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화 〉[중국 최후의 날]
중국 베이징의 구(區)중 하나인 하이뎬 구가 괴멸했다.
사상자는 300만명으로 추정되고 거의 하이뎬 구의 인구수에 육박하는 대참사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적성종으로 인한 피해가 아닌가하며 각국의 나라들도 대비 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지금부터 중국 조질거니까 관계 없는 놈들은 아가리 싸물고 있어라]
최악이 전 세계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내뱉은 의지는 그들에게 확실히 전해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현장에서 찍은 동영상이 올라오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이해했다.
화질이 안좋고 화면이 흔들리더라도 금속질의 라쿤 가면을 쓴 사람은 이 세상에 딱 한명 밖에 없으니 당연히 알아볼 수 있다.
더군다나 각국의 상층부는 최악이 초월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물론 출처는 러시아다.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숨길 수 조차 없는 일이였다. 명백한 경고와 더불어서 벌어진 일이니 중국 당국 또한 어떻게 은폐하기 어려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오!!!"
시준핑 주석은 당의 주요 위원들과 모여 회동을 열었다.
자그마치 300만명이 죽고 다친 일이다. 오히려 죽은 사람이 다친 사람보다 많아서 그야말로 최악의 대참사나 다름없었다. 사천성 대지진 때의 피해도 이 정도는 아니였다.
"크흠,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석 각하. 그놈도 지금 가만히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바로 81집단군을 소집하여 놈을 공격한다면......"
"누가 그놈을 죽이는걸 걱정했소? 내가 묻는건 그놈이 와 이런 만행을 저지르냐는 것이오!!!"
"그게......."
아무런 이유없이 그럴리 없다.
라쿤맨은 일단 표면적으로 뉴욕을 구해 미국의 영웅이 되고 영국의 여왕과 총리를 테러로부터 구한 히어로다. 러시아에서의 일을 통해서 그 이상의 기술력 또한 보유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당원들 중 몇몇은 러시아에 뿌린 재생 포션을 소량 구입하여 그 효과를 본 사람도 있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으면 맺었지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준핑 주석조차도 최악이 내보인 의지를 들었다. 거기에 담긴 분노는 이유가 없지 않고서야 저지를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국에 마오슌 위원은 어디갔소? 불참한거요?"
"그게......계단에서 굴러서 팔이 부러져 입원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오늘 말이오?"
시준핑 주석은 뭔가 미심쩍은 눈으로 말을 한 위원을 노려보았다.
하필이면 이런 일이 터지는 날 입원할 정도의 부상을 입는게 과연 우연일까? 하필이면 당에서 손꼽히는 권력자인 마오슌 위원이?
"마오슌 위원보고 당장 출석하라고 하시오. 만약 오지 않겠다면 당원 명단에서 이름 뺄 생각을 하라고 전하고"
"알겠습니다"
중요한건 지금 당장의 일이다.
"아무튼 이건 당의 위신이 걸린 일이오. 자그마치 300만이란 인민을 죽여버린 놈을 결코 용서할 수 없소. 그러니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하든 우리는 총력을 다해서 그 가면쓴 놈을 죽이고 말것이오!!!"
라쿤맨에게 우호적인 국가라도 이번 일은 변호해주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그들이 우호적인 라쿤맨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한 가면 쓴 히어로지 학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그를 편들어줬다가는 국제 관계가 파탄날지도 모른다. 중국에 우호적이던, 적대적이던, 다수의 인명 피해 앞에서는 선악이 없는 법이다.
"권룡여제께서는 어떻습니까?"
"지금 막 움직이셨습니다. 지금 현장의 다른 인원들과 함께 완웅남과 대면하시게 될겁니다"
"그분이 잘 해주셔야 할텐데......."
그들은 권룡여제가 마스터 유저 최강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드넓은 중국을 수호하면서 적성종을 쳐죽이던 그녀는 최소한 경험 하나만큼은 모든 마스터 유저보다 우위다. 인구가 많은 지역이 있는 이상 적성종의 습격은 잦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그건 전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승리할거라는 확신은 되지 못했다. 상대는 자그마치 300만이란 인명을 죽인 괴물이다. 도시 하나를 괴멸시키고 뭉게버린 짓은 아무리 권룡여제라도 불가능할것 같았으니까.
"주, 주석 각하! 지금 막 권룡여제께서 완웅남과 만났습니다! 현장 카메라로 중계하고 있으니 바로 영상을 틀겠습니다!!"
이어서 현장 파악을 위해 회의실의 영사기가 틀어졌다.
붕괴된 하이뎬 구 도심 어딘가에서 쉬고 있던 라쿤맨과 권룡여제가 카메라에 비친다. 따로 권룡여제에게 장비를 쥐어준 것인지 조금 지직거리기는 해도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직접 만나는건 처음이지만. 이렇게 만나게 될줄은 몰랐군]
[그러냐]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권룡여제가 주위를 둘러보며 그에게 물었다. 무엇을 물어보는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방에는 온통 시체와 부서진 건물 잔해들 뿐이며, 주위에는 시야가 탁 트인다고 생각할 정도로 커다란 빌딩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남아 있다면 절반정도 부러져서 박살난 빌딩의 잔해 정도 뿐이였다.
그녀의 물음에 라쿤맨이 대답했다.
[야, 만약에 말이야. 누가 남의 마누라를 약 먹이고 납치해서 끌고간 뒤에 강간하려고 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 같냐?]
[그렇군]
권룡여제는 납득했다.
회의실 안은 웅성거리면서 소란스러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납치에 강간은 범죄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청렴과는 거리가 먼 권력자들이지만 최소한 공식선상에서 나올법하게 대놓고 저지르지 않았다.
[마오슌인지 뭔지 하는 노친내 나부랭이가 울 마누라 따먹으려던거 바로 직전에 잡았다. 근데 내가 참아야 하냐?]
"마오슌 위원.......!! 하필이면!!!"
시준핑 주석은 인상을 찌푸리면서 자리에 불참한 마오슌 위원을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개중에는 얼굴이 창백해진 당원도 몇몇 있었다. 마오슌 위원의 취미를 알고 같이 동참하거나 어울렸던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근데 솔직히 말이야. 나라도 국가란 조직이랑 싸우는건 귀찮고, 어지간해서는 당사자만 조지고 끝내고 싶었어]
[그런데 왜 이런 짓을 저지른거지?]
[너네 정부가 아틀라스랑 붙어먹었더라]
[......아틀라스?]
"헙!?"
"어, 어떻게?!"
몇몇 위원들이 당황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그 정보의 깊이만 다를 뿐 아틀라스의 존재는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상당한 자금의 지원과 실험체의 제공으로 여러가지 이득을 보고 있던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인체실험을 하는 조직은 윤리에 어긋나니 언제든 발뺌할 수 있게 만들어두었지만......
[넌 모르고 있었나보다? 사람 납치해서 인체실험하는 더러운 놈들인데. 용주방인지 뭔지 하는 삼합회 단체 하나 중계해서 간접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더라고. 그러다가 울 마누라 납치하는걸로 덜미가 잡혔지]
[그래서 이런 짓을 했나?]
[아니, 솔직히 울 마누라 건드린게 더 컸어. 니들이 아틀라스랑 붙어먹었어도 솔직히 아틀라스만 박살냈다면 그 다음은 신경 안쓰려고 했거든. 근데 마오슌 그놈이 나보고 소국의 미친놈이니 지가 주사한 헤로인보고 출국 못하게 막을거니 재롱을 부리더라? 그게 아니꼬워서 다 조져버리기로 했지]
[무고한 사람들까지?]
[내가 아는 무고한 사람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다 죽었는데?]
[......그렇군]
시준핑 주석 뿐만이 아니라 다른 위원들도 마오슌 위원을 잘근잘근 씹었다. 이 자리에 당사자가 있었더라면 당장에 때려죽였어도 할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라쿤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우둑, 하고 주먹을 쥐면서 뼈마디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근데 말이야, 내가 여태까지 왜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던건지 알아?]
[쉬고 있었던거 아닌가?]
[고작 도시 하나 박살내고 지쳤을것 같냐? 그저 너희들이 발버둥정도 칠 시간은 주고 싶었거든. 철저하게 절망하도록]
이미 주변에는 권룡여제 뿐만이 아니라 수백대의 전차와 수천의 보병, 그리고 수백의 포스 유저들이 그를 포위하고 있었다.
물론 그거 전 병력은 아니다. 중국은 땅덩어리가 큰 만큼 병력을 소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최악이 기다려준 시간으로는 겨우 그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중국이란 나라가 존재하는 한 이 나라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일거다. 다시는 내 아내에게 손 댈 수 없도록. 철저하게 짖밟고 부수고 으깨서 한조각도 남기지 않을거다. 너희들은 그저 박살나는 수 밖에 없으며 중국 공산당 소속의 인간들은 목이나 닦아두는게 제일 나을거다. 막는 놈이 있으면 그놈을 박살내고 나를 규탄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조차 입을 다물게 만들어주겠다]
[고작 일개 개인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오만하다!!]
[오만한건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겠지. 그 오만함이 내 아내에게 무슨 짓을 했지?]
마스크 너머로도, 화면 너머로도 전해지는 살기는 저절로 몸이 떨렸다. 그리고 그는 똑바로 자신을 찍는 카메라에 시선을 주어 회의실에 있는 위원들과 시선을 마주쳤다.
[너희들에게 자격을 묻겠다. 니들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접전.
권룡여제와 라쿤맨이 충돌했다. 그리고 그 여파에 의해 카메라는 물론 권룡여제가 가지고 있었던 장비까지 박살났는지 더 이상 화면에는 아무런 영상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
"........."
"........."
회의실에 있는 위원들은 전부 침묵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건 그저 권룡여제가 승리하기만을 바라는 것 뿐이다.
* * * *
콰아아앙!!!!
"크헉?!"
안전한 장소에서 권룡여제의 승리를 기도하고 있을 공산당원들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먹을 내지르기도 전에 최악의 일격에 튕겨져 나갔다.
그리고 저 멀라 날아가 박살난 어느 건물 잔해에 처박혔다.
분명 먼저 공격한건 그녀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최악의 공격이 더 빨랐다.
"니가 전성기 시절에 찾아와도 날 못이겨 개년아"
마스터 유저 최강?
그게 뭐 어쨌다는거냐. 최악은 초월자다. 그리고 로드에 이르지 못한 초월자 중에서도 위에서 세는 편이 빠른 초월자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기겁을 하며 도망치거나 억지 웃음을 지어보이며 우호적으로 대하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다른 마스터 유저들을 상대할 때는 전력으로 싸워줄 이유가 없었다. 나름 실력을 보이면 거기에 응해줘서 적당히 싸워주긴 했지만 단 한번도 진심으로 싸운적 없다.
애초에 마스터 유저란 인간들의 기준 따위는 의미가 없다. 하다못해 그랜드 마스터라는 이름뿐인 경지에 올라오면 조금이나마 상대해줄 가치가 있겠지만 그럴일은 없었다.
"쏴, 쏴라!!"
누군가 소리치고, 최악을 향해서 전차의 포탄과 보병의 사격이 이어진다.
두두두두두두!!!
콰앙! 콰앙! 콰아앙!!!
비록 그에게 직접 공격할 수 있는건 수십대의 전차와 수백의 보병 정도라 할지라도 그 위력은 결코 무시하지 못했다. 이미 폐허가 된 도시지만 그가 서 있던 인근의 남은 잔해조차 남기지 않게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뭐 어쩌라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최악은 멀쩡했다. 옷깃 하나 불타지 않고 안면에 적성종 대응용 특수 포탄이 꽂혀도 그 반동으로 뒤로 물러나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땅이 울리면서 흙더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수만, 수억톤에 달하는 토사가 단숨에 그들을 덮쳤다. 마치 우기의 산사태를 보는 것처럼 쓸려나간다. 포스 유저라면 그나마 희박한 생존 가능성은 있겠지만 일반 보병이나 전차병들은 무리일 것이다.
이윽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소음을 만들어내던 그들이 전부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한명, 생존자가 남아 있었다.
콰아앙!!!
"후발선지(後發先至)도 정도가 있지!!!"
"거 니가 약해서 선빵 못친걸 나한테 와서 따지냐?"
무너진 건물 잔해와 토사들을 해치고 튀어나와 최악의 안면에 주먹을 날린 권룡여제. 하지만 그녀의 일격에도 무색하게 최악은 막기는 커녕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역장으로 막았을 뿐.
그래서 도리어 그 반탄력을 전부 돌려받은 권룡여제는 다시금 튕겨져나갔다. 천근추의 묘리로 중심을 잡아 착지한 그녀는 으르렁거리며 다시금 주먹을 쥐었다.
"적당히 패면 또 덤벼들거고. 그렇다고 그레이 생각나서 죽이지는 못하고.......중상만 입으면 대충 제압되겠지?"
"그러고보니 볼일이 있었지!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고 하는게 낫겠군!!!"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며칠 후에 보자"
"..........?"
최악의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팔을 휘젓고 그 탄성과 반동을 근육을 타고 전해져 다리에 집중한다.
아틀라스 중국 지부에서 프로메테우스와 싸울 때도 사용했던 그의 주력기인 흉천만리(凶天萬里). 단순한 발차기에 불과하지만 위력은 단순하지 않다.
그걸 거의 풀파워로 사용할 생각이다.
"발끝이 아니라 발등으로 찰거니까 위력이 많이 죽거든?"
그렇다 할지라도 흉천만리의 이름값은 톡톡히 한다.
1리는 대략 380미터.
만리는 3800킬로미터다.
"각도 조절해서 대충 필리핀까지는 날아갈테니까 올때 대만 들러서 펑리수나 좀 사와라"
"그게 무슨......"
"나의 흉악!!!!"
만리까지 뻗어라!!!!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
거대한 충격파가 발차기와 동시에 무너지고 박살난 도심을 울린다. 토사에 파묻혔던 군대조차 그 발차기에 다시금 발굴되다시피 해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충격파에 휘말려 토사와 같이 날아간다.
만약 발끝으로 찼다면 충격파가 아니라 참격이 되어 베이징부터 필리핀까지 갈라지는 대협곡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힘조절을 했기 때문에 권룡여제의 몸을 두들기는 충격파는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이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크어어어억?!?!"
단지 그 여파에 휘말려서 정말로 대만을 넘어 필리핀까지 날아갈 뿐. 흉천만리의 이름값을 하는 것이다.
"이 자식, 두고보자아아아아아아!!!!"
"거 로켓단이냐"
가장 귀찮은 사람을 보냈다.
최악은 저 멀리 날아간 권룡여제의 모습을 확인하고 등을 돌렸다.
아직도 몰려오는 군대는 많다. 죽일 사람도, 죽일 시간도 많았다.
"간만에 몸 좀 써볼까아아아아아!!!!"
최악은 눈에 불을 키면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