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중국 최후의 날]
사람은 누구나 감정을 받아들일 한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공포가 한계치를 넘어서면 만용으로 드러나고, 슬픔이 한계치를 넘어서면 자포자기 해버린다.
그리고 분노가 한계에 이르면 도리어 무덤덤하다. 하지만 그 분노는 결코 사리지지 않고 고요하게 차가운 분노가 끓어오를 뿐이다.
"으아, 으아아아아악!!!"
마오슌 위원은 기괴한 각도로 돌아간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슬슬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목청은 컸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있는 침실은 방음 시설이 완벽한 곳이였다.
따로 경호원을 부르기 위해서는 인터폰을 통해서 대기중인 그들을 불러야 한다. 부르지 않으면 올라오지 말라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외부에서 문을 열고 들어올 가능성은 낮다.
"저 새끼는 또 뭐야?"
"얼굴 본 기억은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 소속의 상무위원인 마오슌 위원입니다"
"늙어빠진 노친내가 어린 여자 따먹으려고 들어? 이 새끼 지금 정신 나갔나"
시온은 평소와 같은 최악의 반응을 보면서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최악이 화를 낸다면, 어지간한 일이라도 시온이 말리면 막을 수 있다. 설령 최악이 눈이 날아가고 팔이 잘려나가도 그녀가 상대를 용서하라고 한다면 시간이 걸리기는 해도 말릴 수 있다.
하지만 딱 하나, 최악이 용서하지 않고 분노하는 때가 있다면 시온의 안전이 위협받았을 때다.
"그 가면!!! 완웅남 네놈이 어떻게 여기에!!!"
"뭐 등신아"
뻐억!!!
최악은 그의 몸뚱이를 걷어찼다. 그대로 벽에 날아가 처박혀서 다시금 땅에 떨어졌다. 나이가 들었어도 온갖 좋은 것을 먹고 살아서 몸은 튼튼한지 꺽꺽거리면서 숨을 토해내기는 해도 죽지는 않았다.
그는 마오슌 위원을 내버려 두고 시온의 안위를 살폈다. 그러다가 그녀의 팔뚝에 남아 있는 주삿바늘 자국을 발견했다.
"이건 또 뭐야? 딱 보니까 마약 주사놓은 느낌인데? 주사기를 보아하니 헤로인 계통이냐?"
"어떻게 척보면 착입니까?"
"쓰는 놈들을 본게 한트럭이니까. 마약 같은거 쓰는 놈들은 어지간히도 등신새끼인 법이야"
최악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주사기를 밟아 으깨버렸다. 작은 조각 하나 나지 않고 그대로 으스러져서 가루만 남을 뿐. 그 전의 흔적은 남지도 않았다.
"이, 이놈!!! 내가 누군줄 알고!!"
"그럼 넌 내가 누군줄 아냐?"
"우스꽝스런 가면이나 쓰고 다니는 소국의 미친놈 아닌가!!!"
"모른다는 소리네"
우뚝, 하고 마오슌 위원이 멈췄다. 납득했다는 소리다.
물론 시온의 남편인 만큼 그걸 찾아 들어가면 정체를 밝힐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손목도 비틀어져 부러졌는데 고통 앞에서 거기까지 생각이 닿기에는 힘들었다.
"그, 그래봤자 아무것도 못할거다! 저 년에게는 마약을 주사했으니 아무데도 못가! 출국하려고 하더라도 내가 막을거다!!!"
"마약이라, 이거 말입니까?"
그때, 시온이 자신의 팔을 내밀었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그녀의 팔뚝의 주삿바늘 자국에서 갈색의 액체가 새어나왔다.
바닥이 뚝뚝 떨어지는 그것을 본 마오슌 위원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것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고작 마약 따위가 저에게 통할것 같습니까?"
"울 마누라는 독 면역인데"
"게다가 주사할 때 체내에서 혈류를 조절해서 몸에 퍼지지 않게 했습니다. 단언하겠는데 제 몸에서 마약 검사를 해도 단 한방울도 검출되지 않을겁니다"
"그, 이......무슨....!"
그는 뭐라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금 눈 앞에 있는건 차가운 분노가 끓어올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마스터 유저고. 뭔가 트집잡아 우위를 점하기에는 다른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국의 마스터 유저인 권룡여제는 거의 1인자인 주석 다음가는 힘을 가졌다. 다만 그녀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무시할 뿐이지 마음만 먹는다면 귀찮기는 해도 마오슌 위원 정도는 처리할 수 있다.
비록 최악이 중국의 마스터 유저가 아니라도 우호적인 나라는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영국이 있어며 자국인 한국에서도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다 조져버리고 왔지. 해킹은 해뒀는데 정보는 받았어?"
"그때는 잠깐 연기하고 있어서 따로 저장만 해뒀습니다. 나중에 뒤져보면 됩니다"
"무슨 연기?"
"전 애초에 약이나 독이 안통하는데 수면제 같은거 통한 척 하느라 혼났습니다"
"뭐, 뭣?! 처음부터 깨어 있었다고?!"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었는데 대비하지 않았을리 없지 않습니까?"
시온은 독과 약 면역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육체는 인간의 모습만 하고 있을 뿐,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인 약물은 효과가 없다.
그녀에게도 통할만한 수준의 약물도 분명 존재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지구로서는 절대로 구할수도, 개발할 수도 없다.
마오진 경독의 차에서부터 시온은 처음부터 자고 있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 하나 보려고 했을 뿐.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시온이 최악에게 앞으로의 일을 물어보았지만 지금 최악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건 어떻게 마오슌 위원의 인생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것인가다.
죽는건 똑같다. 단지 과정만 달라질 뿐이다.
"일단 저 새끼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 전부 날려버려"
"했습니다. 전부 차명 계좌지만 추적하지 못할건 아닙니다. 예금 되어 있던 돈들은 전부 자선 단체에 기부 해뒀습니다"
"뭐, 뭐라고?!"
자기 집이 아니더라도 이런 저택이 있는데 정치가가 깨끗할리 없었다. 상무위원 자리에 앉아 있는 마오슌 위원도 마찬가지였고 자국 내에서가 아니라 해외에 따로 만들어둔 차명 계좌에 숨겨둔 비자금이 존재했다.
그 액수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사업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큰 액수다. 설령 중국 내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해외로 망명하고 남은 여생을 떵떵거리며 살아도 될 정도다.
하지만 담담하게 그런 차명 계좌를 없에버렸다는 소리에 문득 그의 머릿속에 스쳐가는 이름이 있었다.
"서, 서, 설마 완웅녀?"
".......완웅남도 그렇고, 중국은 왜 로컬라이징이 이 모양입니까?"
"나도 몰라. 종특인가봐"
러시아에 기적의 약이라 불리는 재생 포션과 압도적인 기술력의 제염 장비까지 대여해준 그녀의 행동은 어느면에서는 라쿤맨보다 더욱 유명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차원진 감지기도 그녀의 것인데 거기서 더 발전된 차원진 감지기조차 빛을 바랠 정도로 앞선 두가지의 기술이 상상을 초월한다.
나름 돈 좀 있는 중국인도 러시아에서 재생 포션을 비싼 값에 소량 구입해 복용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본 사람도 있다. 그만한 기술이 있다면 해킹 정도야 식은 죽 먹기에 불과하다.
마오슌 위원은 자신이 강간하려고 했다는게 그런 라쿤걸이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어 굳었다.
"그런대 왜 해외 계좌만 날려버리라고 한겁니까?"
"어차피 이놈 기반은 중국이야. 여태까지 모은 돈을 날려버려고 결국에는 국민을......아니, 중국이니까 인민인가. 아무튼 쥐어짜서 복구할 생각이 만만이겠지. 기반이 멀쩡한데 돈 하나 못벌까봐?"
아직 마오슌 위원에게는 국내에 남아 있는 기반이 있다. 또한 정계 은퇴 이후에는 대기업 명예 이사로서 추천받아 고액의 연봉을 받을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인맥만 동원해도 돈을 벌 곳은 수두룩하다.
"그래서, 전부 부수고 죽일거야"
남아 있는 희망을, 전부 부수고 박살낼 수 있도록.
"이 나라 국민, 시설, 군대, 전부 날려버리고 모든 희망을 포기할 수 있게"
중국에 기반이 남아 있다면 중국을 뭉게버리면 그만이다.
"마지막에는 스스로 죽는 것 만이 남을 수 있도록"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죽음이 자기희생이라면, 그 반대로 최악의 죽음은 자살이다.
최악은 놈을 곱게 죽일, 아니 죽게 할 생각이 없다. 포기하고 포기하고 결국에는 자살을 선택하게 만드는걸 바라는 것이다.
".......일반 시민까지 말입니까?"
솔직히, 최악도 처음에는 거기까지 생각은 없었다.
아틀라스와 중국 정부가 붙어 먹었다고 한들, 공권력과 국가 조직은 상대하기 귀찮은 법이다. 세계 정세에서 중국의 위치는 결코 낮지 않기에 박살내면 여파가 크다.
거기에는 연관되지 않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반 시민도 존재한다. 최악도 양심은 있기에 관련자가 아닌 일반인을 죽이는건 껄끄러워 하지만.......
"내가 지금 그거 가리게 생겼어?"
시온을 건드림으로서 머리가 확 돌아버렸다.
지금 그의 안중에는 시온의 안전을 위협한 중국이란 정부를 전부 아작내버리고 산산조각내서 이후의 위협을 차단하는 것만 남아 있다. 거기에서 발생하는 민간 피해는 알바 아니다.
쩌저저적!!!
최악은 손을 휘둘러 차원을 찢어냈다. 그 너머에는 한국에 있을 그들의 집이 있었다.
"넌 여기서는 죽이지 않겠다. 아니, 죽어서는 안돼"
포기하고 고통스러워 하다가 결국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한다. 적어도 최악에게는 그게 제일 고통스러운 죽음이다.
단순히 죽는걸 선택하기에 최악은 많은 일을 겪었다. 죽으면 환생하는걸 아는 이상 같은 죽음이라면 고통받다 죽는걸 선택하는게 당연한 일이다.
"천천히. 진득하게 조져주마. 개자식아. 알겠지?"
"으아아아아아아!!!!"
마오슌 위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최악은 시온을 안고 틈새 너머로 사라졌다.
남은건 중국이란 나라의 파멸 뿐이였다.
* * * *
쩌적! 하고 차원이 갈라졌다.
사실 초월자들 사이에서도 차원을 갈라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행위는 상당히 낭비에 속했다. 사실 좀 더 간편한 이동 수단은 흘러 넘쳤지만 차원을 찢어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행위만큼 간단한 일은 드물었다.
그걸 사용하는 초월자도 시간이 촉박하거나 아니면 대단히 빡친 초월자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겨우 버스 한두 정거장 거리라면 그냥 걸어가는 편이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구에서 차원을 찢을만한 초월자는 없었다. 마스터 유저라 할지라도 불가능했고 기껏해야 아직 오르지 못한 그랜드 마스터에게나 통용될 수단이다.
한국에 있는 그들의 집의 침상에 시온을 눕힌 최악은 그녀에게 말했다.
"일단 쉬고 있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중국을 멸망시킨다"
사실 별 의미 없었으나 이번 일로 연관되어서 최악은 생각을 달리했다.
마오슌 위원이 이번 일을 일으킨건 결국 그 결과에 의한 괴정에 지나지 않았다. 포스 유저는 전부 외모가 남다르기에 중간에 약간의 개인적인 욕망을 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미모가 뛰어난 포스 유저 여섬들을 범하는게 이제 와서 들통난 것이다.
부패한 나라라면 언젠가 들통날 일에 지나지 않았다. 최악은 민간인 피해를 신경쓰지 않고 전부 박살낼 생각이다.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조용히 살지 못할겁니다"
"시발, 이게 한두번 있는 일이야? 아니면 화성에서 테라포밍하고 살던가 하지 뭐"
"솔직히 그것도 땡기긴 합니다만"
지금의 최악은 시온이 말릴 수 없다. 그저 두고 볼 뿐이다. 전부 양보해주지만 이번만큼은 시온이 양보할 수 없다. 최소한 중국이란 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일은 계속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납득하고 조용히 있을테니 알아서 하십시오"
"권룡여제는 못죽일거야. 그년 죽이면 그레이가 와서 날 죽일거니까. 죽는건 안무서운데 또 너랑 떨어지게 되니까"
"죽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렇긴 하네"
"......힘 내십시오"
"알아서 다 작살 낼께"
슬슬 최악의 분노가 끝에 이를 시간이 되었다.
차가운 분노는 결국 폭발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말려도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다시금 차원을 찢고 중국에 이런 최악은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토했다.
일반인 피해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최악의 살인귀가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야]
초월자의 의지가 전역에, 아니 전 세계에 울려퍼진다.
중국 뿐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까지 언어가 아닌 의지로 전해지는 뜻은 그들에게 확실히 의미가 닿았다.
국가가 달라도, 언어가 달라도, 사상이 달라도,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그 분노를 엿보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까지 닿는 의지에 잠을 자던 사람도 놀라 깨어나고, 심약한 사람은 길에 쓰러지며,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부모를 찾으며 울었다.
[지금부터 중국 조질거니까 관계 없는 놈들은 아가리 싸물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