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화 〉[중국 최후의 날]
미국 워싱턴.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
미국의 현 대통령인 드레이프 대통령은 보좌관이 보여준 영상을 고며 고뇌에 잠겼다.
거기에는 미국의 영웅이였을 라쿤맨이 발차기 한번에 최강의 마스터 유저라 은연중에 파악중인 권룡여제를 패퇴시켜 날려버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중국도 나름의 방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중국이란 나라가 미국을 앞서기에는 한참 먼 일이다. 특히나 이런 쪽의 일이라고 한다면 돈으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쉽다.
"[드래곤]은?"
권룡여제는 한자어기 때문에 미국에서 부르기에는 난해함이 많다.
직역해도 피스트 드래곤 엠프레스(Fist Dragon Empress)인데 그것보다는 그저 간략하게 엠프레스나 드래곤이라 부르고 있었다.
".......현재 생존은 확인 됐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약 4000킬로미터 가량 떨어진 필리핀 인근에서 모습을 발견 했고 치명적인 외상은 없지만 큰 충격 때문에 머리에 이상이 생겼는지 기억의 혼란을 보이고 있습니다"
"후우, 단 한번의 발차기로 4000킬로미터라......."
미국의 영토에서 뉴욕에서 센프란시스코까지의 거리가 약 4666킬로미터 정도다.
그게 전력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 오차는 있겠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거리에 의미는 없다.
공격 한번에 4000킬로미터가 사정거리인데 그걸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과장 조금 보태서 그 발차기로 남긴 공격은 위성에서 관측할 수 있을 정도다. 더군다나 그 여파에 의해서 필리핀의 인근 해안가 지역에 해일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단 일격으로 만들어낸 여파가 엄청나다. 바다의 피해도 그러할진다 육지라고 멀쩡할까.
중간에 경유한 도시들이나 건물들은 전부 박살났다. 인명 피해만 따져도 단숨에 수백만이 증가했고 재산 피해는 급상승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사건이 베이징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으로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먼 지방 이야기라고 가만히 있을게 아니다. 언제 그 여파에 휩쓸려 죽을지 모른다.
중국 정부도 정보 통제를 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단순히 한두명 죽은 일도 아니고 수백만명이 죽은 일이다. 숨기기에는 일이 너무나도 커졌다.
"왜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이지?"
라쿤맨은 미국의 영웅이였다. 최소한 그 본성 자체는 나쁘다고 보지는 않았다.
그만한 힘과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무상으로 사람을 돕는다면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는 있는 법이다. 하지만 하루하침에 뒤바뀌어서 수백만명을 죽이고 다니는 대학살마가 될리는 없었다.
미국에서 히어로들을 다룬 코믹스에서도 히어로의 타락이란 주제는 다루지만 정작 현실에 일어나니 상당히 골치아프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중국의 고위 공산당원이 라쿤맨의 아내인 라쿤걸을 납치해 강간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물론 모르고 한 짓이겠지만 분노하기에는 충분한 이유겠죠"
"......망할 칭크 놈들은 도움이 안되는군. 나라도 내 마누라를 어떤 놈이 따먹겠다고 하면 대통령이고 뭐고 샷건을 들고 뛰쳐나갈테니"
"인종차별 발언은 조심해주십시오"
"그래서 뭐? 그건 둘째치고 라쿤걸의 신원은 확인 되었나?"
드레이프 대통령의 물음에 보좌관이 고개를 저었다.
현재 진행형인 중국의 사태에서도 대부분의 정보를 빼내온 그들이지만 라쿤걸의 신원은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 시온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다수가 하이뎬 구에 머무르고 있었지만.....알다시피 거기는 3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죽고 다쳤다. 그중에 죽은 사람이 비율이 다친 사람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알아내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만나야 하는데, 현재 중국은 비상사태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중국의 피해는 어떻지?"
"인명 피해만 1000만명을 넘어섭니다. 재산 피해는 아직 추정 중이지만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5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한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치명적이군. 이게 바로 초월자라는 건가......."
천만명을 죽이고 도시를 부순다. 발차기 한번에 대륙을 가르고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전 세계에 뜻을 전한다.
신으로 착각할 법한 정신나간 힘이다. 만약 이 세상에 가이아 포스란 힘이 없었다면 그를 신으로 여기는 자도 있었을지 모른다.
예전에는 천둥번개를 신의 힘이나 노여움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그저 자연 현상임을 알고 있다.
현 시대에서 신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독실한 신자 밖에 없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라쿤맨을 신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대놓고 편들어주기는 힘들겠지?"
"여론의 반발이 심할겁니다"
아무리 정당하다고 한들 지금의 라쿤맨은 천만명을 죽인 학살자다. 살인자를 옹호하는 짓을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도를 넘었다. 하다못해 일에 관련된 당사자만 죽였다면 나설 수 있겠지만 천만명이란 인명의 무게는 너무나도 무겁다.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라쿤맨을 규탄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움도 전하게. 은밀하게 사건의 전말을 흘려서 우호적인 언론을 만들게"
"알겠습니다"
학살은 분명 도의적으로 어긋난 행위지만 자신의 아내가 강간당할 뻔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동정하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학살의 대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면 현실성이 떨어지는게 당연하고 자기 일이 아니니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중국은 여태까지 너무 많은 적을 만들었어"
내부의 우환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외부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중국은 국력에 비해서 외교적으로 큰 영향력이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교적으로 타국과 상당히 사이가 나쁘다.
협상 과정에서 양보가 없고 고압적이라서 좋은 관계를 맺는 나라는 대부분이 개발도상국 정도다. 미국과는 드레이프 대통령 당선 이후로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졌고 그나마 가까운 러시아가 있지만.......
"러시아는 지금 어떻지?"
"규탄 성명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옹호한다는 소리군"
중국이 없어진다면 러시아는 아시아에서 최강국으로 자리잡게 된다. 인구수나 국토의 크기를 따지면 인도도 만만치 않지만 그쪽은 마스터 유저 보유국이 아니다.
더군다나 러시아에는 아직 라쿤걸이 대여해준 제염 장비가 있었다. 체르노빌의 방사능을 성공적으로 처리하여 그 기능을 세상에 입증한 제염 장비는 이내 러시아의 방사능 폐기물이나 방사능 오염지역을 정화하고 있었다.
거기서 발생하는 이득은 가치를 따질 수 없다. 러시아와 사이가 나쁘던 우크라이나도 체르노빌을 정화한 이후로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으며 각국의 핵 폐기물 때문에 대여를 요청하는 국가들에 밀려 스케쥴을 조정하느라 바쁘다.
특히나 일본이 양손을 살살 비비며 굽신거리고 있지만 라쿤맨이 당부한 바가 있어서 대여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영국은 그나마 규탄 성명은 내고 있지만. 그 뿐입니다"
"그쪽도 마찬가지군"
영국은 조용하다. 라쿤맨의 행동을 규탄하고는 있지만 움직이지는 않고 있었다.
만약 라쿤맨이 단순한 초월자였다면 [나이트 가웨인]을 파견했을지도 모르지만 러시아에서의 일로 인류의 문명을 초월한 기술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짐으로서 마냥 적대하기 힘든 상대가 되었다.
영국은 중국과 사이도 좋지 않으니 단순한 규탄 성명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중국에서 협조 요청이 들어올거라 예측됩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협조 요청이라고 한다면, 역시나 [썬더볼트]를 원하는거겠지?"
"그럴겁니다"
이미 권룡여제가 당했으니 희망이 없어도 다른 마스터 유저를 초청하여 막아야 한다.
마스터 유저를 보유한 국가의 정부는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레이프 대통령의 대답은 'NO'였다.
"미쳤나? 발차기 한번으로 그랜드 마스터에 가장 근접했다는 마스터 유저를 베이징에서 필리핀까지 날려버린 괴물을 상대로 미국의 영웅을 보내라고? 성조기 얹은 관에 실려오는게 눈에 선하군"
"[썬더볼트]에게는 따로 말을 해두겠습니다"
"아마 인근 국가에서도 마스터 유저는 파견하지 않을거야. 한국은 애매하지만 일본과 영국, 러시아는 확실하고. 호주는 애초에 자국 방어에도 힘드니 내버려 두더라도......터키는 가능하겠군"
"확실히 터키의 마스터 유저는 라쿤맨과 접점이 없습니다"
"바보는 천사도 들어가기 꺼려하는 곳에 겁없이 뛰어드는 법이지"
영국의 시인인 알렉산더 포프의 비평론에 나온 말이다. 뜻은 한국의 속담인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와 같다.
앞으로의 대략적인 방침을 정했으니 이제는 그대로 나아갈 뿐이다.
"중국으로 사람을 보내서 라쿤맨과 접선해보게. 그가 분노하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중국이지 미국이 아니니까 이야기 할 수 있을거야"
"라쿤맨과 자주 대면한 CIA의 요원이 있습니다"
"그가 좋겠군"
국제 정세는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라쿤맨에게 우호적인 국가도, 반대로 적대적인 국가도 있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이다.
이미 그들은 경고를 들었었다. 전세계로 표출하던 그의 분노의 의지를 들어 되도록이면 엮이지 않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자기도 중국처럼 되기는 싫으니까.
* * * *
권룡여제는 눈을 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딘가의 모래사장에 처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입에서 느껴지는 짠맛과 모래 씹는 감촉은 불쾌했지만 그런 쪽에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여긴.......?"
라쿤맨의 흉천만리로 장장 4000킬로미터 가까히 날아온 그녀는 머리에 이상이 생겼는지 두통을 호소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단순히 외상이 아니라 기억에 혼란이 올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멀뚱히 모래 사장에 앉아 지평선만 보고 있는 동안, 필리핀 경찰이 그녀를 찾아와 신원을 확보하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밀려오는 기억의 홍수에 몸을 맡겨 점차 깨닫고 있을 뿐.
권룡여제의 나이는 50대에 이르렀다. 마스터 유저 중에서는 최고령이며 그동안 해온 격전은 기억 뿐만이 아니라 육체에도 각인되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 밀려오는 기억들은 겨우 50년 수준의 기억들이 아니다. 최소 백년 단위의 기억이 솟아나 그녀를 점차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기분 나쁘다거나 자아를 잊는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부족했던 것이 맞춰지는 느낌. 모자랐던 한조각의 퍼즐을 찾아 완성시키는 듯한 기분이다.
흐리멍텅했던 그녀의 기억은 점차 안정화 되었다. 거기에 꼬박 하루란 시간이 걸렸지만 수백년분의 기억을 받아들이는데 걸린 시간 치고는 빠른 시간이였다.
".......그렇군"
그녀의 분위기가 변했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모습에 필리핀 병원 직원들이나 경찰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사람이 변했다. 외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더 젊어 보였다.
물론 그녀는 포스 유저라도 50대에도 불구하고 30대 정도의 외모를 지닌데다가 미녀였기에 처음부터 인기가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20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위기를 풍겼다.
"이래저래 시간이 많이 지난 모양이군"
기억을 받아들이고 인지한 그녀는 손을 움직여 보았다. 예전과는 다른 나약한 몸뚱이. 그녀가 기억하는 자신의 몸은 겨우 이런 수준이 아니였다. 좀 더 강인하고 활력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다.
아무리 육체가 달라져도 자신은 자신이다. 확고한 자아를 확립하고 인정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그녀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받아들였다.
"권룡여제님! 무사하셨군요!!!"
"........"
필리핀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을 무렵, 그녀의 보호를 위해 필리핀 중국 대사관에서 온 직원이 무사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반겼다.
하지만 권룡여제는 그다지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였다. 대사관 직원도 조금은 이상함을 느낄만도 했지만 애초에 그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걸 알고 있고 필리핀 병원 의사로부터 기억에 혼란을 겪고 있다고 들었으니 그러려니 했다.
"라쿤맨은......그는 지금 뭘 하고 있지?"
"하, 하이뎬 구 괴멸 이후 그 옆에 있는 창평구를 파괴 중입니다. 이미 사람들은 대피해서 인명 피해는 생각만큼 크지 않지만......."
"거기로 가도록 하지. 교통편은 따로 있나?"
"괜찮으십니까? 머리에 충격을 받으셨다고 들었는데......"
"괜찮다. 문제없으니까"
"음......"
의사에게는 그렇게 들었을지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기억에 혼란을 겪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였다. 눈도 맑고 깨끗한데다 평소의 모습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육체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 영혼에서 전해지는 육체의 힘은 가이아 포스와 호응했고. 그 반응은 영혼 너머에 있는 존재에게까지 닿았다.
키이이이잉!!!
한순간 방대한 양의 가이아 포스가 흘러넘쳤다. 하지만 이윽고 다시 그녀의 몸에 갈무리 되어 잠깐의 착각이라고 생각할만큼 고요해진다.
"나름 쓸만하군. 한참 부족하지만 내공이 없는것보단 낫나?"
"바, 방금 무슨?!"
"별거 아니다. 빨리 교통편을 준비해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서, 설욕전이십니까?"
"그래, 당하고는 못사는 체질이라"
상대가 강하다는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게 싸움을 피할 이유는 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헬기가 도착했다. 물론 베이징까지는 거리가 멀기에 중간에 보급을 하거나 이동 수단을 바꾸거나 해야하지만 그래도 하루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
"맞은건 갚아줘야 하는 법이지"
권룡여제는 용화정이.......아니 마룡후 용하연이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