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2화 〉[라쿤맨 비기닝] (179/507)



〈 182화 〉[라쿤맨 비기닝]

김두석 원장과 이야기를 끝내고 나는 시온과 함께 시설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1층은 초등학생과  이하의 애들, 2층은 중학생, 3층은 고등학생이 주로 사용한다. 초등학생이랑 중학생 때 기억은 희미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게 고등학생 때의 기억이다. 그때 사용하던 방의 기억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시설이 좀 오래됐습니다"


"내가 있을 때부터 썼는데 20년은 됐겠지. 솔직히 노화가 없는게 어디있......아, 너 있구나"

"늙지도 않는  쩌는 마누라가 여기 있습니다"

"크으으, 그만큼 귀엽고 사랑스러운게 더 좋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춤을 추는데?"


"침대 위에서 골반 댄스"

"아앗, 거기서 섹드립이"

3층에는 약간의 공용 공간과 공용 화장실, 그리고 방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대충 중대 하나를 우겨넣은 듯한......큭, 머리가!!

내가 있던 방은 계단을 올라가서 조금 안쪽에 있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건지 방 문 앞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진윤수.....윤수......아, 기억났다. 나랑 두어살 차이 나던 남자애다. 성격은 모난 성격은 아니여서 그냥저냥 알고 지냈던 경험이 있다.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져서 노크를 하니 윤수가 문을 열고 나왔다.

"누구세.....어?"


"윤수야, 안녕.  기억 나니?"


"형? 여기 어쩐일이예요? 시설 나가고 소식 없더니"


윤수도 기억에 남아있는지 내 얼굴을 보고 아는척을 했다.  외모가 나빠서 손해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럴 때는 그나마 사람들 기억에 남기 쉽다는 장점이 있었다. 아, 이건 잘생겨도 같은데.

"잠깐 지나가다 들렀어. 김뚜껑 보고 오는 길이니까 내가 쓰던 방만 보고 돌아가려고"

"근데 어.......옆에 계신 사람은 누구예요?"


"내 마누라"

"결혼 했어요?! 개쩐다!!!"


윤수가 개쩐다고 말한 부분은 결혼 했다는 부분이 아니라 시온의 외모 때문이였다.

솔직히 경국지색을 넘어선 경성지색이니  다한거지. 안면근육이 굳은듯한 무표정한 얼굴만 아니면 외모로 남자들 다 휘어잡았을테니까.

"방 좀 보고 갈테니까 혹시 개인적인거 있으면 침대 밑에 짱박아놔. 거긴 안볼께"

"어, 귀찮은데......"


"새끼, 내가 니 맘 모르겠냐. 용돈 부족하지?"

나는 지갑을 꺼내서 슬쩍 5만원짜리 2장을 챙겨주었다. 잠깐  치우고 나와있는 대가로 10만원이면 어떤 일자리도 이것보다 좋진 않을거다.

아무리 김두석 원장이 요즘 착해졌어도 용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한 법이다. 한창때의 학생에서 10만원 정도 줬으면 요긴하게 쓰인다.


"아! 잠깐만요!!!"

윤수는 방에서 조금 요란하게 뒤적거리다가 이윽고 나왔다. 잠깐 움직였는데 땀이 나는거 보면 어지간히도 숨길게 많았나 보다.

"다 치웠어요"


"잠깐만 보고 갈거야. 길어야 30분 정도니까 잠깐 요 앞에서 커피나 마시다 와"

"애들이랑 PC방 가야지"

하기사, 돈 생기면 딱 그 나이대 애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지 뭐.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윤수는 그대로 계단으로 달려나갔다. 주말에 시설에 박혀 있는것보다 다른데  있는 편이 낫다. 지금은 한찬 선선해질 때지만 이런식의 건물 구조는 통풍이 어렵거든.

그런데 슬쩍 보니까 에어컨 새걸로 샀네. 나 때는  90년대에나 볼법한 싸구려 에어컨이나 한대 놓여 있더니. 아무래도 진짜 김두석 원장이 개과천선하긴 한 모양이다.

"......참 좁습니다"


"그치?"

"어떻게 컴퓨터 하나 없습니까?"


"그나마 핸드폰은 나라에서 지원해준다고"

컴퓨터는 공용 구역에 있는 공용 컴퓨터를 쓴다. 그나마도 그게 나라에서 지원해준거고 학년이 높을수록 컴퓨터로 써야하는 과제나 숙제가 많아서 고학년은 학교에서 따로 방과 후에 컴퓨터실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여러가지 지원은 해주고 있지만 사실상 부족한게  실태다. 아니, 위에서 빼먹는게 많은거겠지. 빈대의 피를 빨아먹을 놈들 같으니.


작은 침대와 책상 정도만 있는 창문이 있는 작은 방이다. 아마 고시원보다 조금 나은 정도. 2인실은 이거보다 크겠지만 그래도 두명이 쓰는거 생각하면 많이 차이는 안난다.

책상에는 여러가지 필기구나 교과서 같은 책들이 늘어져 있고 침대에는 이불이 널부러져 있었다. 솔직히 조금 삭막한 풍경이기는 하다.

......아니, 개인적인 물건은 전부 침대 밑에 쑤셔넣어서 그런거구나. 남 보여주기 남사스런 물건도 당연히 있겠지.


한창 때의 남자애한테 그런게 없을리 없지! 나도 그랬는데!!!

"이런 방에서 3년이나 살았던 겁니까? 아니, 이런 비슷한 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는 겁니까?"

"그렇지 뭐"

"저 같았으면 당장 초월자 커밍아웃하고 돈 짱짱하게 벌어서 저택이라도 샀을겁니다"

"그런거 해봤자 귀찮기만 하지 부질없어"


내가 여기서 뭔 업적을 세워봤자 환생하면 전부 초기화된다. 여태까지 반복한 환생 중에 같은 곳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내 힘으로 별짓을  해봤자 거기에 찾아가려고 하는게 아닌 이상 그 득을 보기도 어렵다.


그리고 이미 살다 죽었던 세상에 가봤자 뭔 의미가 있겠냐. 추억 조금 남아 있는게 전부겠지.

"당신 생각은 이해 못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방에서 생활하면 불편하지 않습니까?"

"살다보면 익숙하지. 아까 윤수 봤잖아? 여기서도 사람은 살아"

솔직히 나 정도 초월자면 어딜 가도  자리 얻을  있는 수준이지. 심지어 차원 레벨로 노는 수준으로 나가도  정도 되는 놈들은 얼마 없기에 중요한 인력이다. 단순히 무력적인 레벨이 아니라 가진 힘을 통해 거기서 파생되는 이득도 있다.


예전에 가이아 교 사건 때 유진이에게 걸어준 축복을 남에게 걸어주면 어떨거 같아?

별다른것 없이 나 이상의 초월자가 개입되지 않는 이상 암살 위협에도 신경 안쓰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인데 그런 축복이면 돈 좀 있는 놈들은 보디가드 싹  해고하고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겠다.


부와 명예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건 정해지지 않은 가치다. 천금의 돈으로도 나를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사람 한명의 마음으로는 나를 움직일 수 있다.

"되도록이면 당신이 제대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평범하게 잘 살잖아?"

"인간답게 말입니다"

"......그건 좀 힘들겠군"


사람답게면 모르겠지만 인간답게는 힘들다. 애초에 인간답게라는 의미는 인간성을 뜻하고 인간성에는 구체적인 선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나조차도 구별은 할 수 있다. 학대당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남편을 죽인 아내나, 살아남기 위해 식인을 하여 생존한 사람을 누가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동정해줄 수 있다. 이해와 납득의 문제다.


"일단 나가자. 이런 좁은데 둘이서 계속 있으려니까 답답하네"


"밀폐된 공간에서 단 둘이......"

"아니?! 그건 집에가서 하자고 집에가서!!!"

여긴 개인 방이라도 한발자국만 나가면 공공장소다. 야외 플레이가 꼴리긴 해도 솔직히 이런데서 하기에는 무드도 뭐도 없지 않냐.

잠깐 이야기 하면서 시설에서 나왔다. 오랜만에 왔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변해서 다행이다.


상당수가 김두석 원장이 개과천선한 덕분이지만 그렇기에 사람은 반성이 중요하다. 반성부터 안하는 놈들은 용서해줄 자격도 없다. 마냥 반성한다고 용서해줄 의무도 없지만 본인 스스로 깊이 반성한다면 선을 넘지 않은 일은 충분히 용서할  있다.

"아무튼 일단 집으로 돌아갈까"


오늘 하루 참 길었다.




 *  *  *



오늘 있었던  생각하면  긴 하루였다. 아침에는 권룡여제 때문에 지랄하고, 오후에는 옷 맞추고 시설 다녀오느라 바쁘고.

육체적으로는 아닌데 정신적으로는 좀 피곤하네. 그래도 시온은 기분 좋은것 같아서 다행이다.

"다녀오셨어요"


"캥!!"


"어이구, 우리 댕댕이. 집 잘보고 있었어요?"

"아옳옳!!"


여우는 뭐라고 울지? 댕댕댕 댕댕댕!!! 하티하티 하티호!


여우는 개과니까 멍멍하고 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울음소리가 독특하다. 마치 멀록이 우는 소리 같군. 귀여움은 천지차이지만.

"어딜 다녀오셨길래 주말에 늦게 들어오세요? 데이트 나가셨어요?"


"아,   맞추려고. 다음주에 파티 갈 일이 있으니까"


"무슨 파티요?"


"말 안했었나? 대성그룹 회장 생일 파티야"

"어?! 그런데 가요?! 좋겠다!"

예진이가 기대하는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만 들으면 꽤나 호화롭고 비싼 파티라고 생각할거다.


사실 겉만 보면 진짜 그렇기도 하니까. 그 파티에 얼마나 들어가는지를 생각한다면 분명 비싸고 호화로운 파티인건 맞다.

"아직 그런 자리에 환상이 있을 때가 제일 좋은 법이지......"

"실상은 질척질척한 늪지대나 다름없습니다"

"어?  그래요? 제가 이상한  했어요?"


"원래 그런 곳은 안가는게 제일 좋습니다"


"초대 받는 시점에서 늪에 빠지는거나 다름없어"

결국에는 좀 더 예의바른 아귀다툼이다. 아니, 밑바닥에서는 대놓고 덤벼드니까 그나마 낫지 앞에서는 착한  해도 뒤에서는 호박씨 까는게 일상이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도 그런 곳에서 누가 아군인지 적인지 구분할 수 없다.


그런 파티에 간다는건 입벌린 아귀들을 조지러 들어간다는 소리다. 몸에 피와 오물이 묻을 각오를 해아한다.


"세상에 가진놈이 더럽지 않을 확률은 낮지"

"원래 그런 세계입니다. 세금 전부 내서 탈세 한푼도 안하는 저도 더럽지 않다고 못할 정도니 말입니다"


"......뭔짓 했어?"


"별일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줄께"

".......어린 모습이라고 얕보고 반도체 로열티 등쳐먹으려고 했던 대성 그룹 전 회장을 경질시켰습니다"


"뭐 했어?!?!"


전부터 심증은 있었지만! 있었지만! 정작 본인 입으로 듣는건 다른 문제라고!!!

"저는 사람이 좋은거지 호구가 아닙니다. 적정한 로열티면 그냥저냥 넘어갈 생각이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후려칠 생각이라 빡쳐서 조져버렸습니다!"

"그건 내 말투지!!! 얼마나 후려쳤길래 그래?"

"주려고 했던 돈이 제가 생각했던 금액의 10분지 1도 안됩니다"

"아, 그건  너무한거 아니예요?"

"그래서 확 돌아서 주식 가지고 장난질 좀 치고 주주들  좀 부추겼더니 경질시켰습니다. 그리고 로열티도 일시불로 받았습니다"


"근데 일시불로 받는 쪽이 더 불편하고 금액도 적은거 아니야?"

"그룹을 딴 사람에게 넘겨줄 생각이 아니면 자식한테 회사 물려줘야 할텐데, 상속세랑 증여세를 내야 하는 시점에 로열티를 현찰로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금난으로 고생  하겠네"


"사소한 복수입니다. 거기서 대성 그룹 주식  모아서 재미좀 봤습니다"


"마지막이 본론 아니냐"


대성 그룹이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그룹이니까 자금난 정도로 폭삭 망하지는 않을거다. 하지만 충분한 복수는 되겠지. 이래저래 발품 팔아야 할거고. 시온도 대성 그룹 같은게 망하면 생길 여파 때문에 그런 식으로 처리했을거다.


솔직히 그냥 전산 정보 해킹해서 주식을 똥값으로 만들고 보유 자금을 전부 제로로 만들면 기업 끝장나는거 한순간이다. 솔직히 시온이  먹고 해킹하려고 들면 같은 하논 중에서도 유토피아 빼고는 막을 사람이 없다.

"아무튼 다음주가 피크네. 바쁘게  마무리 하고 중국 가고  처리하면 솔직히 할일 다 했으니까 문제는 없겠다.  오래 질질 끌었으니까 끝장을 보자"

"어느쪽 일을 말하는겁니까?"


"둘 다"

대성 그룹이던 중국이던 간에 말이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
 

0