 부상자의 수는 아직까지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의 마스터 유저인 권룡여제는 라쿤맨과 교전 후 사망하지는 않았으나 전투를 지속하기 힘든 상태라고 알려졌으며, 현재 중국은 피난민들의 행렬로 가득한 상황입니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장면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시체가 널려 있어 모자이크를 했지만 한 화면 전체가 붉은색 모자이크가 된 것도 있다. 도시는 부서진 파편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눈에 띄는 건물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철저한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라쿤맨의 정체가 최악인걸 아는 백리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큰 고통 앞에서 선악은 없는 법이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극은 말려야만 했다. 예전이라면 넘겼을지 몰라도 지금의 백리는 마스터 유저가 되어 나름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최악이 상대라면......
"형, 가게 거의 마무리 되어가니까 잠깐 주방 좀 맡아줘요. 저 빨리 가볼데가 있어서요"
"야?! 어디 가려고?! 아직도 바뻐!"
"닭 얼마 안남았으니까 이것만 처리하면 끝나요! 아무튼 저 가볼께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은 백리는 빠르게 챙길걸 챙기고 가게 바깥으로 나와 어디론가로 향했다.
중간에 버스를 타는 것보다 그냥 달리는게 더 빠르다. 사람들은 바람같이 지나가는 백리를 보고 놀랐지만 가끔 그러는 포스 유저도 있어서 그러려니 하며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최악의 집에 도착한 백리는 초인종을 눌렀다. 예진이가 받을것 같았지만 의외로 시온이 받았다.
[백리 학생? 무슨 일입니까?]
"형수님?! 집에 계셨어요?! 중국은요?!"
[갔다가 바로 돌아온겁니다. 뭐, 평범한 수단을 쓴건 아닙니다만]
현재 베이징은 항공기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다. 워낙 개판이라서 출국하는 비행기는 밀려드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백리는 벌써 돌아온 시온을 보고 의문을 표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시온이라면 돌아올 방법이야 수두룩하다. 지금 최악의 상황을 본다면 더욱.
[일단 무슨 이야기 하러 온건지 대충 알겠습니다. 일단 들어오십시오]
시온이 문을 열어주었다. 집 안으로 들어온 백리는 거실에 앉아 있는 시온과 예진이를 볼 수 있었다.
"아, 예진아 안녕"
".......안녕할 상황은 아니라서 인사 받기가 좀 그러네요"
"음......"
솔직히, 예진이도 마음은 심란했다.
백리나 예진이나 최악이 좋은 사람이란건 알고 있었다. 막 가게도 넘겨주고 연고도 없는 애를 데려다가 키워주고, 그런 일은 요즘 세상에서는 보기 드문 사람이다.
물론 시온 덕분에 돈이 많아서 그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서 20년 동안 별 탈 없이 군 복무도도 다녀오고 큰 사고 하나 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의 본성을 알고 싶다면 권력을 쥐어주라고 했는데,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는건 그게 최악의 본성이라는 소리였다.
그런 그가 지금 눈에 띄는 중국인은 모조리 죽이면서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을 개판으로 만들어두고 있었다. 재산 피해는 둘째쳐도 인명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
시온은 그런 두사람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할지는 알지만. 만약의 경우도 있으니 물어보겠습니다. 왜 왔습니까, 백리 학생?"
".......형을 말려주세요"
"그건 무리입니다"
"왜요? 형은 형수님 말이라면 죽으라고 해도 죽을 사람인데!"
"그건 맞는 말이긴 합니다만. 우선조건이 다릅니다"
"우선 조건이요?"
"그이가 제 말을 듣지 않을 때가 있다면, 그건 일을 할때나 제 안전에 위협을 받을 때입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요?!"
시온은 두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에 갔다가 납치를 당해서, 중국 고위 정치가가 마약까지 써가면서 강간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납치나 마약이나 강간이나 어느것 하나 중범죄다. 더군다나 상대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치가인만큼 그 여파는 클게 확실하다.
".......화낼만한 일은 확실한데. 그래도 너무한거 아니예요?"
"그러면 그놈 하나만 조져서 끝날 일이긴 합니까? 중국이란 나라가?"
"그것도 아니긴 한데......"
백리도 주워들은건 있다. 중국이란 나라는 미국이나 러시아만큼이나 땅도 크고 인구도 많은 국가지만 그렇다고 앞선 두 나라의 반열에 드는 수준인가? 하고 묻느냐면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대륙의 기상이라 불리면서 행하는 엽기적인 행각들을 비롯해서 국민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는 나라가 중국이다. 어떤 면에서는 북한보다도 더욱 그렇다는게 우습다.
"우리 남편이 생각하기로 제가 그런 짓을 당한건 놈들이 다수이기 때문이고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다수에게서 나온 힘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그런 놈들에게 절망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일겁니다. 그러니 아마 제가 말리더라도 중국이란 나라는 이 세상에서 지워져야 끝을 낼게 분명합니다"
"........"
인간적으로든, 무력적으로든 날뛰는 최악을 막을만한 상대는 이 세상에는 시온이 유일하다. 하지만 시온도 그런 최악을 막을 생각이 없다면 결국에는 불보듯 뻔한 일이다.
"그럼 이대로 내버려 두실건가요?"
"만약 백리 학생이 개인적으로 막으러 가겠다면. 저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괜찮을까요?"
"죽지는 않을겁니다"
시온의 말에 백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한번 생각은 해봤던 일이다. 그걸 실천하는건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잠자코 있는것보단 나을 것이다.
"그럼 제가 갈께요"
"......처음 만났을 때보단 많이 컸습니다. 백리 학생"
"제가요? 성장기는 진작에 끝나서 키는 더 안큰것 같은데. 근육이 쪘나?"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최악 때문에 얽힌 일이 많아서 그런지 백리도 나름의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본인 스스로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