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라쿤맨 비기닝]
첫날밤이라고 했는데 삽입은 안했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지.
밤새 시온을 쪽쪽 빨고 나니까 어느새 날이 밝아오더라. 신선 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하더니, 삽입도 안했는데 하룻밤이 지나갈 줄이야. 마성의 육체다.....!
근데 부작용으로 입안이 너무 달아서 큰일이다. 이빨 닦는다고 사라질것 같지 않은 단내는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온몸이 욱신욱신거립니다. 손끝 부터 발끝까지 빨리지 않은 곳이 없는것 같습니다"
"없는것 같은게 아니라 진짜 없을텐데"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진짠데"
".......?"
빨린 당사자는 모르겠지만 빤 당사자인 나는 기억하고 있다. 맨살이 있는 부분은 어디 하나 빼놓지 않고 구석구석 다 핥아보았다.
단언하겠는데 지금 시온의 몸에 내 침이 발라져 있지 않은 맨살 부분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온갖 매니악한 부분까지 다 핥아봤으니까 시온도 씻지 않으면 좀 찝찝할거다.
아, 이거 생각하니까 목마르네. 어제 나도, 시온도 둘 다 수분 소모가 장난 아니다.
"그러고보니 정작 주문한 북경 오리는 못먹었습니다"
"식었기는 한데.....그냥 대충 먹지 뭐. 다음에 또 시키면 그만이고"
"바삭해야 할 껍질이 좀 눅눅해졌습니다"
"그래도 나름 먹을만하네"
룸 서비스로 주문했던 북경 오리는 대충 받아두긴 했는데 밤새 시온을 빨아대서 식다 못해 눅눅해져 있었다. 일단 아침 삼아서 대충 먹고 날씨를 보니까 괜찮은것 같으니 나갈 생각이다.
밥 먹고 잠깐 휴식 취할 무렵에 시온은 객실 냉장고에서 주스와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작은 병도 아니고 큰 페트병이였는데 그걸 한번에 다 마시고 있다.
"물배 채워?"
"당신이 어제 빨아먹은게 많아서 수분이랑 당분 보충은 해줘야 합니다. 솔직히 이걸로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어제 맛보고 마실 수 있는건 다 해봤으니까......아, 근데 피는 안먹어봤네"
".......료나 플레이?"
"아니, 그건 좀......."
"저도 그런 쪽은 크게 땡기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목 조르는 플레이 정도입니다"
"기껏이라 말한것치고 플레이가 하드한데?!?!"
시온에게 약간 마조히즘 성향이 있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선이 내 생각보다 높았다. 기껏해야 할 때 좀 험하게 다루고 엉덩이 때리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질식 플레이라니.
세상에 뇌가 하반신에 달려있는 새끼도 많아서 기괴한 플레이도 종종 봤는데 정작 내가 해본적은 없다. 그런 하드한 플레이는 나한테 허들이 너무 높다고.
"네가 아무리 보통 사람보다는 튼튼해도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뭐, 그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합시다"
"기대하는거지?! 기대하고 있는거지?!"
머릿속의 알고리즘이 모순이 일어나는 느낌이다. 아니, 일단은 기본적인 명령이 '시온의 안전과 의견이 최우선'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거기서 '자기를 해치는 플레이를 본인이 원함'으로 의견을 표했는데 그러면 안전과 의견 사이에 설정 충돌이 일어난다.
시온이 바라면 해줘야 하는데 그게 시온을 해치는 일이니까.....으아아아악! 머리가!
저번의 강간 스타일 플레이나 자궁간 플레이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았지만 확실히 이번건 선을 넘으니까 좀 애매하다. 이건 시간 두고 좀 판단해야지 안되겠다.
"피로는 좀 풀렸어? 오늘은 바깥에서 돌아다니면서 관광 좀 해볼까?"
"오늘은? 그러면 내일은 어떻게 하실겁니까?"
"내일은 내일 볼일을 해야지"
예를 들어서 아틀라스 조지기라던가.
애초에 그게 본론이다. 권룡여제를 만나는건 제 2순위고. 위장 신혼여행이 3순위라는게 참 기분이 묘해지지만.
중국 여행 끝나고 진짜로 크루즈 선 타고 세계 여행이나 가는게 좋겠다. 여기 날씨는 쌀쌀해도 저어기 아래로 내려가면 따뜻할테니까.
"중국이라도 여기는 베이징이니까 마냥 치안이 나쁘지도 않을거고. 더군다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드는만큼 대로의 청결은 나름 괜찮겠지. 좀 살펴보다가 야시장에라도 들러볼까?"
"막 전갈 튀김 같은거 파는 그런데 말입니까?"
"야, 사실 그런거 현지인도 안먹어"
"문화 충격!"
"그게 소롱포만큼 충격적이냐"
슬슬 옷을 입고 씻은 후에 나갈 준비를 했다.
나나 시온이라 하룻밤 정도 안자도 괜찮을만큼 튼튼하기에 관광하고 들어와서 좀 쉬다가 다시금 한바탕 할거다.
어제는 너무 맛보느라 집중해서......이번에는 꼭 넣어야지.
"다리 달린건 의자 빼고 다 먹는다는데 시장에는 어떤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취두부 드쉴?"
"갸아아아아악!"
"아니, 홍어나 두리안도 잘 먹는게 왜 취두부는?!"
"처음부터 그런거랑 썩은건 다른겁니다!"
"썩은게 아니야! 발효된거다! 그리고 홍어도 발효 식품이잖아!"
"발효 식품은 된장이나 김치 같은건 납득해도 취두부는 납득할 수 없습니다!"
"너 의외로 그런 혐오식품 못먹었구나?"
아마 수르스트뢰밍 같은 것도 못먹겠지.....아마 시온이 먹을 수 있는 발효 식품의 마지노선은 홍어 정도로 보인다. 어지간한거 다 잘먹는 줄 알았는데 생각외로 못 먹는 것도 있었구나.
솔직히 그건 취향이 많이 갈리는 음식이기도 하지. 된장이나 김치도 외국 사람에게는 거부감이 드는데 그 이상 되면 오죽하겠냐.
"그런거 안먹을테니까 일단 나가자"
"......약속하는 겁니다"
시온은 마치 어린애처럼 새끼손가락을 내밀어 손가락 걸고 약속을 했다.
아니, 진짜 어린애냐.
* * * *
어제의 미세먼지들은 어느정도 사라져서 나름 괜찮게 보일 정도의 맑은 공기가 반겨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제보단 나은거지 아직도 미세먼지가 날아 다닌다는건 같다.
최소한 바깥에서 뭐 먹다가 요리 반 모레 반 먹을 일은 없을것 같다. 그래서 바깥으로 나와 본격적인 관광을 즐겨보려고 한다.
호텔에서 마련해준 차를 타고 천안문으로 향한다. 가장 비싼 방을 빌려서 그런지 서비스가 꽤나 좋다.
"베이징이면 천안문이지"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그거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지. 중국이 대국이 될 수 있었는데 말이야"
내가 괜히 중국인들은 천안문에서 다 죽었다고 말하는거 아니다. 중국인들 스스로가 자주성을 가지고 평화적으로 한 시위인데 중국 정부는 그걸 아작냈다.
그 왜 탱크 앞에 서서 막은 그 아저씨 짤도 거기서 나온거고 말이야. 근데 그 아저씬 살아 계실지 모르겠네......
만약 지구가 모두 중국같은 꼴이였다면 나도 두고 볼 것 없이 문명 리셋 안건이다. 설령 다른 대마왕이 전부 있다 하더라도 꽤나 드물게 만장일치로 문명 초기화 들어간다.
팬텀은 애들 윤리의식이 떨어진다고 반대표 날리고, 유토피아는 꼴보기 싫다고 반대표 날리고, 나는 엿같아서 반대표 날리고, 시엔느는 공산당 애들 정치 좆같이 한다고 반대표 날리고 누리는 사람들 시민의식이 결여됐다고 반대표 날린다.
꽤 오래 알고지내서 다른 대마왕들 성격 다 안다. 대충 봐도 견적 나오지.
"소집은 안됩니다"
"알아, 알어.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은거지?"
"그런것도 있지만 당신이 부르면 분명 유토피아도 올겁니다"
"걔 얼굴 보는거 더 싫은것 같은데"
"개인 문제입니다"
시온이랑 유토피아랑 둘 중에 누가 문제 있냐고 물으면 당연히 유토피아다. 혈연 관계이기는 하지만 때로는 혈연이라도 먼 사이가 있는 법이다.
사이코패스 외계인이 친척이면 나도 손절하겠다 야.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천안문에 도착했다. 운전기사에게 약간의 팁을 챙겨주고 돌려보냈다. 돌아갈 때는 택시 타면 되겠지 뭐.
"다 좋은데 저어기 초상화 하나만 없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확실히 저건 좀 그렇지"
저 초상화는 해로운 초상화다.
도대체 거의 지금 한국 인구만큼 사람을 굶어죽인 사람을 왜 위인으로 모시는지 모르겠다.
한국도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IMF가 국민들 과소비로 일어났다는 허무맹랑한 소리나 광주 민주화 운동이 폭동이라는 개소리를 믿는 놈들은 거의 없을거다. 물론 어디 정치 성향 치우친 쓰레기 인생들은 그렇게 믿겠지만.
현대 사회는 인터넷의 발전으로 충분히 정보를 접하기 쉬워졌다. 설령 중국이 검열을 한다 할지라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 알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곳에 대놓고 초상화가 걸려있으니 참으로 착잡한 기분이 든다.
반신으로 불린 전 대통령도 여대생 끼고 양주 빨다가 총맞고 뒤졌는데 독재하다가 그냥 간데다 시체도 방부처리해서 전시해놓은거 생각하면 지가 파라오도 아니고 언젠가 되돌아올 생각인건지 참 뭐같다.
"당신은 사회 문제 들어가면 참 신랄해집니다"
"직업병이라서 어쩔 수 없어"
결국 공산주의던 민주주의던 사회의 한 갈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공산주의라고 마냥 부정하며 보지 않고 민주주의라고 편애하며 보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의 사회 구조는 지극히 나쁘다고 단언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억누르며 지배한다.
지배의 대마왕인 시엔느조차 이걸 보면 손절할거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옳바른 지배구조를 긍정하는거지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착취하는 것 까지 긍정하지는 않는다.
"야, 저거 봐봐. 공안들 돌아다닌다"
"거 참 무슨 공화국 시절의 한국입니까?"
"괜히 덤터기 씌일것 같으니까 무시하자. 이쪽 보고 있다 야"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에는 권룡여제의 힘을 빌리면 된다. 다른 마스터 유저들도 그 정도 힘은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이런 국가인 만큼 그녀의 권한은 더욱 클 것이다.
뭐, 그 경우에는 내 정체가 들키는건 당연하게 되겠지만.
천안문 광장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렸다. 딱히 오가는 사람 외에도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라거나 볼일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거의 무슨 행사라도 나온것 같은 인구밀도지만 그런 기색이 없는거 보면 이게 보통인듯 보인다.
"주말도 아닌데 너무 많은거 아니야? 역시 중국이네. 물량전술의 나라.......!"
"괜히 삼국지에서 수십만씩 죽어나가는거 아닙니다"
중국하면 생각나는건 땅 크기와 인구수다. 하지만 정작 한족만 따로 빼서 보면 그렇게 큰건 아니다. 중국은 여러 민족이 섞인 다민족 국가니까.
그걸 억지로 잡아서 분열을 막고 결혼까지 강제로 시켜가면서 피를 섞고 있다는게 문제지......남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점이 자유의 대마왕 누리의 심기를 거슬려서 아작날 것 같다.
"왜 자꾸 그런쪽 이야기로 넘어갑니까? 기왕 신혼여행이라고 하고 왔는데 즐깁시다"
"미안, 이런 나라 보면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라서"
더군다나 장소가 하필이면 천안문 광장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지껄이는거 보면 참 어이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 그걸 숨길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건가? 진심으로?
언젠가 그것은 파국으로 이끈다. 따로 손 쓰지 않아도 스스로 파멸로 간다는걸 말릴 도리는 없다. 문명의 흥망성쇠는 결국 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대충 결론짓고 나는 우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자꾸 공안이 네 외모 때문인지 쳐다보는 것 같고. 딴데로 가자. 여기 근처에 좀 걸어가면 시장이 있을것 같은데......"
"어떻게 압니까? 혹시 따로 지도 찾아봤습니까?"
"아니, 냄새가 나서"
"이럴 때는 개코입니다"
시장 특유의 잡다한 요리 냄새가 멀리서부터 풍겨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냄새에 묻혀서 희미하지만 내 코를 벗어날 수는 없다.
애초에 내 능력 중 하나가 '감각'인데 육감 외의 다른 오감들도 약한게 말이 안된다. 게다가 이건 자동적으로 필터링이 되기 때문에 난데없는 자극적인 요소들은 통하지 않는다. 그 왜 섬광탄이나 최루액 같은거.
"좀 이르긴 하지만 시장이나 한번 둘러보자고. 일단 뭐 좀 먹으면서 돌아다니다가 기념품 같은거 살거 있으면 하나 사자"
"잡동사니 중에 막 진퉁 골동품 같은거 있는거 아닙니까?"
"야, 그건 발견되면 대부분 문화재라서 여기에서 뺏어갈껄"
홍위병이 다 조져놔서 어지간한건 작살낸 와중에 도자기 하나 외부로 반출하는걸 허락할리 없다.
물론 입 싹 다물고 그냥 몇 위안 주고 산 기념품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검사를 안할리도 없고 걸리면 일이 골치 아파진다.
정말로 예술 작품을 전시해두고 싶으면 그냥 호라이즌에 짱박아두고 있는 고흐 작품이나 좀 가져오지 그러냐. 어지간한거 몇개보다 그거 하나가 나을텐데.
괜히 위험부담 지고서 밀반입 하려는것 보다 그게 낫다.
"예로부터 들키면 범죄, 안들키면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뭔 정신나간 소리를 당연하게 하고 있어"
하지만 시온이 하는 말이다.
.......그리고 보니 우리집에 제대로 된 장식품 하나 두는게 좋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