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라쿤맨 비기닝]
프로메테우스는 라프 에너지를 통해서 나와 같은 역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덕분에 '부정'이란 개념을 기반으로 한 라프 에너지는 다른 어떤 이능보다 효율적으로 공격을 방어하고 또 공격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무너지는 연구소 속에서 놈의 어께 위에 떨어지던 작은 돌조각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소멸되었다. 멸룡은 그나마 가루라도 남지만 완전히 사라지는건 존재 자체의 부정이나 다름없다.
물론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 의지를 내보이는 것을 부정하는 것과 그냥 돌맹이를 부정하는건 큰 차이가 있지만 보통은 불가능한 행위다. 원래 노나곤 코어를 가지고 있던 인간형 적성종도 저 수준은 아니였다.
동물의 본능이 아닌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은 그만한 차이가 있다는 반증이다.
"그럼 이것도 한번 막아보던가!!!!"
나는 지하의 밀폐된 장소지만 다 조까라 그러고 몸을 비틀었다. 팔에서, 어께, 어께에서 허리, 허리에서 다리. 거의 모든 몸의 근육을 사용하여 오른다리에 집중한다.
근육의 탄성과 힘이 전부 발 끝에 모아지고 마치 당겨놓았던 활 시위를 놓아 반동으로 화살을 날리듯 전력으로 후려찬다.
"흉천만리(凶天萬里)!!!"
나의 흉악! 만리까지 뻗어라!!!!
콰가가가가가가가!!!!
발치기에서 비롯된 참격이 놈을 향해 날아간다. 물리적인 공격이지만 어지간한 개념 간섭 이상의 힘이 담겨서 직격했다간 좋은 꼴 못본다.
"크윽!!!"
반응속도는 나름 좋은지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완벽하게 피하진 못했다. 놈의 역장의 일부가 흉천만리의 여파에 충돌해 칠판을 긁는듯한 소리의 몇배쯤 심각한 기분 나쁜 소리를 낸다.
흉천만리의 참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구소의 상층까지 뻗어나간다. 적당히 힘조절 했으니 대충 지하 실험실 쪽만 두동강내지 전부 그 위까지 전부 박살나지는 않을 것이다.
비밀 연구소를 관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이 거기로 떨어지면서 추락한다. 이쪽으로 떨어져 죽는 놈들도 있었고 간신히 뭔가를 잡고 버티는 놈도 있다.
"니들 마지막 연구소 작살나서 어쩌냐, 응? 응?"
"어차피 과연 마지막일것 같나!"
"아니면 어디있는지 불어봐 새꺄! 거기도 조져주마!!!"
"할 수 있다면 말이지!!!!"
키이이이잉!!!
놈은 공세로 들어섰다. 노나곤 코어의 출력을 아까보다 더욱 섬세하게 조절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섭게 익숙해지는 낌새를 보였다.
무서울 정도의 성장 속도다. 만약 라프 에너지의 침식 때문에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는게 아니라면 귀찮아지기 전에 지금 당장 죽였을 정도다.
"흐읍!!!"
놈이 수도를 휘두르자 참격이 날아온다. 라프 에너지가 담긴 참격이 아니라 그걸 이용한 공간참이다.
내가 아는 공간참보다는 수준도, 위력도 떨어지지만 무시할 수 있는건 아니다. 무너져내리는 수없이 많은 연구소 자재들이 가로막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참에 속도 하나 줄이지 못하고 발군의 위력을 자랑하며 나에게 곧장 날아온다.
나는 역장을 한단계 강화시키고 손을 뻗었다. 같은 개념 간섭의 힘이 부딪히면 우위에 서는건 그 힘과 완성도가 높은 쪽이다. 그리고 나는 둘중 어느 것도 놈보다 위다.
쩌어엉!!!
공간참을 쥐어 박살내자 커다란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진다. 멀쩡히 서 있는 사람도 휘청이게 만들 정도의 크디큰 위력. 나에게는 별 다른 타격이 없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러면 이것들도 막을 수 있을까!!!!"
프로메테우스는 연속해서 공간참을 날렸다. 못해도 범위가 수 미터에서 길게는 십 미터가 가볍게 넘어가는, 보이지 않는 공간의 참격들은 비처럼 쏟아져내렸다.
소리도 나지 않고 보이지도 않아서 감지도 어려운 공간참. 피하기도 어려운데다 스쳐도 잘려나간다는걸 생각하면 살상력은 지극히 높다.
하지만 나한테는 그 틈새가 보인다. 난사하고 있지만 결국 놈은 팔을 휘둘러 참격을 쏘아낸다. 그렇다면 그 휘두르던 사이의 미세한 시간차가 피할 길을 만들어준다.
"스펙만 키우면 뭐해! 결국은 테크닉이 부족한데!!!"
놈은 전투가 익숙하지 않다. 사무직이나 보던 사람을 현장직으로 데려온 것이나 다름없는데 단숨에 익숙해질리 없다. 전투 기술 자체는 쓸 수 있어도 전투 자체에는 능숙하지 않다는 소리다.
나는 쏟아지는 공간참을 간발의 차로 피하고 때때로는 역장의 방어력을 믿고 몸빵으로 받아내면서 돌진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나를 보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윽고 힘을 모아 이번에는 큰 공격을 날렸다.
"그럼 이건 어떠냐!!!"
이번에 날아오는건 참격이 아니라 구체에 가까웠다. 참격보다는 범위도 작고 속도도 느렸지만 대신 파괴력은 공간참보다 더욱 뛰어났다.
공간참에 휘말리면 잘려나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번건 몸이 짓뭉게진다. 일점에 집중된 형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균등한 데미지를 주기 위한 것이다.
"겨우?"
나는 역장을 두른 주먹으로 구체를 후려쳤다. 압축되어 있던 개념이 박살나면서 그 여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파편처럼 휘날린다. 그 덕분에 눈에 띄던 비밀 연구실의 생존자들도 이번 공격에 휘말려 전부 목숨이 끊어졌다.
"개념 간섭을 다룰거면 고작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경험치를 쌓고 싶다면 앞으로 만년은 수행하고 와라 새꺄!!!!"
나는 놈은 바로 앞에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역장을 마치 과자처럼 쉽게 부수고 손을 뻗어 놈의 팔뚝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휘둘러서 놈의 몸뚱이를 벽에 내팽겨쳤다.
콰아아아앙!!!
무너지던 연구소가 한층 더 그 속도를 가속화 했다. 이미 중추가 죄다 박살나고 간당간당하던 판에 크게 흔들리니 균형이 무너진 모양이다. 아무리 튼튼하게 지어졌어도 이 정도로 소란스럽게 싸우는데 멀쩡할리 없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 연구소는 매몰된다. 한국이나 영국처럼 침수되지는 않을지 몰라도 최소한 뭔가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너질 것이다.
그건 어차피 내가 바라던 바다. 여기에 있던 것은 전부 죽어 마땅하고, 실험체로 잡혀온 사람들 중에서는 멀쩡한 사람이 없었다. 상당히 오래 실험을 당한 모양이였으니까.
"나에게 만년이란 시간은 커녕 십분 조차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걸 해야할 뿐!!!!"
받은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만큼 안타깝고 바보같은 사람은 없을텐데.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면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발버둥쳐봐야 하지 않겠나!!"
"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키면서 나아갔어야 했어"
"그런것 따위 지켜서 무엇이 남는다고!!!"
"모든게 남지!!!"
인간성을 지키다 파멸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거기에 가치가 있는 법이다.
미련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죽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타인을 죽여서 살아남는 것에는 잔소리를 할 생각 없지만 이건 인간성을 죽여서 살아 남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선함도, 악함도 모두 긍정한다. 부정하는건 그 선을 벗어났을 때 뿐.
살기 위해서 식인을 해 살아남을 사람을 욕할 생각은 없으나 인육에 맛들려 거기에 빠지는 자를 혐오한다.
아틀라스의 방식은 옳지 않다. 설령 인체실험을 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나는 이미 멸망한 세계도 봐왔었지"
프로메테우스는 아까보다 더욱 능력 사용이 능숙해져서 전혀 다른 효율로 나를 공격해왔다. 공간을 다루는 것이 익숙해진 그는 내 주위에 정육면체의 공간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압축. 마치 거대한 프레스기에 들어간 것처럼 공간 간섭에 저항하지 못한다면 짓눌려서 이쑤시개로 찍어 올릴 수 있을법한 작은 고기조각이 될 것이다.
"인간성을 포기해서 살아 남아봤자 그 끝은 좋지 않아"
"무슨......!"
포스트 아포칼립스. 흔히 세계가 멸망한 뒤의 세상에서도 나는 환생한 적 있다. 그곳은 인육을 먹는 자들이 난무하고 무법지대에 약자는 약탈 당하는 것이 일상인 곳이다.
인간성을 포기한 자는 많았다. 개중에는 다시금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전부 파국을 맞이했다.
한번 인간성을 잃는다면 다시금 얻는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 세상을 지키고 난 뒤에는? 네 의견에 동참한 새끼들 모두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천만에! 네가 아틀라스를 폐기해도 전부 다른 조직이나 나라로 들어가서 똑같은 실험을 반복할 뿐이야!!!"
"입에 바른 말 따위 집어 치워라!!!"
"시발! 겪어보지 않은 말보고 잔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겪어보고 하는 말이거든 십새꺄!!!"
결코 이놈들은 나와 공존할 수 없다. 이놈들은 암세포나 다름없다. 냅두면 퍼져서 결국에는 죽음으로 몰고가는 독.
한번 선을 넘는게 어렵지 넘으면 그 뒤는 쉽다. 이미 선을 넘은 자가 유혹한다면 타락하는건 한순간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여기서 쓰러지는거다"
대충 파악 됐으니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미 놈에게 마킹을 끝내두었다.
방금 전에 내가 놈의 팔뚝을 잡았던건 단순이 공격하기 위함이 아니다.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을 따라서 끝을 내기 위해서였다.
"의지에 거리 따위는 의미가 없으니"
설령 공간이 비틀린다 할지라도 지금 휘두르는 이 주먹은 닿는다.
"백척무간(百尺無間)"
이전에 러시아에서 루루에게 한번 사용했던 기술. 상대에게 내 의지로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을 따라서 상대에게 도달한다.
마치 소림사의 백보신권과 같지만, 그건은 공간 자체를 격해서 날리는 기술이건 이건 공간을 뛰어넘는 기술이다.
쩌어어엉!!!
"커어어어억?!?!"
프로메테우스는 피를 토하며 느닺없이 자기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발버둥쳤다. 하지만 이걸로 승부는 났다.
놈은 그대로 땅으로 추락했다.
마치 그의 인간성처럼.
* * * *
추락해 땅을 구르는 프로메테우스는 끊임없이 피를 토해냈다. 방금 전의 그 일격으로 놈의 내장은 날아가고 사지는 부러졌다. 공간 부정을 통한 방어도 통하지 않으니 몸의 형체가 남아있는건 순수하게 라프 에너지에 따른 변이된 육체 덕분이다.
라프 에너지는 전부 지금 그의 몸을 회복시키는데 사용되고 있지만 결국 그 한계는 드러난다.
부러졌던 팔 까지는 어떻게 뼈가 붙었으나 그 모습은 온전하지 않았다. ㄱ자로 꺽인채로 회복되어 설령 다시 싸울 수 있다 하더라도 주먹질은 못할것 같은 팔이다.
"힘조절은 했으니 대충 말은 할 수 있을거다. 가기 전에 몇가지만 물어보자"
프로메테우스는 조금이라도 저항하려고 애써보았지만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다.
사지는 움직이지 않으며 내장이 뭉게져서 생명체로서 치명상이다. 설령 적성종이라 할지라도 죽는다.
"지금, 이라면. 딱 한가지 밖에 말, 못해줄 것 같은데?"
"마지막까지 엿먹이는거냐 너"
솔직히 놈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라프 에너지의 폭주로 스스로 자괴하느냐. 아니면 이 연구소가 무너져서 거기에 짓눌려 죽느냐.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쿵! 쿠우웅!!
점차 커다란 콘크리트 파편들이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사람 몸통만한건 예사고 거의 한층이 통째로 떨어지는 듯한 크기의 콘크리트 덩어리는 빌딩이 무너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프로메테우스라도 저런거에 딸리면 뒤진다. 만전일 때라면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 한가지는 확실히 대답해줄거냐?"
"뭐가, 궁금하지?"
나는 조금 생각했다. 그에게 물어볼건 꽤나 많다.
프로메테우스 본체의 위치, 영자 컴퓨터의 위치, 마지막 실험실의 위치, 전부 보면 같을지 몰라도 혹시 모르니 다 물어봐야 한다. 게다가 셋 다 분산되어 존재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물어보지 않았다. 좀 더 다른, 아까 생긴 의문을 그에게 물었다.
"네가 썼던 노나곤 코어. 어디서 났냐?"
"하, 하핫......!"
"처웃지 마라 등신 새꺄"
"뭘 물,어보나 했더니, 겨우 그건,가?"
놈은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의 일부를 웃는데 썼다. 어지간히도 상황파악 못하는 녀석이구나. 반성해도 모자를판에.
하지만 내가 물어본 질문에 놈은 충실하게 대답해주었다.
"중국은 좋은 나라지......연구하기에는 편리한 곳이야"
"아무리 그래도 노나곤 코어는 지금의 중국이라도 딱 하나밖에 없을텐데?"
겨우 하나 있는 코어를 일회성 실험에 투자할 등신은 없을거다. 일단 단물을 다 빨아낸 후에야 쓰는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이 이런 소리를 내뱉는다는건 확실히 중국이 가지고 있던 노나곤 코어라는 소리다.
"그래서 연구하기 좋은 나라라고 한거다.......우리와 비슷하니까"
".......!!!"
아니, 설마 이 새끼들......!
아니겠지. 아니겠지. 속으로 부정해봤지만 불길한 예감은 등 뒤를 타고 올랐다.
"적당힌 기술만 제공 해준다면. 마찬가지로 저쪽도 필요한 자금이나 실험체는 얼마든지 공급해주니까"
의문이 있던게 단숨에 풀렸다.
용주방이라는 삼합회 단체 하나가 아무리 양지로 나온다 할지라도 수익의 일부만으로 이렇게 커다란 연구소를 세우고 몰래 실험을 하는데다 수백이 넘는 포스 유저를 아무도 모르게 공급하여 실험에 써먹을 수 있을리 없다.
한국에서 봤던 실험체들도 실종이나 사망 처리가 된 사람이 대부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소의 규모는 작고 실험체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은 내가 들은것만 800이 넘는 실험체가 존재했다. 실제로는 그 이상 될지도 모른다. 적성종과의 전투로 큰 부상을 입은 포스 유저를 사망처리하고 실험체로 써먹기에는 그 공급이 부족하다.
예진이처럼 필연적으로 납치같은 수단이 필요한데......포스 유저면 수백이 납치 됐는데 그거 들키지 않는다는게 이상하다.
공권력의 협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소리다.
"이 짱깨 새끼들이.......!!!"
중국은 정부 자체가 아틀라스와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공안을 따라갔다는 시온이 떠올랐다.
"니들이.......!!"
시온을 건드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