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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화 〉[라쿤맨 비기닝] (184/507)



〈 187화 〉[라쿤맨 비기닝]

그는 웃음을 터트린 나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이윽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노려보면서 물었다.

"뭐가 우습지?"

"야, 그러면 솔직히 안웃기게 생겼어? 존나 전형적인 느낌이여서 어지간해서 참으려고 했는데도 못참겠더라. 크읍, 시발. 좀 참아야 하는데 참을 수가 없네.....잠깐 시간 좀"

나는 계속 웃음이 터져나오는 참으려고 했지만 이건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시발,  새끼 개그맨으로 나가면 대성하겠는데?


한참을 낄낄거리다가 이윽고 겨우 진정했다. 나는 숨을 진정시키면서 다시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그러니까.....아,  이름이 뭐였더라?"

"......이상수다"


"그래, 상수야. 내가 방금 존나 한심한 사람을 봐서 예의없게 웃어버렸어. 원래 장애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웃음거리로 봐서는 안되는데 말이야"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 근데 그래서 뭐 어쩔건데? 칠거냐? 그러면 나야 좋지.


치면 맞아줄 생각은 있다. 선빵 맞으면 내가  유리하니까. 그런데 지금 상황에 내가 선빵 맞는 것보다 선빵 치는게 먼저 나올것 같은데.

"야, 한가지 물어보자. 어울리고 말고를 누가 판단하냐? 나도 시온도 아닌 제 3자인 네가?"


"다른 사람이 봐도 명백하게 어울리지 않는다면 헤어지는게 정답 아닌가?"

"그러니까 그걸 왜 네가 판단하냐고. 설마 니네 집안엔 아직도 부모님이 결혼 상대 정해줘서 결혼하고  그러냐?"


나와 시온은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부부가 된거다.


그것 하나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심지어 운명의 절대자조차 가장 잘 맞을것 같은 시온을 환생시켜 나와 만남을 주선했을 뿐이지 거기에 운명의 붉은 실을 엮지 않았다.


우리 두사람의 만남은 절대자의 중매였을지는 몰라도 연애와 결혼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했기에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시온은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란거 잘 알아"


"분수를 알다니 잘 됐군. 그렇다면......"

"근데 그 개소리를 왜 나한테 하냐?"

언제든 시온을 우선시 하는 내가 결정권이 있을것 같냐?

나는 언제 어떤 상황이던 시온을 우선시 여긴다. 먹을게 없을 때도 시온을 먼저 먹이고 서로의 목숨이 위험할 때는 내 목숨을 2순위로 올린다.

그런 상황에 결혼 문제에 대해서 나한테 결정권이 있을것 같아?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약 시온이 나와 헤어지는걸 바란다면 마음이 박살나겠지만  악물고 헤어져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는 뜻을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부부인 이유는 시온이 그걸 바라기 때문이다.

"나랑 시온이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면. 내가 아니라 시온에게 가서 말했어야지. 당신 같은 여자에게는 나 같은 남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금 당장......"

"그렇게 말하면 되지 않냐고? 그러면 시온이 뭐라고 할까?"


시온은 분명히 이렇게 말할거다.


"'당신이 뭔데 저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판단합니까?'하고 말이지"

시온이 만약 남편감을 찾는다고 한다면  더 나은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거다. 초월자 중에서도 인성이 좋은 사람은 상당수 있고 나보다도 강한 사람도 있다. 나 같은 녀석보다도 훨씬 잘생기고 강하고 멋진 놈을 찾는다면 그렇게 고생해서 찾을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온은 나를 고른거다. 시온이 선택했고 시온의 의지다.


"니 새끼가 뭔데 시온의 결정을 부정하고 지랄이냐?"

"부모도 없는 고아 새끼가......!"

"패드립은 치지 마라! 임자 있는 여자에게 눈독이나 들이는 양심 없는 등신 새끼가!!"


파티장의 소란 속에서도 들릴법하게 언성이 올라가자 이쪽으로 시선을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그들은 말리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관전하는걸 선택했다.

솔직히 이쪽이야 편하다. 이야기를 알면 알수록 쓰레기가 되는건 저쪽이거든.

"만약 한번만  패드립치면,  뒤는 책임 못진다 새꺄. 남의 여자한테 찝쩍대면 부끄러운줄을 알아야지 그 따위로 굴어대는거 보면 세상 물정 참 모르나봐?"

"세상 물정 모르는건 너겠지. 그리고 현실을 보는 눈이 없는 것도 너고. 네가 어딜 봐서 시온씨에게 어울리는 사람이라는거지?"


"그건 내가 아니라 시온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잖아"

문득 나는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이 왜 나한테  지랄을 하는건지 말이다.

"너 이 새끼 시온한테 가서 말하기 쪽팔려서 그런거지?"

"........"


정곡이구나!!!

이놈은 최악 중에 최악......아니, 그러니까 내 이름 같아서 좆같지만 아무튼 최악의 패를 꺼내들었다.


하기사 대놓고 시온에게 가서 말하기에는 쪽팔린 사안이지. 그걸 깨닫고 있는 시점에서 그나마 지옥 밑구덩이는 피했다는걸 칭찬해주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정작 당사자에게 가서 말하기는 쪽팔린 주제에 만만한 나에게 말해서 해결하고 싶다? 거   편해서 좋겠다? 그런식으로 일이 해결되면 참 좋겠어, 그치? 그치?"

"이 새끼가!!!"


"설사 내가 헤어지고 싶다고 해도 시온은 헤어지기 싫어할껄? 분명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어보고  이유를 배제한 뒤에 다시 물어볼 사람이거든. 그 정도로 나는 시온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


나는 고개를 까딱이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 너는 시온에 대해서  알고 있지?"


"그건 지금부터 알아가면 되잖아! 고작 몇달 먼저 안것 가지고......!"

"니 새끼가 시온이랑 만난건 겨우 얼마 전에 처음 만난거 정도잖아. 애초에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뭘 어쩌겠다고?"


사랑이랑 서로간의 이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사실 알고보면 내용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같이 있던 시간도 실제로는 하루도 안될껄?


하지만 그런 사랑은 픽션에서나 존재하는 법이다. 운명의 절대자가 정해주지 않는 이상 하루만에 만나서 바로 연인이 되어 결혼까지 생각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


나도 시온이랑은 꽤나 오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사실상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맺어진건 환생 3회차 정도였다. 처음 만난건 2회차 때였으니 원수 사이만 아니지 만난 기간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나와 그녀는 서로를 이해하고 맺어지게 되었다. 그걸 부정하려고 들면 시발 절대자가 와도 아가리를 뜯어주마.

"너 시온에 대해서 뭘 아냐.  좋아하고 취미가 뭔지 알아?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 주제에 어디서 깝쳐? 네가 시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것 같아? 염병을 하고 있네"

"이 자식이......!"


"너는 결국에는 시온의 외모만 보고 반해서 지랄하는 등신 중에 상등신 새끼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도 계속해서 이 추태를 보이겠다고?"

그에게는 용기가 없다. 사업가의 자식이라서 그래 보이는 면모인지는 몰라도 가장  결정권을 지닌 사람에게 가서 말할 생각은 없고 제일 만만한 나를 상대로 떠들고 있을 뿐이다.

사실 권한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있는데도 말이다. 참으로 미련하지.

"개인적인 사담을 끼워넣으면, 외모만 보는 개자식은 우리 시온 데려갈 자격 없다 새끼야"


나는 시온이 여자든 남자던, 외모가 예쁘던 추하던 좋아한다.


환생자로서 깨달은 사실을 고작 일개 인간이 깨달을 수 있을리 없다. 그는 그저 겉모습만 보고 그걸 애정이라고 착각하는 병신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 내가 너보다 나은게 한가지 있어"

".....뭐?"


"난 최소한 군대 현역으로 다녀왔다 등신 새끼야"

".......!!!!"


"느그 아버지 빽 써서 면제 받은 병신놈하고 틀려요, 알았지? 군대도 제대로 못간 등신 새끼가 어딜 넘봐?"

돈 있고 빽 있으면 군대 같은거 현역으로 다녀올리 없지.

놈은 승질이 받쳐 오르는지 나에게 덤벼들었다. 확실히, 선빵을 맞으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충분히 이득을 볼  있다.


하지만 그래서는 내가 만족을 못한다.

나는 슬쩍 놈의 주먹을 피하고 그대로 카운터를 날려 놈의 안면에 주먹을 날린다.


퍼어어어어어어억!!!!!!!

"끄아아아아악!!!"

강렬하고 묵직한 스트레이트가 놈의 턱에 꽂혔다. 적당히 조절했지만 단숨에 멀쩡한 옥수수 몇개가 허공을 날아오른다.


"시발!!! 여자 친구도 아니고 멀쩡하게 결혼까지  남의 여자 탐내고 지랄하는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그리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사고 슬쩍 읊어주었다.

나머지는 시온의 차례다.



* *   * *



대성 그룹의 둘째 차남인 이상수와 대화를 하러 간 최악을 두고 시온은 그의 아버지인 대성 그룹의 회장 이진수와 마주하게 되었다.


초면은 아니였으나 그녀를  순간 이진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예술품은 그 자체만으로 사람을 감격시키기 때문이다.

"오......!"

"간만입니다. 회장님"

"그 모습은......시온 사장님 아닙니까?"

나름 대기업의 회장답게 빠르게 머릿속을 굴려 상대방의 정보를 확인했다.

애초에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어린애와 성인의 차이가 있어도 기반이 같은게 알아보지 못할리 없다. 단장하고 꾸며도 그 아름다움은 더 높을 뿐이지 똑같기에 별 차이가 없었다.


"얼마 전에 포스 유저로 각성해서 사회 생활을 할  있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그거 축하할 일이군요"

상대가 아름다운 미인이지만 이진수 회장은 방심하지 않았다. 상대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회장이였던 그의 아버지를 경질시킨 위인이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은 충분히 차고 넘치게 있다. 세대교체 이후 완만한 관계를 쌓고 있지만 그 모습 또한 언제 바뀔지 모른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따로 선물은 챙겨온게 없지만 이번 반도체 로열티는 저번 금액에 20퍼센트 할인된 금액으로 받도록 하겠습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조건으로 계약하도록 할겁니다"


"아! 그건 환영할만한 일이군요. 감사합니다"

"별일 아닙니다"

시온이 특허낸 반도체 기술 로열티는 일시불이기 때문에 금액이 크지만 거기서 할인이 더해진다면 부담이 덜하다. 차라리 수익의 퍼센티지를 감안한 것이라면 낫겠지만 전 회장이 로열티를 후려치려고 한 덕분에 이렇게 되었다.

그녀가 특허를 낸 기술은 없어도 제품 생산에는 문제가 없지만 효율이 다르다. 특히나 일본과 사이가 나쁜 요즘에는 일본의 원자재 공급 없이도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특허 기술도 몇가지 있다.


만약 시온이 돌아선다면 그룹의 주가 폭락에는 충분히 타격을 줄 것이 훤히 보였다.

"아, 그리고 오늘은 저희 남편이랑 같이 왔습니다"

"결혼 하셨습니까?"

"그 시점에는 몸이 불편해서......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서류만 제출해서 결혼 했습니다. 모르시는것도 이해는 갑니다"

"아쉽군요. 나중에 늦게나마 식을 올리실 계획이시거든 초청 부탁드립니다"


"회장님이신데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이진수 회장은 예의상 웃어보이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이라......그가 기억하는 시온은 어린애 같은 모습이라 아름다울지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성욕을 느끼기 어려웠다. 그런데 그런 그녀와 결혼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지금의 모습이라면 한 10년만 젊었을 시절에는 청혼이라도 했겠지만 그런 어린 모습의 그녀와 결혼한 사람이라니. 한번 만나보고 싶어졌다.

"좋은 사람입니다. 외모는 보통이라도 성격도 좋고 착해서 어지간한 일로는 화도 안냅니다"

"요즘 보기 드문 성실한 사람이군요"


"네, 저랑 관련된거 아니면 사람 하나 때리지 못하는 착한 사람입니다"


"좋은 인연을 만난것 같아서 진심으로 축하드......"

그 순간 파티장 한 구석에서 큰 언성이 들렸다. 이진수 회장과 시온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서로 익숙한 인물들이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진수 회장의 눈에는 자신의 차남인 사람이 누군가 대화를 나누다가 몸싸움으로 번지는 장면까지 눈에 띄었다.


"시발!!! 여자 친구도 아니고 멀쩡하게 결혼까지 한 남의 여자 탐내고 지랄하는 주제에 뭐가 어쩌고 어째!!!!!"

퍼어어어어억!!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의 아들을 후려쳐 이빨까지 몇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현기증이 일어났다.


하필이면 이런 자리에서, 피해자가 자기 아들이라니!!!

"저희 남편이 어지간히도 박친 모양입니다"


".........네?"

그는 평범한 인상의 남자를 다시금 살펴 보았다. 눈매는 조금 나빠 보이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한 사람인데. 이름 높은 예술가가 심열을 기울여 만들었을법한 외모의 시온의 남편이라고?

더군다나 발언 자체도 문제였다. 파티장 내부의 사람들의 모두 들었을만한 큰 목소리는 대략적인 상황을 이해하기 충분했다.

특히나 시온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이진수 회장은 빠진곳 하나 없이 완전히 이해했다.

"씨발......!!!!"

그는 나직히 중얼거리면서 자식이 아니라 원수 바라보듯 바닥을 구르는 차남 이상수를 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현실은 종종 판타지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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