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화 〉[라쿤맨 비기닝]
어제 시온과 함께 시장을 돌면서 잔뜩 즐기다가 만난 공안 때문에 기분을 잡쳤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게 데이트 하고 다시금 호텔로 돌아왔다.
신경쓸게 있어서 결국 오늘은 섹스도 못했다. 크으으으으, 공안 이 새끼들 사람 빡치게 만드네.
"날도 다시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미세먼지가 심해졌습니다"
"오늘은 또 나가기에는 좀 그렇겠네"
그러니 딱 좋은 타이밍이다. 데이트 하기 어려운 날이니까 도리어 본래의 일을 하러 나갈 수 있다.
"아틀라스 조지러 나갈테니까 기왕이면 나가지 말고. 방에 있어. 밥도 룸 서비스로 주문하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합니까?"
"느낌이 안좋아서 솔직히 나가고싶지 않은데. 그런식으로 굴면 계속 있어야 하니까 일정이 기약없이 길어지잖아. 그러니까 차라리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는 편이 낫지"
"나름 일리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공안이 뭐 때문에 우리를 살펴본건지는 몰라도 그리 좋지 않은 일이란건 알 수 있었다. 시온이 인맥과 돈이 있어도 여기는 그것보다 권력이 앞서는 나라인 중국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비상식이 넘쳐나 대륙의 기상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하는 나라인데 뭔들 불가능할까. 일단 제일 중요한건 시온의 안전이니까 일 마치고 빨리 돌아가는게 낫다.
"그런데 뭔가 실험실의 장소를 특정지을만한 단서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런데 일단 삼합회 쪽에 자금 추적 좀 해줄래?"
기본적으로 아틀라스는 꽤나 불법적인 곳, 혹은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곳에서 자금을 지원 받았다.
예를 들어 한국은 사이비 교단에, 영국은 카지노를 운영하는 갱 조직에, 러시아에서는 얼떨결에 조졌지만 레드 마피아들에게서 지원을 받았다.
중국도 대충 그리란 감이 든다. 이런 나라에서 제일 잘 먹히는건 권력이고, 그 다음이 돈이다. 한국이라면 그 반대로 돈이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권력일지도 모르겠지만 여기는 공산주의 국가니까.
"음.....꽤나 복잡해서 많습니다. 자금의 액수는 그렇다쳐도 이리저리 얽혀서 주고받은 액수가 꽤나 됩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역시나 대륙의 기상. 물량빨로 우리 시온도 밀어붙일 정도라니"
"그래봐야 겨우 몇초 정도입니다. 아, 대충 파악 끝났습니다"
어지간한 슈퍼 컴퓨터는 명함도 못내미는 우리 마누라의 연산 처리 속도가 한번에 해결 못할 정도라니. 얼마나 뒷돈이 오가는거야.
"우선 삼합회 쪽도 그냥 조직 이름이 삼합회인게 아니라 중국에서 활동하는 범죄조직을 총칭하는 말인거 아십니까?"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거야?"
".......아, 하긴. 당신 1회차 때는 만난 적이 없어서 이야기만 들은터라 깜빡했습니다"
내가 본격적으로 환생하기 전, 나라는 존재를 이룬 1회차 삶에서 나는 돈으로 사람을 죽이는 청부업을 했었다.
아무것도 없는데다 지식도 없고 배운거라고는 몸 좀 쓰는거 밖에 없던 내가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거라고는 그것 밖에 없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이 있었을수도 있다. 서로 헤어질지는 몰라도 시설에 의탁한다던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해본다던가......하지만 지금와서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시절에 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거의 날라다니다시피 했다. 거의 무슨 존 윅 프리퀼 같은 느낌으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의뢰 받고 놀았으니까.
그 와중에 세계의 범죄조직과 얽히는 일도 많았다. 뭐, 마피아 쪽은 그 시절 마누라 덕분에 그나마 친하게 지냈고 맥시코 마약왕은 대가리에 바람 구멍을 내줬고......레드 마피아 쪽은 그럭저럭에 삼합회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나는 시온에게 수상쩍은 삼합회 조직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래서, 거기 이름이 뭐야?"
"용주방(龍主幇)이라고 합니다. 20년 전 대공황 시기에 만들어진 조직으로 포스 유저를 규합해서 나름 규모 있는 조직이라고 합니다"
"주요 수입원은?"
"양지에서는 포스 유저를 파견해 요인 경호 업무가 주되지만 뒤쪽에서는 은밀하게 불법적인 의뢰도 받고 있습니다"
"......흐음"
중국은 포스 유저 최다 보유 국가다. 내가 알기로 한국의 포스 유저는 20만명이 조금 안되는걸로 알고 있다. 물론 그 숫자에 백리나 루리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나 국가가 아닌 기업 소속이 되어 일하는 사람도 더하니까 실제로 적성종과 싸우는 포스 유저는 더 적겠지.
하지만 중국은 그런 우리나라에 비해 5배나 되는. 그러니까 100만명 정도라고 예전에 통계에서 본적 있다.
사실 중국의 인구와 한국의 인구를 비교하면 살짝 이상하다. 한국은 전체 인구가 5000만명 정도에 20만명의 비율인데 중국은 14억인데 반해 고작 100만명이란 소리다. 만약 한국의 비율 정도라면 인구수가 28배 차이가 나니까 포스 유저도 겨우 100만명이 아니라 500만명이 가볍게 넘어서야한다.
뭐, 중국이란 나라가 포스 유저로 각성하기 어려운건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최다 포스 유저 보유국이다. 국가에 소속된 포스 유저가 대다수여도 그 일부만 하더라도 꽤 많은 숫자를 자랑할 것이다.
하지만 약간 의심쩍은 면이 있다.
"그 이상은 조사할 수 없어?"
"제가 딱 그 조직만 골라서 말한건. 그 이상 조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것만큼 확실한 증거도 또 없지"
현 지구에 시온의 해킹 실력으로 해킹 못할 컴퓨터는 없다. 만약에 있다면 그건 아틀라스에서 쓰고 있을 영자 컴퓨터겠지.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게 증거다. 음, 말만 들으면 아이러니하군.
".......지금 막 드는 의문이기는 한데. 프로메테우스가 사용하는 영자 컴퓨터는 양산하지 못하는거 아니야?"
"그럴겁니다. 공돌이를 석기시대로 보낸다고 다짜고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게 아니듯. 지금 지구의 인프라로는 만들지 못할겁니다"
그 정도 수준의 컴퓨터면 지금 지구의 그 어떤 슈퍼 컴퓨터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원래 이능력이랑 과학은 서로 불과 기름같아서 만나면 확 타오른다 할 정도로 발전도가 장난아니거든.
하지만 그런 컴퓨터로 증거인멸을 하기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실험에 들이는 공이 크니 이런쪽에 소비할 리소스가 얼마 없을거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시온도 놈을 추적하기에는 어려움을 겪었겠지.
"아마 영자 컴퓨터는 딱 한대야. 그게 중국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그것만 아작내면 시온이 놈을 찾는건 시간문제다. 상대방의 방패가 박살났는데 검을 들어봤자 이쪽은 총으로 갈기는 수준이니까.
여기까지 오니까 중국만 조져도 끝이 아닐거란 생각이 든다. 분명히 또 따로 실험실이 하나 있을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일단 지금 눈앞의 일을 해치우는게 시급하다.
"일단 그 용주방인지 용두질인지 하는 놈을 부터 조지고 올께"
"따로 거래처나 시설 명단 뽑아드리겠습니다"
"땡큐"
마지막 실험실인데다가 중국이라하면 땅도 크니까 규모도 클 가능성을 염두해두어야 한다.
러시아도 땅은 크니까 그쪽 실험실을 직접 다녀왔다면 규모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지만 루루랑 싸우다가 죄다 아작난 판에 이미 늦었다.
나는 조용히 바깥 경치로 보이는 중국의 야경을 감상했다.
빛이 밝고 반짝이는 모습에도 불구하고......아름답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 * * *
시온이 넘겨준 명단을 살펴보았다. 간간히 시온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물어보기도 하고......솔직히 시온 없었으면 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었을게 뻔하다.
만약 그랬으면 나 혼자서 용주방인지 용두질인지 뭔지 하는 놈들 이름 달린 건물이나 조직을 전부 살펴보러 다녔을 것이다.
개중에 가장 수상쩍은게 하나 있었기에 나는 콕 찝어서 그걸 선택했다.
거의 운에 맡기는 수준이지만 확신은 있다. 애초에 내 능력인 '감각'은 오감을 비롯한 육감까지 발달시키는 능력이다.
아니, 사실상 그 능력 자체가 칠감이나 다름없지만 아무튼 주관식 문제도 찍어서 맞추는 능력인데 고작 한정된 범위 안에서 가장 가능성 높은걸 고르는게 어려울리 없다.
"흠, 랑팡 영장(靈將) 연구소라......,"
영장이란 중국에서 포스 유저를 부르는 호칭이다. 아마 마스터 유저는 영위신장이라고 불렸을텐데. 하기사 캡틴 아메리카도 미국대장이라고 부르는 나라에서 뭘 기대하겠냐마는. 로컬라이징 오졌다!
아무튼 제일 가망이 높은 시설을 찾아보았다. 아무리 삼합회라도 요즘 시대에 대놓고 나올리는 없으니 나름의 양지로 나올 채비는 갖추었기에 투자를 명목삼아 성실한 기업인척 하는 곳도 있었다.
시온이 없었다면 여기 찾는것도 힘들었겠지만 이런거 생각하면 역시 우리 마누라가 최고다.
정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만든 시설인 랑팡 영장 연구소는 용주방의 자금을 받아 만들어진 곳이다. 누가 중국에서 만든거 아니랄까봐 연구소의 규모도 상당히 크다. 특히나 넓이만 따지면 거의 무슨 작은 마을 보는것마냥 큼직한 넓이를 자랑한다.
역시 중국이야. 남는게 땅 밖에 없지.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랑팡은 북경 남부에 위치한 도시다. 유명한걸로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릴 정도의 컴퓨터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는 점일까.
그런거 생각하면 솔직히 사람이나 물자 이동에 용이해서 수상쩍기도 하다. 실험 자재도 컴퓨터라고 속이고 옮겨오면 그만이고, 사람도 연구중이라고 속이면 그만이니까.
"중국은 중국이라 그런지 규모가 크네......움직이는 것도 힘든걸"
내가 전에 러시아에서 루루에게 기습 할 때 썼던 차원진 같은건 쓰기 귀찮다.
그거 한번 쓰는데 힘이 얼마나 들어간다고 생각하는거야. 개미 한마리 죽이려고 오함마로 전력 스윙을 날리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들어가는 힘이 너무 과다해서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는편이 더 낫다.
이걸 마구 쓰는 초월자는 존나 바쁘거나, 아니면 존나 빡쳤거나 둘 중 하나다. 막 버스 한두정거장 거리 두고 택시 타는 사람은 그런 사람 아니고서야 없을테니까.
아무리 베이징 바로 옆 도시라도 가까히 있는게 아니라 거의 도시 끝에 있어서 제일 벌다. 그래서 시간이 좀 걸릴것 같다.
잘해야 하루, 못해도 이틀은 소요해야 할것 같아서 시온에게는 객실에 짱박혀 있으라고 하고 밖으로 나와 랑팡시로 향했다.
야밤에 질주하는 도시의 야경은 꽤나 예쁘지만 그래도 어두워서 도심을 질주하는 내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잘해야 야생동물로 생각하겠지.
설령 누군가 내 모습을 보더라도 큰 지장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볼 수 있는 시점에서 평범한 인간은 아닐테니까.
[거리가 먼데 괜찮습니까?]
"멀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아. 차원 찢고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지. 하루 종일 뛰어도 차원 찢는것보단 덜 귀찮으니까"
[몸조심 하십시오. 마지막 실험실이니 뭐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래봐야 애새끼나 마찬가지지"
프로메테우스가 아무리 연구를 하고 개발하더라도 시간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내가 알기로 수천년에 해당하는 세월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딱 하나 밖에 없다.
그놈이 그걸 쓸리도 만무하니 결국에는 내 아래일테고. 그러면 딱히 걱정할건 없었다.
나는 야밤의 도시를 질주했다. 베이징의 중심에서 멀어날수록 조금씩 낙후되는 느낌이 보이고 종종 구룡성채 같은 건물도 보인다. 이야, 아직도 저런게 남아있구나. 신기하다.
중국은 최다 포스 유저 보유국인만큼 치안이 좋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많은 포스 유저들이 다른 곳에 파견되었기 때문에 생각외로 자국 치안 유지에도 애를 먹는다.
솔직히 티벳이나 대만 같은게 파견한 포스 유저들만 복귀시켜도 충분히 가능할텐데도 불구하고 그러는거 보면 어지간히 사람이 빡대가리인 모양이다.
구룡성채도 그런 발로다. 나라가 지켜주지 않으니 스스로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저런 구조라면 적성종이 아니라 인간이라도 애먹을테니까.
이윽고 랑팡 시에 도달했다. 약간은 발전한듯한 고층 건물들이 나를 반긴다. 아, 물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건 전혀 아니고.
같은 서울이라도 인천에 가까운 것과 강원도에 가까운건 전혀 다르다. 극과 극인만큼 거리의 차이는 심하고 중국이 땅덩이가 넓은만큼 그 넓이도 상당하다.
"아, 씨. 돌아갈 때는 너무 먼데 그냥 차원 찢고 돌아갈까"
[알리바이 생각하면 그것도 나름 좋은 방법일겁니다]
"그런거 신경 썼다면 애초에 라쿤맨 어쩌구 했을 때부터 잘 숨겼지. 안그래?"
[그래서 앞으로 들키는건 시간문제 아닙니까? 제가 아무리 조작해도 이미 용의선상에 올라있을 정도니 말 다했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는 라쿤맨 대책팀이 만들어져 있다. 시온이 어떤 사람을 매수해서 유예가 좀 더 길어졌을 뿐이지 결국 들키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을게 뻔하다.
나는 빡대가리라서 분신술 같은거 못쓰니까 한곳에 동시에 있는건 불가능하다. 그 때 뭘 했는지 알리바이를 증명하라고 한다면 솔직히 못한다.
만약 시온이 없었으면 진작에 다 때려부수고 돌아다녔을거야. 막 일본 박살내고 중국 쪼개고 미국을 날려버리고......대충 그런거.
"돌아갈 때 뭐 필요한거 없어? 있으면 사갈께"
[음......어제 먹었던 빙탕호로가 맛있었습니다. 열개만 사와주십시오]
"이빨 썩는다 너"
[10분동안 이빨 닦으면 됩니다]
시온이랑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는 동안의 지루함을 이겨내고 이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용주방이 지원하는 랑팡 영장 연구소의 간판이 눈앞에 걸려 있다.
서류로만 봤는데 규모가 장난아니다. 안에는 연구원들을 위한 기숙사도 마련되어 있으며 지상에서 거주하는 인물들만 하더라도 거의 수천명은 되어보인다.
역시 대륙의 기상은 기상이구나. 인재가 많아.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더 적긴 하겠지만 그래도 많다.
"어디보자......"
나는 기감을 펼쳐서 지하를 살펴보았다. 모든 보안과 경계를 뚫고 감지하는 이 힘은 정보를 얻는데 특화되어 있다.
한국이나 영국과는 달리 지하의 시설의 크기가 상당하다. 거의 내가 봤던 것에 3배쯤. 러시아도 이 정도 크기였다면 애 먹었을 것 같다.
러시아는 그냥 날려버려서 다행이다. 괜한 고생 안하게.
[어떻게 하실겁니까?]
"이 정도 넓이면 대놓고 들어가도 중앙통제실로 가는데 오래걸릴것 같은데. 그 시간이면 데이터 삭제도 할것 같고"
더군다나 기척이 심상치 않다. 지하에는 자그마치 수백명에 달하는 포스 유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 숫자 전부가 공식적으로 등록된 포스 유저는 아닐테니 상당수는 비등록 포스 유저일 것이다.
"일단 조용히 들어가볼께. 컴퓨터에 해킹 툴만 꽂아넣으면 정보 얻는건 쉬우니까 그때까지만 들어가면 되겠지"
지하에 있는 포스 유저 중에서 나름 눈에 띄는 기척이 있다.
나는 조금 강한 정도로 눈에 띈다고 하지 않는다. 나한테 있어서 포스 유저는 마스터 유저가 아니고서야 그냥 애송이 수준이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척은.......
"준 마스터급인가?"
그런 기척이 수십개 정도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