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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화 〉[라쿤맨 비기닝] (194/507)



〈 197화 〉[라쿤맨 비기닝]

시온은 따로 공안을 따라가고 나는 우선 이쪽의 일을 해결하기로 했다.


보안실을 해킹해서 얻은 이곳 시설 지도는 마스크에 전송되었기에 이미 해야할 일은 분명했다.

흰 가운을 벗어던지고 마스크를 썼다. 이미 시온이 보안 시설을 전부 장악해서 경보도 울리지 않고 시스템도 작동되지 않을거다. 남은건 중앙 컴퓨터실로 가서 남은 자료를 가져오고 전부 쓸어버리는  뿐이다.


"어디보자......"

여기는 7층. 중앙 컴퓨터실은 14층에 있었다. 15층에는 관리자 구역. 그러니까 프로메테우스 같은 꽤나 권한 높은 녀석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쪽 놈들은 내려가는데 따로 전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내려갈수록 중요한 시설인데 보안실을 7층에 두면 어쩌잔거야.....그래서 나도 편했지만. 애초에 여기 몰래 들어오려면 힘드니까 방심하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자료 지운거야 미리 대비하고 있어도 되는 부분이지만 사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나를 매일같이 긴장하면서 대비하고 있기에는 사람은 그렇게 열성정으로 만들지지 않았다.

"후딱 가볼까"


경비 시스템을 장악했다면 가장 빨리 14층까지 내려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작살내는 것이다. 그중에서 15층 사용자 전용의 엘리베이터는 지상까지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거리가 좀 멀기는 하지만 계단이나 다른 엘리베이터보다는 빠르게 내려갈 수 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딱 한층, 15층까지는 연결되어 있지 않으니 15층까지 갈 생각이면 차라리 거기까지 가는게 편하다.

나는 보안실에서 나왔다. 이미 바깥에 있던 연구원들이 있었기에 그들의 시선에 나에게 향한다.


그리고 얼굴에 쓴 라쿤 가면을 인지하는 순간 그들의 안색이 굳어진다.


"와, 완웅남(浣熊男)!!!"


"중국 이 새끼들 로컬라이징 오지게 한단 말이야. 그치?"

완웅이란 미국너구리를 말하는 중국식 이름이다. 캡틴 아메리카도 미국대장으로 부르는 놈들인데 라쿤맨이면 직역해서 완웅남이지.

참고로 완웅(浣熊)은 음식을 씻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자 같은건 해석해보면 그 의미가 있는게 많아서 솔직히 재미는 있다. 배우는 난이도는 그렇다쳐도.

"이런 일에 협조하는데 곱게 죽을 생각이지는 않겠지? 뒤져"


나는 다리를 후려찼다. 파공성과 함께 다리에서 일어난 참격이 연구원들의 몸뚱이를 갈랐다.

B급 스플레터 호러 무비에서나 나올법하게 상반신이 떨어지고 하반신에서 내장과 피가 분출되다가 이윽고 힘이 풀려 바닥에 나뒹군다.


"으어, 으어어어억!!!"


"뭐야, 살아 있던 놈이 있었네?"

한놈, 몸을 웅크려서 참격을 피한 놈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반응도 못하고 죽었겠지만 보니까 포스 유저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끼고 피했다고 해도 이상한건 아니다. 애초에 나도 대충 날린 공격인데다 본인의 운이 좋았다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운도 거기서 끝났을 뿐이다. 수인사대천명. 사람이 할  있는 일을 하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다고 하는데.  하늘은 내가 아니라도  스승님이 진작에 조졌다.

"사, 살려주십시오 대인! 저는 그냥 보안요원입니다! 저, 저는 집에 마누라도 있고 소학교도 들어가지 못한 딸아이가 두명이나 있습니다! 부, 부탁입니다!!!"


그는 이미 나와 상대가 안됨을 파악했는지 덜덜 떨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그래,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테니까 가족도 있고 그래야 할만한 이유도 있겠지.

"댁은 이 연구소에서 뭔짓 하는지 모르고 있었어?"


"예? 그, 그게 무슨......"


"알고 있었네"

서걱!!!

"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염동력을 응용해서 그의  하나를 잘라냈다. 피가 뿜어지면서 발광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보면서 그의 몸뚱이를 짖밟아 고정시켰다.


"네가 방관했던 사람들은 가족이 없었을까? 설령 가족이 없는 천애고아라 했더라도 그래서는 안됐지. 인간을 괴물로 만드는 실험 따위를 하면서 곱게 죽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대인! 대인! 제발 살려주십......"


"좆까"


콰직!!!

나는 그대로 그의 몸뚱이를 짓밟아 부쉈다. 마치 터진 썩은 계란처럼 끔찍한 꼴이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동했다.


이미 소란은 벌어졌다. 비명 소리는 아무리 지하 시설이라도 위 아래로 1,2층은 퍼질만한 크기였으며 내가 한 발차기에서 비롯된 충격파도 있다. 눈치 빠른 포스 유저들은 분명 근원지인 이쪽을 향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 쯤의 나는 이미 14층으로 내려가 있을거다.

"완웅남!!!"


"응, 안녕"

뻐어어어억!!!


"치, 침입자......"

"밥 먹었니?"

콰직!!

"으, 으아아아아!!!"

"층간소음이 시끄러운에 입좀 다물지?"

으드득!!

중간중간에 조우하는 놈들은 죄다 대가리를 부수거나 깨버리고 목을 비틀었다. 여태까지 눈에 띄는 상대는 없고 내 기감에도 그런 포스 유저들은 대부분 멀리 떨어져 있다.


그나마 가까운 2인조들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고. 모퉁이에서 조우하기 일보직전이였다.


들어오기 전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준 마스터급 포스 유저들이다. 원래부터 2인 1조인지 상당히 단련된 기세로 빠르게 검을 뽑아 연계하여 모퉁이에서 바로 나를 공격해온다.

"반응 속도는 좋은데"


 하나는 목을 베려고, 다른 검은 심장을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사실상 거의 기습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기감 때문에 파악하고 있던 나에게는 이미 그 효과는 반감된다.

애초에 내 감각을 피해서 기습하려면 로드 이상의 초월자를 데려와야 한다. 그런데  정도 되면 자존심이 있어서 기습같은거 안하거든? 차라리 정면대결하다가 슬쩍 뒤에서 공격할 생각을 하지.

"경험이 너무 부족해. 그래서 약빨은 안된다는거야"


쩌어엉!!

한손으로 찌르고 베어 오는 검을 쳐내고 놈들의 목에 각각 관수를 찔러넣었다. 푸확! 하고 피가 튀고 목을 완전히 관통하여 등 뒤로 빠져나온 내 손이 보인다.


관수를 뽑아내면서 피와 시체를 털어버리고 다시금 갈 길을 간다. 준 마스터 유저급이라서 나름 집중해서 싸워봤는데 가장 중요한게 없다. 하긴 이런 도핑 계열로 얻은 힘은 겉만 요란하지 실속이 없는거다.


포스량만 보고 5명쯤 있으면 마스터 유저 조질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정해야겠다. 아마 20명이 있어도 간당간당할 것이다.

 시설에 있는 준 마스터 유저의 수는 대략 60명.  중에서 내가 두놈 조졌으니 58명이다.

넉넉하게 계산해도 마스터 유저 두명은 찜쪄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니. 얘들 도대체 연구가 얼마나 진척된거지?

"라프 에너지......희미하지만 느껴지는거 보면 아무래도 영국에서 봤던 갱 놈들이 쓰던거랑 비슷한 종류 같은데"

하지만 그놈들이 쓰던건 어디까지나 지효성에 1회용이다. 여러개를 한번에 썼던 거기 보스놈은 폭주해서 포스 유저도, 적성종도 아닌 괴물이 되어버렸다.

물론  정도만 하더라도 나라 하나 찜쪄먹기는 충분한 스펙이였지만  아니, 연구가 이렇게 진척될만한 계기가 있었나? 내가 기억하기로

"엘리베이터 발견!"


 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있었다. 주먹을 날려 권압으로 문을 박살낸다. 그리고 박살낸 문으로 들어가 아래로 추락하듯 내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아래 쪽에 있었는지 저 아래에서 보인다. 어차피 나는 버튼 누르고 탈 생각 없으니까 저건 통로만 가로막는 불필요한 요소일 뿐이다.


"으라차!!!"


콰아아앙!!!

추락하는 가속도에 힘을 더한 내려찍기! 그 충격은 분산되지 않고 단숨에 엘리베이터에 직격해 박살냈다.

안에 사람이 있었는지 콰직! 하고 토마토 으깨지는것 처럼 소리가 나고 피가 튀겼지만 상관하지 않고 통로를 통해 쭉 아래로 내려갔다.

이윽고 14층에 도착했다. 메인 컴퓨터실에는 이미 연구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이미 저번보다 훨씬 늦었고 내가  빨랐다.


"모두 키보드에서 손 떼!!!"

"끄어억?!"

나는 연구원들의 움직임을 전부 염동력으로 멈추었다. 영국 쪽 시설보다 규모가 커서 컴퓨터실 크기도 넓고 사람도 많았지만 나한테는 거기서 거기다.

"일단 빠른 해킹!!!"

시온에게 데이터가 전해질 수 있도록 해킹 툴을 USB 단자에 꽂아넣었다. 지금은 공안이랑 이야기 하고 있어서 연락은 못해도 알아서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건 대충 처리 됐으니 15층으로 내려가볼까!

"프로메테우스 이 개자식은 어디에 있나......!"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서 한층 내려와 15층에 도달했다. 윗층보다는 조용하고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더해서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드는건 심상치 않은게 있다는 반증이겠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 기척을 살핀다. 방에 숨어 있는 놈들도 있고 다른 방향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탈출하려는 놈들도 있었지만 딱 하나, 가만히 있는 기척이 하나 있었다.

거기구나?


아무래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15층 중앙의 제일 넓은 방으로 들어서자 거기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프로메테우스가 인사를 건냈다.

"꽤 오래 걸렸군"


"러시아 쪽 날려먹어서 그렇지 뭐"


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프로메테우스의 본체는 나도 어디있는지 모른다. 애초에 이놈은 본체의 기억을 가졌을 뿐인 타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기억이 있어도 선택하는건 자신일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이런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과연 이런 일을 할만한 정당성이나 긍지가 있는지는 둘째쳐도 놈이 뭘 보고 느꼈길래 이 정도까지 하는건지 솔직히 궁금하다.


"근데  새끼는 뭔 깡으로  앞에 나와 있는거냐? 뒤지고 싶어서?"

"어차피 목숨 같은건 그리 아깝지도 않으니까. 그럴거라면 좀 더 이득이 되는 이야기라도 나누지 않겠나?"


"넌 영국에 있던 놈이랑 성격이 좀 다르구나"


"그런 면도 없진 않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들에게서 방침이 달라진 것이겠지"


기억만 있는 타인이라면 사람마다 개성이 드러나도 이상하지 않다.

내가 만난건 영국에서 첫번째로 만난 프로메테우스니까 비교할 대상이 없었지만 영국에서 만난 녀석이랑 지금 녀석을 비교하면......뭐랄까,   말이 통할것 같은 느낌이다.

"무슨 방침이 달라졌길래?"


"러시아에서의 일 기억하고 있나?"

"그럼 잊어먹었으려고?"


아, 그건가.


내가 러시아에서 루루랑 치고박고 싸우던 일은 이미 전 세계 사람이 알고 있다. 루루, 그러니까 블러디어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인에게 쉬쉬하고 이쪽 고위 관계자만 알고 있더라도 반대로 관계자라면 모르지 않다는 소리다.


프로메테우스가 나름 인맥이 있다면 아는건 어렵지 않았을터. 그렇다면 초월자와 블러디어 같은 차원 너머의 다른 존재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여태까지 자네에 대해서는 마스터 유저 최상위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지"

"지금은?"


"최소 혼자서 이 별을 멸망시킬 수 있는 초월자"

"정답이네"

물론 앞에 붙은 접두사가 최소가 아니라 최대였다면 부정해줄 생각이였다. 나름 연구자라서 그런지 가장 확신할 수 있는 부분만 잘라놓은것 같다.


"단순히 마스터 유저라고 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에게 승산은 없겠지. 하지만 이쪽에서 파악한 수준이라 한다면 라쿤맨 네 무력은 충분히 '다섯 사도' 중에서 한명과 비등해 보인다. 그 겁쟁이들이 직접 여기로 넘어온다 하더라도 기껏해야 한명일테니, 네가 있으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다섯 사도'?"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차원......티브의 지배자들이다"

"호오?"


내가 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유는 어차피 나도 한번쯤 저쪽으로 넘어가서 정리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쪽의 정보는 미리 알고 있는 편이 오히려 이득이다.

아, 다 말하면 그 다음에는 죽일거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미 선을 넘어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우리의 모성 티브는 황폐한 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신이 머무르시는 성지지. 황폐하기에 많은 것을 얻을 수는 없지만 신의 은혜를 입어  힘으로 우리들은 다른 별을 개발했다"

"그 신의 은혜란게 설마 라프 에너지냐?"


"진짜 신도가 휘두르는 힘은 라프 에너지 따위가 아니지. 오로지 지성과 감정을 가진 존재만이 쓸 수 있는 신의 힘. 그걸 우리들은 '마그노 레톤'이라 부르고 있다"

"라프 에너지는 그 마그노 레톤의 마이너 카피에 불가능하다는거지?"

"마그노 레톤을 다를 수 있는 일반 신도는 적성종이 상대라면 설령 인간형이라 하더라도 이길 수 있다. 포스 유저와는 상성이 다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라프 에너지의 원본을 다루는만큼 무슨 짓을 해도 적성종은 신도를 이길 수 없어"


"너도 마그노 레톤을 다룰 수 있냐?"

"아니, 나는 다룰 수 없다"

"너 말고 본체 말이야"

"본체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이런 차원으로 떨어진 신도가 마그노 레톤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나? 만약 쓸 수 있다면 그 쓸모를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다루지 않아"


술술 불기는 해서 좋구나. 이번에 얻을  있는 정보는 확 얻어야겠다.


나는 조용히 놈의 이야기를 들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악당은 정보를 충분히 떠들도록 막지 말아야 하는 법이다. 그게 훨씬 좋거든.


"황폐하지만 성지인 모성 티브에서 나온 자들은 성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로 이주했다. 다행히도 우리 성계에는 날씨 변화가 심하기는 해도 충분히 살만한 별이 2군데나 있었지. 우리 티브 문명은  별들에서 발전했다. 그렇게 발전하면서 점차 시간이 지나 '다섯 사도'가 모습을 드러냈지"


"사도라고 한다면, 종교의 지도자인가?"

"우리들의 모성의 이름이자, 성지의 이름이자, 신의 이름인 티브. 성지에 잠들어 있는 신을 깨우기 위해 우리들은 변질되었다"

그가 이야기 하는건 하나의 광기였다.


자고로 옛날부터 종교 따위에 미쳐 정신이 나간 광신도만큼 상종하기 싫은 놈도 드물다.

일개 필멸자 주제에 자신이 하는 일은 신의 뜻과 같다고 과대망상을 하고 사람을 죽여도 전부 옳은 일이라고 자기 합리화까지 한다. 길 가다가도 예수천국 불신지옥 외치는 사람에게 교회 안다닌다고 하면 지옥간다고 저주하는게 그쪽이다.

"잠들어 계신 우리들의 신. 티브를 깨우기 위해서는 강렬한 의지가 필요했지"


"나랑 사도 한놈이랑 비슷하다고 판단했으면서. 그 정도 수준이면 다섯놈이 다 힘을 합치면 얼추 되지 않냐?"

"해봤지. 실패 했지만"


"........."


블러디어랑 싸우고 난 뒤의 나를 분석해서 수준 파악하고. 대충 그 비슷한 놈 다섯을 모아서 했는데도 안됐다고?


어차피 필멸자가 판단한거라 오차는  크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은 수준인데?


뭔가 묘한 느낌이 모락모락 등 뒤를 타고 올랐다.


내 생존이 위협 받을 때의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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