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라쿤맨 비기닝]
최악이 아틀라스의 비밀 실험실에서 정보를 얻고 돌아다니고 있을 무렵. 시온은 호텔 객실까지 찾아온 공안을 따라 공안처로 향했다.
"따로 공안국으로 가지는 않습니까?"
"아, 공안분국. 호텔 CCTV까지 입수해 알리바이가 거의 증명됐으니 약간의 기본적인 조사만 한 후에 보내드릴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시온을 데리러 온 공안은 네명. 그 중에서 두명은 포스 유저였다. 한국처럼 중국에서도 따라 포스 유저 범죄자를 잡기 위한 특수 공안부 소속이다.
일단 서류상으로 시온도 포스 유저로 등록되어 있으니 인근에서 포스 유저 범죄가 일어났다면 용의자로 올라가는게 당연하며 조사에 응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의 경우를 대비해 공안 소속의 포스 유저가 동행한다.
베이징은 수도인만큼 공안처가 따로 있다. 하지만 거기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으니 구역마다 공안분국을 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하이뎬구(海淀區) 공안분국이다. 천안문에서 가깝지만 마찬가지로 시장 쪽과도 가까워서 복잡한 곳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사에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오늘 중으로는 돌아가실 수 있을겁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성함이......?"
"마오진 2급 경독입니다. 편하게 불러주십시오"
"그럼 마오진 경독님이라 불러드리겠습니다"
중국의 공안은 계급 체계가 비교적 간단하다.
제일 위에 경찰청장과 비슷한 총경감과 부총경감을 뺀다면 높은 순서대로 경감, 경독, 경사, 경원등으로 1급에서 3급으로 나누어 놓는다.
그는 2급 경독이니 2번째로 높은 계급에서 2번째......어? 어쩐지 콩 댄스를 춰야 할것 같은 느낌이!
"왜 그러십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순간 머릿속에 터진 개드립을 우겨넣으며 시온이 무표정을 연기했다. 어차피 평소에도 무표정이다.
공안분국에 도착한 시온은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건물 안에 들어서면서 혹시나 싶어서 내부를 조사해 보았다. 정확히는 해킹을 통해서 시설 내부에 다른 수상한 것이 있는지 확인을 해봤다.
하지만 눈에 띄는건 발견하지 않았다. 단순히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정부 시설에 불가했다.
".......흠"
안내를 받고 들어간 그녀의 대우도 나쁘진 않았다. 포스 유저라도 가장 먼저 외국인이면서 겉모습은 어린애다. 아무리 자국민들에게 공포의 상징이라 불릴 정도의 공안이라도 마냥 공권력을 휘두르진 않는다.
나름 정부 시설이라서 그런지 건물도 깨끗하고 노후되거나 그런 느낌은 없었다. 공권력이 강한만큼 나름의 예산도 빵빵하게 받는것 같다.
"몇가지 질문에만 답해주시면 됩니다.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시온은 마오진 경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거의 형식상 하는 것에 가까운것 같다.
건물 내부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공안들이 수두룩했다. 얼핏 한국의 경찰서와 같은 분위기였지만 규모가 다르다.
중국은 인구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공안의 숫자도 많아야 한다. 구 하나를 담당하는 공안분국이라도 어지간한 경찰서보다 인원이 많다.
"일단 간단한 것 몇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사건은 오늘 아침 8시 경에 일어났습니다. 그 시각에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호텔 객실에서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남편분도 같이 계셨나요?"
"네, 그때는 같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찾아갔을 때는 남편분은 안계시던데......"
"제가 먹고 싶은게 있어서 사러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조사 때문에 제가 외출하게 됐으니까 잠깐 놀다가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아마 저녁 때 쯤에는 객실로 돌아올겁니다"
"아, 그러시군요. 신혼 여행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
조사에 대한 것은 알리바이에 대한 것 몇가지 정도였다. 시온의 증언도 증언이기는 하지만 호텔의 CCTV도 있으니 그녀가 범인이 아니란건 확실하다.
애초에 하지 않았으니까 누명을 씌우려는건 몰라도 그녀가 꺼릴건 없다.
"대략적인 조사는 끝났습니다만. 호텔에서의 CCTV영상을 통한 자료가 확보될 때까지는 잠깐 계시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물론 영상만 확인 끝난다면 그 뒤에는 바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아까 호텔 방문 했을 때 이미 말은 해둔 상태라 영상은 금방 올겁니다. 확인도 금방 끝낼테니까 오래 붙잡고 있지는 않을겁니다"
"그런데 계속 여기에 앉아 있어야 합니까?"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연락처는 저희가 알고 있으니까 이 근처라면 돌아다니셔도 되고 그동안 간단한 식사라도 하고 오시면 좋을겁니다. 시온씨는 사건의 연관성이 낮아서 거의 의무적으로 하는 조사니까 딱히 중요도가 높지 않거든요"
"그러면 그냥 보내줘도 좋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의 입장도 조금 이해해 주십시오"
"농담입니다. 그 정도 고충은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공안분국 바깥으로 나가도 된다고 했는데 과연 순순히 보내줄지 의문이 들었지만 정말로 바깥으로 나가도 감시자 한명 붙지 않았다.
이미 스스로 동행을 했으니 조사에 협조할 의지가 있는걸로 판단해서 나름 대우를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한건 오히려 아무런 기색도 없다는 점이다.
뭔가 불법적인 시도라도 할것 같은데.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일단 모르겠으니 밥부터 먹고 생각합시다"
감시자도 없겠다, 아직까지는 수상쩍은 면도 없지만 결국에는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긴장하고 있는것보다 차라리 시간 날 때 잘 먹어두는게 이득이다.
시온은 공안분국 건물에서 나와 뭘 먹을까 생각하다가 근처에서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주의를 끄는 가게를 발견했다.
매운 냄새도 섞여 있는 가게다. 나름 세련된 인테리어에 비해서 냄새가 강한게 신기하다. 찾아보니 꽤 이름있는 훠거 프렌차이즈 가게였다.
"훠궈라....."
혼자 먹기에는 좀 그런 메뉴이기는 하지만 그런건 신경 안쓴다.
어차피 가게 주인도 많이 먹는게 중요하지 손님 한명 받는걸 따지진 않는다. 4인분 먹는 2명보다 5인분 먹는 1명이 더 낫다. 그리고 시온 혼자서라면 그 정도는 먹을 수 있고.
중국까지 와서 흔한 메뉴로 밥을 먹을 생각은 없다. 훠궈라면 한국에서도 팔지만 현지에 맞춘 것과 본고장의 맛은 다른 법이다.
"어서오세요. 한 분이신가요?"
"한명입니다"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께요"
가끔 시온 같이 혼자 밥 먹으러 오는 사람도 있는지 직원이 능숙하게 2인석 자리로 안내했다. 가게 안에는 중국의 인구수 반영을 하는건지 4인석도 있고 6인, 8인석도 있는 넓은 가게였다.
메뉴판을 한번 흝어보고 대충 메뉴를 정한 그녀는 직원을 불러서 주문을 했다.
"백탕, 홍탕 반반씩 나오는거에다 양고기, 소고기로 2인분씩 주시고 모둠야채랑 새우 1인분씩.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주문 후에 잠깐 기다리니 태극 문양처럼 생긴 냄비에 담긴 육수가 나왔다. 한쪽은 흰색, 한쪽은 고추 기름도 둥둥 떠다니는 붉은색 육수다. 그냥 보기만 하고 있어도 묘하게 식욕이 땡기는 느낌이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갔는지 코를 쏘는 듯한 독특한 냄새가 난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별로라고 생각하겠지만 시온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문한 것들이 나오기 전에 소스부터 담아오기로 했다. 기타 익혀먹는 재료들은 주문을 해야하지만 소스 같은 경우는 셀프. 자기 식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한쪽에 코너를 만들어두었다.
시온은 고소한 땅콩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몇가지를 더 첨부해 소스를 만들고 휘휘 저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왔을 무렵 주문했던 메뉴들이 나왔다. 2인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고기와 야채의 접시들은 양이 상당히 많았지만 시온은 걱정 없었다.
"음......맛은 나쁘지 않은데 그이가 돌아오면 같이 먹어야겠습니다"
맛은 있지만 혼자 먹으니 심심하다. 주변을 둘러보니까 시온처럼 혼자 먹는 사람은 그녀를 포함해도 두명 밖에 없었다. 못해도 두명. 대부분 그 이상의 인원이 같이 한 테이블에 모여 먹는다.
시온의 인간 관계는 사업적인 분야 아니면 지극히 좁지만 그래도 이럴 때는 같이 밥 먹을 사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충 식사를 끝낸 시온은 계산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공안을 만나 나올 때 까지만 하더라도 점심 좀 지난 시간이였지만 조사 받고 밥까지 먹으니 해가 꽤나 기울어진게 보인다.
하필이면 슬슬 겨울이라서 낮이 짧아지고 있었다. 앞으로 얼마 있지 않아 날이 어두워질 것이다. 공안분국으로 돌아가서 바로 일 끝내고 돌아가도 가는 도중에 해가 질것 같다.
"흐음......."
아직까지 별일 없다는건 중요한건 이 다음이라는 소리다.
시온은 다시 공안분국으로 돌아갔다. 이미 호텔의 CCTV는 확보해서 확인을 했는지 마오진 경독이 밝은 얼굴로 그녀를 맞이했다.
"아, 식사 하시고 오셨습니까? 괜찮으시다면 커피라도 한잔 타드릴까요?"
"주신다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시온은 마오진 경독이 타준 커피를 마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CCTV에 시온씨의 알리바이는 확실히 나와 있습니다. 이걸로 용의선상에서는 완전히 벗어났으니 앞으로는 걱정 마시고 신혼여행을 잘 보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한 일입니다. 즐거워야 할 여행을 이렇게 망쳤으니까요......아, 호텔까지는 저희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너무 폐를 끼치는거 아닙니까?"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내일부터는 좋은 추억 많이 만드시고 가시기 바랍니다"
시온의 완전한 혐의가 풀렸다. 애초부터 의심하지 않고 있었지만 심증과 물증은 다른 법이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된 시온은 마오진 경독의 호의에 따라 돌아가는 공안 차량에 탑승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서 이미 해가 져서 도심의 야경이 보인다.
돌아가는 길에는 마오진 경독이 직접 운전했다. 혐의도 없으니 특수공안의 포스 유저들도 동행할 필요도 없어서 시온은 조수석에 탑승했다.
"밤이 되서 날씨가 으슬으슬하군요. 히터 틀어드릴까요?"
"아, 그러면 감사드립니다만......저 혼자 돌아갈 수도 있는데 정말로 괜찮으십니까?"
"네, 사실 오히려 모셔다드린 뒤에는 바로 퇴근할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돌아가는 차량. 시온은 조용히 야경을 구경했다.
차량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은 몸을 노곤노곤하게 만들어진다. 밥도 먹어서 배가 부른 뒤라면 더더욱. 저절로 잠이 오기 딱 좋은 상황이다.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 뭔가 궁금하신거라도 있으십니까?"
시온의 물음에 마오진 경독이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녀가 물어온 질문에 반대로 얼굴이 굳어졌다.
"저희 부부가 신혼여행 온거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
시온은 찾아온 공안들에게 단 한번도 신혼여행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물론 그냥 여행을 온 것과 신혼여행 둘중 하나에서 고르는 것이기에 확률은 반반이지만 그래도 그는 너무 확신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거야 두분 다 젊으시니까 신혼 부부인줄 알았죠"
"저희 남편 얼굴도 본적 없으면서 말입니까?"
"........"
마오진 경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인상을 찌푸리며 혀를 차면서 차를 멈춰세웠다. 그가 의도한 것인지 주변에는 인적이 드문 도로였다.
"언제부터 눈치 챘지?"
"어제 공안이 물어볼 때 부터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의심을 하고 있었다고? 미국인들은 전부 그런가?"
"전 엄밀하게 말하면......아니, 됐습니다"
일단 미국에서 이민와서 한국인으로 귀화했지만 미국인이였던건 맞다. 사실 따지고 들어가면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니지만 서류상으로는 그렇다.
시온은 무덤덤하게 작은 주먹을 들어올려보였다.
"당신은 포스 유저도 아닌데 저에게 뭔가 나쁜 짓이라도 저지를 수 있을것 같습니까?"
"포스 유저가 무적인건 아니지"
"그래도 당신 하나 때려눕히는건 일도 아닙니다"
설령 총기를 휴대하고 있어도 문제없다. 시온에게 총 따위는 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마오진 경독은 낄낄 웃으면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내가 아무것도 대비 하지 않고 왔을거라고 생각하나? 아마......지금쯤이면 약효가 돌텐데?"
"무슨......."
그 순간, 시온이 휘청거리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의식만 없을 뿐 숨을 쉬고 있는걸 본다면 잠에 빠진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포스 유저라고 약이 통하지 않는건 아니지. 커피와 방열기 쪽에 넣어둔 약품이 따로 반응하면 알아차리기도 힘들고 대응도 못하니까 말이야"
기본적으로 포스 유저는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신진대사가 남다르다. 약이나 독이 통하려면 보통 인간의 치사량 이상을 투여해야 겨우 효과가 있는 정도다.
물론 그 정도 수준이면 보통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포스 유저 몰래 약물을 투여하려면 그에 따른 절차가 필요하다.
시온이 공안분국에서 마신 커피에 들어 있던 약과, 공안차량의 내부에 따로 설치되어 히터나 에어컨을 틀면 무색, 무취의 약이 뿌려져서 효과를 배가한다. 물론 어느 한쪽이던 빠진다면 효과가 없기에 약이 든 커피를 마시지 않은 마오진 경독은 무사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마오슌 위원님. 간만에 한명 들어왔습니다. 네, 네......평소처럼 그곳으로 보내기 전에 따로 맛 보실겁니까? 이번에는 정말 좋은 양년입니다. 어린데다가 몸에서 좋은 냄새도 나서 좋아하실겁니다.......네, 알겠습니다. 그럼 댁에서 뵙겠습니다"
의식을 잃은 시온을 태운 차량은 그대로 어디론가 향했다.
그 방향에 끝에는 결코 시온이 머무르던 호텔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