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라쿤맨 비기닝]
나는 내색하지 않고 놈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었다. 지가 혼자 떠들겠다는데 나는 옆에서 정보라는 이름의 아이템을 파밍하면 그만이다.
"'다섯 사도'들은 신을 깨우는데 실패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지"
"꽤나 오래전 이야기를 말하는 어투인데. 직접 본건 아닌가봐?"
"이건 우리 세계의 역사나 다름없으니까. 알고 있는게 당연한거지.......이런 역사라면 차라리 없었던 편이 낫지만"
광기는 거기에서 일어난것 같은데.
아무리 정상적인 조직이라도 한번 엇나가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 자재를 싣고 달리는 트럭이 함부로 멈출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그들은 신을 깨우기 위해 연구했지. 깊은 잠에 빠져든 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그에 준하는 수준의 의지가 필요한 법. 하지만 '다섯 사도'전원이 힘을 합쳐도 불가능했고 시간이 얼마가 지나던 그들과 같은 강자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었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다"
".........내가 생각하는 그 방식이 아니였으면 참 좋겠는데"
"적성종이 왜 코어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나?"
"그냥 라프 에너지 동력로 아니야?"
"아니, 그건 라프 에너지의 송수신기다"
"수신기도 아니고 송수신기라"
수신기라면 받기만 한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송수신기라면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다. 적성종이 차원을 넘어 받는게 라프 에너지라고 한다면, 차원을 넘어 보내는건 뭐지?
답은 하나밖에 나와 있지 않다.
"인간의 감정"
"그 중에서 부정적인 감정이 좋지"
전에, 인간형 적성종이 처음 나타났을때.....그러니까 내가 미국 가서 인간형 조지고 한국에서는 백리가 라쿤맨 2호로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일이다.
하필이면 미국에 나타난 인간형 적성종은 원거리 공격을 하는 제이콥이 취약한 근거리 전투형이고, 한국에서 나타난 놈은 반대로 근거리 전투가 특기인 이경진 아저씨에게 취약한 원거리 공격 타입이다. 일본과 중국도 비슷했고.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것도 아니고 딱 처음 나올 때 그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심증 뿐이였지만 이번 일로 물증까지 생겼다.
"그런데 그걸 과학자들이 모를리 없잖아? 하다못해 일리언 박사 정도라면 정확히는 몰라도 송신 기능 있다는것 정도는 파악했을텐데?"
".......코어가 따로 분리되거나 숙주인 적성종이 죽으면 송신 기능을 잃는다. 산채로 적성종을 해부하는 경우도 드물고 설령 하더라도 겨우 몇번 정도로 그걸 파악하는건 무리지"
적성종이 인간을 죽이는 이유는, 처음부터 부정적인 감정을 모아 수확하기 위함이다. 죽음의 공포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부정적인 감정이니까.
인간의 사념을 모으고 활용하는 수준의 기술력이 있다면 그 사념에 담긴 기억을 보는 것도 어려운건 아니고, 마스터 유저에 대한 정보가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아주 등신 같은 짓을 하고 있구만"
나는 티브인지 티비인지 하는 저쪽 차원 놈들을 싸잡아서 평가했다.
"왜 남들 차원에 와서 그딴 짓을 한데? 지들한테나 할 것이지"
"이미 하고 있다"
"........"
"마그노 레톤을 쓰지 못하는 신도들은 그곳에서 동물 취급 받으며 부정적인 감정을 뿜어내는 엔진 취급 받고 있다. 그것이 신을 위한 일이라고 말하며 순교로 포장하고서"
"어떤 짓을 주로 하는지는 말 안해도 되니까 하지마"
인간의 부정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방법은 지극히 간단하다. 그 방법을 적기에는 여백이 너무 적으니 말하지 않겠다.
과연, 영국에 있던 프로메테우스의 말은 이런걸 뜻하는거였냐.
"네 말을 들으니 인간성을 버리더라도 놈들을 막겠다는 의지가 이해는 간다"
"그렇다면......!!"
"하지만 그게 납득이 된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지!!!"
그래서 뭐 어쨌는데?
인간성을 버리고서 살아남아봤자 그게 의미가 있을것 같냐? 도덕과 윤리를 버린 자에게 내일이 의미가 있을것 같냐? 살아남는 자가 정의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살아남아서 어쩔건데?
인간의 가치는 그 인간성에 있다. 인간성을 버린 인간은 그저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놈들을 사람이 아니라 돼지새끼로 취급할 뿐이다.
"니가 하는 짓이 그 다섯 사도들이 너희에게 했던 짓이랑 뭐가 다르지? 가정폭력을 당했다고 똑같이 커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등신 새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과거가 어두워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있다면 동정은 해줄 수 있다. 하지만 동정과 용서는 별개의 부분이다.
프로메테우스에게 반성은 없다. 그는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행했고 전부 떠앉기로 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잘못한건 알아도 반성은 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잘 들었다 새끼야. 니들 전부 조지고 그 뒤에는 티브인지 티미인지 하는 놈들 조져줄테니까 뒷일은 걱정마라"
"......결국 협상은 결렬됐군"
"이게 협상이였냐? 난 또 너네 재롱잔치인줄 알았지"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 이미 위에서 내려온 포스 유저들이 빼곡하게 방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무기를 들고 장비를 챙겨서 곧바로 기습해 들어올것 같았다.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너를 설득하지도 못했으니 남은건 여기서 너를 죽이던가. 아니면 싸우다 죽던가. 둘중 하나겠지"
"죽일 가능성이 있을거라고 생각해?"
"전혀. 그러니까 남은건 하나군"
콰앙!
문을 박차고 들어온 준 마스터 유저 수준의 포스 유저들이 빠르게 방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나는 수도를 휘둘러 멸룡을 깃들인 참격을 한방 날렸다. 단숨에 돌격해오던 포스 유저 열댓이 단숨에 가루가 되어 바스라진다.
하지만 그 틈에 프로메테우스는 책상 아래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뭐야, 막 아이언맨 수트라도 되냐?"
"아니, 그보다 훨씬 나은거지"
거기서 나온 것은 구각형의 적성종 코어였다.
.........어? 그게 왜 거기서 나와?
지금 상황에서는 인간형 적성종에게서 밖에 얻을 수 없는 노나곤 코어.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가지고 있는건 몇게 되지 않을거다. 10개도 되지 않을테니까 귀하다면 엄청 귀하다.
그중 하나가 왜 이놈 손에 들려있지? 게다가 단순히 코어만 있는게 아니라 뭔가 손본 느낌이 있다. 주먹만한 크기의 코어는 뭔가 통 안에 액체와 함께 담겨 있었고 그 통의 끝에는 주입하기 위한 용도의 바늘이, 아니 거의 관 수준의 바늘이 달려 있었다.
"나는 마그노 레톤을 쓰지 못하는거지 전투 능력이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
푸욱!
놈은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에 관을 찔러넣었다. 심장이 관통했을 수준이지만 놈은 그런 고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들거리면서 신음성 하나 내지 않았다.
그리고 액체와 함께 노나곤 코어가 녹아가면서 놈의 몸으로 흘러들어간다. 이건......마치 영국에서 봤던 갱 보스놈이랑 비슷한 느낌인데?
"아직 안정화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결국에는 라프 에너지 때문에 자괴(自壞)하겠지만......당분간 시간을 끌기에는 충분하지"
"자신만만한데?"
놈은 포스 유저가 아니였다. 아무리 정제 과정을 거쳐도 노나곤 코어를 통째로 사용했다면 적성종으로 변이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여기에는 놈이 라프 에너지의 원본인 마그노 레톤인가 뭐시기를 알고 있다는걸 감안하여서.......대충 수십분?
프로메테우스의 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소한 인간의 외견은 취하고 있었다. 머리에서 뿔이 좀 돋아나고 손과 팔이 외골격으로 뒤덮이는 수준? 어디 가서 억지 부리면 인간은 아니더라도 인간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너 그 노나곤 코어 어디서 났냐?"
"날 쓰러트린 다음에 물어보시지"
"오냐. 패야 말을 들을것 같네"
아직 놈의 입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는 있었다.
죽이지는 말자, 죽이지는.
* * * *
더 이상 준 마스터 유저 수준의 포스 유저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저런 놈들 수십보다 지금 눈 앞의 프로메테우스가 더 강했다.
마스터 유저가 온다면......솔직히 권룡여제나 이경진 아저씨 외에는 상대할 사람이 없다. 지금의 그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형 적성종 쪽이 더 가깝다.
"어디 간 좀 볼까?"
준 마스터급 포스 유저들은 이제 반은 도망가고 반은 남아 있었다. 어차피 여기서 탈출도 못할텐데 도망가봤자 의미 없지만 그래도 잡는 편이 낫다.
나는 내 몸을 중심으로 멸룡을 뿜어냈다. 위력 자체는 약하지만 범위는 전방위다.
지금쯤이면 시온이 자료도 다 받아놨을테니 윗층에 있는 메인 컴퓨터실이 박살나도 상관없다.
콰가가가가!!
사방으로 퍼져나간 멸룡은 단숨에 모든 물질을 소멸시켰다. 주변에 있던 사람, 시체, 물건, 유기물, 무기물 전부 가리지 않고 가루로 만들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증거 자체를 없에버린다.
탐욕스러운 멸룡은 대응할 방법이 몇 없는 최상위 이능력이다.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힘이기에 이거 하나 막지 못하면 나랑 싸울 자격 없다.
"처음부터 그런 공격인가?"
키이이잉!!!
멸룡의 파장이 프로메테우스에게 닿기 바로 전에, 그의 몸을 중심으로 공간이 기이하게 떨리며 멸룡을 막아냈다.
저건 단순한 라프 에너지 응용이 아니다. 라프 에너지의 부정의 개념을 이용하여 공간을 차단한 것이다.
"판단 좋은데?"
만약 그냥 라프 에너지를 응용해서 막은거라면 장벽의 강도 상관 없이 멸룡이 먹어치워 가루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멸룡을 막는데 유효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저거다. 공간에 대한 개념 간섭. 공간 자체를 비틀어 닿지 않게 한다면 멸룡에 접촉하지 않았으니 소멸당할 위험도 없다.
이건 힘의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지식과 경험의 문제다. 공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쓸 수 없는 방법이다.
"죽이지는 않겠지만 팔다리 날아가는건 괜찮겠지?"
저런 방법으로 막는다면 같은 개념 간섭이 아니고서야 막을 수 없다. 나는 주먹을 쥐고 역장을 강화한다. 내 역장 자체도 놈이 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만 이쪽이 훨씬 상위 호환이다.
"흡!!!"
나는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내 감각에, 시야에 놈의 몸 주위에서 라프 에너지가 결정화하여 마치 송곳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나를 향해서 사출. 물리법칙을 무시해서 제로에서 단숨에 음속의 몇배로 가속한 이능력의 송곳이 내 급소를 노려온다.
"어림없지!!!"
쐐에에에에엑!!!
쩌저저저저적!!!
나는 돌진하면서도 놈이 날린 송곳을 전부 손으로 쳐냈다. 숫자만 해도 수십개고 속도도 빠르지만 내 기감을 무시하고 올 정도는 아니다.
그런걸로 나에게 한방 먹이고 싶다면 광속 정도는 들고와라.
손 뻗으로 닿을 정도까지 다가간 나는 주먹을 쥐고 놈의 명치에 주먹을 날렸다. 별다른 이능없이 역장 하나만 믿고 내지르는 공격이다.
콰아아앙!!!
묵직한 감촉이 주먹에서 느껴졌다. 내 주먹은 확실하게 닿았지만 놈은 튕겨나갔을 뿐 몸이 직접적인 데미지를 받은것 같지는 않다.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놈의 역장이 더 강한듯 보인다.
튕겨나갔던 프로메테우스는 허공에서 급정지하고 아까의 송곳처럼 이번에는 자신의 몸을 가속시켜 소리의 속도를 뛰어넘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놈이 날린 주먹을 손등으로 비껴내고 놈과 시선을 마주쳤다.
한순간 서로의 감정이 오간다.
"이능력을 다루지 못하던 놈이 그 정도로 다룰 수 있다면 다루던 놈을 자주 봤다는 소리지"
개념 간섭은 지식과 경험의 문제다. 지식이 없다면 시도도 할 수 없고 쓸 수 있어도 한번 더 많이 써본 사람이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써본적이 없어도 보고 느껴봤다면 노하우 정도는 익히고 있을터. 그것만으로도 저런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저쪽에는 그런 수준의 능력자가 꽤나 널려있다는 소리가 된다.
아무래도 티브라는 문명은 내 생각보다 많이 발전된 문명일지 모른다. 애초에 차원을 넘어서 이런 짓을 저지르는 놈들의 문명이 낮을리는 없지만!
"시간 끌어도 내가 이기겠지만. 그러면 내가 듣고 싶은 정보는 들을 수 없을것 같거든?"
나름의 정제 과정을 거쳤어도 저항력이 있는 포스 유저도 변이시키는데 노나곤 코어를 통째로 주입한 녀석이 오래 버틸리 없다. 포스 유저도 아닌 프로메테우스가 어떻게 저렇게 버틸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결국 시간 문제다.
하지만 시간을 끌어서 죽을 때 까지 기다리면 내가 원하는 정보는 얻을 수 없다.
"간만에 힘 좀 써볼까!!!"
그 여파로 연구소는 전부 날아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