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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화 〉[라쿤맨 비기닝] (192/507)



〈 195화 〉[라쿤맨 비기닝]

지하 시설의 넓이가 넓기 때문에 출입구도 꽤나 많았다. 작은 마을만한 넓이의 부지에 출입구는 대략 5개. 아마 일반적인 시설의 직원과 비밀 실험실의 직원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영국과 한국과는 다르게 한개로는 부족할것이다.


지하에서 느껴지는 기척과 지상의 기척을 합치면 가볍게 만 단위를 넘어서는 숫자다.


깊이는.......깊이도 다른 연구소보다 깊었다. 거의 지하로 아파트 하나쯤은 파고들어간 기색이다.


아니, 한국이나 영국의 시설은 그나마 연구시설이니까 공사  했다 치더라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이상한데?


아틀라스의 비밀 연구시설은 보통 규모는 있어도 그렇다고 유별날 정도로 크진 않았다. 중국이니까 큰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 규모의 건물을 아무런 소문 없이 짓는게 가능한가?


뭔가 좀 더 숨어 있는데 그게 드러나지 않은것 같다. 내 예감이 대충 그렇게 말하고 있다.

[중요한건 정보입니다. 이번에는 대놓고 쳐들어가는 것보다 스네이크 흉내를 내는게 좋겠습니다]

"여기는 스네이크"

[골판지 상자부터 찾으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게임도 아니고 경비가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한가운데에 골판지 상자가 있으면 내용물을 살펴보는게 당연하겠지.


.....아니, 이미 내용물이 뭔지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못본척 하는건가? 당사자를 만나면 그래도 발견한 척은 해야겠지만 골판지 상자 안에라도 있으면 못봤어요~, 하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


의외로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인데.


[게임 설정을 따지고 드는것 만큼 쓸데없는 일도 없습니다]


"아무튼 잠입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따로 지상의 연구소 지도는 없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지금 바로 자료 띄워드리겠습니다]


거의 곧바로 라쿤 마스크의 눈 부분에 자료가 떠올랐다. 전체적인 연구소 단지의 지도가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알려진 마지막 연구소인만큼 필요한 정보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지상의 연구소에도 정보를 얻기 위해서 메인 컴퓨터실을 찾기로 했다.


아무리 지하의 비밀 연구소보다는 덜한다 하더라도 분명 지상의 연구소에도 어느정도의 정보는 있을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연구소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으니 중국에서 뽕을 뽑아야 한다.


나는 시온이 보내준 지상의 연구소 지도를 따라서  건물동으로 들어갔다. 2,3층 정도의 높이의 건물이지만  건물을 통째로 전산실로 사용하여 안에서는 커다란 컴퓨터 하드웨어들이 웅웅거리며 기동하고 있었다.

출입구는 운이 좋게도 열려 있었다. 먼저 들어온 직원이 업무를 보는건지 노트북을 들고와 랜선을 꽂아두고 뭔가를 열심히 프로그래밍 하고 있었다.


"출입증 훔칠 필요가 없어서 좋구만"

나는 후딱 들어가서 눈에 띄는 USB 단자에 해킹툴을 꽂아넣었다. 일렬로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하드웨어들, 그 바로 한칸 너머에서는 직원인 사람이 일하고 있기에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


[해킹 완료했습니다. 빠져나오시면 됩니다]

시온의 말에 나는 빠르게 해킹툴을 회수하고 전산실에서 빠져나왔다. 운명의 절대자가 가호라도 내려주는건지 빠져나올 때도 조우하는 사람 한명 없었다.

슬쩍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시온이 파악한 정보를 듣기로 했다.


[음......생각보다 정직하게 포스 유저 연구를 진행중인 듯 합니다. 나름 쌓아온 연구 데이터가 상당합니다]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인데?"

[꽤나 진보된 수준입니다. 예산이 많은건지 아니면 인체실험을 해서 발전 속도가 높은건지는 몰라도 상당한 단계까지 들어선 모양입니다]

"연구 분야가 어떤건데?"


[가이아 포스의 무기화입니다]


"........"

꽤나 실용성 있는 부분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가이아 포스는 휘발성이 강하다. 이능력이 이 지구에 등장한게 겨우 20년 정도이기는 하지만 연구에 진척이 더딘 이유가 가이아 포스의 휘발성이 강해서다.


포스 유저의 외부로 방출된 가이아 포스는 빠르게 소멸한다. 내가 의지를 불어넣어서 한벌 실험해 보았지만 그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보관조차 어려운 에너지를 무기로 개발하는게 쉬울리 없다.


하지만 개발만 한다면 현재 사회의 판도가 달라질게 뻔한 일이다. 포스 유저가 아니라 군대로 적성종에 대처할 수 있다면 최소한 지금 등장하는 적성종은 격퇴할 수 있다.

인간형 적성종도 나름 초월자 반열에 들어가기는 해도 가이아 포스를 사용하는 무기로 다구리를 까면 이길 가능성이 있다.

"다른 정보는 없어? 지하 시설에 대한 정보라던가......"

[지하 시설 지도 같은건 없지만 직원 개인 채팅으로 나름 좋은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좋은 정보?"


[몰래 지하 시설로 들어가는법 말입니다]


"오?"

한국이나 영국의 비밀 실험실을 박살내는건 장르가 그냥 액션이였다면 이번에는 잠입 액션이다.  때려 부수는 것보다 정보를 얻는 쪽이 중요하다는 소리다.

지하 시설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위치는 이미 파악해두었다. 하지만 거기로 내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박살내고 통로로 들어가는 수 밖에 없는데 들킬 가능성이 높다.


출입증을 빼앗아서 내려가면 되지 않냐고? 엘리베이터에 CCTV도 있을텐데 잘도 들어갈 수 있겠다.


[연구소에는 따로 자료 소각을 위해 마련해둔 소각장이 있습니다. 폐기한 연구 자료는 전부 소각장으로 보내져 외부로 유출될 일 하나 없이 거기서 폐기됩니다. 꽤나 규모가 큰 소각장입니다만......]

"지하 시설의 폐기물도 거기서 처리하나보지?"

주로 사람 시체같은거.

한국이나 영국의 비밀 실험실은 근처에 강이 있었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에는 침수되어 전부 폐기되게 만들기도 하겠지만 연구에서 발생되는 폐기물들을 처리하기 쉬웠을 것이다. 대충 갈아서 뿌리면 물고기 밥이 되니까.


하지만 이 근처에는 강이 없으니 처리할 수도 없을테니까 묻거나 태워야 하는데 묻기에는 외부로 폐기물을 반출해야 하니 그런 위험성보다 시설 내부에 따로 소각장을 만드는 편이 낫다.

[다른 곳에는 CCTV로 감시하고 있지만 소각장은 장소가 장소인만큼 거기에는 따로 CCTV가 있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지하까지 연결되어 있으니 거기로 들어가면 됩니다]

"보통은 그런데로 들어갈 생각을 못하니까 보안도 낮을 수밖에 없지"

포스 유저도 사람이다. 숨을 쉬어야   있으며 소각장의 열기 앞에서는 약간을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시간문제가 될 뿐이다. 그런 곳을 통해서 지하 시설로 들어간다면 마스터 유저가 아닌 이상 위험하다.


전 세계에  없는 마스터 유저를 상정하고 보안 설비를 만들어두는게 나을까. 그냥 둬서 예산 아끼는게 나을까? 내가 보기에는 후자같은데.


[소각장은 시설 북쪽 끝 부분에 있습니다. 지금 본다면 희미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곳이 보일겁니다]


"아, 찾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시온이 알려준대로 나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으로 향했다. 연구소에 딸려있는거라 본격적인 쓰레기 소각장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큰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매캐한 냄새도 함께 느껴진다.


종이, 음식물 쓰레기, 그 외 기타등등의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합성물들이 타는 독성이 깃든 고약한 냄새. 그리고......그 안에서 희미하게 시체 타는 냄새가 났다.

물론 보통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냄새다. 나도 시체 타는 냄새는 익숙하고 후각도 뛰어나기에 그중에서 구별하는거지만 포스 유저라도 시체 타는 냄새를 느껴본 사람은 소수고 마냥 포스 유저라고 느낄 수 있는것도 아니다.

폐기물 처리 한번  하는구만. 이 새끼들.

소각장 앞에는 여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몇몇이 모여 쓰레기를 소각로 입구에 투하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을 들여서 기다리고 그들이 작업을 끝낼 때 까지 기다렸다.


 30분 정도 걸렸을까. 쓰레기들을 전부 소각로에 넣어 처리한 그들은 다른 업무를 보러 가려는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인근에 다른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소각로의 입구를 열었다.


"냄새 참 독하네. 역장 범위 좀 늘려야 하나......"

부피가 있는 물건도 넣을 수 있게 설계되었는지 입구가 상당히 크다. 덕분에 사람 하나 들어가도 딱히 지장이 없을것 같다.


나는 그대로 소각장 안으로 내려갔다. 비스듬한 경사로에 미끄러져 안으로 내려가고 중간중간에 걸린듯한 쓰레기들을 지나쳐 아래에서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소각로의 불꽃이 눈에 띈다.

화르르륵!!


화끈하게 올라오는 불길. 정말 아날로그식 소각로다. 하기사 이러는편이 훨씬 낫지. 만약 진짜 다른 목적이 없는 소각로라고 하면 따로 화력 발전이니 뭐니 하면서 내부 구조는 복잡해졌을 것이다.

그거 생각하고 설계하느니 차라리 이런게 제일 낫지. 게다가 그렇게 설계하면 비밀 지하 시설에서도 못쓸테니까 이게 좋다.

[건축 설계하니까 제가 예전에 환생하기 전에 했던 일들이 생각나는데......]


"누가 그쪽 이과 아니랄까봐 말이 길어지는것 봐. 하기사,  전공이 이쪽이였지"


[저희 집도 제가 설계한겁니다. 건축은 따로 외주 맡겼지만 그래도 조금의 시공 오차도 없이 만들었습니다. 단열재 안에 쓰레기 들어있고 그럴 걱정 없습니다]


"그거 하나는 인정"


소각로 바닥에는 잿더미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안에서 익숙한 형태의 뼛조각들도 눈에 띈다. 사람이 불타고 사라져 남은 마지막 흔적이 이런 곳에서 나뒹굴고 있다.


지상의 쓰레기가 떨어지는 통로의 반대쪽 벽의 아랫 부분에 비슷한 크기의 다른 통로가 보인다.


"찾은것 같은데?"


[거기 불타는 소리 때문에  안들립니다]


"아, 일단 빠져나간 뒤에 다시 연락할께"

나는 그 통로를 통해서 다시금 기어 올라갔다.

아마 이쪽이 맞을거다. 소각로의 지대도 상당히 낮은 축에 속했는데 거기서  형태로 소각장을 지었으니 대충 지하로 2,3층 정도는 내려갈 것이다. 그러면 이쪽 지하에 연결된게 틀림없다.


통로를 기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질척하고 썩은내가 진동한다. 역장으로 몸을 둘러싸서 오물이 묻거나 냄새가 배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그 오물의 냄새가 단순히 음식물 썩은거면 이해를 하겠지만 이건 시체 썩은내다. 소각로에서 멀어서 미처 열기가 닿지 못해 썩어가는 살점들은 물컹이면서 기분나쁜 감촉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 새끼들 참......"

통로의 끝이 보인다. 볼꽃의 빛이 아니라 인공적인 빛이다. 기척이 없는걸 확인하고 나는 소각로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아니 저쪽에서는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거대한 분쇄기. 그 분쇄기의 피투성이가 된 방출구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대로 시체를 넣기에는 중간에 막힐 수도 있으니 한번 갈아버리는 것이다.


"당분간 햄버거는 못먹겠네"

나는 속으로 분노를 삭히며 지하 비밀 연구소로 들어섰다.


기감을 넓혀 시설을 살피자 더럽게 넓은 시설의 규모가 기감에 들어온다. 내가 지상에서 파악한 넓이만 하더라도 한국과 영국에서 봤던 시설의 몇배고 깊이만 하더라도 십수층은 되어보인다.

하지만 그쪽과는 다르게 구조는 복잡하지 않았다. 막 내려가는데 층 맨 끝으로 가서 계단 타고 내려가 겨우 한층 내려가거나 그러진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각 층에 서는 비교적 괜찮은 구조의 건물이였다.

여기는 따로 폐기처분할 생각이 없는건가? 인근에 강도 없는데 침수시킬수도 없을텐데?

[도착했습니까?]

"응, 도착했어. 그런데 여기 넓이가 장난 아니라서 CCTV 피하면서 돌아다니려면 장난 아닐것 같은데"

[그럴 때는 변장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인상이 더러워서 나중에 어떻게될지 몰라"

[그러면 보안실을 먼저 장악하십시오. 그러면 나중에 영상은 전부 지울 수 있습니다]

"흠"


시온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사람들을 피해서, CCTV를 피해서 돌아다니기에는 이 시설이 너무나 넓다. 차라리 다 때려부수는건 또 모를까.


내 정체가 들킬 가능성은 있지만......그래도 그냥 돌아다니는 것보단 낫다. 어차피 여기서 일하는 놈들 죄다 살아서 못나간다.

잔인한거 아니냐고? 그걸 따질거면 애초에 한국에서부터 그 소리를 했어야 했다. 내가 아까 소각로를 통해 들어올 때 사람 시체 가는 분쇄기랑 그 흔적이 있는데도?


윤리를 가져다 밥말아먹은 놈들은 인간 취급해줄 필요 없다. 이건 사회를 담당하는 내가 아닌 윤리를 담당하는 팬텀도 동의하는 말이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인간이다. 인간이 동물과 같다면 인간이란 단어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

같은 영장류라고 인간이랑 원숭이랑 같은가? 전혀 아니지. 거기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법이다.


[저도 사람 죽이는건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사람 새끼라도 부르지 못할 정도의 사람은 죽어도 쌉니다]


"네가 그런 소리 하면  다했지"

나는 우선 편히 돌아다니기 위해서 CCTV의 사각을 이용해 피해다닌 다음에 휴게실을 찾았다. 이런 넓은 시설에 연구원이 쓰는 시설 하나 없진 않을테니 거기서 옷을 고른다.


생각외로 가까운 곳에 있어서 찾는건 어렵지 않았다. 잠금장치도 되어있지 않았기에 슬쩍 들어가 락커를 뒤졌다.

락커는 나름 전자식 도어락이 걸려 있지만 복잡한 구조는 아니다. 그냥 어디 찜질방 락커 수준이다. 이런 구조라면 시온이 아니라 나라도   있다.

슬쩍 락커 몇개를 열어 옷을 뒤졌다. 연구원이 쓰는걸로 보이는  가운을 꺼내 걸치고 마스크도 하나 꺼내 입과 코를 가렸다. 기침이라도 하면서 돌아다니면 감기 걸린줄 알겠지.


여기 출입증을 겸하는 것 같은 사원증은......없었다. 솔직히 그건 보안상 중요하게 사용해야 하니까 이런데 두고다닐리 없겠지. 하지만 사원증을 달고다니는 케이스 달린 목걸이의 여분은 발견했다.


"뒤집어서 다니면 있는척 코스프레는 되겠지"

[여기까지 그냥 들어올 수 있을리는 없으니 아마 어지간해서는 속아 넘어갈겁니다]

"대신 일반인은 몰라도 포스 유저는 만나면 안돼. 걔네들은 은근 감이 좋거든"

게다가 코와 입을 가려도  눈매가 더럽다. 잠깐 지나가는건 몰라도 본격적으로 말을 걸리면 들킬 가능성이 높다.

오, 말로만 그러는게 아니라 진짜 이거 잠입 액션 같아서 두근거리기 시작했어.

[돌아다니는대로 거기 미니맵 갱신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미니맵까지?!


그렇다면 이제는 항아리를 깨부수고 다니는 수밖에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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