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라쿤맨 비기닝]
시장 쪽에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지 짧은 한국어나 영어를 할줄 아는 사람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다. 일단 입구에서 반겨주는건 고소하고 매콤하고, 각양각색의 노점상 먹거리들의 향연이다.
"야야야, 저거봐. 전갈이랑 거미 꼬치구이 있다"
"으으으으으......저런거 왜 먹습니까?"
"나름 맛이 있으니까 먹겠지. 그리고 둘 다 생각외로 고소하다고"
나는 천성적으로 몸에 맞는게 아닌 이상 어지간한건 잘 먹는다. 시온은 편식쟁이지만 그래도 주면 먹는다. 고기랑 야채가 눈 앞에 있으면 고기만 먹지만 고기랑 야채를 볶아서 같이 주면 다 먹는다.
하지만 이런건 사람마다 취향이 갈릴 수 밖에 없다. 맛보더라도 어지간히 맛있는게 아니라면 두번 먹지는 않지.
"저런건 냅두고 다른것 부터 먹읍시다. 멀쩡히 맛있는 다른 것도 많은데 왜 하필 저런걸 먹어야 합니까"
"알았어. 저거 안 먹을께"
어차피 저런게 아니라도 먹을건 많다. 과연 미식의 나라인지 줄을 이은 노점상도 한두개 수준이 아니다.
어딘가 익숙한 요리도 있고, 낯선 요리도 있었다. 우선 전갈 꼬치를 팔던 꼬치 코너에서 제대로 된 것을 하나 사서 서로 하나씩 입에 물었다. 나는 오징어, 시온은 새우 구이다.
"맛있어?"
"그럭저럭입니다. 그냥 구운데다 약간 간장 소스 발라서 나름 먹을만합니다"
"너 나 없을 때는 나와서 막 이상한거 먹지마. 중국에 장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먹을걸로 장난치는 새끼는 사형이라는건데. 그래도 위생 안좋은 곳은 안좋으니까"
괜히 대륙의 기상이니 연금술사의 나라니 그러는게 아니다. 지금 내가 보는 노점상 중에서도 위생이 더럽거나 먹을게 아닌걸로 만든 요리들도 종종 있어보인다.
물론 그런걸 일부러 먹는 취미는 없다. 그렇다고 공안에 말하기에는 귀찮으니까 무시하고 넘어갈 뿐이다.
먹을걸로 장난치는 새끼는 싹다 뒤져야 하는데 말이야.....내가 문명 초기화 사안으로 약간의 사심을 넣자면 그런 부분이 있다.
"중국 시장인데 타코야끼도 있네"
"누구나 지갑에 3천원은 들고 다녀야합니다. 언제 어디서 타코야끼 노점상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나쁘진 않은데 여기 와서 저런거 먹는건 좀 아닌것 같고. 다른것 부터 먹어보자고. 야, 저기 게 삶아둔거 있다"
모양을 보면 꽃게 정도는 아닌것 같은데 손바닥만한 게를 삶아둔걸 파는 곳이 있었다. 붉게 익은 껍데기가 보이는데 다소곳하게 집게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 마치 한 덩어리 같아서 뭔가 심적인 편안함이 든다.
그 왜 생각치도 못한게 딱 맞아 들어갈 때의 그 기분 있잖아. 벽장에 물건 정리하다가 마지막 박스 하나로 딱 들어갈 때의 그 기분 같은거.
"이거 하나 주세요"
어떻게 먹는거냐고 물어보니까 껍질까지 전부 먹는 게라고 한다. 따로 양념을 발라서 구운데다가 한번 기름에 튀긴거라서 껍질이 바삭바삭하다고.
하나만 사서 시온이랑 반 갈라 먹으니까 진짜로 게 주제에 껍질까지 바삭바삭하게 먹을 수 있었다. 발라먹을 필요성이 없어서 좋은데.
"이거 맛있습니다"
"갑각류 좋아하면서 정작 발라먹는건 안좋아하는 네가 껍데기까지 먹을 수 있으면 좋아할만도 하겠지"
"솔직히 발라먹는건 귀찮습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내가 다 발라주잖아"
무슨 어미새가 새끼한테 먹이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낄낄거리면서 다시금 노점상을 돌았다. 양꼬치도 있었는데 한국에서 파는 것과는 약간 다른듯 하여 하나 사서 먹었다. 나름 누린내는 잘 잡았는지 꽤 괜찮은 맛이였다.
그러다가 한 노점상을 지나가다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강렬한 냄새를 맡았다.
"두리안! 두리안 있어요! 두리안 드세요!"
".......두리안?"
"콜"
강렬한 냄새를 풍기는 두리안 노점상에서는 큼직한 마체테 같은 칼을 든 아주머니가 호쾌하게 두리안을 찍어 껍질을 벗겨내며 속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한봉지 사서 시온이랑 나눠먹는다. 냄새가 좀 많이 나기는 해도 나름 맛은 있다. 진짜로 맛있는 수준의 두리안은 이런 노점상에서 기대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해 보이기 때문에 샀다.
잘라놓은 덩어리를 한입 베어물자 크리미한 식감이 돋보인다. 올라오는 향을 무시하고 먹으면 희미한 커피 맛이 느껴진다.
"이 정도로 기름진 식감인 과일을 찾아보라고 하면 아보카도 정도인데. 아보카도는 단맛보다는 고소한 맛이지"
"나름 괜찮습니다"
"이런건 잘 먹는데 왜 취두부는 못먹는걸까"
"홍어 잘 먹는 사람이 청국장 잘 먹을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국에는 취향 문제입니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그리고 두리안은 이 크림 같은 느낌이 좋습니다"
"하긴, 넌 기름진거 좋아하니까"
꽤나 많은 노점상을 지나쳤다고 생각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눈앞에 늘어선 노점상은 수두룩하게 많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시간은 많다. 밤까지 노닥거릴 생각으로 왔으니 천천히 움직이자.
"야, 저기봐. 떡볶이도 파네"
"왠 중국에 떡볶이입니까?"
"먹는 사람이 나름 있나보지"
아무리 많이 먹을 수 있어도 우리 위장에는 한계가 있다. 초밥 알레르기 있는것 처럼 초밥을 한 80....아니 우리는 800개쯤 먹으면 토할지도 모른다.
기왕 중국까지 왔는데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건 냅두고 다른걸 먹자. 그래서 아까 타코야끼도 안먹었는데 뭐.
"저건 어때?"
"뭡니까? 내장으로 만든겁니까?"
"천엽 삶아다가 소스에다 비벼먹는것 같은데? 곱창 국수라나봐"
"한그릇 사먹어봅시다"
한 노점상에서 팔고 있는 것은 천엽을 삶아 얇고 길게 썰어서 그 위에 양념을 올려 비벼먹는 요리였다. 내장 요리들은 부위의 특성상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에 처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못먹지만 나름 인기가 있는지 사람들이 사가는게 보였다.
우리도 한그릇 사서 먹기로 했다. 약간의 국물과 함께 위에 얹어진 양념 덩어리는 붉은 모습이 마치 고추장 같았다......맵기 정도는 다르겠지만.
"무슨 사천 요리입니까?"
"매운맛하면 내가 설명할게 많아지는데 매운맛에는 뜨거운 것과 매운것, 그리고 얼얼한게 있어서......."
"그래서 이건 무슨 맛입니까?"
"맵고 얼얼한 쪽"
요즘 보면 단순히 캡사이신 많이 넣고 매운 요리라고 하는것들은 요리에 장난친거나 다름없으니 만든놈을 싹다 갈아다가 햄버거 패티로 만들어버려야 한다.
그런식으로 따지만 최루탄도 요리다. 물론 대한민국 장병 중에 상당수는 이미 그 맛을 보긴 했겠지만 최루탄을 맛있다고 먹는 등신 새끼가 어디있겠는가?
정말로 매운 맛은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매운 맛이다. 땀을 빼고 몸을 후끈하게 만들고, 그런 식의 매운맛이 중독성이 있다는거지 캡사이신만 찬양하면 그건 중독성이 아니라 그냥 중독된거다.
"음, 좀 얼얼한 느낌이 있습니다. 약간 매운거 아닙니까?"
"그게 훨씬 좋네. 매운 맛이 남아있는 누린내를 잡아주니까 좋은데?"
"저도 맛있는거 많이 먹긴 했지만 미식 쪽으로 당신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거야 결국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 나름인거지"
시온은 약간 맵다고 했지만 실제로 상당한 매운 맛이다. 금방이라도 물과 우유를 찾게 만들지만 그래도 계속 입에 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금방 곱창 국수 한그릇 끝내고 얼얼한 입 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단걸 좀 먹어볼까 하던 찰나, 한 노점상에서 빙탕후루를 팔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아는겁니까?"
"빙탕후루인데. 무림 시절에도 맛있게 먹었던 역사 깊은거야. 그 왜 애니 많이 보면 일본 축제 같은데서 먹는 사과 사탕 있잖아. 그거 비슷한거지"
"아, 그러면 대충 알겠습니다"
빙탕후루란 산사나무 열매를 꼬치에 꽂아 물엿과 설탕으로 만든 시럽을 발라서 굳힌 요리다.
얼핏 시온에게 비유를 한 사과 사탕이랑 비슷할 수도 있다. 주 재료인 산사나무도 산에서 나는 사과 나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고 열매도 꽃사과라고 부를 정도니까.
하지만 사과 사탕 쪽은 물엿이나 설탕 외에도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지만 빙탕후루는 설탕과 물엿만 들어간다. 그래서 나름 맛이 깔끔하다.
"4개 주세요"
"예, 4위안입니다"
귤이라던가 키위 같이 다른 과일을 재료로 한 빙탕후루도 있었지만 역시 제일은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것이다. 나와 시온은 서로 양손에 하나씩 들고 반질반질거리는 산사나무 열매를 하나씩 빼서 먹었다.
한번 씹자 바삭하게 부서지는 시럽의 식감과 안에 있던 산사나무 열매의 시고 단 맛이 퍼진다. 사과랑 닮았지만 조금은 다른 맛인데 신맛이 강해서 시럽의 단맛과 어울린다.
"음, 이거 맛있습니다"
"시고 달고. 딱 네가 좋아할만한 맛이지?"
"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단것만 좋아하는줄 아십니까?"
"그런것 치고는 스테이크는 소금 뿌리는 것보다 시판 스테이크 소스 찍어먹는걸 더 좋아하는것 같은데"
"그냥 먹으면 심심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소스를 치덕치덕 바르면 그게 소스맛이지 고기 맛이야?"
"그러면 회에 초장 찍어먹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야 하는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내가 단언하겠는데. 회에 초장 찍어먹는건 솔직히 초장맛으로 먹는거지"
초장은 맛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회에 초장을 찍어먹으면 회 본연의 맛이 사라지고 오로지 쫄깃한 맛이 사라지게된다. 그래도 회의 맛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글쎄.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게 아니다. 요리에는 각자 취향이 있는 법이며 좋아하는건 서로 다르다. 나도 민트초코는 극혐하지만 그렇다고 민트초코 먹는 사람을 혐오하진 않는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란 말도 있잖냐.
흠, 이런 경우에는 죄는 민트초코인가.
"잠깐, 거기 두사람"
".........?"
한창 잘 먹고 잘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들에게 말을 걸었다.
마치 한국 경찰과 같은 제복 복장. 아까 천안문 광장에서도 본적 있는 중국 공안이다.
젊지는 않고 조금은 나이가 있는, 한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약간 미심쩍은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외국인인가? 둘이 무슨 사이지?"
".......일단, 저희 둘 다 한국에서 왔고, 서로 부부사이입니다"
약간은 고압적인 자세와 오만한 태도. 아무리 중국 공안의 힘이 강하다고 하지만 외국인에게까지 이러는거 보면 조금 이상한 느낌이다.
시온의 디폴트 폼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많지만 사정을 알고나면 어린애한테 욕정을 느끼는 변태새끼를 보는 눈으로 나를 보기는 해도 저런 시선은 생각외로 드물다.
내가 이런 느낌을 어디서 느껴봤더라.....
"부부라고?"
"아내는 보기에는 어려보여도 멀쩡한 성인입니다. 신혼 여행 온거고 여기 여권도 있어요"
"흠......아내 쪽이 포스 유저인가?"
"그렇죠 뭐"
그는 우리가 내민 여권을 보고 신분을 확인했다. 시온은 일단 포스 유저로 등록되어 있어서 그것 또한 여권에 나와 있었다.
포스 유저가 해외로 나가는건 드물다고 할만큼 적지만 없는건 아니다. 그는 조금 생각하는듯 하다가 우리가 머무는 곳을 물어보았다.
"어디서 머무르고 있지?"
".......진 샹그리라 호텔이요. 근데 그건 왜 물으시는거죠?"
"아니, 요즘 따로 상부에 특별 지시가 내려와서. 혐의는 없으니 가도 좋다"
그는 우리에게 다시 여권을 넘겨주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구라질도 작작 쳐야지. 상부의 특별지시는 개뿔"
"거짓말이였습니까?"
"정말로 뭔가 지시가 내려왔으면 아까 천안문 광장에 있던 공안부터 우리에게 찾아왔겠지. 너랑 있는데 다른 사람들 시선에 안띄겠어?"
시온을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다. 디폴트 폼이라도 미모는 인형같이 남다르기에 설령 어린애라도 시선이 간다.
길에서 한번 보면 뒤를 돌아보다 못해 역주행해서 다시 볼 판인데 공안 한두명이 우리를 보지 못했을까봐?
"짜증나는 냄새가 나는데......시온 넌 나 없을 때 외출하지 마"
"알겠습니다"
뭔가 끓어오르는듯한 짜증의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